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백지시위’ 주시해야 하는 9가지 관점

[정대성의 중국 정치번역기] “독재 반대”를 잘못 읽으면 안되는 이유 광주 태극기 들었듯, 중국도 ‘국제가’ 불러 중앙정부, 통제보다는 시위 상습화 막으려

중국 베이징에서 고강도 코로나19 정책에 반대하는 시위대가 거리를 따라 행진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중국 베이징에서 고강도 코로나19 정책에 반대하는 시위대가 거리를 따라 행진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최근 중국의 ‘백지 시위’ 사태가 심상찮다. 중국 16개 주요 도시와 50여 개 대학가로 번진 시위는 “시진핑 물러가라” 등 과격한 구호까지 등장했고, 중국 당국은 시위 가담자에 대한 강경 진압에 나섰다. 앞으로 시위는 외신들의 전망대로 시진핑 체제의 전례 없는 도전으로, 또 1989년 천안문 사태 이후 가장 큰 위기로 전개될까. 중국 북경대 대학원에서 비교정치학을 전공하고 있는 정대성 칼럼니스트가 현재 중국 상황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전한다.

(1) 통제 주체

12월 2일 전후로 중국 정부는 일사불란하게 봉쇄조치 완화와 강경조치를 동시에 시행하기 시작했다. 이 모든 조치를 결정한 것은 모두 중앙정부였지만, 조치를 실행하는 대부분의 주체는 “중앙정부”가 아니라 “지방정부”였다.

현재 미국과 유럽을 포함한 서방 언론 및 국내 언론은 중국내 국지적으로 시행되는 창의적인 조치들을 “전국적” 조치로 보도하고 있는 경우가 많으며, 이러한 잘못된 보도들은 일종의 “중국혐오”나 “중국에 대한 공포”를 키우기 마련이다.

일반적인 인식과 다르게 중국의 치안업무, 인터넷 검열 시행과 네티즌 동원의 많은 부분은 중앙정부보다는 지방정부의 다양한 조직으로부터 이루어진다. 사진출처= Central State vs. Local Levels of overnment: Understanding News Media Censorship in China (Xianwen Kuang)
일반적인 인식과 다르게 중국의 치안업무, 인터넷 검열 시행과 네티즌 동원의 많은 부분은 중앙정부보다는 지방정부의 다양한 조직으로부터 이루어진다. 사진출처= Central State vs. Local Levels of overnment: Understanding News Media Censorship in China (Xianwen Kuang)

(2) 지방정부의 대응: 지방정부는 초기에 왜 과격한 행동을 보였을까?

10월 말~11월 24일까지 중국의 남부도시들에서 시위가 격화되고 특히 11월 말까지 이 시위들에 대한 강력한 대응이 수반된 것은, 초기 시위가 국지적이었기 때문이다. 만약 소요사태가 남부의 몇몇 지방에서만 일어나는 것이라고 한다면, 그 지방정부 입장에서는 목숨을 걸고 어떠한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그들을 달래거나 진압해야 한다. 안 그러면 지방정부는 소요사태가 일어난 것 자체로도 각종 중앙정부로의 진출 실패, 승진 탈락, 예산 삭감등의 불이익 등 큰 책임을 져야 했을 것이다.

(3) 국면의 변화: 중앙정부의 책임으로 전이된 배경

그러나 이 시위가 신장 우루무치에서 일어난 참사가 불러온 사회적 공분과 함께 지난달 24~ 25일 전후로 전국적으로 번져나가기 시작하자, 지방정부들은 26일경 방역이나 진압행위에서 발을 빼고 최소한의 일을 하며, 지역의 질서를 유지하는 식의 수비적인 대응으로 전환하기 시작했다. 지방정부들의 절박함이 비교적 여유로움으로 바뀌는 시점이었다.

한 지역에서 시위가 일어났다는 것 자체는 지방정부의 관리 문제로 책임을 져야했지만, 결국 중국 대부분의 지역에서 시위가 발발했으니, 책임의 소지가 지방정부들이 아닌 중앙정부가 된 것이었다. 시위가 전국적으로 퍼져 가며, 책임 소재가 지방정부가 아닌 중앙정부임을 시민들이 의식하기 시작한 듯, 11월 27일에는 “시진핑 물러가라”라는 구호가 등장했다. 중앙정부의 수장인 시진핑에 대한 규탄이 일부 지역에서 시작된 것이었다.

(4) 시위대를 향한 중앙정부의 대처

중앙정부는 시위대의 타겟이 자신들을 향한다고 판단했을 때, 시위대를 자극하지 않는 방식 이외에는 뾰족한 해결책이 없었다. 무력을 사용하는 유혈진압은 시위가 전국화된 시점에서 불가능했다. 중앙정부는 전국에서 발생하는 시위를 모두 관리할 만큼의 규모나 행정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방역 통제가 심하게 진행되었던 남부에는, 중국정부의 수비적 태세에도 불구하고 현장에서는 시위대와 진압인력의 충돌이 지속되고 있었으며, 일부 지역에서는 “공산당 물러가라” 등의 문구가 나오는등 과격화가 진행되었다. 이런 국면에서 중앙정부는 지방정부가 시위대를 불필요하게 자극하여 중앙정부에게 더 강하게 저항하게 만드는 것을 원치 않았다.

28일에서야 중앙정부 소속 국가위생건강위원회와 질병통제예방센터는 코로나 방역 상황을 감독하기 위해 각 지방 정부에 실무단을 부랴부랴 파견했으며, 추가적으로 28일 인민일보 사설에서 지방정부를 질책했다.

정부지침이 담긴 인민일보 사설이 발표된 것은, 중국의 중앙정부가 지방정부 관리에 어려움을 겪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보여준 것이기도 했다. 중앙정부의 훈령과 질책이 시위대와 머리를 맞대고 있던 지방정부의 기층조직까지 닿지 않았고, 정작 현장에서는 시위가 격화되었기 때문이다. 인민일보 사설이 발표된 이후에서야 각 지방 당국은 시위대와의 대립 수위를 스스로 낮추기 시작했다.

(5) 중국 정부의 사후 대응 방향: 강력한 진압과 반정부 시위의 관습화 방지

향후 중국 중앙정부는 내부적으로 방역완화를 확정지음으로서 바톤을 다시 지방정부로 넘겼다. 지방정부는 중앙정부의 지침을 가지고 강력한 방역정책의 빗장을 푸는 것과 동시에 시위대를 향한 강력 진압에 들어갔다.

중국 정부는 반정부 시위가 정례화되거나, 관습화되는 것을 경계하는 듯하다. 아마 중국 정부의 요구 수용이 결정된 지금, 중국 정부는 그럼에도 시위를 지속하는 세력에게 무언가 “본보기”를 보여야만 한다. 중국 관영언론에서 “서방” 운운하는 것은 시민의 행위 자체에 대한 비난이라기보다는, 일종의 “강력한 본보기를 위한 사전 작업” 및 “관습화 방지” 차원에서 행해지는 여론전에 가까운 느낌이다.

쉽게 말하자면 “이번 한 번일 뿐”이라는 시위대의 도덕성을 비난하고 공격하며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 때마다 상습적으로 “중앙정부를 향해 들고 일어나는 것”을 차단하려는 느낌이 강하다.

(6) 국내 언론의 분석: 중앙정부의 행위들은 꼬리자르기?

몇몇 보수 언론들이 중국 중앙정부의 행동을 “꼬리자르기”로 호도하였다. 그러나 사실 중국 중앙정부는 현장에서 실행되는 과격한 방역정책이 사람들의 불만을 사고 있는 상황을 무시하지는 않았다. 예를 들어, 중국 중앙정부는 지난 7월경부터 지방정부의 월권행위를 신고하는 온라인 플랫폼을 운영하며 지방정부가 성과를 만들기 위해서 과격하게 행동하는 것을 경계하고 있었으며, 중국 국가위생건강위원회에 의하면 접수된 1만3862건의 월권행위 신고 중 83.7%인 1만1609개의 신고가 처리되어 시정조치를 받았다 한다.

즉 민심이 심상치 않다는 점은 중국의 중앙정부도 의식하고 있었고, 이러한 민심을 관리하려 노력했으나 시위대도, 정부도 우루무치에서 일어난 일이 이렇게까지 사태를 키우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7) 국내 언론의 오해: “시진핑 하야”와 “시진핑 독재 반대”의 의미 차이

필자는 “시진핑 내려와라(下臺)”와 “시진핑 독재 반대” 구호의 구분이 필요하다고 본다. “시진핑 내려오라”는 문구는 시위가 격화될 때 자신의 항의 대상이 중앙정부임을 강조하며 쓰였던 문구에 가까웠으며, “시진핑 독재 반대”, “독재 반대”등 정부의 독단적 행위를 반대하기 위한 “독재”라는 단어는 굳이 이번 사태가 아니더라도 중국사회에서 정부나 현 집권 세력을 상대로 암암리에 쓰이는 단어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자신의 자녀들이 마오쩌둥 주석 기념관을 참관하는 것을 거부한 학부모는 “내 자식을 그 독재자의 집에 들이고 싶지 않다” 라고 이야기했다고 한다.

5.18 광주민주화 운동의 시위대는 국가로서의 대한민국과 의회민주주의 체제를 부정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자유민주주의의 회복을 요구하며 태극기와 애국가를 불렀다. 마치 이번 중국 시위대가 국제공산당가인 “인터네셔널가”와 “중국 국가”를 부르듯 말이다.
5.18 광주민주화 운동의 시위대는 국가로서의 대한민국과 의회민주주의 체제를 부정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자유민주주의의 회복을 요구하며 태극기와 애국가를 불렀다. 마치 이번 중국 시위대가 국제공산당가인 “인터네셔널가”와 “중국 국가”를 부르듯 말이다.

(8) “독재”를 둘러싼 한국어와 중국어의 의미 차이

7번 논점에서 보듯, “시진핑 독재 물러가라”, “시진핑은 독재자다”, “독재 반대” 등을 한국식으로 해석하면 절대 답을 얻을 수 없다. 한국사회에서 독재란 영어 ‘dictatorship’의 번역어로서, “독재 반대”란 문구는 유신과 5공화국의 권위주의 체제에 대한 전면 부정의 용도로서 쓰였다.

그러나 프롤레타리아 “독재”, 인민민주”독재”라는 용어를 쓰는 한국어와 다르게, 견제를 받지 않는 권력이나 집단에 의해 다스려지는 제도로서의 “독재”는 중국어에서 “독재”가 아닌 “전정(專政)”으로 표기된다. 인민민주전정 식으로 말이다. 많은 연구자나 언론들이 이것을 전제정치(專制政治)의 준말로 오해하지만, 중국어에서는 전정(專政)과 전제(專制) 그리고 독재(獨載)가 모두 구분되는 단어이다.

1915년부터 발행을 시작한 중국의 표준어대사전인 사해(辭海)에 의하면, 중국어에서의 독재(獨載)는 정치제도가 아닌 통치행위의 일종을 설명하는 단어이다. 예를들어, 민주정도 합의에 의한 의사결정이 아닌, “혼자서 재단하는” 독재정치를 할 수 있는 것이고, 전제정도 민의에 기반하여 만들어질 수 있고, 합의정치를 실행할 수 있다는 것. 비슷한 케이스로 중국본토에는 장제스의 일당독재(一黨獨載) 행위를 비판하며, 중국의 다당합작(多黨合作)제도를 선전한다.

한국어의 “독재”와 중국어의 “독재”의 의미상 차이를 알지 못하면 왜 칭화대 학생들이 시위 현장에서 중국 국기를 흔들며 공산당가인 <국제가>를 부르는지, 대자보들이나 문구들이 정중한 어투로 작성되었는지, 극히 일부 케이스를 제외한 부분에서 정권에 대한 비난이 없는지 이해할 수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중국 정부가 자신들의 의견과 견해를 무시하고 독단적인 권력을 행사하는 “독재 행위”에 반대하는 것이지, 공산당을 중심으로 한 현재의 정치체제와 국가제도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었다. 만약 정치체제에 대한 반대였다면 “독재 반대” 가 아닌 “전제 반대” 또는 “전정 반대”가 나왔어야 했다. 실제로 RFA와 같은 방송들의 논설 위원들은 중국의 체제를 비판할 때 일관적으로 “전제국가”라는 한자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9) 이 사태의 의의 : 동상이몽과 중국의 ‘시민사회’

이 사태에서 보아야 하는 것은 중국의 시민사회를 누구보다 앞장서 “죽은 사회”로 매도하던 사람들이, 중국 현지 시위대와 동상이몽을 한다는 점이다. 해외에 있던 중국 대사관 앞에서 벌어졌던 시위와 본토의 시위대사이의 정서는 매우 다른 것이었다. 서구 시민사회의 동상이몽과는 역설적으로, 이번 사태는 중국 체제가 탑다운 통제기제만으로 돌아가는 나라가 아니라 매우 역동적인 시민사회의 합의에 기반한 민주적 거버넌스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고 본다.

북경대에서 필자를 가르친 한 중국교수는 학기초에 “권력이 집중된 사회주의 체제에 사는 사람들은 자유주의 체제에 사는 사람들보다 더 날카롭고 비판적이며, 그래야만 한다”라고 패기있게 이야기하곤 했다. 그와 같이 이 “권위주의 정권”이 뿌리를 두는 시민사회는 그들이 묘사했던 대로 ‘온실에서 사료 받아먹는 가축’이나 ‘죽은 사회’가 아니라는 점을 염두할 필요가 있다.

전통적으로 국가권력을 감시·견제하는 것을 시민사회의 주요 기능으로 생각하는 자유주의적 관념과 차이는 있지만, 견제없는 권력의 위험성을 인식하고 인민민주전정(專政)의 자정작용을 추동하는 비판적인 시민의 힘을 믿으며, 불합리한 지침에 대한 저항에 따르는 불이익에도 불구하고 자기 목소리를 굽히지 않는 사람들이 모인 시민사회에 의해 중국은 운영되고 있었던 것이었다.

글쓴이

정대성 중국 북경대 대학원 석사과정

정대성 중국 북경대 대학원 석사과정생은 미국 고등학교 진학후 UC버클리를 졸업했고, 북경대학 사회과학학부 국제관계학원 석사과정에 수석입학해 현재 중국국가장학생으로 공부중이다. 현재는 비교정치(중국정치)와 국가행동(State behavior)를 전공하고 있으며 이외에도 정치철학(세속주권론)에 대해서도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추후 연구를 위해 공부하고 있다. 취미는 서도랑 차도(茶道), 유교경전 성독(聲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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