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나의 중년 해방일지
[송광용의 밤마다 카페테라스] 중년, 탈모 걱정하다 부작용에 화들짝 새해 무엇을 잃고, 무엇을 지킬 수 있을까 “노화에 가까워지기 보다 성숙에 다가가길”
탈모약과 중년
탈모약을 복용하면서, 내 몸이 비로소 중년의 시기로 접어들었음을 받아들였다. 탈모약이 준 또 하나의 교훈은, 중년의 시기에는 새로운 걸 획득하는 것보다 원래 가진 것을 지키는데 고군분투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쉽게 말해서 몸은 어느 시기부터 밑 빠진 독이 된다. 나라는 장독은 계속 물을 머금어야 살아갈 수 있는데, 바가지로 새로운 물을 퍼 넣는 일만큼이나 아래쪽에 생긴 구멍을 메우는 일도 중요해진다. 구멍 하나를 메우면 새로운 구멍이 생겨난다. 나이가 들수록 구멍이 많아지고, 퍼 담는 물의 양에 비해 물을 머금는 효율은 떨어진다. 지금 할 일은 구멍이 하나라도 덜 생기도록, 천천히 생기도록 관리하는 일이다.
몇 달 복용했던 탈모약을 올해 끊었다. 이유를 설명하자면, T.M.I.같은 일들을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 남모를 고민에 빠진 누군가는 내 이야기에서 도움을 얻을 수도 있으리라 생각하고 이야기를 풀어본다. 정확히 언제인지 모르겠지만 한쪽 가슴에 멍울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러다 말겠지 했는데 멍울은 조금씩 커지고 통증도 느껴졌다. 난 덜컥 겁을 먹었다. 언젠가 본 유명한 드라마에서 남성 유방암에 걸린 주인공의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이젠 병원에 가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유방 및 갑상선 전문 병원을 운영하는 친구에게, 상황이 이러한데 검사 받아야 하는 거냐고 문자를 보냈다. 친구는 혹시 최근에 약을 먹는 게 있냐고 물었다. 탈모약을 먹고 있다고 했더니, 그런 증상으로 오는 사람은 대부분 여유증(여성형유방증)이라고 했다. 탈모약이 호르몬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그런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고, 탈모약을 끊으면 진행이 멈출 거라고 걱정 말라고 했다. 아, 내 가슴이… 어떻게 된다고? 난 그날부터 탈모약을 끊기로 했다.

이건 일종의 밸런스 게임이었다. 머리카락을 지킬 것이냐, 내 원래 가슴을 지킬 것이냐, 하는. 전자는 약을 먹어야 지킬 수 있지만, 후자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아야 지킬 수 있다. 구멍을 메우려고 다른 구멍이 생기게 둘 순 없는 일이다. 그래도 40대만 어떻게 버텨보자는 심정으로, 탈모약 대신 모발 영양제를 먹기로 했다.
난 30대에 벌써 탈모 증세를 보이기 시작했던 몇몇 친구들을 떠올리며, 그나마 지금 빠지기 시작한 건 감사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 친구들은 그때 얼마나 큰 고뇌에 빠졌을까, 하고 친구들의 심정을 돌아보는 기회도 됐다. 내가 아파봐야 아픈 이들의 처지를 돌아보고 이해할 수 있다. 그런 걸 생각하면, 아픈 데가 많아지고 하나 둘 잃는 게 많아지는 중년 시절에 확실히 포용의 범위가 넓어질 수 있다.(이론상으론!) 젊은 시절부터 다른 이들을 품을 수 있는 좀 더 넓은 품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가졌는데, 이게 이런 식으로 구현되기 시작할 거라는 생각은 미처 못 했다. 너른 품은, 포용력은, 상실과 고통의 산물이었다.
중년의 새해 다짐
새해엔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고, 새로운 뭔가를 하겠다는 다짐을 하곤 한다. 중년이 됐음을 완전히 받아들인 나의 새해 다짐은, 내게서 휘발될지도 모르는 것들을 지키겠다는 게 다다. (머리카락을 지키는 데는 결국 실패하겠지만.) 지켜야 할 것은 내 신체의 건강, 마음과 생각, 평온 같은 것들이다.
2022년도의 마지막 날 오후에, 난 최근에 리모델링한 한 도서관에 앉아있었다. 아내와 아이들이 아내의 친구 집에 가서 놀기로 해서 태워주고, 집에 갈 때까지 난 그 동네 도서관에서 책을 읽으며 기다리기로 한 것이다. 서가를 둘러보다가 책 한 권이 눈에 띄어 뽑아 읽기 시작했다. 노화와 관련된 연구를 하는 뇌과학자이자 노화생리학 전문가 제임스굿원이 쓴 <건강한 뇌과학>이라는 책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두뇌 건강을 위해 염증수치를 낮게 유지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한다. 염증 수치를 낮추면 우리는 노화 속도를 늦추면서 만성질환의 위험성도 동시에 낮출 수 있다고 한다. 그러면 염증 수치는 어떨 때 올라가느냐? 염증 수치는 음식을 먹을 때마다 올라간다. 스트레스 받을 때도 올라가고, 수면이 부족해도 올라간단다. 결국, 결론은 여느 건강서적과 비슷하게 흘러간다. 소식(小食)하고, 스트레스를 관리하고, 충분한 수면을 취하고, 무엇보다 달리거나 걷는 신체 활동이 중요하단다.

그런데 한 가지, 다른 책에서 보지 못한 내용을 발견했다.
“2005년 미네소타 메이요 클리닉의 제임스 레빈 박사는 운동의 효과와 관련하여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에 통찰을 더하는 혁신적인 논문을 발표했다. 단지 활동을 늘리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주장이었다. 레빈은 진정한 살인자는 ‘신체 활동의 수준과 상관없이’ 오랫동안 앉아있는 습관이라고 지적했다.”-제임스굿윈, <건강한 뇌과학>
이게 새로 발견한 내용이었다. 리모델링된 도서관의 깔끔한 좌석에 앉아서, 이런 자리라면 몇 시간이고 앉아서 쓰고 읽을 수 있겠다고 감탄한지 불과 1시간 뒤에 말이다. 그동안 난 앉아서 뭔가를 하는 것에 큰 가치를 부여해왔다. 근데 레빈 박사의 연구결과에 따르자면, 인간은 앉기보다, 서서 움직이며 활동하는데 최적화된 존재다. 난 새해를 하루 남겨놓고 새해 계획 하나를 추가했다. 어떻게든 일어설 핑계와 기회를 만들자고. 오래 앉아 내 몸을 망치지 말자고 말이다. 책에선 앉아 있는 시간을 1시간을 넘기지 말라고 조언한다. 1시간 앉았으면 10분은 서서 움직이라고.
새해에 건강과 더불어 또 지키고 싶은 건, ‘평온한 일상’이다. 평온한 일상을 지키기란 원래 쉽지 않다. 고전의 글귀들이 증언한다.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그리스인 조르바>에서, “산다는 게 다 말썽인거요. 죽어야 말썽이 사라지지.” 라고 했고, 괴테는 <파우스트>에서,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한다.”고 했다. 살아서 뭔가를 하는 한 말썽은 생기고, 방황하게 되고, 그리고 평온은 깨지게 마련이다.
바깥에 거세게 부는 바람은 내가 통제할 수 없다. 내가 일하면서 만나는 사람들도 내 통제권 밖이다. 그런 외부의 상황에 좌지우지 된다면, 난 일상의 평온을 지킬 수 없다. 평온을 지킨다는 말은, 결국 나를 지킨다는 뜻일 거다. 내가 바라는 내 모습을 유지할 수 없고, 또 내가 나다울 수 없을 때, ‘나’는 깨진다. 나를 지키는 최소한의 조건은, 내가 가치 있다고 여기는 시간을 보내는 것이라 생각한다. 내겐, 몸 컨디션이 허락하는 날 밤에 가는 스터디카페에서 보내는 시간이 그런 시간이다. 쓰고 읽으면서 훼손된 나를 회복할 시간을 갖는다. 누구나가 그런 시간과 장소가 있을 거라 생각한다.
‘건강한 성숙’을 위해
최근에 밤마다 가슴을 부여잡고 봤던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엔 이런 대사가 나온다.
“끼리끼리는 과학이니까. 쓰리지만 내 수준이 여기라는 거. 그래서 늘 ‘양반 되자’, ‘저 인간이 양반되길 바라지 말고 내가 양반 되자.’ 득도한다 내가.”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 중에서.
이 말을 하는 젊은 남자 염창희는 직장에서 옆자리에 앉는 선배 때문에 늘 괴롭다. 선배가 쏟아내는 말 때문에 상처 받기도 하고, 평온이 깨지기도 한다. 그 선배는 피하고 싶고, 상종하고 싶지 않은 인간이다. 그런 상황에서 그는 자조적으로 이런 말을 내뱉는 것이다. 자신이 양반되자고.
살아가면서 다른 사람과 부딪히고, 갈등하고, 상처를 주고받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내 경험에 따르면 어딜 가도 그런 인간들을 만나게 된다. 그거야말로 과학이다. 근데 이런 일에 정답이 있을까. 만나게 되는 사람들의 유형도 다 다르고, 상황도 다 다른데. 내가 염창희가 내뱉는 대사를 보면서 주목한 건, 양반이 되자는 그의 ‘결론’이 아니라 그의 ‘방식’이다. 그는 갈등하고 상처받는 상황을 자신의 방식으로 말한다. 저 대사는 자기 성찰의 산물이다. 침묵함으로써 그 상황을, 자신을 방치한 채 내버려두지 않는다. 말하고 표현하고 객관화하려고 애쓴다. 결론이 나지 않더라도 이런 과정이 필요하다. 난 새해 계획 목록에, 염창희처럼 끊임없이 나와 주변을 말하고, 들여다보자는 내용을 추가했다.
2023년 새해, 내가 지키고 싶은 것들을 지킬 수 있을까. 난 방금 새해 계획 세 가지를 실천했다. 지금 스터디카페에서 시간을 보내며 나를 지키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고, 나를 들여다보며 이 글에 내 목소리를 담아내려고 했으며, 방금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움직이고 왔다. 하나씩 실천하다보면 새해엔 노화에 가까워지는 게 아니라, ‘건강한 성숙’에 다가갈 수 있겠지. 그럴 수 있길 바란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