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부캐를 가졌나요
[송광용의 밤마다 카페테라스] 日야구 전설 이치로의 ‘마음속의 돌’ 우리도 연마하고 싶은 ‘돌’ 있을까
전에 뜻밖의 감동을 받은 신문 기사가 있었다. 야구 소식이었다. 일본의 야구 전설 스즈키 이치로가 동네 야구팀을 만들어 여고생 팀과 경기를 하는데, 투수로 출전해서 팔이 아픈 듯 주무르면서까지 완투했고, 16대 0으로 완봉했다는 기사였다. 은퇴한 스타 야구 선수가 여고생 선수들을 상대로 그렇게까지 할 일일까 하는 얘기가 나올 법한 상황이었다.
이치로의 생각을 알면 이해가 된다. 일본 대표팀 감독을 지낸 고쿠보 히로키는 언젠가 이치로에게 왜 그렇게 지독하게 뛰냐고, 무슨 영광이나 기록을 위해 뛰냐는 취지로 물은 적이 있다. 돌아온 대답은 이랬다고 한다.
“고쿠보 상은 숫자를 남기기 위해서 야구를 합니까? 나는 마음 속에 연마하고 싶은 돌이 있습니다. 야구를 통해 그 돌을 빛나게 하고 싶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준비를 위한 준비까지 소홀히 할 수 없습니다.”
이치로는 여고생 선수들에게 경기에 모든 걸 쏟아 붓는 그 자세를 가르치고 싶었던 것이다.
필자가 이치로의 말에 감동을 받은 이유는, 그의 철저함이나 강한 신념 때문이 아니었다. 바로, ‘마음속의 돌’ 때문이었다. 이치로가 연마하고 싶은 건, 자신만의 돌이었다. 세상 사람들의 판단 기준이나 숫자로 성취가 표시되는 종류가 아니었다. 스스로 연마하길 바라는, 도달하기 바라는 그 무엇이었다.
이치로가 갖고 있던 ‘마음속의 돌’을 필자는 요즈음 부캐를 만드는 사람들에게서 발견하곤 한다. 이제 마음속의 돌은 오랫동안 한 우물을 판 장인만의 것이 아니다.

‘부캐’라는 말은 지금은 널리 알려진 용어다. ‘부캐릭터’의 줄임말로 원래 게임에서 통용되던 말이었다. 주로 키우던 본캐(본캐릭터)를 두고 새로운 걸 시도할 때 가끔 사용하던 캐릭터를 부캐라고 불렀다.
지금 부캐라는 용어는 사회적으로 확장되어 부업, N잡, 사이드 프로젝트, 사이드 잡, 세컨드 라이프, 취미 등등 여러 개념을 포함하는 말이 되었다. 부캐로 돈을 벌기도 하고, 건강을 챙기기도 하고, 뭔가 생산적인 일을 도모하기도 하며 봉사를 통해 남을 돕기도 한다.
부캐는 스스로에게 긍정적인 효과를 불러일으키는 효과를 준다. 이는 요즘 많은 이들이 추구하는 워라벨(Work-Life Balance) 같은 개념과 긴밀한 연관을 갖는다. 부캐는 자신만의 행복을 열어젖히기 위한 사람들의 열의인 것이다. 본캐가 실패하면 큰 타격을 받지만 부캐는 그렇지 않다. 부담 없이 시도하고 경쾌한 스텝으로 지속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가면을 바꿔 쓰는 행복
작년에 필자가 가장 잘했다고 꼽는 일은 김성중 소설가가 진행하는 문학 강의를 수강한 일이었다. 소설가가 진행하는 문학 모임이라니! 늘 그런 모임을 동경해왔다. 그런 문학 모임은 대부분 서울이나 수도권에서 이루어졌기에 지방 거주자는 참여가 쉽지 않았다. 코로나19로 인해 대면 교육이 크게 위축된 사이 줌(Zoom) 같은 원격 소통 도구를 활용한 비대면 교육이 활성화 됐다. 서울에서만 진행되던 전문가의 강의들이 온라인이라는 버스를 타고 지방의 정류장까지 정차하게 되었고, 지난해에 필자가 그 혜택을 보게 된 것이다.
그 10주는 가슴 뛰는 시간이었다. 필자의 열의를 이해해 준 아내는 일주일에 하루, 저녁에 두 아이의 육아를 홀로 책임져주기로 했고, 5분 거리의 처가에 있는 빈 옥탑방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수요일 저녁마다 필자는 철로 된 계단의 경쾌한 울림을 들으며 처가의 옥탑방에 올랐다.
그간 취미처럼 홀로 소설이나 동화를 써왔다. 비슷한 관심사와 욕망을 가진 이들이 배움의 공간에서 함께 만났을 때, 혼자일 땐 느끼지 못했던 자극과 생각의 확장이 일어났다. 필자는 가면을 바꿔 쓰듯이 ‘교사’라는 본캐를 잠시 벗고, ‘소설가 지망생’이라는 부캐를 썼던 것이다. 배우고 성장하는 일은 달콤했다. 그곳에 모인 사람들도 필자와 같은 부캐를 지닌 사람들이었다. 다양한 직종의 본캐를 가진 사람들.
지금은 수많은 이들이 여러 개의 가면을 들고 가면무도회에서 춤을 추듯 살아간다. 내가 아는 교사들은 미술가, 작가, 자전거 라이더, 아마추어 골퍼, 사물놀이 연주자, 지휘자 등 다양한 부캐를 갖고 있다. 다른 직종에서도 ‘부캐 갖기’는 흔하다. 얼마 전에 읽었던 한 책을 보면서 ‘요즘은 부캐의 시대구나’라는 걸 실감할 수 있었다. 책의 뒷면에 추천사가 있었는데 추천사를 쓴 사람의 이름 뒤에 본캐와 부캐와 나란히 소개되고 있었다. ‘뮤지션, 작가’, ‘개그맨, 작가’ 이런 식으로 말이다.
IT 업체에 근무하는 필자의 고교시절 친구는 자신의 전공 분야와 관련한 부캐를 갖고 있다. 그는 전자 기기 폐품으로 로봇을 만든다. 얼마 전 통화를 하면서 일과 육아의 틈바구니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병행하는 것의 어려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필자는 아이가 잠든 후에야 글을 써야 하는데 점점 체력이 달리는 것 같다는 푸념을 하니까 그 친구는 아이를 재우며 일찍 같이 잠들었다가 새벽 2시에 일어나서 로봇 제작을 한다는 말을 했다. 그렇게 간절하게 틈을 만들어내는 에너지는 어디서 나올까. 바로 그 일이 주는 행복감과 성취감에서 솟아난다.
언젠가 문화심리학자 김정운 교수의 책에서, 윈스턴 처칠의 일화를 읽은 적이 있다. 2차 세계 대전의 한 복판에서 한 나라를 통치하는 역할을 맡은 윈스턴 처칠은 중압감과 스트레스에 시달려야 했다. 스트레스가 극에 달할 때마다 처칠은 조용히 방에 들어가서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그 행위를 통해서 처칠은 자신의 존재 가치를 재인식하곤 했다. 이렇게 부캐가 본캐를 지속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요즘은 부캐의 위상이 더 높아졌다. “난 실은, 부캐를 위해 이 일을 하고 있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함석헌 시인은 ‘그 사람을 가졌는가’라는 시를 통해 타인과의 참된 관계가 사람의 삶을 풍요롭게 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부캐의 시대에 사는 우리는 자신 안에 있는 여러 정체성들과의 관계를 통해 좋은 삶을 추구한다. 함석헌 시인의 시를 이렇게 변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대, 부캐를 가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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