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AI 상담사를 더 편하게 느끼게 될까
[송광용의 밤마다 카페테라스] AI 상담, 공감능력 없는 게 오히려 장점? 현대인들 ‘상호 무관심’과 ‘속내 감추기’ 원해 AI로부터 정신적 자유 얻고 ‘고독’ 지불할 것
가까운 미래, 한 여자가 건강 상담을 받고 있다. 의사로 보이는 상담자는 그녀에게 ‘암’이 많이 전이됐다며 정신을 인공 몸으로 옮길 것을 권한다. 상담자는 주저하는 여자에게 명료하게 몇 가지 선택지를 알려준다. 상담이 끝나고 여자가 나가자, 상반신만 있는 인공지능 로봇 상담자는 OFF된다.
최근 넷플릭스에서 화제를 모았던 영화 <정이>의 한 장면이다. 인공지능 로봇에게 상담을 받는 주인공은 상담로봇을 사람처럼 대한다. 그 인공지능 의사는 사람은 아니지만 의학적 권위를 갖고 있다.
사람들은 자신의 건강 문제를 해결해줄 인공지능 의사와의 상담을 꺼려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더 편하게 상담할 지도 모른다. 의사는 어떤 감정이나 편견 없이 자신의 문제를 있는 그대로 들여다보고 해결책을 찾아줄 것이기 때문이다.

코끼리 인형은 되고 부모는 안되는
사람들은 인간보다 AI에게 자신의 문제를 털어놓는 걸 더 선호하게 될까. 실제 사례들을 보면 그런 경향을 확인할 수 있다. 아이들의 문제 행동을 상담하는 <금쪽같은 내 새끼>라는 TV프로그램에서는, 아이의 속마음을 알기 위해서 ‘말하는 코끼리 인형’을 활용한다. 코끼리 인형은 가까운 미래에 많이 등장할 AI 상담자의 매우 초보적인 형태로 봐도 무방하다. 코끼리 인형은 아이에게 힘든 것이 무엇인지 묻는다. 아이는 감춰왔던 자신의 속마음을 코끼리 인형에게 털어놓는다. 그 장면을 화면으로 보던 부모나 패널들은 아이의 진짜 마음을 알고 눈물을 흘리거나 한숨짓는다.
한 인터넷 매체의 기사엔, 스페인의 인공지능 상담교사 ‘스노우’와 ‘큐보원’의 활약상이 소개되었다. 아이들은 게임처럼 인공지능의 질문에 대답을 한다. 인공지능은 이 데이터들을 토대로 아이들 사이의 관계에 대한 비밀 보고서를 작성한다. 이 비밀 보고서는 담당 교사와 상담사에게 제공된다. 이를 통해 교내 따돌림 문제를 획기적으로 해결했다고 한다. 인공지능에 대한 학생들의 인식에 시선이 간다.
“친구나 선생님보다 AI 로봇에게 자신의 문제를 더욱 솔직하게 털어놓을 수 있었다.” -‘제 비밀이요? AI에 털어놔요’ (2018.8.17. <더 스쿠프> 기사)
아이는 왜 부모나 주변 사람에게 털어놓지 못하던 얘기를 코끼리 인형이나 AI에게 털어놓는 것일까. 코끼리 인형이나 AI는 아이의 번잡하고 힘든 삶에 속해 있지 않은 존재다. 아이도 안다. AI는 자신에게 어떤 선입견도 없고, 자신의 나쁜 행동을 비난하지도 않을 거란 걸 말이다.
AI 상담사는 부담이 없다?
우린 많은 분야에서 상담을 한다. 의학, 법률, 행정, 투자 등 상담가의 전문 지식이나 자격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자신의 크고 작은 문제를 해결 받기 위해 그들 앞에 선다.
우린 세계 곳곳에서 인간 상담자들이 AI로 바뀌고 있다는 뉴스를 듣는다. ‘마일로’라는 인공지능 교사는 자폐아들을 가르치는데, 자폐아들의 자기 절제력이 향상되고 사회적 상호작용 또한 개선되었다는 사례를 보여주었다. 마틴 포드는 <로봇의 지배>라는 책에서, 정신 건강 분야에서 의료 인공지능의 성공이 일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2017년 창업한 실리콘밸리의 스타트업이 만든 워봇은, 심리학자들이 작성한 대화 요소를 결합한 챗봇이다. ‘시리’ 같은 원리로 구동된다. 우울증이나 불안 장애를 가진 사람을 돕기 위해 인지행동치료 기법을 적용한 이 워봇은 출시된 지 1주일 만에 5만 명 이상의 사람들과 대화했다고 한다.
다른 나라에선 법조계에서도 인공지능 변호사가 활약하고 있다. 변호사의 중요한 역량 중 하나는, 의뢰인의 사건에 관련된 법률과 판례를 얼마나 많이 알고 찾아내는가 하는 점이다. 이런 일은 사람보다 AI가 더 잘 할 수 있다. 물론 복잡한 의사 결정이나 재판 결과를 예측해서 대응하는 추론 능력 등은 사람 변호사를 따라오기엔 아직 무리가 있겠지만 말이다. 드라마의 주인공이었던 변호사 우영우는 어떤 사건을 접하면 머릿속에서 자신이 기억했던 것이 컴퓨터 검색 결과처럼 촤르륵 나온다. 우영우의 비상한 기억력을 따를 변호사는 없다. AI 변호사를 곁에 둔다는 건, 24시간 내내 우영우 변호사의 조언을 들을 수 있다는 뜻이다.

미래에 대체될 수 있는 직업에 대한 얘기를 많이 하는데, 대체가 불가하다고 하는 직업군을 꼽을 때 근거 중에 이런 것이 있다. “인공지능은 공감 능력이 없기 때문에, 상상력이 없기 때문에 할 수 없을 것”이라고.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이유들 때문에 사람 대신 AI를 선택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사람들은 타인이 내 삶에 원치 않는 관심을 가질 때 부담감을 갖는다. 관심과 감정이 절실하게 필요할 때가 있지만, 그저 신경을 꺼줬으면 하고 바랄 때도 많다. 택시 안에서 택시기사에게 정치적 견해에 관한 질문을 받거나 정치 얘길 듣고 싶지 않다. 경제적으로 어려워 지원 신청을 하러 가서 담당 공무원이 날 어떻게 볼까를 신경 쓰고 싶지 않다. 법적 조언이 필요할 뿐인데 어설픈 위로나 동정을 받고 싶지 않다. 감정이 있고 공감 능력이 있는 사람이 보여주는 미덕이, 누군가에겐 회피하고 싶은 요소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AI가 보편화된 사회의 명암, 자유와 고독
우리가 가까운 미래에 생활 곳곳에서 고도화된 AI와 접하며 느낄 마음이 어떤 것인지, 우리가 그런 AI에게 편안함을 느낀다면 무슨 이유 때문일지를 생각하던 와중에 한 고전사회학자의 글을 읽게 되었다. 그 글에서 필자의 질문에 답을 마련할 어떤 실마리를 발견하게 되었다. 게오르그 짐멜은 1903년에 출간한 <대도시와 정신적 삶>이라는 논문에서 대도시에서 살아가는 도시인의 특징에 대해 얘기했다. 요약하면 이런 얘기다. 사소한 일과 편견에 얽매이는 소도시인들에 비해 대도시인들은 자유롭다. 그 자유는, ‘상호 무관심’과 ‘속내 감추기’로 획득한 정신적 거리에서 비롯된다. 그 자유의 이면엔 필연적으로 외로움과 쓸쓸함이 도사리고 있다.
현대인은 모두 짐멜이 말한 대도시인의 후예라 할 수 있다. 어쩌면 AI는 ‘상호 무관심’과 ‘속내 감추기’로 얻은 자유를 훼손하지 않고도 개인의 문제를 의논하거나 필요를 채울 수 있다는 점에서 편안함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 여러 분야에서 인공지능 상담가는 더 늘어나고 보편화될 것이다. 그렇지만 그 이유가 단순히 인간 노동을 대체하기 위한 것만은 아닐 것이다. 거기엔 인간을 대하는 인간의 태도 측면에서, 인간에 대한 불신, 감정 소모의 피로감을 피하려는 마음 등이 더 큰 이유로 자리하게 될지 모르겠다. 인공지능이 보편화된 사회는, 다른 사람과의 불필요한 접촉을 최대한 피할 수 있게 해주는 사회일 것이다.
AI로 인해 ‘편리함’이라 이름 붙인 고독이, ‘부담 없음’이라 이름 붙인 무관심이 저변에 깔린 미래 사회를 우린 과연 어떻게 받아들이게 될까. 한 가지는 확실해 보인다. 지금처럼 ‘자유’와 ‘고독’의 밸런스 게임이 끊이지 않고 지속될 거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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