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 정부가 중국내 유일한 정부”라는 편견에 대해
[정대성의 중국 정치 번역기] 중앙-지방정부 관계를 제대로 알자 지방정부, 베이징 눈치 안보고 딴 살림? 중국 특유의 분권적 정책결정 구조 이해를
중국에선 정부가 하라고 하면 전부 다 하겠지! 라는 말은 친목회, 송년회, 명절에서 의레 벌어지는 정치 이야기에서 쉽게 들을 수 있는 말이다. 심지어 학술 모임에서도 이러한 고정관념을 볼 수가 있다. 마치 한국 정부는 절차와 권리를 존중하는 정부인 반면, 중국 정부는 절차와 권리 존중 없는 거대한 조직력의 산물이라는 듯.
이런 인식은 전문가들도 다르지 않다. 중국 개혁개방의 역사를 한국의 군사정권에 의한 경제발전과 비슷하게 묘사한다. 중국 외교 및 안보 정책을 분석할 때는 중앙에 있는 엘리트들의 명시적이고 응집력 있는 대전략이 있다고 가정하면서 중국을 단일 행위자로 취급한다. 적지 않은 수의 중국 연구자들은 베이징 당국이 국내 및 경제 정책을 어떻게 집행하는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러나 경제발전이 국가가 견인하고 주도하는 것만으로 될 수 있는 것인가? 나아가 중국에 대한 그런 이해는 합당한가?
중국은 1979년 현재의 경제개혁이 시작되기 전부터 경공업과 중공업의 국유기업을 중앙정부가 아닌 지방정부가 장악하고 있었다. 1978년 당시 중앙 정부가 통제하는 국영 기업의 산업 생산 비중은 국가 전체의 1/2 미만이었다. 1980년대초 개혁의 결과, 중앙 정부가 통제하던 많은 국영 기업들이 지방 정부에 위임돼 1985년 당시 중앙 정부에 의해 통제되던 국영 기업은 총산업생산의 20%에 불과했다. 반면 지방과 시 정부가 통제하던 산업기업은 45%, 그 아래의 정부는 9%를 차지했다.
필자는 이러한 데이터에 근거해 도리어 물어보고 싶다. 중국을 “중앙 집권국가”라는 틀로만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가? 중국이 발전하는 동안 내부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 그리고 중국이 마주보는 문제는 무엇이며, 어떻게 이 문제를 풀어나가고 있는가? 우리는 중국으로부터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 하는 것이다. 이 글은 그러한 질문들에 대한 답변을 일부분 담고 있다.
개혁개방 아래에서의 지방 정부
중국은 1978년 개혁개방 정책을 결정한 이래, 등소평의 주도하에 눈부신 경제성장을 달성했다. 그러한 성장의 이면에는 중앙의 정책 입안자들이 지방 공무원들에게 문제 해결의 새로운 방법을 시도하도록 권장한 다음, 그렇게 얻은 지역의 “특수한 경험”을 국가 정책 수립에 다시 참고하는 식의 ‘정치적 피드백 수렴 절차’가 있었다. 그것은 농촌 탈식민화, 외국 경제 개방, 민간사업 촉진, 국가 부문 구조 조정 및 주식 시장 규제와 같은 다양한 영역에서 정책 결정에 주효했다. 이러한 정책은 개혁개방 시절에 새로 도입된 정책은 아니며, 장시 소비에트 시절부터 문화 대혁명 이전까지 존재했던 중국 정부의 분권적 의사 결정 과정을 부활시키고 보완시킨 것에 가까웠다.
개혁개방 과정속에서 국영 기업을 포함한 군사 및 비즈니스 부문은 중국내 강력한 영향력을 확보하게 됐고 언론, 비정부기구, 로비단체 등 새로운 ‘정책 기업가’들이 “특수한 경험”을 이루기 위해 지방 정치 과정에 참여했다. 이런 정책 결정의 다원화 속에서 지방 정부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지방은 ‘정치적 중간자’로서 이들의 의견을 중앙정부에 전달하기도 하고, 전달 뿐만이 아니라 중앙정부의 정책 시행에도 영향을 미쳤다. 위임된 업무를 지방 정부가 수행하기 위해 선택하는 방식은 중앙의 원래 계획과 다를 때도 있었고, 지방의 행동 자체가 정책의 공식화에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실제 중앙정부의 정책적 선택에 영향을 끼쳤다.
이처럼 중국이 높은 수준의 지방자치를 누릴 수 있는 배경에는 중앙 정부와 지방 정부 간의 “재정 계약” 제도가 있었다. 이 제도에서 1단계는 각 도의 세입소득을 모두 중앙으로 송금하는 ‘중앙 고정수입’과 공유대상인 ‘지방수입’으로 나누는 것이고, 두 번째 단계에서는 공유의 특정한 공식을 결정하는 것이다. 1988~93년 동안 30개 지방과 5개 도시에 대한 여러 종류의 ‘재정 계약’ 방식이 있었다. 예를 들어 지방이 고정적으로 세수 일부를 중앙에 납부하거나, 아니면 지정된 금액만을 고정적으로 중앙에 납부하거나, 어떤 경우는 중앙이 아예 면제하기도 하고, 또 다른 경우엔 중앙에 몇년간 납부하지 않는 대신에 최종 정산 시에 이자와 함께 상환하는 등의 계약이 있었다. 중앙정부는 지방정부에게 재정적인 독립을 허용함과 더불어 성 정부와 시 정부가 행정적인 방법을 통해 시장을 규제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도록 조치했다.
반면 그 아래의 정부는 매우 제한적인 권한을 가지도록 했다. 그들의 책임은 농업과 농촌 통치에 국한되었고, 국영 기업(SOE)에 대한 통제와 국가 은행 시스템에 대한 접근권이 없었다. 이런 제약으로 인해 말단에 위치하는 정부는 상위 정부와는 달리 엄격한 예산 제약 하에서, 그리고 무역 장벽도 세우지 못하도록 했다. 하위 지방 정부는 자기 아래에 있는 비지니스들을 보호하기 위해, 예를 들어 경쟁을 막기 위해 무역 장벽을 세우는 등의 수단을 동원할 수 없었다. 자연스럽게 그 지역 내에서 약육강식의 환경이 생겼고, 이는 자유시장에 근거한 경쟁이 생기는 데에 일조했다.
이들 지방 정부들은 중국 시장에 경쟁을 통한 활력을 불어넣는 역할을 함과 동시에 개혁개방의 수호자 역할을 하기도 했다. 1989년과 1991년 사이의 천안문 광장 이후에 덩샤오핑의 권력 기반이 흔들렸던 기간 동안, 한때 보수주의자들은 반전의 가능성을 노리며 가장 많은 정치적, 이념적, 군사적 힘을 얻었다. 그러나 그들의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는데, 예를 들어 광동성 정부는 보수주의자들의 중앙화 시도에 대한 협력을 거부했고 많은 다른 정부들도 그 뒤를 따랐다. 이는 그런 역사의 일부일 뿐이다. 이 사건은 중앙정부의 결정을 구체화하는 지방정부의 놀라운 힘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중국식 지방정치’ 모델의 특성과 위기
중국의 지방자치 체제는 개혁개방의 중추적인 역할을 했지만, 언제나 좋은 결과만 가져오지 않았다. 진보적인 분권을 통한 장기적 실험, 그리고 그것을 국가 레벨에서 적용하는 동안의 시행착오 등 점진적이고 지나치게 신중한 의사결정은 지방 정부로 하여금 정책을 가로채고 재해석할 수 있게 했다. 또 지나친 지방분권 체제는 개혁개방이라는 물결을 타고 중앙집권적 통제와 분산적 통치 사이에 있어야 할 균형을 악화시키기도 했다. 구체적으로 보면,
(1) 때때로 지역 정부들은 지역적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보다 광범위한 외교정책을 구성하는 특정 사안에 대해 새로운 정책 아이디어를 만들고 이를 채택하도록 중국 정부를 적극 설득한다. 이것을 트레일블레이징(Trailblazing: 길을 광이 나도록 닦는 것)이라 하는데, 트레일블레이징은 종종 국영 기업이나 군과 같은 다른 하위 국가 행위자들과 협력하여 중앙에게 로비하는 것을 포함한다. 때때로 공식적인 승인 전에 지방정부가 프로젝트를 직접 시작해 기정사실화하는 식이다. 베이징 당국이 통상적으로 지방 정부의 행동에 승인을 주기보다는 “반대하지 않는” 방식을 선호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2) 또한 기존 중앙지침을 융단포장해 정책 추진 과정에 영향을 미치도록 하는 카펫배깅(carpetbagging: 비단으로 포장하기)도 나타나는데, 지역이 공공연히 중앙정부의 명령을 반복하면서도 중앙의 의도와 다른 방향을 추구해 시행상의 차이로 나타나게 한다. 쉽게 말해 중앙정부가 제정한 기존 틀에서 새로운 지방 정책을 추구하면서 중앙 정책을 시행하는 것이다. 이는 베이징 당국의 지시와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 아니라 특정 과제를 수행하는 방법에 대한 새로운 아이디어를 중간에 추가, 중앙이 전반적인 정책 시행을 전면적으로 통제하지 못하게 한다.
지방-지방간의 관계에서도 비대한 지방자치제도는 문제를 일으킨다. (1) 중국에서 지방 정부는 무역 장벽을 세워 타 지방 및 외국과의 경쟁으로부터 스스로를 격리시키기도 한다. 이러한 장벽으로 부패가 출현하고 소규모 독재도 나타난다. 중앙정부의 손이 닿지 않는 고립된 지역에서 지방 공무원들은 그들의 권력을 개인적인 이익을 위해 이용할 수 있다.(물론 공개 경쟁과 함께 상호 감시가 있는 상황에서 대규모 부패는 시장의 압력 때문에 지속되기가 어렵다.) 이러한 체제는 중앙 당국이 명시적 보호를 하지 않을 때 공동 시장의 유지를 어렵게 한다. 또한 이는 일부 지역, 특히 관할권과의 경쟁에서 도태될 가능성이 있는 지역들이 다른 지역의 기업들과 제품들을 향한 무역 장벽을 세울 수 있는 부작용을 의미한다.
(2) 마지막으로 중국 중앙정부가 조장한 지방정부간 성과경쟁은 지방간 인프라 교류가 더뎌지는 상황을 조장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중국의 의료복지체계는 중앙집권적인 정부에 의해 주도된 것이 아니라 지방 정부에 의해 주도되었는데, 지방의 교류가 소극적인 상황속에서 지방 특색이 노골화됐다. 이러한 구조는 최근 중국 정부가 시민들이 반발하던 최후의 순간까지도 ‘코로나 봉쇄정책’을 포기하는 것을 주저했던 이유중 하나이기도 했다.
코로나 발생 여부, 코로나 봉쇄를 얼마나 성공적으로 시행했는지가 지방정부 공직자들의 승진이나 면직을 가르는 상황이었는데, 자신의 자원을 나누면서까지 타 지방을 지원하는 것에 소극적일 수 밖에 없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었다. 서로간의 의료 체계도 서로 상이하게 운영되다보니 농촌 지역으로 코로나가 퍼지면 농촌 지자체가 가진 인프라만으로는 상황이 감당되지 않을 정도로 걷잡을 수 없이 퍼질 것이라는 예상도 했다.

지방 정부는 중앙정부 정책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가?
하이난성은 남중국해의 200만㎢에 달하는 행정권을 가지고 있다. 영토적 특징과 해양 관할권을 관리하는 데 있어서 국가 주권을 보호하는 것과 국제적인 긴장을 최소화하는 것 사이에서 중앙 정부의 남중국해 정책은 미묘한 균형을 유지하고 있다. 중앙의 관점에서 보면 분쟁 지역 관광은 다른 주장자들을 자극하고 남중국해의 긴장을 고조시킬 수 있음에도, 하이난성은 베이징 당국과 다르게 관광업을 성장 촉진하고 경제에 다양성을 부여하며 투자를 유치하는 것을 발전의 원천으로 삼았다. 하이난성은 남중국해의 파라셀 군도로 가는 70여개의 관광 노선을 추진하기 시작했고 중앙의 국무원에 여러 보고서를 제출했으며 국가관광국(NTA), 국가해양국과 같은 기관에 적극적으로 로비하고, 사기업들과의 로비집단을 형성했다.
하이난성의 영향력 행사가 절정에 달하던 때는 2012년이었는데, 중국 정부는 2012년 6월 베트남이 파라셀 제도와 스프래틀리 제도에 대한 관할권을 선언하는 해양법을 통과시키자 그때서야 7월 ‘산샤’를 시(市)로 승격시켰다. 중국 중앙정부가 싼샤 시를 승인한 결정은 “긴급 조치”이자 베트남에 대한 비례적인 법적 대응 조치에 불과했다.
그러나 하이난성은 이 기회를 이용해 중앙의 정책을 수정하기에 이른다. 베이징 정부의 원래 계획을 뛰어넘는 새로운 개발 정책을 도입해 시행하고 그 과정에서 생태학적 우려와 자원 제약에도 불구하고 관광, 해양 어업, 심해 양식업, 에너지 탐사를 포함한 파라셀 군도의 경제 발전을 위해 더 많은 자금과 투자에 나섰다. 남중국해에서 어업활동을 하는 어부들을 지원하고 수많은 타 지방의 이익단체들을 끌어들이는 정책을 폈다.
하이난성은 또 지방의 이익을 저해하는 중앙 정책에도 저항해왔다. 국제적 긴장을 완화하기 위해 베이징 당국은 남중국해 일부 지역에서 매년 여름 ‘어업 모라토리엄’을 실시하는 등 민감한 지역에서의 어업 활동을 제한했는데, 하이난성은 어업 부문의 야심찬 성장 목표를 추진하면서 집행 책임을 회피하는 등 꼼수를 부렸다. 하이난성 정부의 조직적 저항은 남중국해에서 중국의 이미지를 악화시켰고 주변국들이 중국에 더 강경한 정책을 취하도록 유도했다.
이는 하이난의 극단적인 예시이지만, 중국에서 수없이 벌어지고 있는 광경이다. 예를 들어, 지방정부가 북한과의 불법적인 교역을 하던 민간 기업들에 대한 제재 이행을 일부러 소홀히 했던 경우도 있었으며, 2009년 미얀마의 코캉 분쟁 당시 윈난성(云南省)은 국경을 폐쇄하라는 중앙 정부의 명령을 무시했다. 이와 같은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중앙 정부의 영향력은 개혁개방 이후에는 수없이 많은 행위자들과 단기적인 이익을 추구하는 지방기관들을 효과적으로 통제할 수 없었다.
중국 정부는 만능이 아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중국을 ‘중앙에 의해 모든 것이 통제되는 국가’라고 단순하게 이해해 왔고, ‘통제는 쉽고, 관리는 어렵다’라는 통념에 묶여 있어왔다. 중국의 행동을 무조건적으로 단일하게 취급하고, 규모와 통제로 밀어붙이는 정부라는 식으로 중국을 바라본다면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강력하고 거대하게 보이는 중국 성장의 이면에는 우리나라, 소련, 일본처럼 국가주도적인 부분 뿐만 아니라, 세계에서 유사한 사례를 찾을 수 없는 분권화 과정이 존재했다. 분권화된 권력들과의 알력, 또 이를 조정하기 위한 중앙정부의 시행착오도 있었다. 지금도 중국은 분권화된 권력들과 협상하고 그들을 다독이기도 하며, 때로는 처벌하기도 한다.
이러한 점은 권위주의 시절 한국 뿐만 아니라 비슷한 “사회주의” 정치체제를 가지고 있었던 소비에트 체제와도 차별화되는 점이기도 하다. 소비에트의 중앙은 지방 인프라의 이동을 신중하게 통제했다. 소련의 “권한이 없는 행정 분권화 체계”에서 하위 정부는 대부분 중앙 정부의 행정 단위였고, 지역 경제에 대한 권력은 말할 것도 없고 자치적인 정치 권한도 거의 두지 않았다.
반면 중국의 이러한 모습들은 우리에게 여러가지 질문을 던진다. 한국은 민주화 이후에 지방이 중앙을 거스르며 지방의 이익을 챙길 정도로 탄탄한 지방정부를 구축했던가? 중국처럼 중앙 정책의 수립과 시행에 영향을 끼칠 정도로 지역 행위자가 강해진 적이 있었던가?
언론과 분석가들은 시진핑과 중국 중앙정부의 팽창만을 우려하고 ‘마오의 재림’이라 떠들기 바쁘지만, ‘재중앙집권화’의 비용이 상승하는 상황에서 중앙정부가 다시 중앙집권화를 하려면, 중앙이 지방의 기능이나 사회안전망 지출을 제공함으로써 실질적으로 지방정부를 대체하는 새로운 의무를 이행해야 한다.
그러면 중앙정부는 지방정부를 대체할 자금을 어떻게 조달할 것인가? 정말로 마오의 재림은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인가? 이런 상황에서 중앙정부의 권한을 증폭시키려는 시진핑 지도부의 의도는 또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시진핑과 마오는 같은 환경에 처해 있는가?
우리나라의 언론들은 중국의 정부주도적 경제 성장을 폄하하고, 자원의 저주, 중산층의 함정 등을 거론하며 한국 산업화의 부정적 이미지를 중국에 씌우기 바빴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에라도 불편한 사실을 인정해야할 지 모른다. 지방 분권에 있어서 중국이 권위주의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더 탄탄한 기초를 구축했다는 사실과 중국의 개혁개방은 우리의 근대화와 다르며 그 결과도 다를 것이라는 것을 사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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