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라도 생선 앞에선 고양이가 될 수 있다

[임방진 회계사의 껍질 벗겨내는 기업회계] 600억대 횡령사고가 던지는 교훈은 소득불균형 사회, ‘부정 합리화’ 유혹도 커져

회삿돈 614억원을 횡령한 혐의를 받는 우리은행 직원이 지난 4월 30일 오후 구속 전 피의자 심문을 받기 위해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 법정으로 들어가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회삿돈 614억원을 횡령한 혐의를 받는 우리은행 직원이 지난 4월 30일 오후 구속 전 피의자 심문을 받기 위해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 법정으로 들어가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아빠, 이 기사 봤어?!”
소파에 누워 핸드폰으로 신문기사를 보고 있던 대학교 3학년 다 큰 딸이 이해를 하지 못하겠다는 말투로 물었다.
“뭐?”
“우리은행 직원이 600억을 횡령했대. 그것도 10년간! 이게 가능해?”

‘10년간 600억? 그게 가능해?’ 나야말로 이런 의문이 들었고, 기사를 찾아보았다. 사건의 대략적인 스토리는 이랬다.

횡령사고 어떻게 발생했을까

2010년 자산관리공사가 지분 57.4%를 가지고 있던 대우일렉트로닉스 매각이 진행되었고, 우리은행이 매각을 주관했다. 이를 ‘엔텍합’이라는 이란 가전업체가 인수하려고 했고, 계약도 하고 계약금으로 578억 원까지 냈지만, 끝내 M&A가 성사되지는 못했다.

그런데, 이 계약금 반환여부에 대해 분쟁이 있었고, 2015년에 엔텍합을 소유한 이란의 ‘다야니 가문’이 우리나라 정부를 상대로 분쟁해결절차를 진행했으며, 2019년에 이란이 최종적으로 이겼다.

이에 따라 우리은행은 지연이자까지 포함해서 730억 원을 돌려줘야 하는데, 미국의 이란에 대한 제재 때문에 이란에 송금을 할 수 없게 된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가다가 드디어 최근에야 미국 재무부가 이 다야니 일가의 가문에 배상금을 송금할 수 있게 특별 허가서를 내주었고, 송금을 할 수 있게 됐다. 그래서 우리은행은 송금을 하려고 계좌를 점검하다 횡령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횡령한 은행직원은 세 번에 걸쳐서 600여억 원을 빼냈는데, 2012년과 2015년에는 부동산신탁 전문 회사에 이 돈을 맡기겠다고 속여 담당 부장의 결재를 받아낸 후 각각 173억 원과 148억 원을 인출해갔다. 그 후 2018년엔 자산관리공사가 이 돈을 맡아 관리하기로 했다는 가짜 문서를 작성해 결재를 받은 후, 293억 원을 빼내고서 해당 계좌를 해지까지 했다. 우리은행은 자산관리공사가 정말 이 돈을 맡기로 했는지 확인도 하지 않다가 실제로 지급을 해야 할 시점이 되고 나서야 횡령사실을 발견한 것이다. 다 큰 딸의 질문은 엉뚱하게 이어졌다.

“금감원에서 우리은행 검사도 다시하고, 회계법인도 회사감사 제대로 했는지 감리한다는데? 이러다 담당한 회계사는 감옥가는 거 아냐?”
“아니 거기서 회계법인이 왜 나와?”
“회계감사 제대로 안했으니까 이런 걸 못잡은 거 아닌가?”
“회계사가 무슨 강제로 수사를 할 권한이 있는 경찰이나 검찰인 줄 아나? 물론, 부정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회계감사를 하지만 부정의 적발 자체가 목적은 아니야. 회계기준에 따라 재무제표가 적정하게 표시되어 있는지를 감사하는 게 주목적이지.”
“…”
“회계감사는 전체적으로 부정이나 오류로 인한 중요한 왜곡표시가 없는지에 대해 합리적 확신을 얻어 감사의견을 내는 거야. 제대로 감사절차를 취했더라도, 모든 부정을 발견하지 못할 수 있는 거지. 적정의견이라고 해서, 어떠한 부정도 없었다는 걸 보장하는 게 아니야.”

딸은 역시 이해 안 된다는 표정. 그리고 자연스레 대화는 끝. 하지만 이런 회계감사나 내부통제의 본질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필자 마음 한편에선 약간 껄끄러운 부분이 있었다.

내부통제의 허점 어디에 있었을까

회사(우리은행)가 M&A의 주관사가 되었고, 그래서 잠재매수자에게서 계약금을 받아 잠시 맡아놓게 되었다. 회계처리는 돈은 들어왔고- 아마 흔히 에스크로계좌라 부르는 지정된 다른 금융기관의 계좌에 돈이 들어왔으리라. 물론, 계좌명의는 ‘우리은행’일테고- 이것은 계약이 성립되면 매도자(자산관리공사)에게 잔금과 함께 주거나, 계약이 깨지면 잠재매수자에게 돌려줘야 하니 가수금(또는 계약예수금)이라는 부채로 처리했을 것이다.

기말회계감사때 회계사들이 나와서 재무제표에 기입되어 있는 예치금과 가수금을 발견한다. 그리고 일단 해당 회사에 질문(inquiry). “이 가수금은 뭔가요?, 이 예치금은 어디에 예치되어 있다는 건가요?”

내용을 파악하고 나선 회계사는 또 “관련한 계약서 또는 입금증이나 잔고증명, 통장사본 같은 증빙은 있나요?”하고 문서검증(examination)을 한다. 회사는 계약서든 이런 저런 증빙을 제시한다. 하지만 이것들을 본다고 해서 끝이 아니다.

언급된 절차에 더해서 중요한 기말감사절차 중 하나인 금융기관조회서와 채권채무조회서를 발송해서 확인(external confirmation)한다. 예금, 차입금, 지급보증, 선물환계약, 채권과 채무에 대해서 감사인이 직접 조회서를 발송하고 직접 답신을 받는다.

그렇다면, 문서를 위조해서 돈을 이전시켰다는 부동산신탁전문회사든 자산관리공사에 조회확인절차가 생략되었거나, 금액적 중요성이 낮아서- 솔직히 일반인의 시각에선 수백억원이 결코 적은 금액은 아니지만, 수백조원 규모의 우리은행에선 충분히 작은 금액일 수는 있겠다 - 조회확인 대상에서 제외되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가능하다. 십년간 단 한 번도 조회확인 대상이 안되었다는 건 안타깝지만, 그래도 이럴 가능성은 낮지 않다(내 자신이 회계감사를 하는 공인회계사인지라, 팔이 자꾸 안으로 굽는 느낌이 들지만). 어쨌든, 비단 회계감사가 아니라도 은행내부의 검사, 금융감독원의 검사가 거의 끊이지 않는 은행에서 결국 외부조회확인이 그 긴 시간동안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이니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할 것이지만 말이다.

우리도 부정을 합리화하지 않나

한편, 횡령과 내부통제이야기를 할 때 자주 인용되는 ‘부정 삼각형’(fraud triangle)이라는 개념이 있다. 부정은 세가지 요소를 가지는데, ‘기회’(Opportunity), ‘유인/이득’(Incentive) 그리고 ‘합리화’(Rationalisation)가 그것이다.

당연하지만 수 백억 원의 돈은 누구에게나 충분한 횡령의 유인이 된다. 여기에 돈의 꼬리표가 붙어있는 것도 아니고, 잠깐 빌려서 투자한 후 큰 돈을 벌고 원금은 다시 채워넣으면 아무도 모르고 남에게 피해 주는 것도 아니라는 합리화가 횡령의 시발점이 되었으리라.

하지만 결정적으로 허술한 내부통제- 위조된 문서로 내부결제를 받고 돈을 빼낼 수 있었고, 그 후에도 누구 하나 제대로 확인도 하지 않았으니, 사전적이든 사후적이든 무너진 내부통제가 횡령을 실행으로 이끌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 특히 두번째, 그리고 세번째의 횡령은 조마조마하며 망설였던 첫번째 횡령과는 완전히 다른 마음가짐에서 이뤄졌을 것이다.

정부를 비롯한 일부에선 계층간 소득불균형이 과거에 비해 상당히 개선되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부동산 가격 급등 등을 통해 심화된 부의 불평등 속에 상대적 빈곤감은 갈수록 심해져만 간다. 성실하게 일해서 부를 축적해 나간다는 생각보다는 부동산, 주식, 가상화폐 같은 일확천금의 기회가 더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앞에, 잠시 아무도 모르게 투자에 운용할 수 있는 수백억의 돈이 있다면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이 사건을 계기로 금융기관의 내부통제나 감독기관의 검사, 회계법인의 회계감사 등은 더욱 강화될 것이다. 지금까지도 이중 삼중의 통제에 힘들어했던 금융기관 임직원 입장에선 억울하기도 하고, 이러한 통제로 인한 비효율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누구라도 돈이라는 생선 앞에선 고양이가 될 수 있으니 말이다. 고양이를 실제로 보지 않았는가!

글쓴이

임방진 대주회계법인 회계사

임방진 대주회계법인 회계사 겸 세무사는 삼일회계법인에서 회계감사, 세무조정 업무뿐 아니라 실사, 경영진단, 가치평가 등의 업무를 수행했다. 미국 교환 근무후 귀국해 SOX 404 (내부회계관리제도) 구축 및 내부통제 관련 컨설팅 업무를 했다. 2008년부터는 IFRS (국제회계기준) 도입 프로젝트에 주로 참여했으며, 2010년이후 KDB생명보험, ING생명에서 기획관리실장과 재무부문장을 역임했다. 그동안 축적해 온 회계와 세무, 기업구조조정, 경영기획 및 관리, 금융·보험상품에 대한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일반인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실무지침서를 출간하고 강의로도 전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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