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나의 세 번째 기억 통증으로 남다
“재난을 피할 수 없다면 인간적이어야 한다”
나는 지난 10월 29일 이태원에서 발생한 충격적인 참사 사건을 바탕으로 칼럼을 쓰겠다고 결심한 후, 몹쓸 몸뚱이가 심하게 아팠다. 일상다반사의 몸살일 수 있겠지만, 하 수상(殊常)한 시절에 휩쓸려버린 내 마음이 해석해준 통증의 원인은 또다시 과거의 고통스러운 기억과 마주해야 하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시간이 지나면 희로애락의 기억들은 서서히 희미하게 망각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그 기억과 동일한 사건이 발생하면, 망각은 오히려 자신을 잊고 지낸 시간을 보상받고자 더욱 생생하게 기억으로 변신하게 된다.
그렇게 나를 휘감은 기억의 사건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나의 개인적인 사건이며, 다른 하나는 우리가 기억하는 사건이다. 내가 이 두 개의 사건을 자세하게 언급하는 이유는 고통과 마주하는 것이 고통을 이기는 길이라 믿기 때문이다.
2007년 7월 27일 첫 번째 기억
나의 개인적인 사건은 딸아이에게 일어난 사건이다. 2007년 당시 초등학교 1학년이었던 딸 아이는 여름방학 중 교내 예체능 특별수업에 참석했다가 학교에서 추락사고를 겪었다. 사고로 인해 대퇴골, 골반, 팔 골절 등으로 심각한 중상을 입은 딸 아이는 그 후 5년 동안의 재활을 해야만 했다. 특히 무엇보다 대퇴골두 골절로 성장판 손상을 겪었기에 성장판을 살리기 위해 필사적으로 매달렸다.
추락사고 발생 이후 심각한 몇 가지 원인을 찾을 수 있었다. 먼저 당일 수업 교사는 개인 사정으로 수업이 취소되었음에도 이를 학부모에게 제대로 알리지 않았으며, 2인 근무가 원칙임에도 1인 근무 상태였던 경비원은 학내 순찰을 하기 위해 학교 출입문을 잠갔다. 그리고 교실 내 교사 책상에 비치된 전화는 외선번호를 눌러야 통화가 가능했기에 이를 모르는 아이는 부모와 통화를 할 수도 없었다. 또한 1층은 외부 침입을 막기 위해 창문마다 견고하게 방범창이 되어있었다. 이러한 여러 가지 악조건들이 아이에게 고립 상태를 만들었고, 결국 겁을 먹은 딸아이는 무리하게 2층 교실 창밖으로 나오려다가 추락한 것이다.
문제는 사고 이후 학교의 태도였다. 적극적으로 원인을 찾아 조치하고 치료에 임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말과는 달리, 회피와 변명으로 일관했다. 심지어 학교에서는 탈출이 아닌 투신이라고 주장하며, 우리 가족들과 딸아이에게 마음에 큰 상처를 주었다. 나는 5년 넘게 교육청을 상대로 소송을 했고, 승소를 했다. 하지만 남은 것은 회피와 억지를 부리던 교육청과 학교에 대한 불신과 배신감 뿐이었다. 지금도 이러한 배신감은 사라지지 않고 견고한 마음의 요새가 되어있다.

2014년 4월 16일 두 번째 기억
그리고 딸아이가 겪은 사건의 악몽이 조금씩 사라져가던 중, 다시 몸서리치는 기억을 떠올리게 만든 엄청난 사건이 일어났다. 그날은 2014년 4월 16일이었다. 당시 안산 고잔동에 위치한 서울예술대학교에 출강 중이었던 나는 그날도 역시 여느 출강일과 다를 바 없이 수업 준비에 바쁜 아침을 보내고 있었다. 그때였다. 서울예술대학교 인근에 위치한 단원고등학교의 학생들이 승선한 세월호가 좌초되어 구조 중이라는 아침 속보 뉴스가 방송되었다.
뉴스에서는 학생 들을 신속하게 구조 중이라고 보도했기에 ‘큰일은 아니다’라고 생각하며 학교로 향했고, 수업을 마무리했다. 하지만 수업이 끝난 후에 살펴본 뉴스는 아침과 달리 난폭하게 돌변된 상태였다. 침몰한 세월호에서 대다수의 단원고등학교 학생들이 구조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순간 나는 심한 현기증을 느꼈고, 알 수 없는 힘에 끌려가듯 단원고등학교 앞으로 급히 향했다. 그리고 단원고등학교 인근 빌라 단지 앞에서 눈물이 쏟아지는 장면을 목격했다. 그것은 세월호에 자식을 태운 학부모들이 진도 팽목항으로 향하는 긴급 수송 버스에 올라타던 모습이었다. 서로 부둥켜안고 통곡을 하며 버스에 올라타던 학부모들을 지켜보던 나는 그만 울고 말았다. 수술실로 들어가는 딸아이를 배웅하며 통곡했던 내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단원고등학교가 위치한 고잔 1동은 맨션과 빌라가 다수인 전형적인 서민 동네다. 세월호에 탔던 단원고등학교 학생 중에 고잔 1동에 거주하는 학생은 108명이었고, 생존한 아이들은 24명이었다. 같은 빌라 단지에서 수십 명의 아이들이 세상을 떠났으니 이보다 더 고통스러운 기억의 동네가 또 어디 있겠는가. 나는 그날 이후 수업 때문에 학교에 갈 때마다 단원고등학교 정문 앞에 마련된 희망의 공간에서 무사 생존을 기원하며 기도를 했다. 하지만 결국 248명의 단원고 학생들과 11명의 교사가 희생되었다. 그들 중 박영인, 남현철 학생과 양승진 교사는 유해가 발견되지 않은 미수습자로 남아있다.
딸아이의 사고와 세월호 참사. 이 두 개의 사건은 나에게 재난에 의한 고통의 족쇄를 채워주었고 트라우마로 작용하고 있다. 심지어 지금도 나는 갑자기 걸려오는 가족의 전화를 쉽게 받지 못하고 있다. 혹시나 심각한 어떤 일 때문에 걸려온 전화가 아닐까? 하는 두려움 때문이다. 그런 나에게 또다시 큰 고통의 사건이 바로 이태원 압사 참사 사건이다.
2022년 10월 29일 세 번째 기억
156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이태원 참사는 신은 인간에게 망각이라는 선물을 주었지만, 망각이라는 고통을 동시에 선택하게 해주셨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과연 우리 사회가 선택한 망각은 무엇인가?
나는 여전히 우리 사회는 망각의 시작과 끝 사이에서 길을 잃었다고 단언할 수 있다. 그 끔찍한 재난을 겪었음에도 우리 사회는 어떤 반성도 하지 않고 있었음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냉철하게는 현재의 정부와 국민을 위해 일하는 공무원들이다. 그들은 헌법 7조 1항인 공무원은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이며, 국민에 대하여 책임을 진다는 점을 전혀 행동으로 보여주지 못했다. 심지어 참사 이후에도 제가 잘못했습니다라는 이 짧은 사과조차 말하지 않은 채 너무도 진부하고 구태의연한 태도로 변명의 레토릭을 일삼았다.
지금은 사건 수습이 급선무입니다...
나는 이 말이 너무도 역겹고 혐오스럽다. 정말 급선무가 무엇인지 알고 있는 것일까? 그렇게 수습의 급선무를 말하는 자들은 어찌해서 사고 발생 4시간 전부터 속속 들어온 압사 염려 신고를 무시했으며, 사전에 핼로윈 축제 대책 회의에 참석하지 않았으며, 당일 경찰 배치에 문제가 없었다고 했으며, 이태원 참사에 대한 한국 정부 책임의 시작과 끝은 어디까지냐는 질문에 진지함이란 찾을 수 없는 태도로 추악한 농담을 했단 말인가?
이것이 진정 사건 수습의 진정한 모습에서 표출된 말과 행동이란 말인가? 행동의 이율배반적 중심인물에서 벗어날 수 없는 윤석열 대통령은 왜 사고현장에서 뇌진탕을 운운하며 사진찍기에 바빴던 것인가? 그에 의해 선언된 국가 애도 기간은 과연 애도를 하기 위함인가? 변명과 날조를 하기 위한 시간벌이인가? 영정도 없고 위패도 없는 분향소 운영과 근조조차 쓰지 않은 검은 리본을 달라는 명령에서 어떤 애도를 찾을 수 있단 말인가?
진심으로 나는 분노할 수 밖에 없고, 백번을 양보해도 참사 이후 그들의 태도를 이해하기 어렵다. 신화 학자 조셉 켐벨은 진정한 재난은 재난이 발생한 후 그것을 대하는 인간의 태도에 있다고 했다. 그의 말대로라면 애도 기간이 끝나가는 지금 우리는 진짜 더 심각한 이태원 참사를 겪고 있는 것은 아닌지, 국민을 위해 일하는 공무원들의 태도에서 적나라하게 발견하게 된다.
피할 수 없다면 인간적이어야 한다
<재난의 세계사>의 저자인 루시 존스는 인간의 역사에서 재난은 끊임없이 발생했으며 앞으로도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다고 했다. 나는 그것이 인간이 살아가는 숙명이라는 점에서 전적으로 동의한다. 루시 존스는 재난의 발생을 단순히 비정상인 상황으로 볼 수 없다고 했다. 그는 재난에 있어서 그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는 시각을 가져야 하고,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최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즉 이것이, 가장 인간적인 절차와 과정이라는 것이다. 과연 우리 정부는 루시 존스가 말한 인간적인 절차와 과정을 밟고 있는가? 단언컨대 절대 아니다.
심지어 이태원 참사는 우리 사회의 불평등한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2년 동안 코로나 바이러스의 창궐로 학교조차 다닐 수 없던 젊은 청춘들은 이태원에 모여 잠시나마 자신이 코로나 시기를 잘 거쳐왔음을 스스로 확인하고 싶었으며 동시대의 청춘을 거울삼아 삶의 위로와 격려를 받고 싶었을 뿐이다. 그들은 그저 1250원짜리 지하철 티켓을 끊고 이태원에 모였을 뿐이다. 핼로윈 파티를 하기 위해 해외로 출국하고, 강남의 호텔에서 파티를 하던 부자들의 자제들과 달리 그들 대부분은 내일 또다시 취업과 진로를 걱정해야 하는 우리의 자식들이었다.
우리는 그런 그들의 하루도 지켜주지 못했던 것이다. 소시민의 자식이던 나의 딸, 소시민의 자식들이던 단원고의 학생들, 소시민의 자식들이던 이태원 희생자들. 이 땅에서 태어나 비운의 삶을 살게 되는 젊은이들은 결국 흙수저의 자식들이 아닌지, 대한민국의 정부에 묻고 싶다.
어쩌면 우린 소 잃고 외양간을 고치는 과정의 반복 속에서 이제 외양간을 고쳐야 할 세대를 잃고 있는지 모른다. 시간이 지날수록 참사의 고통은 증폭될 뿐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미래 세대에게 당부합니다
나는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뒤 대학 수업에서 학생들에게 이렇게 당부했다. “기성세대가 되면, 타성에 젖은 삶을 살게 될 확률이 높습니다. 그리고 세속적인 삶에서 벗어나 비범하고, 새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살아가는 것이 매우 어렵습니다. 부디 여러분이 이 세상의 기성세대가 되는 20년 뒤엔 지금의 대한민국과 다른, 반복하는 고통이 없는 나라를 만드는 것에 노력해주십시오.”
나의 고통도, 나의 딸, 세월호 그리고 이태원으로 끝나기를 진심으로 희망한다. 이 글을 마무리하는 지금, 대한민국이 정한 이태원 참사 희생자에 대한 국가 애도 기간이 끝났다. 아니 진정한 애도는 지금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그것은 참사에 대한 진심 어린 사죄와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또 다른 재난 요소를 원천적으로 제거하는 혁신적인 생각의 전환이다. 바로 이것이 우리의 애도 방식이어야만 한다.
마지막으로 삼가 고인이 되는 희생자분들의 명복을 빕니다 그리고 . 가족을 잃은 희생자 분들 의 유가족 분들에게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부상자 분들의 빠른 회복을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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