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보사 RBC, 그때도 틀렸고 지금도 틀렸다
[임방진 회계사의 껍질 벗겨내는 기업회계] 채권재분류로 RBC 끌어올린 NH농협생명 2022년 금리급등기에 기타포괄손익 잠식 생보사 RBC 악화, 회계처리 문제일 뿐일까
보험사들에게 중요한 RBC비율
“회계사님, 예전에 보험사에도 계셨었죠? 보험회사 RBC비율이 뭐에요?”
오랜만에 만난 지인과 식사를 하던 중 불쑥 나온 질문.
“RBC비율이요?”
아, 이런… 편하게 식사하는 자리에서 굳이 이런 전문용어를 질문하다니. 회계사라면 당연히 알 것이라고 생각하며, 양도소득세와 상속증여세를 부담없이(?) 물어보는 사람 다음으로 싫어하는 부류다. 하지만, 전문가답게 일단 약자 및 정의(definition)부터 침착하게 설명 시작.
“Risk Based Capital의 약자구요. 지급여력비율이라고 합니다. 보험금이 일시에 청구되었을 때 보험사가 보험금을 지급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수치입니다. 보험회사의 재무건전성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지표죠. 보험업법 상 100% 이상을 유지하도록 규정되어 있구요. 금감원 등 감독당국은 보통 150%이상 유지하라고 합니다. 100% 미만이 되면 경영개선권고를 내리니까, 보험회사는 무엇보다 신경써서 관리하는 지표 중 하나죠. 그런데 왜요?”
“기사를 보니까, 제가 보험을 든 보험회사가 RBC비율이 낮아지는 바람에 금감원에서 경영실태평가도 하고, 자본확충도 추진한다고 해서요. 괜찮나 싶어서.”
“뭐 당장 회사가 망하고 가입한 보험자체에 문제가 생기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완전히 괜찮은 건 아니죠. 금융기관이야 재무건전성과 안정성이 가장 중요한 거잖아요. 그게 없으면, 대중이 돈을 맡길 수가 없죠.”
“요즘 금리가 하도 가파르게 오르니까, 생각지도 못했던 영향이 생기네요.”
“그러게요. 미국에서 자이언트 스텝이니 하면서 금리를 막 올리니까 주식도 그렇고, 부동산도 그렇고, 여기저기서 난리네요.”
그냥 세계경제의 탓으로 어물쩡 넘기며 대화는 마무리했지만, 짐작가는 부분이 있었기에 최근 기사를 찾아보았다. 눈에 확 띄는 기사가 있었다.
2020년 NH농협생명에 무슨 일이
NH농협생명은 금리가 한창 바닥을 기던 2020년 9월 채권 재분류를 단행했다. 저금리 기조로 RBC 비율이 193.5%로 하락하자 만기보유증권으로 분류되어 있던 채권을 매도가능증권으로 변경함으로써 RBC비율을 314.5%까지 끌어올렸던 것이다.
회계기준상 회사가 채권을 매입하면 크게 두가지로 회계처리를 할 수 있다. 하나는 매입할 때의 원가 그대로 놔두고, 이자가 들어올 때마다 그냥 이자수익이나 인식하다가 만기가 되면 원금을 회수하는 처리다. 말하자면 원가법이고, 재무제표 상에선 만기보유증권이라고 부른다.
다른 하나는 매입 후 시장금리가 변할 때마다, 이에 맞춰 장부금액을 조정해주는 방식이다. 금리가 하락하면 채권의 가치는 올라갈 것이고, 금리가 상승하면 채권의 가치는 낮아진다. 시가법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 그 평가손익은 당기손익 내지 기타포괄손익으로 처리할 수 있다. 재무제표에선 당기매매증권 내지 매도가능증권이라고 부른다. 기말시점에 보유하고 있는 채권의 가치를 명확하게 보여준다는 장점이 있지만, 금리가 오락가락하는 상황에선 채권의 가치도 오르락 내리락 할 수 있다.
보험회사(특히 생명보험회사)는 어떤 방식을 주로 취할까? 당연히 종신보험이든 정기보험이든 장기의 계약이 많으니, 채권을 사도 1~3년의 단기물 보다는 10년 이상의 장기물을 더 많이 산다. 더 많이 살 수 밖에 없다. 그리고, 만기가 될 때까지 들고 있는 경우가 많다. 보험계약자에게 받은 돈(보험회사로서는 부채)을 10년 넘게 운용을 해야 하니, 그 계약하는 시점에 10년 넘는 만기를 가지는 채권(보험회사로서는 자산)에 매칭시켜서 운용하는 것이 당연히 안정적일 수 밖에 없다.
아주 단순하게 말하자면, 10년 만기로 돈을 받아 4%로 이자를 주면서, 10년 만기 5%의 채권을 사면, 매년 1%씩 수익이 나는 것 아닌가? 이런 상황에선 사실 5년쯤 지난 상황에서 시장금리가 2%로 하락하거나, 10%로 상승해서 가지고 있는 채권의 가치가 높아지거나 낮아지는게 큰 의미가 없다. 만기까지 가지고 있으면서 이자율차이로 수익을 내는 것이 본 목적이니까. 그래서 회계기준에선 그 보유목적에 맞게 ‘만기보유증권’으로 분류하고, 원가법으로 처리하라고 규정해 놓은 것이기도 하다.
생보사들이 수익을 내는 3가지 구조
사실 보험회사의 이익은 크게 세가지에서 창출이 된다. 매달 보험료를 받는데, 이 보험료(종신이나 정기보험의 경우)는 예상되는 사망률과 예상이자율 그리고 예상비용을 감안해서 역산한다. 이렇게 예상했던 사망률보다 실제로 많이 사망이 발생하면(요즘 보험금을 노린 강력범죄나 경제상황 악화에 따른 자살의 증가를 굳이 떠올리진 말자) 예상보다 지급해야 할 보험금이 많아지니 보험회사로선 손해가 된다.
다음으로는 운용수익이 있다. 그런데 보험계약자들에게 약속했던 이자율보다 운용수익률이 낮아지면(시중의 이자율이 낮아지는 경우가 대표적이겠다) 갚아야 할 돈이 버는 돈보다 많아져서 손해가 난다.
마지막으로 보험료에 얼마간의 비용을 붙여서 받는데, 이는 설계사 수당이나 직원 월급 등을 주는데 사용된다. 만약 경쟁이 치열해져서 설계사들에게 수당을 너무 많이 주게 되면, 보험료에 붙여서 받았던 것보다 더 많은 비용이 발생해서 손해가 날 수 있다.
여기서 사망률은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는 상당히 안정적이긴 하지만, 보험회사가 어떻게 해 볼 수 있는 건 아니다. 반면에 비용은 회사차원에서 허리띠를 졸라매면 어찌어찌 방어가 가능하다.
그럼, 이자율(자산의 운용수익률)은? 언뜻, 보험회사가 어찌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계약시점에서 보험부채의 만기에 따라 장기로 투자를 하고 관리한다면 급격한 손실의 위험은 최소화할 수 있다. 솔직히 말해 바로 그런 부분, 즉 장기적인 위험을 관리하고 최소화하는 역할이 보험회사의 존재이유 아닌가?
다시 채권이야기로 돌아와서, 보험회사는 가지고 있다가 언제든 팔 수 있는 채권(매도가능증권)보다는 만기까지 보유할 목적의 채권이 당연히 훨씬 많다.
농협생명은 2019년 말만 해도 총자산의 반 이상이 만기보유증권이었다. 그런데 2020년 중에 만기보유증권을 모두 매도가능증권으로 재분류한다. 그래서 총자산에서 매도가능증권이 차지하는 비중이 24%에서 77%까지 상승한다. 왜? 물론 명분은 보유목적이 바뀌었다는 것이다. 실질적 이유는? 자본항목 중 기타포괄손익누계액을 보라. 원가법으로 처리하던 만기보유증권이 매도가능증권으로 재분류되면서 시가평가를 하게 되고, 저금리로 인한 평가이익이 반영되며 기타포괄손익누계액이 무려 1조 1천억원 가까이 증가했다. 3조 7천억이었던 자본총액은 5조원을 상회한다.

‘아니, 채권이라는 것이 본래 금리가 하락하면 가치가 상승하는 거잖아. 평가이익이 늘어난 건 사실 아닌가? 그래서, 자본이 늘어난 것은 오히려 경제적인 실질을 제대로 반영한 것 같은데?’라고 생각할 수 있다.
‘눈가리고 아웅’하는 회계처리
몇가지의 반론을 할 수 있겠는데, 첫째는 그럼 부채는 어떻게 되었느냐는 것이다. 보험계약자에게 보험료를 받고, 향후 보험사고가 발생하면 보험금을 지급하기 위해 책임준비금이라는 것을 보험회사는 부채로 인식하게 된다. 그런데, 현재 회계규정상 이것은 원가법으로 처리한다. 마치 만기보유증권처럼 말이다(한편, 2023년부터 새로운 회계규정 IFRS17이 도입되는데, 이에 따르면 부채를 공정가치(시가)로 평가하게 된다. 하지만 이는 나중에 적용될 이야기니까 당장은 접어두자).
만약 이 보험부채도 매도가능증권처럼 시가평가했다면 농협생명의 부채는 만기보유증권을 매도가능증권으로 재분류함에 따라 늘어난 평가이익보다 훨씬 더 크게 늘어났을 것, 즉 평가손실이 발생했을 것이다. 자산이 늘어나는 것보다 부채가 더 많이 늘어났을테니 자산에서 부채를 차감해서 계산되는 자본은 오히려 줄었을 것이고, 지급여력비율(RBC)은 오히려 악화되었으리라.
그런데, 이런 비대칭적인 상황을 뻔히 알면서도 만기보유증권만 매도가능증권으로 재분류해서 마치 자본이 늘어나 재무건전성이 강화된 척을 했으니, 눈 가리고 아웅도 이만저만이 아니라 하겠다.
둘째로, 5% 이자를 주는 채권을 가지고 있다가 시중금리가 2%대로 떨어지자 채권의 가치가 상승하여 상당한 평가이익 생겼다 치자. 그래서 뭐 어쩌겠다는 건가? 가치가 상승한 채권을 팔아서 당장 처분익을 냈다해도, 보험계약자에 대한 보험부채는 여전히 남아있다. 앞으로 그 계약이 만기가 될 때까지 계약당시 보험계약자에게 약속한 이자는 계속 물어줘야 한다. 만약 그것이 4%라고 한다면, 5% 이자를 창출하던 채권을 팔아서 시중금리인 2%짜리 채권을 살 수 밖에 없을 테니 그 역마진은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당장의 평가이익 내지 처분이익을 내서 엄청난 당기순이익과 자본증가를 기록한 듯 보이지만, 결국 장기적으로 볼 때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른 것만큼이나 어리석은 짓이다.
2022년 NH농협생명엔 무슨일이 일어날까
셋째,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시장의 금리(이자율) 향방은 아무리 저명한 경제학자나 유능한 투자분석가, 자산운용전문가라도 쉽게 예측하기 어렵다는 사실이다. 회색코뿔소(the gray rhino)를 맞이하고 있는 2022년 현재의 세계와 한국경제 상황을 보라. 농협생명이 만기보유증권을 매도가능증권으로 재분류한지 채 1년도 지나지 않아, 시중금리는 상승했고, 결국 매도가능증권의 가치는 하락했다. 2020년말 1조 1천억원이 넘던 기타포괄손익이 2021년말에 거의 다 사라졌다. 문제는 아직도 시중금리는 상승 중이다. 그것도 엄청난 속도로.
국제회계기준에선 이런 꼼수 재분류를 억제하기 위해, 재분류를 실시한 당해년도를 포함해서 3년간은 다시 만기보유증권으로 되돌아가지 못하게 규정하고 있으니, NH농협생명은 2022년까지 계속 금리상승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어쩌면 2020년 평가이익 1조원이 2022년 말엔 평가손실 1조원로 바뀌어 있을지 모른다는 말이다. 이건 거의 동네 아이들의 동전 던지기 수준이다. 개개인이 감당하기 어려운 위험을 대수의 법칙을 이용하여 관리해준다는 보험회사 이름이 무색하다.
RBC 규정완화, 올바른 정책일까
혹자는 금리상승에 따른 평가손실 발생으로 인한 자본비율이나 지급여력비율 악화가 실제 보험회사의 재무건전성이 악화된 것이기 보다는 회계처리 상의 문제라고 주장한다. 감독당국 마저도 이런 부분을 감안해서 RBC(지급여력비율) 규정을 완화해주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하지만 묻고 싶다. 애당초 왜 만기보유증권을 매도가능증권으로 분류를 변경했는가? 재무건전성이 충실한 상황이었다면, 굳이 무리해서 회계처리를 변경할 이유가 있었나? 2020년 말엔 마치 엄청나게 우량한 금융기관이라도 된 듯했겠지만, 시중금리가 상승기로 돌아선 지금 평가이익은 모래성처럼 무너져 내렸다. 정말 그저 회계처리상의 문제이지 부실해진 것이 아니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가?
초저금리 상태였던 몇 년 전 그때는 맞았으나, 고금리로 돌아선 지금은 틀린 것이 아니다. 그때도 틀렸고, 지금도 틀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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