둥근 사각형이 있는가?...머뭇거린 과학

[정연섭의 과학과 철학] 현실적 검증으로 충분했던 수능 출제오류 법에 앞서 한국 지식인들, 좀더 용기냈어야

에셔의 오르내리는 계단
에셔의 오르내리는 계단

누구나 맞추는 변별력 문제

올해 수능시험에서 변별력을 부여하기 위해 넣었던 생명과학 II 20번 문제가 한 달간의 논쟁 끝에 법원 판결로 가치를 잃었다. 수능이 끝나자마자 학생들과 인터넷 강사들은 문제에 오류가 있다고 이의를 제기했고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검토 후에 별 문제없다고 버텼다. 법적 투쟁으로 이어졌고 프린스턴대학교 조너선 프리처드 교수와 안철수 대선 후보가 불려 나왔다. 그들의 상세한 풀이를 보지 않았지만 개체수가 음수로 나오므로 잘못된 문제라며 학생 편을 들었다.

1981학년도 예비고사를 치른 필자도 생물을 배운 탓에 본 수능 문제의 멘델법칙 정도는 알지만 하디-바인베르크 법칙은 생소했다. 그래도 과학기술계에서 보낸 짠 밥으로 덤볐다가 손을 들었다. 지문으로 나온 ‘대립 유전자의 우열이 분명하다’라는 표현을 ‘대립 유전자의 우열이 불명하다’로 바꿔야 된다고 투덜대는 사이에 허용된 시간은 흘러갔다. 결국 검색을 통해 인터넷 강사가 풀어놓은 쪽지를 보았다. 그들은 ‘분명’을 한치의 의심도 없이 분명히 해석하였고 제법 긴 풀이 과정을 통해 특정 속성의 개체수가 음수임을 보여주었다.

교육평가원은 음수로 나오는 개체수를 계산하지 않더라도 해답을 구할 수 있으므로 별문제 없다고 주장하나 조너선 프리처드 교수는 개체수를 먼저 구하고 해답을 얻는 방법도 있다며 반론을 폈다. 오류 문제라도 제대로 찍은 수험자를 배려하겠다는 교육평가원의 입장은 이해되지만, 문제없다는 평가원의 주장은 궁색하다. 해답 풀이 전 과정에서 일관성을 유지해야 하는 과학적 문제에서 부분만 보고 해답을 주장할 수 없다.

법원이 출제 오류로 판단, 전원 정답 처리된 2022년 수능 생명과학Ⅱ 20번 문항.
법원이 출제 오류로 판단, 전원 정답 처리된 2022년 수능 생명과학Ⅱ 20번 문항.

하디-바인베르크 원리와 동성애

필자의 기억에 없는 하디-바인베르크 원리는 1908년에 발표되었다. 집단유전학의 중요한 도구이며 진화의 증거로 활용된다. 유전학의 선구자 멘델은 수도원에서 완두콩을 심고 세고 심고 세고를 수백 번 반복하여 유전법칙을 1865년에 밝혔다. 멘델 법칙에 따르면 엄마와 아빠로부터 열성 유전자와 우성 유전자를 각각 물려받더라도 열성 유전자는 억제되고 우성 유전자만 발현된다.

부부관계에 불충실한 사람들은 자식이 자기를 닮지 않을 수도 있다는 멘델법칙에 안도했지만 또 다른 의문을 제기했다. 그런 방식으로 유전되다가는 열성 유전자는 먼 자식 세대에서 사라지지 않는가? 하디-바인베르크 원리는 세대가 내려가도 열성 유전자의 비율은 감소되지 않고 유지된다는 원리이다. 수학자 하디는 너무 간단한 수식으로 이를 증명하여 자신의 이름을 빼고 싶었다. 순간의 쪽 팔림을 극복하고 그 이름은 영원히 빛나고 있다.

생물종을 조사하면 하디-바인베르크 원리는 지켜지기도 하지만 돌연변이 등으로 깨어질 수도 있다. 필자는 동성애도 하디-바인베르크 원리를 따르지 않을 거라는 확신을 품고 자료들을 살피고 있다. 기원전 소크라테스를 포함하여 그리스 철학자들은 동성애를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그런데 동성애는 자녀를 낳을 수가 없으니 동성애 유전자는 점점 줄어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신이 되려 하지 마라

본 수능 문제는 하디-바인베르크 원리를 동성애자가 아니라 ‘색’과 ‘길이’가 다른 곤충에 적용했다. ‘색’과 ‘길이’라는 두 개의 속성을 지닌 곤충은 자연계에서 발견될 수 있지만 비비 꼰 7개나 되는 인위적 조건을 만족시킬 곤충이 실재하는지는 의문이다. 물론 대부분 시험문제도 조건을 부여하여 이상적인 환경을 조성한 후에 해답을 요구하긴 한다. 그렇지만 인위적 조건이 많을수록 상호 간에 충돌이 발생하므로 이상적 환경 조성이 어렵다.

이 수능에서도 ‘I집단과 II집단에서 유전자 B의 비율이 동일하다’는 조건은 위태로워 보인다. 두 집단 사이에 유전자 비율이 동일하면 이 유전자가 발현된 개체의 수도 비슷할 수밖에 없으므로 타 조건의 자유도가 상당히 제약을 받는다. 문제 출제자가 자연계의 실재 곤충을 찾지 않고 상상계의 이상 곤충을 창조하려는 유혹에 빠지는 순간 오류 발생 가능성이 높아진다.

출제자나 검토자도 7개 조건이 서로 상충되는지 알지 못했다. 프리처드 교수나 필자도 문제를 풀어 음수 결과가 나온 후에야 조건이 잘못되었음을 알았다.

곤충에도 귀신이 있나?

7개의 과잉 조건으로 음수의 개체 수가 나왔다. 이를 받아들일 수는 없는가? 헛소리 같은 시도 같지만, 비상식도 문명 발전의 동기로 작동할 수가 있다. 우리는 자연수에서 시작하여 정수, 유리수, 실수, 복소수로 마무리되는 수체계를 알고 있다. 그런데 이런 수체계는 이번 문제와 같이 헛소리에서 발견되었다.

인류는 1만 년 전 농업혁명 이후 발전하면서 일찍이 숫자를 발명했다. 그런데 유독 숫자 0은 12세기경에야 인도에서 발명되었고 유럽에는 르네상스 시기에 전파되었다. 인류의 의사소통은 0을 통해 엄청 편리해졌는데 0은 왜 이렇게 늦게 나타났는가? 굳이 이유를 대라면 ‘무’를 공란으로 두어야지, 0이라는 명시적 기호를 도입할 수 없다는 관습에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이다. 집착을 버리자 숫자 0이 보였고 한번 더 편견을 버리자 음수가 나타났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방정식의 해답에 이상한 숫자가 나타나면 바로 버리기보다는 이리저리 돌려보며 의미를 찾는다. 회계장부에 음수가 나타나면 이익 대신 ‘손해’를, 온도계에 음수가 나타나면 영상 대신 ‘영하’를 의미하도록 음수의 의미를 확장했다. 이런 노력 덕분에 여러 현상들이 음수로 표시되고 자연스럽게 해석된다.

이 해석 방법을 음수 개체수에 적용하여보자. 가령 양수는 눈에 보이는 곤충이고 음수는 눈에 안 보이는 곤충이다. 여러 해석을 짜내어 보았지만 적절한 음수 해석은 어려웠다.

둥근 사각형이 있는가?

인류는 어떤 진술이 모순이 있느냐 없느냐를 판별하고자 검증 능력을 발달시켰다. 모순을 밝히려 논리학이 고대 그리스에 출현되었고 분석철학이 20세기에 태동되었다. 이를 설명하려면 머리가 지끈지끈하니 일단 강단 학자들이나 논리학과 분석철학을 사용한다라며 넘어가자.

오히려 일반인들도 모순을 판별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음에 주목하자. 언어를 통해서다. 누구나 모국어를 구사하므로 언어의 기능을 경시하기 쉽지만 언어의 검증기능도 강력하다. 형식을 따지는 문법론과 의미를 따지는 의미론에서 언어의 검증능력이 나온다. 가령 “둥근 사각형을 그려라”라는 문장은 문법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지만 의미적으로 어휘 사이에 모순이 발생한다. 사각형은 4개의 모서리를 지니므로 둥글 수가 없다. 문법론과 의미론은 진술의 모순을 발견하는 가장 기본적인 방식이다.

비현실적 화가 모리츠 코르넬리우스 에셔는 자연법칙을 위배하는 그림을 남겼다. 그의 ‘오르내리는 계단’은 꾸준히 상승하는 계단인데 한 바퀴를 돌고 나면 제자리로 되돌아온다. 언어의 문법론이나 의미론으로 이런 계단의 존재를 검증할 수 없다. 자연언어의 한계이다. 실제 그려봐야 검증할 수 있는데 에셔는 교묘하게 그려 놓아 이마저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문법론과 의미론이 검증의 한 방식임을 인식하지 못했던 고대 그리스 인들이 논리학만을 검증의 방식으로 공식화한다. “소크라테스는 사람이고, 모든 사람은 죽으므로 소크라테스도 죽는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삼단논법은 논리학의 대표적 추론 공식이다. 지금의 논리학은 힘을 잃고 궤변을 늘어놓는 정치가의 도구가 되었으니 씁쓸하다.

과학자들이나 수학자들은 자연언어, 논리학을 뛰어넘는 특수 언어를 창제하여 검증을 한다. 특수언어는 문제에 따라 다양하다. 이번 수능 문제에 대해서도 컴퓨터 프로그래밍 언어를 통해 검증하는 학자를 보았다.

현실적 검증과 근원적 검증

앞에서 말했듯이 음수의 개체수는 현실적으로 수용될 수 없다. 이것으로 충분하다. 우리 삶의 대부분 진술들은 현실 수준에서 검증되고 수용된다. 그런데 양파 껍질을 벗기듯이 근원적 검증을 추구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다친다.

20세기 초 독일 수학자 힐베르트는 컴퓨터로 모든 진술을 검증하겠다는 위대한 계획을 발표했다. 힐베르트는 수학의 밀레니엄 문제를 최초로 제기한 자이기도 하다. 그의 의도는 고등수학을 중등 수학으로 검증하고, 중등 수학을 초등수학으로 검증하듯이 고차원적 진술을 더 단순한 진리로부터 설명하려는 시도였다. 당시 러셀, 비트겐슈타인 등 쟁쟁한 학자들도 이 분위기에 동참했다.

역사적 검증계획은 25세의 괴델이 근원적 검증 불가능을 발표하자 깨어지고 만다. 어려운 증명이라 일부 수학자들도 괴델의 발표를 이해하지 못했지만 노년의 힐베르트는 단번에 알아차리고 자신의 꿈이 사리지는 광경을 조용히 바라보았다.

근원적 검증 불가능성은 ‘더 깊게 더 높게 추구할 세계는 있지만 결코 그곳에 닿을 수는 없다’는 뜻이다. 즉 인간의 한계를 알려주지만 도전할 영역을 제한하지는 않는다.

천재 괴델은 음식 안에 독이 있다는 망상에 사로잡혀 굶어 죽었다. 검증의 불가능성을 주장했던 그가 왜 그런 바보짓을 했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다른 사람이 먹으면 나도 따라먹는 것이 현실적 검증이다. 본 수능 문제도 근원적 검증보다는 현실적 검증으로 충분했지만 교육평가원은 현실적 검증마저도 소홀했다.

갈릴레오의 탄식

그 수능 문제는 모두 정답 처리되어 학생들을 변별하지 못했지만 지식인을 변별한 귀한 교훈을 남겼다. 궁색한 변명을 늘어놓는 교육평가원과 기득권에 안주하는 관련 학술단체의 일면을 얼핏 보여주었다.

종교재판에서 갈릴레오가 지동설을 철회하고 목숨을 부지했지만 그는 여전히 지구가 돈다는 사실을 믿었다. 동시대 과학자들도 지동설을 믿었고 갈릴레오에 공감했다. 저항 속에서도 참된 지식을 향한 열망은 근대 과학을 꽃피웠다.

종교재판은 신앙의 입장에서 지동설을 거부했지만 근대 과학자들은 학문의 입장에서 지동설을 수용했다. 교육평가원은 교육의 입장에서 이의신청을 거부했지만 한국 지식인들은 학문의 입장에서 이의신청을 수용했어야 했다. 서로 다른 입장이 존재한다고 할지라도 시간이 지나면 결국 진리로 나아간다. 그런데 학술단체마저 진리를 외면했으니 우리나라는 수렴할 미래가 희미했다.

법원이 올바르게 결정하여 주었고 평가원장도 책임을 지고 사퇴했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그리고 문제 출제자와 검토자는 예상대로 말이 없다. 우리가 문제 출제자와 검토자를 보호해야 하지만 그들을 역사의 기록으로는 남겨야 한다. 문제 실명제가 새로운 문제 유형을 창조하고 오류 재발을 막는데 조금은 기여할 것이다.

글쓴이

정연섭 '크로의 과학사냥' 저자

'크로의 과학사냥' 저자인 정연섭 연구원은 한국수력원자력 중앙연구원에 재직중이다. 서울대 화학 석사 후에 LG화학연구소, 한국전력연구원을 거쳤다. 50여 편 발표 논문, 10여 건의 특허를 등록했다. 원전 설계 및 수출로 한국원자력학회 기술상, 산자부 표창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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