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해녀, 고단한 삶에서 지킨 위엄
[송광용의 밤마다 카페테라스]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 해녀들은 자신들의 삶을 어떻게 평가할까 게석·금채기처럼 상생하며 사는 삶 본받아야
이번 여름 제주 여행에서 아쿠아플래닛을 갔다. 아이와 동행한 여행에서 거의 빠지지 않고 가는 코스가 수족관이다. 그곳에서 필자가 가장 인상적으로 봤던 장면은, 해녀의 물질 재현이었다. 그것은 제주의 수족관에서만 볼 수 있는 특별한 공연이었다. 물질이 시작되기 전에 해녀의 역사와 현직 해녀의 인터뷰 영상이 나온다. 바다라는 환경에 순응하며 끈질기게 꾸려온 한 생애에 대한 존경이 절로 느껴졌다. 해녀가 등장하여 산소통도 없이 수 미터 아래로 잠수하여 그들의 쌀이 되고 옷이 될 것들을 채취하여 올라가는 장면에선 뭉클함마저 들었다.
이런 프로그램이야말로 지역의 문화를 현대적인 감수성으로 소개하고 풀어낸 훌륭한 사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전까지 해녀에 대해 아무런 관심도 없었던 필자조차 이 공연 형태의 재연을 통해 ‘해녀’라는 존재에 관심 갖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들은 어떻게 살아 있는 유산이 되었나
제주 해녀문화는 2016년 11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해녀 문화’는 ‘물질’과 함께 파생된 유무형의 문화유산을 의미한다. 나잠 기술, 어로 같은 물질에 필요한 민속 지식과 해녀들의 안녕을 빌고 해산물의 풍요를 기원하는 ‘잠수굿’, 과거 제주 해녀들이 돛배를 타며 불렀던 해녀 노래 등을 포함한다.
제주 해녀들은 제주의 여성성을 대표하는 존재로 인식되어 왔다. 초인적인 나잠 기술로 맨몸으로 바다에 들어가 얻은 소산으로 가정 경제를 이끌어온 강인성이 제주 여성성의 상징이 되어왔던 것이다. 제주 해녀 연구자 좌혜경 교수는 <제주 해녀>라는 책에서 제주 해녀에 이런 문화적 가치를 부여한다.
“제주 해녀들은 기계 장치 없이 맨몸과 맨숨, 맨손의 상태로 바다 환경이라는 자연 생태계에 가장 잘 적응하여 민속 지식(토착 지식)과 잠수 기술을 축적하면서 ‘여성 생태주의(Eco-Feminism) 실천자’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또, 반농반어적인 전통 생업을 영위하면서 남성과 더불어 사회 가정 경제의 중심적 역할을 담당했다는 점에서 양성 평등의 모델이 되기도 했다. 아울러 집단 경제를 통한 지역 사회 재투자, 도제 정신과 상호 부조의 문화 형성 등 제주 전통문화의 창조자 역할을 담당하기도 했다.” -좌혜경, <제주 해녀> 중에서
여성 생태주의의 실천자, 양성 평등의 모델, 제주 전통문화의 창조자. 빛나는 평가다. 시대를 초월해서 오랫동안 제주 해녀들은 현대적인 관점에서도 유의미한 가치를 지닌 문화와 생활양식을 영위해온 것이다.
해녀에게 ‘물질’은 어떤 의미일까
해녀들 자신의 평가는 어떨까. 해녀들에게 짠 바닷물과 매서운 바람은 ‘생태’라는 우아한 말로 뭉뚱그려 말할 수만은 없는 것들이다. 바닷물과 바람은 해녀들의 몸을 풍화시키는 ‘현실’이다. 해녀들의 자기 인식은 그 현실 위에서 형성되어 온 것 같다.
고희영 감독의 <물숨>은 해녀들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다. 영화의 제작 과정을 담은 동명의 책 <물숨>에서 감독은 해녀를 카메라에 담기가 얼마나 힘들었는지를 토로한다.

해녀 영화를 찍기 위해 고희영 감독은 우도로 향한다. 고 감독은 숱하게 불턱으로 다가갔다.(불턱은 해녀들의 탈의실이자 물때를 기다리며 불을 쬐는 곳이다.) 처음에 고 감독을 발견한 해녀들은 손녀 같은 감독을 발견하곤 미소 짓다가도 카메라를 발견하면 태도가 돌변하곤 했다. 해녀들은 카메라에 거부감을 보였다.
제주 출신의 고희영 감독은 어디 내놔도 자랑스러울 해녀들의 삶과 모습을 내밀하게 보여주는 다큐멘터리가 그동안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자신이 그 일을 이루겠다며 영화 제작에 뛰어들었는데, 현실을 직면하고서 그동안 나온 영화들이 어려운 여건에서 탄생한 최선이었음을 절감한다. 그래도 고 감독은 생활 근거지인 베이징과 우도를 오가며 7년 간 끊임없이 촬영을 시도하고, 낙담하기를 반복하며 기어이 영화 촬영을 해냈다. (심지어 그 중 2년은 감독이 항암 치료를 하는 중이었는데도 말이다. 그 모습이야말로 해녀 같은 강인함을 보여준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 감독은 해녀들이 카메라에 찍히는 걸 싫어하는 이유를 듣게 된다.
“첫째, 해녀는 절대 가난의 상징이었다. 둘째, 아직도 ‘해녀’라는 직업은 제주 사회에서 ‘천한 직업’이라는 인식이 사람들에게 깊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셋째, 물질하는 자신들의 모습이 참으로 초라하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고희영, <물숨> 중에서.
오늘날 해녀문화를 보존하자는 생각에 담긴 자긍심을 생각하면 해녀들의 자기 인식은 참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해녀들은 보통 먹고 살기 위해서 그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대부분 글보다 물질을 먼저 배운다고 할 정도로 어린 시절부터 자연스레 시작해서 17~19살엔 직업으로 삼았다고 한다.
해녀들이 자신의 일을 부끄럽게 여기는 것과 별개로, 그들은 바다로부터 위로를 얻고 마음의 휴식을 얻는다. 책 <물숨>에서, 한 해녀 할머니는 뭍에 있는 아들네에 갔다가도 바다 생각이 나서 3일이 지나기 전에 돌아오곤 한다고 했다. 대부분의 해녀들은 70~80살이 되어서도 바다에 들어간다. 물에 들어가지 않으면 허전함을 느끼는 해녀들이 대부분이다. 어떻게 시작했다거나 내 일에 대한 인식이 어떻다는 걸 떠나서 그들은 결국 바다에 사로잡혀 버린 사람들이었다. 해녀들은 잠수병을 달고 산다. 머리가 아프면 뇌선이나 감기약 같은 진통제를 먹곤 한다. 완치될 수 없는 병이다. 그런 고단함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바다에 길들여졌고 바다에 마음을 내주며 살아가는 것이다.

해녀 문화, 우리가 주목해야 할 미덕
해녀의 기량은 ‘숨의 길이’다. 그것에 따라 상군, 중군, 하군 등으로 분류되는 계급이 정해진다. 상군은 보통 수심 15m 이상의 바다에서 작업한다. 중군은 8~10m, 하군은 5~7m의 수심에서 작업하는 해녀들이다. 수심 5m 이하의 바다에서 일하는 해녀는 ‘똥군’이라 불린다. 계급은 처음부터 정해진다. 한 번 상군은 몸에 특별한 변화가 없는 한 늙어서도 상군의 바다에서 일한다. 깊은 바다에선 더욱 가치가 높은 해산물을 얻을 수 있고, 계급에 따라 수입도 차이가 난다.
기량 차이가 존재하지만 각자 할 수 있는 수심에서 각자의 바다를 지키며 일한다. 과거에는 해녀들 사이에 ‘게석’이라는 행위가 있었다고 한다. 게석은, 상군 해녀들이 초보자들을 격려하는 의미에서 자신이 채취한 걸 몰래 건네주는 걸 말한다. 해녀의 집단은 기량과 노력에 따른 수입차가 발생하는 하나의 작은 자본주의 사회 같다. 하지만 오랫동안 자리 잡은 배려의 문화는 그들을 자본주의에 머물러 있게 하지 않고 상생의 공동체로 이끈다. 높은 계급의 해녀들은 낮은 계급의 바다를 침범하지 않고 자신의 바다에서 일한다. 그리고 서로를 채워주려고 한다.
해녀들은 ‘금채기(禁採期)’라는 기간을 두어 해산물의 산란기를 고려하여 작업한다. 그리고 바다 밑의 어장 청소도 한다. 그들은 자신들의 일이 자연과의 협업이라는 걸 이해하고 있다. 그 덕에 해녀의 일은 지속가능한 일로 이어진다. 이 역시 우리의 산업과 문명을 발전시킬 때 우리에게 필요한 태도다. 해녀의 바다는 그러하다. 고단함의 수면 아래에서 상생과 배려가 유영한다. 그 바다엔 위엄이 가득하다.
2021년 말 기준으로 제주의 해녀는 3437명이다. 이 중 70대 이상의 해녀가 2146명이다. 통계는 해마다 하락 곡선을 그리고 있다. 연령 분포상 해녀의 수는 계속 줄어들 것이 예상된다. 얼마 전인 9월 24~25일 이틀 간 제주 세화 일원에서 제15회 제주해녀축제가 열렸다. 축제 소식을 접하면서, 어쩌면 이 축제는 언젠가 없어질지도 모를 한 문화를 오래 기억하고자 하는 노력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짠한 마음이 들었다. 제주 해녀의 문화가 오래도록 현재의 것이었으면 한다. 그 문화의 여러 가치가 더 많은 이들에게 영감과 교훈으로 다가서길 바란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