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버스, 가지 못한 길과 다 가본 길

[정연섭의 과학과 철학] 메타버스 세계에도 ‘가지않은 길’ 있을까

제페토의 가상공간
제페토의 가상공간

누리호의 궤도 진입 실패 원인

작년 누리호가 궤도에 진입하지 못한 이유가 두 달 간의 조사 끝에 밝혀졌다. 1단 2단 로켓이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최종 3단에서 실패하여 필자도 대체로 성공한 프로젝트로 판단했다. 실패의 명목상 원인은 3단 로켓 연료인 산화제의 압력이 저하되어 로켓 엔진이 일찍 멈춘 탓이다. 이는 사고 당일 발표되었지만 산화제 압력이 저하된 근본 원인에 대해서는 이번 조사를 통해 밝혀졌다.

당시에는 압력을 재는 센서에 문제가 있었다는 추측도 있었지만 누리호 발사조사 위원회는 비행 중에 얻어진 여러 관측 자료들을 종합 분석해 센서 고장보다는 ‘산화제 탱크 누설’을 밝혀냈다. 보고서와 관련 발표자료를 보면 발사 후 36초부터 특이한 진동이 관측되었는데, 이 진동은 산화제 탱크 내부에 설치된 고압 헬륨탱크를 잡아주는 지지대가 흔들리는 소리였다고 한다.

필자는 로켓을 설계한 경험이 없지만 엔지니어의 지식으로 해석은 가능하다. 고압 헬륨가스는 산화제 탱크의 압력을 보충해 준다. 로켓이 산화제를 소모할수록 산화제 탱크의 압력도 떨어지는데 헬륨가스는 떨어지는 압력을 보충해 산화제가 중단 없이 공급되도록 한다. 헬륨 탱크는 지지대에 고정되어 있는데 설계자들은 누리호의 가속과 감속에 따른 부력을 거의 고려하지 않고 지지대를 설계했다.

가속과 감속에 따른 부력의 엄밀한 계산이 가능하지만 비유로 설명해 보자. 해안 바위틈에 뿌리를 내린 나무들은 바다가 잠잠할 때에는 거의 파도의 힘을 받지 않지만 바람이 불어 파도가 일면 나무가 뽑혀 나갈 수가 있다. 산화제 탱크에는 들어 있는 액체산소는 가속, 감속에 따라 흔들리고 압축 팽창되므로 지지대는 부력뿐만 아니라 뒤틀리는 힘을 받는다.

위성 전문 설계자라면 이런 문제를 충분히 인지할 수 있다. 또한 그런 능력으로 이번 사고 원인을 밝혀냈다. 만일 대학을 막 졸업한 초급 엔지니어가 설계를 맡았다면 이 문제는 인식되지 않았을 수도 있겠다. 한편으론 설계자가 이런 현상을 놓쳤더라도 제작자가 이를 발견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의문도 든다. 아무튼 한 사건이 일어나고 나면 말들이 많은 편이다. 이런 경향을 ‘사후 과잉 확신 편향’이라고 한다. 필자도 조사 보고서를 보고 나서야 이해가 되었으니 이 편향에 빠져 있을 수 있다.

설계 검증과 메타버스

작년 누리호 발사 전 항공우주연구소는 거의 성공을 확신한 듯 홍보했다. 과거 몇 차례의 실패로 엄청한 비난을 받았고 이를 만회하기 위해 엄밀한 검증을 했을 테니 자신감이 생겼을 만하다고 보았다. 엄밀한 검증은 사실 피곤하다. 똑같은 값으로 반복하여 검증하면 타성이 붙여 오히려 결함이 잘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 바둑 대국자보다 훈수 두는 사람이 묘수를 잘 찾듯이, 제3자가 설계 결함을 잘 볼 수 있다. 최신 설계과정에서 제3자는 독립된 검토자일 수도 있고 컴퓨터일 수도 있다.

최신 제품 대부분의 설계와 제작은 컴퓨터의 지원을 받는다. 기계, 토목, 전기, 전자, 화학, 물리 등 심지어는 수학마저도 컴퓨터를 통해서 설계도면이 그려지고 해석된다. 누리호도 컴퓨터 해석을 통해 3단 산화제 탱크의 형태를 정하고 재질을 정했을 것이다. 이를 위해 등속 운전뿐만 아니라 가속, 감속 중에 받을 수 있는 하중을 계산했을 것이다. 이렇게 설계된 부품으로 3단 산화제 탱크를 조립하고 로켓을 제작해 창공으로 쏘아 올리는 시뮬레이션 시험을 한다. 아마 항공우주연구원의 자신감은 이 시뮬레이션 시험의 성공에서 나왔을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누리호는 궤도 진입에 실패했다. 시뮬레이션 과정에서 이번 사고의 설계 결함이 밝혀지지 않은 점은 아무래도 시뮬레이션 상세 수준이 미흡한 탓으로 보인다. 정밀한 시뮬레이터 개발이 실제 로켓을 만드는 것보다 정교한 기술을 요구할 수도 있으니 이해는 된다.

메타버스의 세계로

시뮬레이터는 사실 메타버스의 세계이다. 발전소의 시뮬레이터를 개발했던 필자는 시뮬레이터 기술을 꾸준히 추적해 왔다. 메타버스가 최근에 뜨고 있는 기술이지만 또 다른 이름인 시뮬레이터 기술은 긴 역사를 지니고 있다. 이는 마치 인공지능 기술이 오래전에 태동되었지만 빌빌대다가 최근에 각광을 받는 현상과 비슷하다. 시뮬레이터는 발전소 운전원을 교육시키고 비행기 조종사를 교육시키는 법적 장치다. 그만큼 특수 산업에서는 없어서는 안 되는 교육설비다. 이 설비가 이제는 교육을 넘어 설계 검증, 일상생활로 파고들고 있다. 시뮬레이터를 정교하게 만들 수 있는 그래픽 기술들이 성숙되었기 때문이다.

네이버의 ‘제페토’

우리나라에서 메타버스 플랫폼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제페토’에 계정을 만들었다. 누리호 발사의 설계 결함을 잡아줄 정도의 기능을 지녔는지 확인하고 싶어서다. 개발자와 사용자 관점으로 나눠보면 제페토는 개발자가 가상현실을 만들도록 소프트웨어를 제공한다. 사람, 나무, 집 등의 기성품을 조립해 가상공간을 만들 수 있을 듯하다. 모든 편집기가 다 그렇다. 필자는 사용자 자격으로 랜덤 선택된 하나의 가상공간으로 들어갔다. 얼음 궁전이었는데 공간을 확대 축소할 수 있었고 걷고 점프할 때마다 풍경이 동적으로 변했다. 간혹 사람들이 얼음을 멋있게 지치며 내 옆을 지나갔지만 필자는 걷고 점프만 했다. 30분을 헤매다가 앉는 방법을 몰라 결국 가상현실을 빠져나왔다.

제페토에서는 얼음궁전 외에도 다양한 가상현실을 만들 수 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같은 무대 말이다. 이 속에는 땅이 있고 건물이 있고 자기들만의 생활 규칙이 있다. 대머리인 필자는 먼저 머리부터 덮었고, 춤을 못 추는 필자는 아무도 없는 곳에서 춤도 춰 보았다. 내가 보아도 멋있는 연예인이 되었고 춤꾼이 되었다. 점프를 하면 튀어 올랐다가 사뿐히 내려왔다. 제페토는 미리 정해진 부분 모습과 단위 행동을 연결해 참여자를 묘사했다. 그렇지만 중력이 작용하고 엄밀한 자연법칙이 적용되는 가상현실은 아니었다. 그럼 그렇지. 자연법칙이 적용되는 가상현실이 그렇게 쉽게 나올 수는 없다.

가상현실의 다양성

그렇다고 실망할 필요는 없다. 문학에는 시 소설 수필이 있고 미술에는 추상화 구상화가 있듯이 가상현실도 다양할 수밖에 없다. 필자가 찾는 가상현실은 설계를 검증하기 위한 과학현실(SR, Scientific Reality)이다. 물론 과학현실(SR)이라는 용어는 사전에 없지만 비슷한 용도의 시뮬레이터가 있으니 앞으로 널리 회자될지도 모른다. 보편적으로 수용되는 가상현실은 초기에 나온 ‘가상현실(VR: Virtual Reality)’이 있고 최근에 ‘증강현실(AR: Augumented Reality)’도 나왔다. 증강현실(AR)에서는 지나가는 사람에게 눈길을 주면 그 사람의 공개된 신상정보가 나타날 수도 있다. 커닝용으로 널리 사용된다.

제페토는 젊은이들의 놀이 공간이다. 놀이 공간에 무슨 자연법칙이 필요하겠는가? 그냥 걷고, 뛰고, 이야기하고 하는 단위 행동을 연속적으로 자연스럽게 조합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현실에서 받는 스트레스와 갈등을 제페토에서 날려 버릴 수만 있다면 소기의 목적은 달성된다.

가지 않은 길은 없다

교과과정에서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 ‘가지 않은 길’을 배운 적이 있다. 두 갈래 길이 있지만 한 길만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고 길은 끝없이 이어지므로 선택되지 않은 길에 대한 아쉬움이 남는다는 내용이다. 길을 인생에 비유하면 인생도 한 경로 밖에 갈 수가 없다. 공감이 가지만 요즘에는 조금 다른 생각을 한다. 필자는 네이버, 다음, 구글 등의 Road View를 통해 가보지 않은 길들을 가 본다. 사해와 요단강을 가보기도 하고 알렉산더가 넘었던 아프가니스탄의 계곡도 들어가 본다. 어제는 자동차를 몰다가 궁금했던 길을 찾아보았다. Road View를 통하면 가지 않은 길은 없다.

그래도 인생길은 다르지 않는가? 인생의 운명은 한 방향으로 흐르기 때문에 되돌아갈 수가 없다. 어제까지는 이 말을 수긍했다. 그러나 과학현실(SR)이 나타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사람들은 어떤 결정의 순간에 두 가지의 인생길을 모두 가 볼 수가 있다. 결혼 후보자와 각각 신혼생활을 미리 해 볼 수도 있다니 짜릿하지 않은가? 과학자인 필자는 과학현실(SR)을 통해 누리호를 날릴 것이다. 설계에 문제가 있는지 없는지 확인하기 위함이다. 과학현실(SR)은 내가 서 있는 ‘지금’, ‘여기’의 상황 정보를 복사/붙여넣기 하여 나의 단기 운명을 보여준다. 미래를 미리 경험한 후에 사용자들은 나은 선택을 하고 결함이 있으면 고칠 수가 있다. 과학현실(SR)에서는 시간이 일방적으로 흐르지만 않는다. 백 투 더 퓨처 할 수 있고 나의 분신을 수없이 만들 수 있다.

가상현실과 현실세계의 경계선

프랑스 철학자 보드리야르는 시뮬레이터에 대한 현상을 사색했고, 현실세계가 시뮬레이터인 가짜에 의해 왜곡되었다고 진단했다. 우리는 상품의 품질보다도 상품의 브랜드에 이끌리어 구매하므로 그의 주장에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철학이 그렇듯이 그의 사고는 깊고 넓어 그를 따라가다 보면 시뮬레이터에 대한 교훈을 놓치기 쉽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하여 보면 메타버스도 하나의 예술작품이고 문학작품과 다르지 않다. 예술작품과 문학작품은 현실세계와 구별되어 있으며 그들을 통해 현실세계에서 느끼지 못하는 정신적 만족감을 느낄 수가 있다. 그러나 문학이나 예술이 신체적 욕구를 만족시켜주지는 않는다. 의식주라는 육체적 욕구는 현실세계에서만 충족될 수 있다. 우리는 메타버스도 예술과 문학처럼 수용할 필요 있다. 메타버스가 다양한 유익을 주지만 현실 생활에 반영될 때만 의미를 지닌다. 현실 반영이라는 원칙을 잊을 때 메타버스에 대한 혼란이 일어난다. 두 세계의 경계를 지날 때 이 원칙을 늘 상기할 필요가 있다.

필자는 최신 메타버스에서 강력한 과학현실(SR)을 발견하지는 못했다. 그렇지만 사고 실험으로 누리호를 날려 보면 이번 실패 재발 방지용 조치를 얻을 수가 있다. 이미 조사 보고서에서도 언급된 내용이지만 3단 로켓용 헬륨탱크 지지대를 보강해야 한다.

명시되지 않은 하나는 1, 2단계 로켓 작동 시에 이미 연료가 누설되었으므로 누리호의 무게가 가벼워지고 있었다. 따라서 1, 2단 로켓이 성공적으로 작동을 했지만 무게가 줄어드는 이점이 있었으니 1, 2단계 로켓의 추진력도 다시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 필자가 보기에 두 가지 조치 모두 어려운 숙제로 보이지는 않는다. 누리호가 철저히 준비되어 성공적으로 궤도에 진입하기를 기다린다.

글쓴이

정연섭 '크로의 과학사냥' 저자

'크로의 과학사냥' 저자인 정연섭 연구원은 한국수력원자력 중앙연구원에 재직중이다. 서울대 화학 석사 후에 LG화학연구소, 한국전력연구원을 거쳤다. 50여 편 발표 논문, 10여 건의 특허를 등록했다. 원전 설계 및 수출로 한국원자력학회 기술상, 산자부 표창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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