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설픈 저격수들을 위한 고언(苦言)
[박정인의 정치비평] 누가 한동훈 키우나...민주당 ‘잦은 미스샷’ 정교한 실력과 논리로 제대로 정권 견제하길

노회찬은 왜 드러누웠을까
2017년 10월 19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고 노회찬 전 의원이 갑자기 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드러누웠다. 기자들이 “무슨 일이야?”하면서 몰려가 이 장면을 취재했다. 구치소의 재소자 과밀도가 인권을 심각하게 침해할 정도로 높다는 사실을 몸으로 보여주는 퍼포먼스였다. 호통을 치지도, 증인을 몰아세우지도 않았지만 반향은 크고 넓었다.
지난 7월 대법원은 처음으로 구치소 과밀 문제에 대한 국가 책임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노 전 의원의 퍼포먼스가 벌어진 지 5년, 그가 유명을 달리한 지 4년 만이다. 노 전 의원이 하늘에서 특유의 하회 탈 미소를 짓고 있지 않을지 궁금했다.
국정감사나 청문회와 관련해 요즘 새로운 궁금증이 생겼다. “저 의원들은 왜 저럴까?” 이른바 민주당의 저격수들에 대한 물음표다.
저격수의 세계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다. One shot, one kill! 저격수의 원칙 1호다. 쥐죽은 듯 숨어 있다가 결정적인 찰나에 단 한 번 방아쇠를 당긴다. 실패하면 타겟이 순식간에 사라지거나 경호원에 에워싸이기 때문에 second chance란 없다.
실제 저격수에 비해 민주당 저격수들은 왜 그 일을 맡아 하는지 의아할 때가 많다. 특히 한동훈 법무장관 한 사람 저격에 동원된 의원들이 고장난 기관총처럼 줄줄이 ‘미스샷’을 날리는 모습이 안쓰럽다.
예를 들자면 6개월 전 진행된 한동훈 법무장관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가 그랬다. 이 청문회는 당초 새 정부의 심장을 공격하는 민주당 독무대로 예상됐다. 대통령 당선자의 최측근에, 검수완박과 가장 예리하게 각을 세운데다, 재산을 비롯한 개인 의혹도 있었다. 대중과 언론은 ‘흥미로운 청문회’를 기대했고, 정부와 여권은 긴장했다.
빗나가는 총알, 허무한 패배
하지만 청문회가 끝난 뒤 남은 건 한동훈 어록과, 그가 차기 대권주자로 꼽히는 게 아주 터무니 없진 않다는 의견과, 민주당 저격수들에 대한 조롱섞인 패러디들 뿐이었다.
가장 화제가 된 케이스는 김남국 의원의 ‘이모’ 발언이었다. 한 후보자의 딸이 ‘이모’와 함께 논문을 쓴 게 대필 아니냐는 의혹제기였다. 하지만 그 이모는 엄마의 자매가 아니라 ‘이 모 (이 아무개)’ 교수였다. 한 후보자의 혼잣말이 실소를 불렀다. “우리 딸이 이모가 있었어?”
해프닝의 내막을 추측하자면 김 의원이 논문의 표지조차 보지 않고 질의에 나선 것 아닌가 싶다. 더구나 보좌진이 ‘이 모 교수’라고 써 준 질의서를 제대로 검토해 보지도 않고 즉석에서 읽다가 구멍이 났을 수도 있다.
김 의원은 또 한 후보자 딸이 기부스펙을 쌓기 위해 보육원에 기부를 했다며 ‘한**’라고 적힌 기부명단을 공개했다가 망신을 자초했다. 기부자가 영리법인으로 분류돼 있고 영수증에 ‘한국쓰리엠’이라고 기재된 사실을 후보자가 ‘일깨워’ 줬기 때문이다. 타겟이 저격수 보고 “미안하지만 당신은 지금 고장난 총을 갖고 왔네요”라고 충고한 셈이다.
이수진 의원의 호통도 화제였다. 후보자에게는 물론 동료 청문위원들에게 까지 호통을 난사해 비웃음을 샀다. 정작 질의 내용은 별것 없이 횡설수설하면서 말끊기와 호통을 이어가는 모습에 얼굴이 화끈거렸다는 후일담을 여러 민주당 관계자들로부터 들었다.
최강욱 의원의 법무장관 후보자 청문위원으로서의 적정성 역시 빼놓기 어려운 부분이다. 채널A 기자 명예훼손 사건으로 기소돼 있는 사람이 법무장관 청문회에 야당 위원으로 나선다는 것이 적절한지의 문제였다. 결국 여야 합의로 자리를 지켰지만 민주당이 피의자 신분인 최 의원을 굳이 청문위원으로 내보내서 얻을 이익이 무엇일 지 궁금했다.
준비부족, 뜬금없는 호통, 위원 자격논란. 이런 것들이 야당의 독무대로 예상됐던 청문회를 ‘한동훈 스타탄생’ 이벤트로 탈바꿈시켰다. 야당의 저격수들은 받들어 총 자세로 방아쇠를 당겨 “경축! 법무장관 취임” 깃발을 쏘아올리는 광대들 같았다.
누굴 위한 총질일까
보통 길거리 말싸움에서는 논리로 안 되면 나이나 성별, 직급이라도 걸고 넘어지기 마련이다. “나이도 어린 놈이”, “여자가 무슨”, 또는 “고작 말단사원 주제에” 같은 말들이다. 이건 밀리고 있다는 뜻이다. 어리거나 여자이거나 직급이 사원인 상대방의 비웃음을 산다. 그러면 결국 뜬금없는 호통이 나온다. 호통은 싸움을 포기한다는 고백이다.
이쯤 되면 구경꾼들은 대부분 공격 당한 쪽을 응원하거나 판이 끝났다고 여겨 자리를 뜨기 마련이다. 민주당의 실패한 저격수들이 유권자들을 그렇게 만들었다.
이후에도 어설픈 저격은 계속됐다. 또다른 저격수 김의겸 의원. 법무부 관련 행사에서 한 장관이 민주당 이재정 의원을 상대로 의도적인 악수 장면을 연출했다는 의혹이 우선이었다. 애초에 그게 저격거리가 될까 싶었는데 문제는 다른 데 있었다.
현장 영상이 공개됐는데 이 의원과 한 장관이 함께 박수 치다가 이 의원이 먼저 악수를 청하는 장면이었다. 동료 의원 관련 폭로를 하면서 당사자에게 한번 묻지도 않았단 것일까?
청담동 술집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한 장관이 김앤장 변호사들과 술을 마셨다는 폭로는 발상 자체가 의아했다. 혼자 상상을 해봤다. ‘대통령과 장관이 변호사들과 술을 마셨다는 걸 폭로하면 국내 최대 로펌과 정권과의 유착의혹이 생길 수도 있겠지. 하지만 술자리를 함께 했다는 것만으로 유착의혹을 제기하는 건 너무 이른 추론 아닐까?’ 고민스러웠다.
그 고민을 한 장관이 풀어줬다. ‘장관직을 걸고 그 자리에 간 적이 없다’는 답이었다. 한 장관의 반박과 관계자들의 부인에, 의혹을 제기한 당사자들이 내분까지 벌이는 사이 김 의원의 폭로는 또 한번의 미스샷으로 정리돼 가는 분위기다. 김 의원은 그 와중에 왜곡 브리핑으로 주한 EU 대사에게 공식 항의까지 받는 처지가 됐다.
정확한 저격수가 필요하다
이미 알려진 문제들을 나열하면서 민주당 저격수들을 폄훼하는 게 불편한 독자도 있을 것이다. 사실 필자도 불편하다. 하지만 야당이 건강한 비판자 역할을 해야 하는 건 민주주의의 기본이다. 더구나 다수 의석을 차지한 야당은 비판자를 넘어서 국정의 또다른 중심축이다.
지금 야당의 역할은 윤석열 대통령 때문에 특히 중요하다. 윤석열 정부의 특징을 보자. 민주화 이후 처음으로 과거 선출직 경험이 없는 대통령이라는 게 첫째다. 취임 하자마자 지지율이 급락했다는 게 둘째고, 그 원인의 상당 부분이 ‘내 맘대로 인사’에 있다는 것이 세번째다.
정치에서 경험은 다른 어느 것보다 중요하다. 선거를 한 번이라도 치러본 사람과 그러지 못한 사람은 정치 경험 면에서 비교가 안 된다. 내 선거를 치러 본 사람과 남의 선거를 돕기만 한 사람의 차이 또한 크다. 선거의 경험은 정치인으로 하여금 유권자의 속성을 이해하게 만든다.
경험이 많은 정치인은 지지율에 예민하다. 말로는 지지율이 중요한 게 아니라고 하면서도 단 1% 포인트 변화에 조바심을 낸다. 이게 꼭 좋은 것만은 아니지만 적어도 국민의 목소리에 귀 기울인다는 장점은 있다. 자연히 인사를 할 때도 국민 의중을 살핀다.
윤석열 대통령은 여러 가지 정치적 재능을 갖췄지만 선량으로서의 경험 부족이 이런 저런 실수와 실패를 불러 오는 것 같다. 그걸 고치려면 누군가가 문제를 지적해 줘야 하는데 측근들로는 부족하다. 여기서 야당 저격수들의 활약이 등장한다.
저격수라면 ‘기를 쓰고 정권 흠집 잡는데 몰두하는 사람’으로 느껴질 수 있는데 실상은 그렇지 않다. 저격수 소리를 들을 만큼 의혹의 속살을 파헤치면 그만큼 정권이 조심할 것 아닌가. 저격수는 권력이 국민 눈치를 보게 만드는 기능을 한다. 제대로 저격할 수만 있다면.
한동훈의 과잉, 누가 불렀나
민주당 저격부대가 기능을 상실했다는 사실은 저격 당해야할 쪽의 말말말에서 입증된다. 과거에는 장관이 국회에서 감히 하기 어려웠던 표현들이 잇따르고 있다. 저격수가 고개 들기 창피할 정도로 냉소적인 반박이 나오는가 하면, 국민을 쉽게 보는 듯한 발언도 눈에 띈다. 때로는 장관의 답변이 아니라 야당 의원의 질의 같다.
한동훈 장관의 예를 보자.
“저번에 저보고 뭐 걸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저는 다 걸겠습니다. 위원님 뭘 거시겠어요?”
”의원님이 지금까지 제기하는 근거는 다 이런 식입니까? 이런 정도 듣고서 그냥 지르는 거에요?” (김의겸 의원에 대해)
“장관이 대통령의 권한을 넘어설 수 있습니까? 아주 심플한 질문입니다.” (권인숙 의원)
“너무 심플해서 질문 같지가 않습니다.”
“진짜 꼼수라면 위장 탈당이라든가, 회기 쪼개기 같은 그런 게 꼼수 아니겠습니까? “ (박범계 의원에 대해)
“그런 궤변이 어디있습니까?” (김남국 의원)
“들으세요.”
“수사권이 없다는 그런 이야기 하지 마시고…” (김남국 의원)
“민주당이 만든 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법 때문에…할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김어준씨나 황운하 의원 같은 직업적 음모론자들이 이 국민적 비극을 이용해 정치 장사를 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 생각합니다.“ (국민의 힘 조수진 의원에 대해)
과거 장관이 국회에 출석해 이런 식으로 답변했다면 야당이 가만 놔두지 않았을 것이다. 여당 의원들마저 장관에게 자중하라고 경고했을 만하다. 대통령이 여의도 정치를 무겁게 보지 않는다는 분석이 있는데 그런 인식이 한 장관에게도 전이된 것 아닌가 의심이 들기도 한다.
그 의심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민주당은 책임을 피하기 어렵다. 불과 반 년 만에 민주당 의원들은 한 장관이 아무리 거칠고 냉소적으로 답변을 해도 꼼짝 못하는 수준이 돼 버렸다. 공방에서 번번이 밀리자 한 때는 장관을 앉혀 놓고 아무 질의도 안 하는 패싱 현상이 벌어지기도 했다. 미스샷과 뜬금없는 호통이 낳은 업보다.
고장난 기관총은 버려라
군사독재 시절 김영삼 신민당 원내총무나 김대중 대선후보가 정부 여당에게 호통을 칠 때 그들은 목숨을 걸었다. 초산 테러를 당하고 현해탄에서 물고기 밥이 될 위기를 넘기면서 친 호통이었다. 그렇기에 국민은 호통에 근거가 좀 부족해도 믿음을 줬고, 독재정권은 야당을 만만하게 보지 못했다.
특히 김대중 전 대통령은 ‘야당은 근거없이 소리만 지른다’는 인식을 깨기 위해 스스로 공부에 몰두했을 뿐 아니라 기업인, 법조인, 언론인, 군 장성들을 영입해 실력을 갖춘 야당을 만들려고 노력했다. 정권을 잡고 나서 부총리를 비롯한 경제각료 자리를 보수 중 보수인 자민련에 통째로 넘겨준 것도 단지 공동 정부 약속 때문만은 아니었다.
이런 노력의 결과로 민주당이 나름 지역색을 극복하고 중도 성향 고학력 중산층의 지지를 흡수할 수 있었다. 오늘날의 민주당이 절대 다수 의석까지 차지하게 된 역사의 뿌리이다. 그런데 지금의 민주당은 실력은 없이 신념이라고 포장된 백일몽에 빠진 웰빙 정당 같다. 국민은 과거처럼 ‘야당은 좀 그래도 괜찮아 ’라며 양해해 줄 뜻이 없는데.
미국 의회 청문회는 보좌관과 전문 인력이 증인 신문에 직접 참여하게 돼 있다. 전문 지식이나 고도의 신문 기법이 필요할 경우 의원들 대신 이들이 질의응답을 진행한다. 당장 이런 제도를 도입하기 어려우면 의원들 스스로가 준비해야 한다. 확보한 자료조차 제대로 읽지 않고 질의에 나서거나, 제보자에 대한 검증도 없이 면책특권의 뒤에 숨어 폭로하는 건 곤란하다.
야당은 역할을 못하고, 여당은 관망자에 머물고, 정부는 국회 무서운 줄 모르면 국정은 산으로 갈 가능성이 높다. 지금이라도 각자가 제 역할을 해야 한다. 특히 저격수들은 고장난 기관총을 버리고 정교한 저격용 라이플을 들어야 한다.

앞서 언급한 고 노회찬 전 의원은 실력과 논리에 유머까지 갖춘 야당 정치인이었다. 그의 발언 하나하나에 지지자들은 속이 시원했고, 반대 편도 고개를 끄덕였고, 정부는 경청했다. 발언은 때로는 소란하고 때로는 웃음을 불렀지만 언제나 정조준 돼 있었다. 그런 저격수가 그리워서 노 전 의원 어록으로 글을 마무리 한다.
“모기들이 반대한다고 에프킬라 안 삽니까?” (공수처법안에 반대하는 자유한국당을 향해)
“복지국가를 만들라고 했더니 복지원 국가를 만들었습니다.“ (이명박 정부 복지정책을 비판하며)
“대한민국에서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한 게 아니라 만 명만 평등한 것 아닙니까? (불법 대선자금 사건 판결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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