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대: 정치공학을 배제해야
패키지 입법’의 정치공학
- 정치공학적 ‘패키지 입법’의 위험성 한예종의 대학원 설치 숙원과 광주 이전을 하나의 법안으로 묶어 강요하는 것은 교육기관의 지위를 정치적 인질로 삼는 행위이며, 절차적 정당성을 상실한 ‘선점의 정치’에 불과하다.
- 예술 교육 생태계의 특수성 무시 예술 교육은 수도권에 집중된 공연·제작 산업과의 생활권적 인접성이 본질적인 경쟁력이며, 인프라 구축 없이 교육기관만 강제 이식하는 것은 인재 유치 실패와 지역 경쟁력 약화라는 ‘껍데기뿐인 이전’을 초래할 뿐이다.
- 지속 가능한 지역 문화 육성 처방 진정한 균형 발전은 한예종의 ‘통째 이식’이 아니라, 광주와 호남이 가진 고유의 문화 예술 자산과 연계된 차별화된 교육 거점을 자생적으로 육성하고 보완형 분산 모델을 설계하는 데서 시작되어야 한다.
지난 4월 22일, 더불어민주당 정준호 의원(광주 북구갑)이 광주 지역구 의원 8명 전원과 민형배 전남광주통합특별시장 후보 등 11명의 공동발의로 「한국예술종합학교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안」을 발의했다. 한예종을 오는 7월 출범할 전남광주통합특별시로 이전하고, 동시에 학교의 30년 숙원이었던 대학원(석·박사 과정) 설치를 허용하는 내용이다.
이튿날 한예종 총학생회는 즉각 반대 성명을 냈고, 4월 28일에는 석관동 캠퍼스 이어령예술극장 앞에서 학생 발언 집회가 예정되어 있다. 졸업생과 문화예술계의 반발도 빠르게 확산되는 중이다.
이 논란을 단순히 ‘서울이냐 광주냐’의 입지 다툼으로 환원할 수는 없다. 그 안에는 한국 균형발전 정책이 지난 30년간 반복해 온 익숙한 정치공학(政治工學)의 논리와 그 한계가 함께 응축되어 있기 때문이다.
두 가지 ‘미해결 과제’와 두 가지 ‘정치적 변수’
먼저 발단부터 짚자. 한예종은 1991년 노태우 정부의 ‘문화발전 10개년 계획’에 따라 만들어진 학교다. 본래 독립된 ‘설치법’으로 출발할 예정이었지만 기존 예술대학들의 반발과 부처 간 권한 갈등으로 하위 규범인 ‘설치령’으로 후퇴했다.
그 결과 한예종은 고등교육법상 ‘대학교’가 아닌 ‘각종학교’로 분류되어 정식 학위를 수여할 수 없는 상태가 30년 넘게 지속되었다. 졸업생들은 임용·승진 심사, 산업기능요원 복무, 해외 학위 인정에서 누적된 불이익을 감수해야 했다.

또 하나의 미해결 과제가 있었다. 본부가 위치한 석관동 캠퍼스는 본래 구 안기부 건물이었고, 부지는 의릉(懿陵, 조선 20대 왕 경종과 그의 두 번째 왕비 선의왕후 이씨의 능-편집자주) 능역에 속한다. 지난 2009년 조선왕릉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면서 의릉 복원이 결정되었고, 한예종은 본래 2025년까지 캠퍼스를 옮기기로 약속했다. 이전 비용은 5천억 원에서 1조 원으로 추산된다. 그러나 후보지 결정은 13년째 표류 중이다.
여기에 2026년 들어 두 가지 정치적 변수가 결합되었다.
첫째, 이재명 정부의 제2차 공공기관 이전 정책이 한예종을 대상으로 거론하기 시작했다.
둘째, 7월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출범이 확정되었다.
광주 측은 이 두 호재 위에서 6월 3일 지방선거를 약 6주 앞둔 시점에 입법을 발의했다. 그러니까 이번 법안은 두 가지 묵은 미해결 과제와 두 가지 정치적 변수가 우연히 조우해 하나의 ‘정책의 창’(policy window)으로 개봉된 결과물이라고 볼 수 있다.
패키지 입법의 인질극
법안의 가장 고약한 지점은 한예종 구성원의 30년 숙원과 입지 결정을 한 묶음으로 처리한다는 점이다.
학생들이 정확히 짚었듯, “제도적 미비로 권한을 갖지 못한 영역에 입법권자가 선제적으로 위치를 특정”한 형태다. 본래 분리되어 논의되어야 할 두 의제- 교육기관 지위 정상화와 입지 결정- 가 한 쪽이 다른 한 쪽의 인질이 되어 버린 꼴인 셈이다.
“광주로 가야 대학원을 받게 해주겠다”는 제안은 그것이 명시적이든 묵시적이든 협상이 아니라 강요다. 구성원이 제도적 약자였기에 가능한 정책설계 방식이며, 절차적 정당성에 명백한 흠집을 남긴다.
이 점은 한예종 학생회 성명이 가장 분명하게 짚었다. “한예종의 구성원들은 ‘지역 균형 발전’이라는 정무적 명분 하에 조건부로 협상의 대상이 되어 있다.” 패키지 입법은 협상이 아니라 인질극이라는 통찰이다.

‘산업적 입지’ 논리와의 차이점
‘균형발전론’은 한국 지역정책 담론에서 매우 중요한 키워드임에 틀림 없다. 그러나 모든 기관에 동일한 분산 논리가 적용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행정기관·사법기관·연구개발기관·공공서비스 기관은 입지 분산이 곧 권한과 자원의 재배치이지만, 예술교육기관은 본질이 다르다.
학생회 성명이 카이스트(연구개발 중심·자족적 투자구조)와 한국전통문화대학교(이미 설치법이 통과된 전승 중심 기관)를 자신들과 구별한 것은 적절한 지적이다. 한예종의 경쟁력은 시설이나 부지가 아니라 ‘우수한 입학생-졸업생의 순환’과 ‘서울에 집중된 공연·제작·방송 산업과의 생활권적 인접성’에서 나온다.
영상원·연극원·무용원 학생들이 학기 중 충무로·여의도·상암·대학로의 현장 작업에 일상적으로 참여하는 것 자체가 교육의 일부다. 학생회가 “본교의 유일한 재원은 뛰어난 학생들이다. 오직 인간이 예술계의 재원”이라고 적은 것은 이 점을 정확히 짚은 표현이다.
학생회가 제시한 통계는 이 비대칭을 분명히 보여준다. 공연예술통합전산망 자료에 따르면 수도권 티켓 판매액은 전국의 82.7%에 달하고, 전업 예술인의 50~60%가 수도권에 거주한다.
이런 산업적 쏠림 위에서 교육기관만 떼어내 옮기면, 결과는 자명하다. 우수 지망생은 여전히 서울 소재 사립예술대학을 택할 것이고, 한예종은 인재 유치에 실패해 경쟁력을 잃으며, 광주는 “껍데기만 얻게” 될 가능성이 크다. 학생회의 표현 그대로다.
문화평론가 김도훈이 자신의 SNS에 “부산인인 나는 한예종이 부산으로 이전한다 해도 강력하게 반대할 것”이라고 적은 대목은 이 점에서 정직한 진술이다. 한예종 이전 반대는 광주 무시가 아니다. 부산인인 필자가 보아도, 부산에 한예종이 와야 부산이 살아나는 것이 아니다.
‘설계의 정치’ 대신 ‘선점의 정치’
가장 우려스러운 지점은 이 법안이 2026년 6월 지방선거의 정치 캘린더에 종속된 형태라는 사실이다. 발의자 명단의 다수가 광주 지역구 의원이고, 공동발의자에는 민형배 전남광주통합특별시장 후보가 포함되어 있다. 7월 통합특별시 출범, 6월 선거, 그 직전 4월의 법안 발의- 타이밍 자체가 정책 의제가 아니라 선거 의제로 설계되었음을 시사한다.
본래 문체부는 한예종의 발전 전략 수립 후 행정·예술교육·건축·도시조성 전문가로 구성된 조성위원회를 꾸려 입지를 결정하겠다는 계획이었다. 이번 의원 입법은 이 행정적 트랙을 사실상 우회·무력화한다.
전문가 검토 없이 입법권 행사로 입지를 못 박는 방식은, 행정학의 용어로 말하면 ‘설계의 정치(politics of design)’가 아니라 ‘선점의 정치(politics of preemption)’다. 어떤 기관을 어디에 두는 것이 국가 예술교육 체계의 합리성에 부합하는가를 다투는 것이 아니라, 누가 먼저 깃발을 꽂느냐의 게임이라는 것이다.
송파·고양·과천·성북 존치 등 다른 후보 지자체들이 가만히 있을 리 없다. 광주의 입법 선점은 새로운 정치적 충돌을 예고할 뿐, 의릉 복원이라는 정작 풀어야 할 행정 의제를 진전시키지는 못한다. 한예종 이전 13년 표류의 본질은 정치적 결단의 부재가 아니라 정책 설계 역량의 부재였다. 입법으로 깃발을 꽂는다고 그 빈자리가 메워지지 않는다.
광주에 정녕 필요한 것
오해가 없도록 분명히 해두자. 광주·전남이 청년 예술인 유출과 지역 문화예술 산업 위축을 겪고 있다는 진단은 정확하다. 호남이 예향(藝鄕)의 전통을 자기 정체성으로 삼고 있다는 자부심도 정당하다. 하지만 그 정당한 진단이 곧 한예종 강제 이식이라는 처방으로 직결되는 것은 아니다.
광주에 필요한 것은 한예종의 ‘통째 이식’이 아니라, 광주 고유의 자산- 아시아문화전당, 광주비엔날레, 5·18의 역사문화적 자원, 호남 전통예술의 두터운 기반-과 연계된 차별화된 예술교육 거점의 신설이다.
만약 부산인인 필자가 그 이전 논의 대상이 부산이 되어 자문할 경우에도, 도달하는 결론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부산에 필요한 것은 한예종 분교가 아니라 영상·해양문화·로컬 콘텐츠와 결합된 부산형 예술교육 모델이 될 것이다. 광주 역시 마찬가지 논리가 적용된다.
이는 균형발전의 부정이 아니라 정확한 처방이다. 일본 도쿄예술대학이 우에노(上野) 본교를 유지하면서 도리데(取手)·요코하마(横浜)·기타센주(北千住)에 분산 캠퍼스를 운영하는 모델, 또는 한예종이 이미 구례·강진·세종과 협약해 운영해 온 지역 거점 사업을 제도화하는 방안이 합리적 출발점이 된다.
‘잘라붙이기’가 아니라 ‘보완형 분산’이며, ‘강제 이식’이 아니라 ‘자생적 거점 육성’이다.
균형발전의 진정한 의미
균형발전은 정당한 이상이다. 그러나 이상이 정책으로 전환되는 길에는 늘 두 갈래가 있었다.
하나는 각 기관·산업·도시의 고유 논리에 대한 존중 위에서 설계하는 길이고, 다른 하나는 입법권과 선거 캘린더를 무기로 깃발 꽂기에 매달리는 길이다.
한국 균형발전 정책 30년에 긍정적인 성과도 적지 않았지만, 다른 한편 정책이 빚어낸 그늘은 대부분 후자의 무리한 반복에서 비롯되었다고 본다. 지역의 요구 및 현장의 정합성과 어긋난 도청 이전, 공공기관 이전, 혁신도시, 그리고 이제 한예종까지- 패턴은 놀랍도록 일관된다.
한예종 학생회의 짤막한 성명 한 줄- “아시아 최고 수준의 예술대학을 정치 목표 달성을 위해 잘라 붙이는 것에 반대한다”- 은 사실 이러한 패턴 자체에 대한 고발을 대변한다고 본다.
그들의 발언에는 “광주를 무시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단서가 일관되게 붙어 있다. 정치권이 정작 응답해야 할 것은 그 단서다. 광주에 무엇이 필요한가, 한예종에 무엇이 필요한가, 그리고 양자는 어떻게 교류하고 협력하여 상생할 수 있는가-이 세 질문을 제대로 분리해서 다시 묻는 것. 거기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깃발 꽂기’가 아니라 설계가 필요한 시점이다. 30년 묵은 숙원을 6주짜리 선거 일정의 인질로 삼지 말자.
이 글은 박재욱 신라대 교수가 페이스북에 쓰신 글로, 필자의 승낙을 받아 게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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