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시계엔 왜 0이 없을까
[정연섭의 과학과 철학] 시간이 거꾸로 흐르는 시계 오후12시 다음이 왜 오후 1시일까 0의 디자인, 시계에 도입되면 편할텐데
오후 12시 59분에서 1분이 지나면
오후 1시가 된다. Naver 증권 웹 화면에서 보면 투자자들이 올린 의견들이 순서대로 올라오는데, 게시된 시간을 자세히 살펴보면 오후 12시에서 오후 1시로 시간이 거꾸로 흐른다. 시계 읽는 표준 방법대로 읽은 시간을 기록했기 때문에 낮 12시에서 오후 1시를 지날 때 표기가 꼬인다. 거꾸로 문제를 염두에 두지 않은 것이다. 과거의 내가 같은 맥락 속에 미래를 향해 살고 있으니, 과거 시간을 아무렇게 표시한들 문제가 될 수 없다.
그러나 명시적 맥락이 없는 상황에서 한 사건이 오후 12시 59분에 일어났고 다른 사건이 오후 1시에 일어났다면 선후 관계가 혼란스러울 수 있다. 시간 순으로 정렬하는 순간 역전된 숫자는 혼란을 야기한다. 인과성을 파악하기 이전에 자료가 제대로 채집되었는지 의혹이 인다.
이처럼 동일한 시공간을 살아가는 생활세계 사람들에게는 ‘12시간제’도 충분하지만, 인과성을 중시하는 분야는 ‘24시간제’를 사용한다. 열차 시간도 그렇고, 사건사고 기록지도 그렇다. 오전, 오후를 덧붙여야 구별이 되는 12시간제는 기록용으로는 부적절하다.
12 대신 0으로 표시하면
거꾸로 흐르는 시간을 방지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시계 눈금에서 12를 지우고, 대신 0으로 표시하면 된다. 0 기준 시계에서는 오전 11시 59분이 지나면 바로 오후 0시가 된다. 정오는 오전과 오후가 변경되는 시점이고 자정은 날짜가 변경되는 찰나이다. 이전에 60분이나 걸리던 전환기는, 1초 이내로 단축된다.
0 기준 표시법은 과학기기에서는 보편적이다. 온도계가 대표적이다. 외국 출장을 가보면 승강기의 층 표시에도 발견된다. 우리나라에서는 지하2층, 지하 1층, 1층, 2층 식으로 새겨지지만 UAE 등 몇몇 나라에서는 지하 2층, 지하1층, 0층, 1층 식으로 표시된다. 우리나라에서는 0 표시가 빠져 승강기가 한번에 두개 층을 이동하는 느낌을 준다. 우호적 해석을 굳이 하자면, 층수에 따른 집의 종류는 1층 주택, 2층 주택으로 나누지만 0층 주택은 없으니 승강기도 0층을 표시하면 안된다고 우길 수 있다.
달력은 12월에서 1월로 넘어가니 시계와 유사하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 있다. 그러나 달력에서 12월은 이전 연도에 귀속되고, 1월은 다음 연도에 귀속되므로 시간이 거꾸로 흐르지는 않는다. 12월 31일 자정의 행사도 송년행사나 신년행사로 다르게 불리므로 혼돈이 없다. 즉 달력에서 0월을 부여할 필요가 없다.
시계에서 0 대신 12로 표시해야 하는 당위성을 밝히려 헤맸지만 찾지 못했다. 12진법으로 표기되는 시간 체계를 명시하는 효과가 있지만 이거야 시계를 만드는 사람들의 입장이지, 사용자의 입장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0에 대한 거부감에서 12를 표시하지 않았을까?
0과 12 숫자의 고고학
0에 대한 거부감 여부는 어휘의 형성 과정을 살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역사가들이 문명을 파악하기 위해 돌무덤과 조개더미를 파헤치듯이, 작가들은 개념을 파악하기 위해 어휘의 생성과 변천사를 살펴본다. 어휘 하나하나가 세월에 따라 개념이 확장되고 변경되어 왔기 때문이다.
우리의 예상과 다르게 12라는 숫자가 0이라는 숫자보다 3000년 먼저 나타났다. 기원전 메소포타미아 사람들은 홍수 발생을 기준으로 1년에 약 12번 나타나는 보름달을 관측하여 1년을 열두 달로 두었다. 그러나 0의 발명은 쉽게 이루지지 않았다. 0 대신 ‘없다’라고 표현할 수 있으니 굳이 숫자 0을 도입할 필요가 없었다. 더구나 그리스 문화나 유대문화는 ‘빈 공간에도 신이 활동한다’고 믿어, 진공도 거부하고 0도 거부했다. 최초의 0은 무(無)를 중시하는 인도 문화에서 6세기경에야 나타났다.
인류학자들도 인간이 이렇게 늦게 0을 발명한 사실에 놀란다. 0의 발명으로 자릿수를 지닌 숫자의 표현이 가능해졌고 사칙연산 계산도 쉬워졌다. 상술에 밝은 아라비아 상인들이 먼저 0의 가치를 인식했고 이들과 교류하던 이탈리아로 0이 전달되었다. 0을 포함한 인도 아라비안 숫자는 십자군 전쟁 등을 통해 13세기 정도에야 유럽에 퍼졌고 한자문화권에 종속된 우리나라는 19세기에야 도입되었다.
시계가 없던 시절 사람들은 닭이 우는 새벽에, 일출 시에, 정오에 만나자고 약속을 했다. 다른 시간에 만나는 경우에는 오랫동안 기다릴 각오를 하든지 기다리다 지치면 직접 찾아갔다. 불편을 해소하려 해시계나 물시계 등이 차츰 나타났다. 시계는 아라비아 숫자와는 상관없이 발명된 것이다.
과학자인 필자에게 외딴섬에서 시계를 만들라면 자신이 없다. 시계 제작에는 상당한 기술이 필요하다. 핵심 기술 중에 하나는 눈금을 균등하게 그리는 방법도 포함된다. 손가락의 개수인 10개 혹은 보름달의 개수인 12개로 시계 눈금을 그릴까? 쉬운 선택이 아니다.
시계 발명가들은 10개로 눈금을 그려도 보고 12개로 눈금을 그려도 보았을 것이다. 먼저 원을 그리고 원주에 눈금을 새기려 십자가를 표시하는 경우를 보자. 십자가를 만나는 원주에는 12진법에서는 3, 6, 9, 12의 정수가 대응되지만, 10진법에서는 2.5, 5, 7.5. 10으로 정수가 아닌 실수가 대응된다. 당연히 12진법이 선택된다.
각 문명마다 사물을 나타내는 어휘는 다르지만 시계 표시는 서로 유사하다. 이는 전문기술자들이 시계 발명에 관여했고 비슷한 가치 의식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렇게 하여 12진법과 아라비아 표시법이 시계에 적용되었다. 기술의 발전으로 강력한 태엽과 정교한 기어가 개발돼 시계의 정확도가 높아졌고 현대에는 원자의 진동수로 천문학적인 정확도를 지니게 되었다. 그러나 현재 시계는 아리비아에서 발명된 0의 개념을 충분히 활용하지 못했다. 사람들이 무던해 이 정도의 불편은 감수해왔을 수도 있다. 0이 인류 문명사에서 늦게 나타나고 전파에 그토록 오래 소요되었던 이유와 유사하다. 0 없이도 사람들은 살아왔고 중세에는 주산 전문가가 복잡한 숫자를 해석해줬다. 그들은 자기 밥그릇이 날아간다고 0의 도입을 반대했다.

시계에 언젠가는 도입된다
명시적 묵시적 저항을 물리치고 0이 도입되었듯이 시계에도 12시 대신 0이 도입될 것이다. 그 시기는 알 수 없다. 도량형을 통일한 진시황의 방법, 단위를 통일하는 과학자의 방법을 강압하지 않더라도 사람들은 개념의 혼란을 원하지 않는다. 사람들도 사상은 다양할수록 좋고 개념은 명확할수록 좋다는 사실을 안다. 우리나라 대법원 판례도 오전 12시나 오후 12시 사용을 자제시키며 출생 사망신고 시 24시간제 표기를 권장한다.
과학적인 관점에서 0시 표기법의 효과를 서술했지만 동양 사상은 0과 늘 가까이 있다. 우리는 죽음을 생각하며 살아간다. 0은 삶과 죽음을 가르는 경계지점이다. 삶과 죽음은 일생에 한번 일어나는 현상이 아니라 오전과 오후의 경계에도, 오늘과 내일의 경계에서도 일어난다. 12보다는 0을 통해 이 경계를 잘 인식할 수 있다. 우리나라가 먼저 12 대신 0으로 표시된 시계를 디자인하여 세계문화를 선도할 수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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