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인재양성을 빙자한 ‘이익 챙기기’

[정연섭의 과학과 철학] 어설픈 인재 양성전략은 안돼 업계 경영진•교수들 역량이 더 문제 반도체 기술 우위 진정한 전략은?

교수와 학생들이 실험실에서 반도체 관련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교수와 학생들이 실험실에서 반도체 관련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AI 반도체: 뇌기능을 모방한 반도체. 그림 출처:Pixabay
AI 반도체: 뇌기능을 모방한 반도체. 그림 출처:Pixabay

윤석열 정부의 AI 반도체 초격차 전략

윤석열 정부는 지난 6월 27일 인공지능(AI) 반도체 산업 성장 지원 대책을 발표하면서 정부에서 1조 200억 원을 투자하고 인공지능 전문가 7000명을 양산한다는 구체적 목표를 제시했다. 뿐만 아니라 개발된 인공지능 반도체를 검증 및 시험할 수 있는 데이터센터를 구축하며 산학연이 참여하는 AI 반도체 생태계를 조성하기로 했다.

개발하고 검증하고 인재를 양성하는 방식은 대형 정부사업들이 채택해온 방식으로 이번에도 그 틀을 벗어나지는 않았다. 이 전략은 대체로 성공하는 방식이다. 더구나 이 사업에서 목표로 잡은 AI 반도체는 PIM(Processing in Memory) 기법으로 개발된다. PIM기법은 메모리를 기반으로 인공지능 추론 기능을 넣는 것이므로 우리나라가 강점을 지닌다.

그런데 이 전략으로 우리나라 AI 반도체가 초격차를 확보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당연히 정부는 투자할 것이고 인공지능 전문가 7000명도 확보될 것이다. 데이터센터를 구축하는 것도 문제없을 것이다. 조그만 문제라면 산학연이 참여하는 생태계인데, 기술유출 탓에 알맹이는 없겠지만 성공했다고 우길 것이다. 사업은 명목상 성공하겠지만 실질적으로는 우리나라 반도체가 퇴보할 수도 있다.

착수도 하기 전에 재수 없는 소리를 한다고 비판을 받겠지만, 우리나라의 전자정보 기술을 살펴보자. 엄밀한 수치를 들이댈 필요도 없이 대충 살펴보아도 진정한 성공은 녹녹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가 메모리에서 세계 70%의 시장점유율을 지니고 있지만 비메모리 분야나 소프트웨어 분야에서는 열세에 있다. 시스템 반도체는 미국을 따라잡을 수가 없었고 반도체 설계 제조에 사용되는 소프트웨어들은 거의 수입된다. 우리나라는 기본보다는 응용에 강하다. 시스템 반도체보다는 비시스템 반도체인 메모리에 강하고, 기본 소프트웨어보다는 응용 소프트웨어에 강하다.

우리나라도 컴퓨터 운영시스템, 데이터베이스 등 기본 소프트웨어 등을 개발하기 위해 과거에 노력하였지만 아래아 한글 외에는 거의 실패하고 시장에서 퇴출되었다. 이번 AI 반도체 사업도 응용보다는 기본에 가까운 사업이라 시작부터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메모리 반도체의 패권 배경

한 나라의 기술은 그 나라의 국민 역량과 관계가 깊다. 기술뿐만 아니라 모든 학문과 산업이 그렇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철학이 발전하였지만 패권을 이어받은 고대 로마에서는 건축이 발전하였다. 해양 영국에서는 경험을 중시했다면 유럽 대륙에서는 이성을 중시한 철학이 나온다. 일본이 아날로그 기술로 번영을 이루었지만 이에 집착해 30년을 헤맸고 한국은 늦게 출발했지만 디지털 기술로 일본을 넘어서고 있다.

우리나라는 응용에 강하다고 했는데 정확하게는 눈에 보이는 기술에 강하다. 일단 제품을 얻은 후에는 품질활동을 통해 끊임없이 개선해서 정상의 수준에 오른다. 미국이나 러시아가 반세기 전에 성공한 우주기술을 우리는 수없이 실패했다. 그러나 일단 우주선을 궤도에 올려놓으면 세계 최상의 성능으로 만들어 갈 저력이 우리에게는 있다. 우리는 조금씩 개선 아이디어를 내므로 위험을 회피하면서도 시장 점유율을 올릴 수 있다. 한국의 메모리는 그렇게 세계 시장을 제패했다. 메모리 회로를 얇게 만들 목표는 뚜렷하게 눈에 보였다. 50 나노미터에서 3 나노미터까지 내려왔다. 메모리는 우리 국민성에 맞았다. 메모리의 제패가 1980년대 전자공학과에 들어간 우수한 학생 탓이라는 주장도 있지만 쉽게 반증된다. 비메모리 분야에서는 왜 낙후되었는가? 왜 기본 소프트웨어는 없는가?

반도체 산업의 정확한 진단은

중국, 미국, 일본이 대대적으로 반도체 산업을 지원하자 우리나라도 위협을 느끼기 시작했다. 우리나라 산업에서 반도체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탓에 걱정할 수밖에 없다. 우리도 전략을 세워야 했다. 메모리 점유율을 고수하면서 비메모리 분야까지 성공신화를 이어가고 싶었다. 제 때에 위기를 느끼고 해결책을 강구하는 태도는 우리나라가 아직 건강하다는 증거다.

문제는 기업의 경영자나 대학의 교수들에게 있다. 기업 경영자는 자신의 역량 부족을 떠넘길 핑계가 필요하고, 교수들은 여기에다 부려먹을 학생까지 원한다. 그래서 나온 것이 ‘반도체 인재 양성’이다.

과거 메모리의 성공신화가 눈에 보이는 제품을 개선하는 품질활동에서 나왔지 특출한 인재에 있지 않았음은 확실하다. 그러나 미래 AI 반도체는 창의적이고 특출한 인재를 원한다. 스티브 잡스는 대학의 인재양성 교육을 때려치고 서예에 빠져들어 애플을 키웠다. 서예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철학이 애플 제품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름다움을 훼손한다면 아무리 좋은 기술도 채택하지 않았고, 아름다움만 얻어진다면 미지의 기술도 개발했다. 창의성은 반도체 인재 양성자에게만 나오는 것이 아니다.

기업의 경영자도 대학 졸업생을 제조라인에 바로 투입하겠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실무에 직접 투입할 사람도 필요하지만, 이는 실무를 배운 전문가에게 맡기면 된다. 이론을 제대로 익힌 대학생은 실무 역량도 충분하므로 시간을 두고 천천히 투입해도 된다. 이를 참지 못하고 대학에서 배우는 지식이 실무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불평하는 기업 경영자들은 스스로 무지를 드러내는 것이며, 이 불평을 듣고 정책을 입안하는 관료도 무지를 드러내기는 마찬가지다.

대학교수도 반도체 기술의 후진성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다. 대학 교수는 실무에 능하기보다 이론에 뛰어나야 한다. 반도체의 실무 현안을 이론적 현안으로 전환시킬 능력이 있어야 한다. 교수들은 반도체 현안을 모든 산업분야에 적용되는 창조적 이론으로 확장하고, 이것으로 반도체 산업에 기여해야 한다. 이론에 치중하다 보니 스티브 잡스 같은 천재는 뛰쳐나가지만, 그런 분위기를 고수해야 한다. 연구비를 더 따오기 위해 인력 충원을 제안하기보다는 괴짜 연구 탓에 학생들이 도망을 가야 반도체 산업이 발전한다.

진정한 반도체 기술 우위 전략은

반도체가 한 단계 발전하기 위해서는 자기 핑계에 불과한 인재개발 양성에 매몰되어서는 안 된다. 정확하게 진단하여 지식체계, 문화체계, 의식을 개혁한다는 태도로 임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성공한 듯하지만 오히려 세계와 격차만 벌어지는 사업이 될 것이다.

반도체 산업의 특성과 우리나라의 상황을 고려할 때 초격차 반도체 기술을 위해 아래와 같이 제안하고 싶다.

첫째, 반도체의 인접 학문을 키워야 한다. 반도체에는 전자공학뿐만 아니라 재료, 물리, 화학, 수학, 정보관리, 통신, 소프트웨어, 바이오 등의 기술이 망라되어 있다. 연계 학문들이 반도체에 적용될 것을 감안하여 전문 인력을 양성해야 한다. 그렇게 양성된 졸업생들이 기업에 입사하여 초격차 반도체 기술을 끌어간다. 산학연이 어느 정도 협동하겠지만 핵심기술은 기술유출로 인해 공유가 불가능하고 국제 공조도 한계가 있다. 이 한계를 고려하지 않고 기술을 개발했다가는 반도체 수출마저 선진국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 상황을 초래할 수 있다.

둘째 반도체 실무 인력을 배양해야 한다. 이들은 반도체 생산라인에 직접 투입될 수 있는 사람들이다. 실업 고등학교나 지방 전문대를 활용하는 방안도 좋다. 필자는 산업체 진입 시점에서 이론 전문가나 실무 전문가를 구분하지만 그 능력을 한계 지을 뜻은 없다. 산업체에 투입된 후에 이론 전문가가 실무능력에서 뛰어날 수도 있고, 실무자도 이론에 밝아 창조적 연구를 할 수도 있다.

셋째 창조적 인재를 발굴하는 문화를 배양해야 한다. 기업 경영자는 지출을 줄여 이익을 내고 승진했을 수도 있고 인간관계로 승진했을 수도 있다. 이런 경영자들은 자신은 성공했지만 회사의 미래를 보장하지 못한다. 특히 반도체 산업에서 경영자는 창조적 혁신으로 무장되어야 한다. 상투적인 인재양성 계획이나 세우는 자는 창의성이 없다. 비대한 수도권에 더 많은 학생을 받겠다는 이기적인 생각으로는 창조적 문화가 형성될 수 없다.

글쓴이

정연섭 '크로의 과학사냥' 저자

'크로의 과학사냥' 저자인 정연섭은 한국수력원자력 중앙연구원 연구원으로 재직하다 최근 퇴직했다. 서울대 화학 석사 후에 LG화학연구소, 한국전력연구원을 거쳤다. 50여 편 발표 논문, 10여 건의 특허를 등록했다. 원전 설계 및 수출로 한국원자력학회 기술상, 산자부 표창을 받았다.

댓글

    함께 읽을 글

    칼럼 전체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