양곡법 논란, 과학자 눈에 비친 오류와 새 해법

[정연섭의 과학과 철학] 개정 양곡법, 옳고그름 판단내리기 어려워 정부·여당의 논리엔 오류와 오해 적지않아 농민에게 농작물 무역 권한을 주는 방법은?

국민과 함께하는 농민의 길' 관계자들이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양곡관리법 전면개정을 촉구하며 손팻말을 들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국민과 함께하는 농민의 길' 관계자들이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양곡관리법 전면개정을 촉구하며 손팻말을 들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비닐하우스 농사

2년 전 회사 퇴직을 앞두고 농사를 알아봤다. 중학교 졸업까지 논농사일을 도운 터라 노동에 익숙하고 은퇴 10년 전부터 정원을 가꾸었으니 기대가 컸다. 그러나 농사 수익을 검토해보고는 기대를 낮췄다. 당시 1000㎡당 수익이 시설 오이와 딸기가 약 1000만 원 정도로 최고가 나오는데, 필자가 매입한 땅은 1000㎡도 되지 않아 오이를 심어도 소득이 별로였다. 화훼 재배는 수익이 더 낮지만 꽃 정원을 만들면 판매 수익도 있을 거라 최면을 걸며 비닐하우스를 지었다. 지금도 여전히 수익보다 비용이 더 많이 들지만 깨끗하고 아름다운 주변 환경을 바라며 땀을 흘리고 있다. 이웃의 한 농부는 청계 닭을 새로 들여놓았고 다른 한 농부는 꿀벌을 분양하여 소득을 얻고 있다. 이 분들은 소득보다는 노동의 즐거움과 교제의 즐거움에 만족해 한다.

과학적 분석의 사례

필자는 개정된 양곡법의 혜택을 받을 입장은 아니지만, 정부가 양곡법 개정안을 거부했다는 소식에 놀랐다. 정부가 농민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것이 아닌지 걱정되었다. 때마침 친구가 양곡법 개정 문제를 과학적 관점에서 접근해 보라고 제안했다. 필자는 과학 칼럼을 주로 쓰기 때문에 정치 현안에는 못 본 척하는 편이라 선뜻 내키지는 않았지만, 지인의 부탁을 따를 때 기대 이상의 깨달음이 있었으니 이번에도 살펴보기로 했다.

우리에게 <팡세>의 작가로 알려진 파스칼은 뛰어난 수학자였고 과학자였다. 하루는 친구가 도박하다가 경찰이 들여닥쳐 중단되면 판돈을 어떻게 나눌지 질문했다. 파스칼은 중단 당시의 승률에 근거하여 판돈을 나누는 방법을 제시하였다. 수학에서 ‘확률론’의 시작이다. 19세기 스웨덴의 국왕은 여러 행성이 돌고 있는 태양계의 안정성에 의문을 제기하였고 프랑스 수학자 앙리 푸앵카레가 이를 풀어 ‘카오스 이론’의 발판을 마련했다.

‘정의론’으로 잘 알려진 미국 철학자 존 롤스도 사회의 분배 제도를 설계하는 공리를 제시했다. 누구나 최하위 계층이 될 수 있다는 ‘무지의 장막’이라는 원리에 기초하여 분배 제도를 제시하였고 정치제도에 대한 사고를 전환했다. ‘한 단계 아래서 생각하라’는 롤스의 방법론은 그래서 근본을 추구하는 수학의 방법론이기도 하다. 이들 수학자, 과학자, 철학자들의 해답은 엉뚱한 부탁을 받고 생각하다 대박을 터트린 경우다. 현대의 사회 이론은 과학적 방법론을 이미 받아들여 과학이 추가로 기여할 바가 있는지 조심스럽기는 하지만 과학자의 접근도 필요할 지 모른다.

프랑스의 수학자 앙리 푸엥카레.
프랑스의 수학자 앙리 푸엥카레.

양곡법 개정안은 쌀의 생산량이 소비량보다 3~5% 초과하거나, 쌀의 가격이 전년도 보다 5~8% 하락하면 정부가 쌀을 의무적으로 매입하는 내용이다. 윤석열 대통령과 정부는 쌀 수급 조절로 현재 1조 원의 재정 부담이 있는데 법개정안으로 4000억 원이 더 늘어난다며 거부권을 행사했다. 여론조사에서 보면 많은 국민이 필자처럼 농부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정부라고 인식하는 듯하다.

그런데 필자가 이 문제를 파고들면 들수록 쉬운 문제가 아님을 깨달았다. 생산과 소비의 가격 문제에서 벗어나서 FTA 문제, 쌀 수입 제한, 농촌의 공익성, 식량안보, 농업 보조금까지 고려해야 하는 문제다. 필자는 직관적인 결론을 내렸다가 철회하기를 반복했다.

양곡법 개정안의 장단기 효과

양곡법 개정안처럼 정부가 쌀을 매입하여 시장에서 격리하면 쌀값은 단기적으로 안정될 것이다. 그렇지만 쌀은 과잉 생산되고 밀, 콩 같은 작물은 수입에 의존하는 상태가 고착될 가능성도 크다. 초과량을 정부가 매입하여 주니 쌀 면적을 줄일 이유가 없다. 만약 흉년이 들어 쌀 가격이 급등하더라도 다음 해에 가격이 내려가면 정부가 매입하여 주니 쌀 재배를 줄일 이유가 없다. 비현실적인 시나리오라고 비판할 수 있지만 개정안을 들여다볼수록 효과와 부작용을 예측하기 어렵다.

그럼 효과를 명확히 알 수 있는 과학적 정책이 있는가? 여당과 야당의 정책을 맘껏 비난할 자유가 있는 필자도 파스칼이나 푸앵카레, 존 롤스의 능력에 미치지 못하는 만큼, 필자에 대해 기대치를 낮추고 이 글을 봐주시면 시골 할머니의 지혜 정도는 공유할 수 있을 것 같다.

농촌문제의 원인

해답을 제시하기 전에 농업을 조금 살펴보면 농업 문제는 자유무역협정(FTA)과 같은 자유무역 제도에서 증폭됨을 알 수 있다. 자국 내에서 생산하여 자국 내에서 소비된다면 농촌문제가 발생할 이유가 없다. 격리된 경제시장에서 생산량과 소비량은 농작물의 가격에 의해 조절되고 농민의 수도 자연스럽게 조정된다. 그러나 FTA가 농촌문제를 복잡하게 만든다.

국내의 자원만으로 살아가기 어려운 우리나라는 공산품을 수출하기 위해 FTA를 체결해야 했다. 쌀수입을 금지한 예외 조항이 있지만 FTA로 인해 육류, 밀, 보리 등 대부분 농축산물이 수입되었고 밥상에서 쌀을 대체하기 시작했다. 수입된 축산물과 밀은 쌀 소비량을 줄였고 수입이 금지된 쌀의 가격도 간접적으로 하락할 수밖에 없었다.

FTA로 제조업이 이득을 얻었으니 피해를 본 농촌은 손실을 보상받아야 했다. 기업에 선의를 강제할 수 없으니 세수를 얻은 국가가 대신 보상해 주는 것이었다. FTA 이후 땅을 매입한 필자 같은 경우는 이런 보조금을 받지 못했다. 농업 보조금은 우리나라에만 있는 제도는 아니며 미국이나 유럽에도 있으며, 그들은 보조금을 통해 농업 경쟁력을 강화해 왔다. 그래서 국가가 보조금으로 농민에게 혜택을 베푼다는 인식은 ‘오해’이다.

우리나라 농가 소득은 연간 약 4500만 원 정도이다. 평균 도시민에 비하면 좀 낮은 수준이다. 농가 소득을 세분하면 작물을 재배하여 얻는 농업소득이 1/3, 노동을 팔아 얻는 농업 외 소득이 1/3, 정부에서 지원하는 보조금 등의 전이 소득이 1/3이다. 작물을 재배하여 얻는 소득보다 보조금이 짭짤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농업의 공적 기능

농가는 의사나 대기업 노동자에 비하면 엄청나게 적은 소득을 얻지만, 농민의 공익기능은 그들보다 덜하지 않다. 농민은 ‘지역 소멸’을 막는 역군이다. 군인 만이 국토를 지키는 것이 아니다. 지방에서 살아가는 국민은 국토를 실효적으로 방어한다. 독도를 지켜야 한다는 국민 여론이 비등하지만, 지방을 소멸시키면서 독도를 지킨다고 한다면, 설득력이 낮을 것이다. 그래서 농민과 어민들은 방위비를 받고 치안 유지비를 받을 권리가 있다. 농촌 하면 식량안보와 탄소 저감을 떠올리지만, 다른 한편에서 농업과 어업은 국토방위의 최전선에 있다.

낮은 농가 소득에도 불구하고 농민은 수익이 그나마 낫고 노동력이 덜 들어가는 벼를 재배한다. 지금이야 쌀 과잉생산으로 나라가 난리를 치지만 몇 년 전만 해도 쌀의 자급자족이 우리나라의 숙제였다. 통일벼를 시작으로 품종을 개량하고 기계화를 이루자 현재의 자급자족 시대가 도래했다. 식량안보를 이루었다는 안도감도 잠시, 탈이 생겼다. 쌀 가격이 내려간다고 해서 하루에 4끼를 먹을 리 없는 인간들로 인해 쌀의 소비량은 탄력이 없었고 과잉생산의 문제가 일어났다. 국내 쌀값이 수입 쌀보다 높으니 수출은 거의 불가능하다.

쌀 자급률은 충분하지만, 밀이나 콩 등의 자급률은 채 10%도 안돼 전체적으로 우리나라 식량 자급률은 50% 이하이다. 당연히 정부는 쌀 재배 면적을 줄이고 타 작물 재배를 원한다. 정부는 쌀 대신에 다른 작물을 심으면 전략 작물 직불금을 준다. 그런데도 수입되는 밀이나 콩의 가격이 국내 생산 농작물보다 현저히 낮아서 농민들은 직불금을 포기하면서 여전히 쌀에 집착하고 있다.

농산물 무역을 농민에게

필자는 FTA 하에서 농촌문제를 간단한 원리로 접근하고자 한다. 시골 도로를 달리다 보면 길가에서 농산물을 팔고 있는 할머니의 ‘지혜’이다. 할머니들은 국내산을 팔다가 떨어지면 외국산을 꺼내 판다. 비양심적이라고 생각되지만, 그 속에도 지혜도 숨어 있다. 그 지혜는 국내 작물을 재배하는 농민에게 수출입 무역 권한을 주는 전략이다.

농민들은 농협 같은 단체에 무역을 위임할 수도 있다. 무역의 이익은 자신이 재배한 농작물량에 비례하여 나눈다. 국내 작물의 가격이 높으면 수입으로 이익을 얻고 국내 작물 가격이 낮으면 수출로 이익을 얻을 수 있다. 이익은 자신의 재배량에 비례하므로 농민은 더 많은 농작물을 심고 가꾸게 되어 국내 농업 기술이 저절로 발전할 수 있다.

할머니의 지혜에 하나를 더 붙이면, 농산물을 소비할 국내 시장의 개척이다. 지금처럼 농촌을 교육의 체험장으로 전환하는 전략뿐만 아니라 전국의 도시와 농촌을 ‘관광의 장’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유럽은 역사적으로 자기 주택을 맘대로 개조하지 못하고 도시의 미관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개선을 허용했다. 제멋대로인 간판을 설치할 수 없고 지붕 기와를 임의로 바꿀 수가 없다. 연휴만 되면 우리는 그런 도시를 관광하려 인천공항이 발 디딜 틈 없지만 정작 우리의 마을을 그렇게 꾸미지는 않는다. 내 마을을 꾸며 관광지로 만들 때 농촌에서 생산된 작물을 소비하는 시장이 열리지 않을까.

글쓴이

정연섭 '크로의 과학사냥' 저자

'크로의 과학사냥' 저자인 정연섭은 한국수력원자력 중앙연구원 연구원으로 재직하다 퇴직했다. 최근 한국원자력학회 사무총장을 새로 맡았다. 서울대 화학 석사 후에 LG화학연구소, 한국전력연구원을 거쳤다. 50여 편 발표 논문, 10여 건의 특허를 등록했다. 원전 설계 및 수출로 한국원자력학회 기술상, 산자부 표창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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