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계개혁은 이제 시작일 뿐인데...
[임방진의 껍질 벗겨내는 기업회계] 2017년 외감법 개정...회계개혁 출발 5년여만에 ‘기업부담만 가중” 비판 ‘전문가적 판단’ 쉽게 나오는 것 아냐 개혁 자리잡힐 때까지 기다려주길
올해 회계감사는 잘 끝냈을까
대부분의 상장사 주총과 함께 기말 감사 시즌이 마무리되었다. 정신없이 보내다 정신을 차려보니 4월. 이상하게도 매년 회계감사의 업무강도는 자꾸 높아져간다(나이를 먹어가는 것도 이유 중 하나겠지만, 그것을 차치하더라도 말이다).
요즘 세간에선 MZ세대들의 전문자격증 취득 붐에 힘입어 공인회계사시험이 무척 인기란다. 감사보수가 많이 오르고 덩달아 연봉수준도 많이 오르면서, 공인회계사의 인기가 상한가를 기록 중이라는 것이다. 바야흐로 공인회계사 전성시대(?)랄까. 아빠의 직업이 공인회계사이고 어떤 일을 하는지 최근에야 이해하게 된 두 성인 자녀를 둔 나로선 매우 감동적인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사실 이런 상황의 시작은 몇 년 전 대우조선해양 회계스캔들의 영향으로 감사인 주기적 지정제, 표준감사시간, 내부회계관리제도감사제도의 도입 등이 포함된 주식회사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외감법) 개정안이 2017년 국회를 통과하면서부터라 할 수 있다. 이른바, 회계개혁.
아주 간단히 요약하면, 독립적 외부감사인으로서 충분한 시간을 투입하여 제대로 감사를 하라는 것이다. 물론, 적정한 대가를 받고서.
그 결과로 감사에 투입되는 시간은 그 이전보다 1.5~2배 수준이 되었다. 물론 감사보수도 그만큼 늘어났다. 그러니 더 많은 공인회계사가 필요해졌고, 늘어난 수요에 부합하여 가격(연봉)도 자연스레 높아진 것이다.
반면 회사들은? 당연하지만, 불만이 하늘을 찌르고, 입은 나올 대로 나와 있다고나 할까. 외부감사라는 것을 애당초 ‘돈 주고 매맞는’ 일 정도로 여기던 회사라면 더더욱 그럴 수 밖에. 그래서인지, 기업부담 가중과 회계개혁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며 폐지 내지 완화주장을 하는 목소리가 심심찮게 들린다.

회계개혁이 공인회계사에게 미친 영향
이런 논란을 들으며, 문득 현장에서 회계감사라는 업무를 하고 있는 필자에겐 어떤 영향이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개정 외감법과 회계개혁이 가져온(또는 가져올) 회계투명성의 강화, 공공 내지 시장 신뢰의 회복, 기업 지배구조 보완과 투자자 보호, 이를 통한 한국 자본시장의 코리아디스카운트 해소 같은 큰 이야기는 다른 분들께 미루고, 회계개혁이 공인회계사인 필자에게 가져다 준 변화는 무엇일까? 오늘은 그 이야기를 하고 싶다.
가장 큰, 그리고 가장 중요한 변화는 무엇보다 각 감사업무당 투입하는 시간이 옛날보다 많이 늘어났다는 점이다. 공인회계사 시험 합격후 회계법인에서 근무하다 이직하여 10여년 타업종에 몸 담았다가 회계개혁법이 통과된 이후 다시 회계법인으로 돌아왔으니 연장선상에서 말하긴 쉽지 않지만, 어쨌든 그 옛날 옛적보다는 감사투입시간이 훨씬 늘어난 것은 사실이다(계속 회계법인에 있었던 동료들도 이 점에선 대부분 동의를 한다).
이게 왜 중요하냐면 (적어도 필자에게), 충분한 감사시간은 곧 회계감사기준에서 요구하는 감사절차를 수행할 수 있는 여유를 뜻하기 때문이다. 결국 외부감사인으로서 필자의 목표이자 의무는 감사기준에 따라 감사절차를 계획하고, 감사증거를 수집하여 전문가적 판단에 따라 회사의 재무제표에 전체적으로 부정이나 오류로 인한 중요한 왜곡표시가 없는지 합리적인 확신을 얻어 감사의견을 표명하는 것이다.
여기서 꼭 짚고 넘어가고 싶은 것이 ‘전문가적 판단(professional judgement)’ 부분이다. 간혹 잘 모르는 일반인이나 심지어 공인회계사조차, 회계사 시험에 합격하고 자격증만 나오면 전문가가 되고, ‘전문가적 판단’이 자판기처럼 척척 이뤄지는 것으로 착각을 한다.
전혀 그렇지 않다. 또한 오랜 경험이 쌓인다고 해서 저절로 전문가적 판단이 되고, 재무제표를 스윽 보기만 해도 감사의견이 형성되는 게 아니다(옛날 옛적에, 수십년의 경험이 쌓이면, 감사대상 회사 대표나 CFO의 인상만 봐도 위험이 파악된다는 바보같은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있긴 하다만). 물론 초짜보다야 낫겠지만, 여전히 회사와 산업에 대한 이해, 위험에 대한 평가, 이에 대응한 충분한 감사 증거 수집이 있은 후에야 비로소 전문가적 판단이 발휘되고, 제대로 된 감사의견도 표명될 수 있는 것이다. 단언컨대 이 전체 과정에 지름길(short-cut)은 없다.
뜬금없지만, 최근 팔순을 넘기신 필자의 어머니께서 건강이 급격히 악화되는 바람에 지난 몇 달간 이제껏 겪지 못했던 종합병원경험을 엄청나게 하게 되었다. 그 중에서도 끊임없이 이어지는 검사가 환자 당신께는 병환 그 이상의 고통이 되었다. 혈액을 뽑고 또 뽑고, 엑스레이, CT, MRI 등을 찍고 또 찍고, 심전도, 초음파 등등 검사하고 또 검사한다. 의사와 만나기 위한 준비시간만으로 몇시간이 소요되는 것이다. 자연스레 불평과 불만이 새어 나온다.
그러나 순번이 되어 진료실에 들어가 의사를 마주하게 되면 모든 게 이해가 된다. “어디가 불편하세요”라고 묻고 있는 의사의 눈은 컴퓨터 스크린의 각종 검사결과를 스캔하고 있다. 의사에게 주어진 시간은 환자당 길어야 5분? 이 짧은 시간에 전문가적 판단에 따라 진단을 내리고 처방을 하려면 충분한 그리고 종합적인 데이터가 필요하다. 환자의 낯빛과 간단한 문진, 청진기를 통해 들려오는 심장과 숨소리만으로 제대로 진단을 할 수 없다는 건 굳이 말할 필요도 없으리라.
감사보고서에 ‘전문가적 판단’ 잘 담았을까
다시 회계감사로 돌아가서, 필자에게 ‘전문가적 판단’이란 건 이런 것이다. 전문지식 뿐만 아니라 현 상황에 대한 충분한 증거(데이터)가 있을 때나 가능한 그런 영역이란 말이다. 시간에 부족해서 취해야할 절차를 수행하지 못하고, 충분한 감사증거를 확보하지 못한다면? 그땐 전문가적 판단은 없다. 따라서 감사의견은 형성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충분한 감사증거 수집을 위한 감사투입시간의 확보는 감사인에겐 너무나 중요하다. 적어도 필자에겐 그렇다.
그럼, 지난 시즌 필자는 충분한 감사증거를 확보하고, 이를 기초로 전문가적 판단에 따라 감사의견을 형성한 후 감사보고서를 발행했을까? 솔직히 많이 떳떳하진 않다. 회계법인 내부 품질관리실의 심리나 감독기관의 감리라도 걸린다면, 무난하게 통과할지 자신만만한 정도는 아니란 의미다. 늘어나긴 했어도 허용된 시간은 여전히 아쉬웠고, 취하지 못한 절차도 적지 않았다.
역설적으로 그렇기 때문에 회계개혁은 아직 갈 길이 멀다고 생각한다. 많은 이들이 시장의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지만, 그 전제로서 감사를 담당하는 공인회계사는 자신의 전문가적 판단에 떳떳해야 한다. 근자감 말고, 전문지식과 충분한 감사증거에 기반한 전문가적 판단과 감사의견 말이다.
2017년 외감법이 개정된 후, 회계개혁으로 인해 기업의 부담만 과중되었고, 그 성과는 불투명하다는 주장은 몇 년만 더 참아주시라. 이제야 감사기준서에 있는 감사절차를 어찌어찌 실질적으로 수행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강산이 변한다는 10년은 해 봐야지 않을까? 시장의 신뢰 회복을 위해 이 정도의 선투자는 불가피한 시대의 요청임을 인정해 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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