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교육 어떻게 시켜야 할까
[미국 교민이 본 미국과 한국 정치교육 차이] 미국은 중고교학생 정치교육 엄청 시켜 미국 교사들, 정치편향 비난 두려움 없어 한국은 편향성 두려워 정치중립성만 강조 차이는 ‘정치와 건국의 기본 프레임’ 유무
워싱턴의 토착왜구와 베이징의 종북좌파
필자는 유학생이 아닌 미국 주민의 신분으로, 미국의 공교육을 받으며 컸다. 대학은 미국에서 비교정치학을 공부했고, 지금 중국 북경대에서 정치학 석사과정을 밟고 있다. 한국인으로 태어나서 미국에서 정치학을 공부하고 이어 중국으로 건너가 정치학 대학원을 다니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자주 이들 세 나라의 정치를 비교해보게 된다.
필자는 중국과 미국에서 공부하는 동안 종종 한국에서 파견 나오는 분들을 수행하거나 비슷한 또래의 한국인 정치학도와 어울리기도 했다. 자연스레 정치에 대한 견해를 나누었고 대체로 좋은 인상으로 남았다.
한국은 4월 10일 국회의원 선거를 치른다. ‘종북좌파’와 ‘토착왜구’라는 단어가 오늘날 한국정치 평론가들, 그리고 심지어 정치인 사이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단어가 됐다는 사실은 놀랍다. 중국에서 만나는 한국 정치인들중에 종종 과한 민족주의적 입장을 견지하는 이들을 쉽게 접할 수 있었고, 반면 미국에서 있을 때는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위협하는 ‘좌파 세력들이 나라를 잘못 이끈다’고 말하는 보수적인 성향의 정치학도들을 정말 많이 봤다. 이렇게 한국 정치인, 한국 정치학도들이 서로의 정파를 아예 인정조차 하지 않는 태도가 어디에서 연유한 것인지 궁금했다. 미국에서는 트럼프를 지지하는 사람 빼고는 그러한 극단적인 혐오를 드러내는 정치학도를 찾아볼 수 없는데 말이다.
필자는 이렇게 극단적으로 보이는 한국인들에게서 한가지 공통점을 느끼기도 했다. 무엇보다 한국인 정치학도들은 삼권 분립, 의회 및 선거제도 등 ‘하드웨어’에 대해서는 전문가에 가까운 완벽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으나, 자유민주주의라는 ‘가치’에 대해 공감대가 크지 않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이다. 예를 들어, 한쪽은 자유민주주의를 그저 한국 내부의 권력 투쟁 구호로 인식하며 그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또 다른 한쪽은 자유민주주의라는 가치를 너무나 당연시해서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어떻게 설계되었으며, 어떠한 방향으로 발전시켜야 하는지에 대한 관심이 없었다. 이들은 그저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맹목적으로 지켜야 하는 가치로 생각한다는 인상을 주었다.
이런 한국인들의 극단적인 견해 차이와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몰이해는 어디서 생긴 것일까. 필자는 혹시 중고등학교에서 한국이 정치를 교육하는 방식에서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문을 품게 됐다. 나아가 무엇이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미국인과 한국인의 인식 차이를 만드는지도 생각했다. 그래서 미국의 정치교육을 설명해보고 싶어졌다.
미국의 고교는 정치교육을 어떻게 시킬까
미국에서 K-12(일반교육과정: K-12는 유치원에서부터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의 교육기간을 말한다)를 공부한 사람들, 즉 고교를 졸업한 이들에게 미국과 한국의 정치 교육은 어떻게 다른지를 물어본다면 주로 아래와 같은 콘콘텐츠적 부분을 지적할 것이다.
첫째, 미국은 세계 역사에서 미국의 의미를 가르친다. 한국과 달리 미국의 중고등학교에서 선생님들은 세계사를 가르치더라도 상고사에 집중하기보다는 주로 유럽의 계몽사상가부터 미국 혁명, 그리고 미국 건국 이후의 제국주의 시대와 그에 맞선 미국의 자유주의, 그리고 냉전시대에서 공산주의와 맞섰던 미국의 자유주의에 초점을 맞추는 경우가 많다.
둘째, 미국의 정치교육은 자유민주주의의 형성사를 가르친다. 정치학 전담 교사는 기초로서 미국사, 미국정치 뿐만 아니라 세계사와 유럽정치 등을 가르치며, 유럽의 사상가들이 미국의 사상에 어떠한 영향을 주었는지 등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기원을 중점적으로 가르친다.
셋째, 미국의 정치교육은 세분화되어 있다. 정치학 전담 교사들은 역사 시간에 미국 정치에 더 비중을 두어 자세하게 가르치는데, 고등학교 때는 Civics(시민교육) /Government(정치학) /U.S History(미국사) 등으로 나누어 더 세세히 가르친다. 더욱 더 정치학 부분에서는 특히 지방정치, 필자의 경우 캘리포니아 주(州) 정치에 대해 심도있는 교육을 받았다. 필자는 캘리포니아주 사우스 파사데나 고등학교 재학 당시 AP정부정치 과정에서 캘리포니아 주정치를 세세하게 공부했었다.
넷째, 고등학교에서 이뤄지는 미국 정치교육의 양이 많다. 우등생들은 AP(Advanced placement: 심화수업) 과정반을 통해 미리 대학교육을 받을 수 있는데, 그 과정에서 서양 고전을 직접 접하고 읽을 수 있다. 한 학기에 들을 수 있는 과목은 4~7개인데, 이론상으로 수업시간으로만 일주일에 최대 12~15시간을 대학교육을 미리 받을 수 있다. 그중에 2~3개를 역사와 정치 과목으로 하면 12시간 이상 공부할 수 있다. 그렇다보니 대학 학부 과정에 있는 한국 출신 유학생보다 미국정치에 대한 배경 지식이 풍부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콘텐츠상의 차이는 자유민주주의의 자세한 동학(動學, 움직이는 힘)을 가르친다는 점에서 유의미하고 한국도 참조할 만하겠지만, 결정적이지는 않다고 본다. 유학생이 아닌, 미국의 공교육을 받으며 미국 주민으로 살아온 필자의 입장에서 볼 때 미국의 정치교육이 정치학자 양성과 시민사회를 주도할 인재를 만드는 데에는 유익하긴 하다. 그러나 그 자체로는 특별하진 않다. 미국의 커리큘럼이 아무리 좋아도 미국 공립교육의 환경이 한국과 비교해 특별히 좋은 것도 아니고, 미국의 정치 커리큘럼을 끝까지 전문적으로 소화할 수 있는 인재도 한줌에 불과한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한국 정치교육의 특징 ‘편향성에 대한 두려움’
그러나 두 나라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그 차이는 무엇일까. 필자는 이는 정치과목 커리큘럼의 문제가 아니라 “편향을 두려워 하지 않는 태도”에 있다고 생각한다. 교사들도 그렇고 학교도 그렇다. 미국인들이 정치교육에 있어 편향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미국인들이 특별히 자비로워서가 아니라 한국과 미국의 정치양상이 달라서가 아닐까 싶다.
한국에서 교사의 정치적 편향성은 두려움의 대상이지 않은가? 한국에서 정치란 곧잘 국체를 논쟁하는 일이 된다. 국체를 두고 논쟁하는 것은,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두고 논쟁하는 것과 같은 말이다.
예를 들어 “대한민국은 서방 국가인가? 아니면 대안적 아시아적 가치를 가진 국가인가?”, 혹은 “대한민국은 단일민족 국가인가? 다민족 국가인가?”, 혹은 “대한민국은 복지국가인가? 자유시장경제국가인가?”와 같은 단순한 질문들로도 사람들의 생각은 갈라질 것이다. 또 상대 진영 지지자는 나와 생각이 다르다는 것을 넘어, 그냥 존재 자체가 싫은 사람이 된다. 이렇다 보니 더불어민주당 지지자를 “종북주의자”, 보수세력의 국민의힘 지지자를 “친일 사대주의자” 등으로 매도하며 서로를 대한민국 또는 민족의 존립에 위협이 되는 세력으로 인식하는 게 아닐까. 한국 정치는 이처럼 진영 정치를 넘어 혐오 정치로 악화되었다.
이러다보니 ‘방어기제’가 강력하게 작동한다. 대중들에게 편향성보다는 기계적 중립, 회색 중립을 당연히 요구한다. 특히 공무원과 교육자 같은 공적 영역에 있어서 특정 정당을 지지한다는 것은 자신들이 헌신해야 하는 주체, 즉 국민 혹은 학생들에 대한 배신 등으로 여겨지는 경향이 있다. 전교조와 같은 진보 교사들이 아이들에게 정치적 성향을 가르치는 것을 부정적으로 보는 것을 보면, 이러한 “정치적 중립성”이라는 가치가 한국 사람들에게 있어서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나아가 중립성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사회의 고정 관념과 분위기는 교사에게 중립성을 강요하면서 대한민국의 정치 교육에 심각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본다.
반면, 미국에서의 정치교육은 편향성의 문제가 거의 없다. 미국에서 정치는 종교와 다르게 철저하게 과학적 기반으로 토론을 하는 것으로 인식된다. 또 ‘건국자들의 틀’(Frame)안에서 다름은 당연시된다. 미국 민주당은 연방정부를 강조하고, 공화당은 개인의 권리와 주(州)의 권리를 강조한다. 양당은 연방에 반대하고 주와 개인의 자유를 더욱 중시했던 건국의 아버지와 개인의 자유보다는 단합된 연방 혹은 중앙정부를 원했던 건국의 아버지들로부터 시작했다. 2백년의 역사를 거치며 노예 해방 운동, 노동 운동, 흑인 운동과 여성 운동가들이 양당에서 활동하며 미국을 만들어냈다. 양당이 미국이라는 틀 안에서 미국을 이루었다는 인식 아래, 정치교육을 하는 선생님들은 자신의 신념에 따라 자신이 지지하는 건국자들을 계승하며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다.
더 나은 정치교육을 위해
필자의 생각에는 한국 정치 교육의 콘텐츠와 교육방식을 논하기 전에, 한국은 정치의 “프레임”을 먼저 짜야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정치교육이 바로서기 위해서는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는 누구에 의해 세워진 나라이며, 대한민국이 따르는 가치는 무엇인가에 대한 답변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본다. 한국 사회는 이 프레임의 부재를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이며, 이 프레임의 부재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모른 채 당연히 있어야 할 경쟁과 견제로 치환하는 느낌이다.
정치 교육은 단순히 정치학을 교육하는 것과 다르며, 오늘날의 한국 교육처럼 단순히 회색 지대에서 기계적 중립을 유지하며 정부의 수사나 구조 등의 ‘콘텐츠’만을 읊는 것이 아니어야만 한다. 오히려 학생들로 하여금 대한민국의 건국 이념과 우리나라의 정치동학을 이해하고 그 속에서 정치학의 원리를 스스로 깨우치게 하는 것이 되어야만 한다. 모두의 다양성과 가치를 포괄할 수 있는 넓은 국가의 틀을 고안하고, 그 틀 안에서 편향성에 대해 관대할 수 있도록 사회를 설득하여야 할 필요도 공감해야 한다. 그럴 때 한국 학교에서의 정치교육은 자유로와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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