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 ‘비전 프로’에 무엇을 숨겨놓았나
[김정민의 친절한 IT이야기] 왜 미완성의 VR 기기 공개했을까 공개한 건 스펙 아니라 전략이었다 애플, 다시 세상의 판 흔들 준비 했다
지난 6일 애플 개발자회의(WWDC23)에서 중요한 제품들 여럿이 공개되었는데, 사람들의 관심은 단연 ‘비전 프로’(Vision Pro)라는 VR 헤드셋에 쏠렸다. 2016년 소니, 페이스북(현 메타), 삼성 등에서 VR 헤드셋이 생산된 것에 비추어 보면, 애플의 시장진입이 너무 늦은 것 아니냐는 평가가 있다. 하지만 애플은 자신들만의 엄격한 기준이 있고, 이 최소한의 기준이 충족되지 않으면 신제품을 내놓지 않는 회사다. 이런 애플의 전략을 두고, 다른 기업이 열심히 노력해서 길을 만들어 놓으면 그 길위에 무임승차해 ‘짜잔’ 하고 주인공으로 등장한다는 비아냥이 있어왔다.
그렇다면 이번에 내놓은 ‘비전 프로’가 애플이 생각하는 기준을 충족한 것이고, 타사의 제품을 압도하는 스펙일까. 그리고 지금까지의 애플 관행에 비춰볼 때 VR, AR 시장을 활성화시키기 위해 애플이 앞으로 어떤 행동을 해 나갈지? 그리고 VR, AR시장 활성화에 정말 중요한 것은 무엇인지 알아보자.

정말 뛰어나고 다른 제품을 압도할까
이번에 처음 나온 비전 프로는 강력한 M2 Ultra 칩과 애플의 새로운 R1 칩을 탑재했고, 고품질의 AR콘텐츠를 생성하고 렌더링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를 갖췄다. 그리고 비전 프로는 눈 추적, 손 추적, 음성 인식과 같은 여러 가지 입력 방법을 지원한다. 거창하게 소개되었지만 이미 시장에 보급되어 있는 기술이다.
혹자는 비전 프로의 하드웨어 스펙에 놀라움을 표현하기도 하는데, 사실 놀랄 만한 스펙은 아니다. 가격을 생각하면 더더욱 그러하다. 실제로 메타의 오큘러스 시리즈가 50만원 정도인 것에 비해, 비전 프로의 예상가격은 500만원 정도로 10배에 이른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애플이 하면 무엇인가 다를 것이라는 묘한 기대감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애플의 행보를 작심하고 비판하려는 사람들은 비전 프로의 디바이스 스펙이 애플이 추구하는 완결성에도 맞지 않고, 심지어 미완성의 제품을 내놓은 것이라고 평가한다. 즉 애플이 급한 마음에 섣불리 제품을 내놓았다는 평가다. 이런 평가의 이유는 비전 프로가 이전 기기의 단점을 개선한 부분이 별 것 없다는 점에 있다.
지금까지의 VR, AR 기기들의 단점을 사람들은 ①비싼 가격 ②사용하기 어려움 ③콘텐츠 부족 ④멀미와 착용감 등으로 얘기한다. 모두 맞는 말이다. 오큘러스는 50만원 정도에 판매하는데 쉽게 살 수 있는 만만한 가격은 아니고, 사용할 수 있는 콘텐츠도 상당히 제한되어 있다. 양손에 링 모양의 컨트롤러를 들고 제어해야 한다는 점도 불변하다. 마지막으로 가장 큰 불편함은 오래 착용하고 있으면 무겁고 머리를 눌리며, 멀미를 할 수 있다는 점에 있다.
애플이 지금까지 나온 타사 제품들의 단점을 모르지는 않았을 것이고, 불편함을 줄이기 위해 노력을 했겠지만, 눈에 띄게 개선된 부분은 없어 보인다. 디바이스의 무게를 전혀 줄이지 못했고, 가격은 10배나 비싸졌다. 눈 앞에 펼쳐지는 화면의 해상도를 4K 수준으로 높였고, 반응속도를 높여 멀미를 덜 나게 했다. 컨트롤러를 없애고 손가락 추적으로 대체한 부분은 개선을 위해 많이 노력한 부분으로 보이기는 하지만, 가격과 무게는 ‘치명적’으로 보인다.
공개 이후 며칠이 지나자 슬슬 비전 프로를 실제로 사용한 사람들의 경험담이 올라오고 있다. 여전히 무겁고, 광대뼈가 눌린다는 평가, 고글 형태라서 화장과 머리 모양을 망칠 수 있다는 평가가 기본이다. 이에 더해 손끝이나 눈을 추적하는 기술은 이미 시장에 있던 기술이고, 애플이 크게 개선했다는 점을 느끼지 못하겠다는 지적과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중요한 건 하드웨어 스펙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애플은 다르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고, 애플이 어련히 알아서 성공 가능성이 높은 시기에 맞추어 비전 프로를 출시했다고 믿는다. 그래서 조만간 VR, AR 시장이 폭발할 것이라는 기대가 시장에 넘친다. 그러나 필자의 생각은 조금 다른데, 애플은 섣불리 비전 프로를 공개한 것이 맞다. 즉 미완성의 것을 미리 공개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것 또한 애플의 ‘고도의 전략’으로 보인다. 그리고 애플은 VR, AR 시장에 센세이션을 일으킬 준비를 차곡차곡 하고 있다.
애플의 신제품은 스펙 관점으로 바라봐서는 안되고, UI/UX, 소프트웨어, 콘텐츠 측면에서 바라봐야 한다. 그 옛날, 스티브 잡스는 맥킨토시 PC를 만들 때부터 컴퓨터에 사용되는 폰트(글꼴)의 중요성을 강조했었고, 애플이 만든 기기들은 사용자 인터페이스, 사용자경험 즉 UI/UX가 다른 제품보다 뛰어나다는 평가를 많이 들었다. 이번에 공개된 비전 프로를 통해서도 사람들이 생각하지 못한 직관적이고 편리한 UI/UX를 제공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아직 공개된 것은 없다. 처음에 ‘콩나물 대가리’라는 조롱을 당했던 에어팟(애플의 무선 이어폰)이 편리함을 무기로 모두가 갖고 싶어하는 대세가 되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놓쳐서는 안되는 매우 중요한 사실은 이번 발표에서 애플 CEO 팀 쿡이 비전 프로를 VR, AR 기기가 아니라 ‘차세대 컴퓨팅 환경’으로 소개했다는 점이다. 비전 프로는 맥북 등 애플의 컴퓨터에 연결되어 사람의 눈앞 상하 120도, 좌우 180도 가까운 영역의 3D 공간을 작업공간으로 제공하여 현재의 LCD 모니터를 대체하겠다는 원대한 포부를 가지고 있다. 애플은 비전 프로를 단순한 VR, AR, 메타버스 디바이스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스마트폰이 PC의 모든 기능을 대체한 것처럼, 비전 프로가 PC와 아이폰을 대체할 만능 컴퓨터가 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이 점이 오큘러스를 3세대까지 판매하고 있는 메타(구 페이스북)의 접근법과 매우 다른 부분이다. 전통적인 UI/UX 강자인 애플은 눈앞 3차원 공간에서 펼쳐지는 컴퓨터와 사람의 인터페이스를 누구보다 잘 설계하고 구현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왜 지금 공개해야만 했을까
애플은 섣불리 신제품을 내놓기보다, 존재하던 기술의 완성도가 자신들 기준에 부합할 만큼 발전한 이후에 ‘짜잔’하고 후발주자로 신제품을 출시하고 단시간에 시장을 석권하는 전략을 자주 사용해왔다. 애플워치가 그랬고, 에어팟이 그랬다. 애플이 신제품을 출시하면 전세계의 수많은 개발자들이 앱을 만들어 앱스토어에 올리고, 이런 킬러 앱을 사용하기 위해 고객들은 애플의 제품을 사용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이런 ‘킬러 앱’이 하나 둘 늘어가면서 결국 애플 제품이 대세가 되었다.
애플은 지금까지 없었던 전혀 새로운 디바이스인 비전 프로를 세상에 공개하기 전에 많은 고민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 완벽한 제품을 내놓아야 한다는 일부 임원의 요구도 무시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비전 프로를 단순히 VR, AR 기기가 아니라 차세대 컴퓨팅 환경으로 설정하는 순간, 완벽한 제품이라는 완결성을 희생하더라도 제3자 즉 Third Party에서 앱을 개발하고 콘텐츠를 제작할 충분한 시간을 벌어주기 위해서 더 빨리 시장에 출시해야 한다는 의견이 더 힘을 얻었을 것이다.
애플은 베타 버전을 시장에 내놓고 앱 개발, 콘텐츠 제작을 독려하고 있다. 애플이 추구하는 완결성 있는 제품을 시장에 내놓는 것을 포기한 것이다. 애플 내부적으로도 현재 비전 프로를 구매하고자 하는 고객을 ‘베타 테스터’로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애플의 가장 큰 장점은 기꺼이 베타 테스터가 되어줄 애플의 충성고객이 있다는 점과 신기술을 좋아하는 수많은 얼리어답터들이 있다는 점이다.
애플의 전략을 적나라하게 분석해보면 이렇다. ‘비전 프로’의 기술적인 완성에는 앞으로 2년은 족히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그리고 2년 후에 비전 프로를 시장에 공개하면 그때부터 앱개발, 콘텐츠 제작에 2년 여의 시간이 더 걸릴 것이다. 그래서 이 기간을 단축하기 위해서 베타 버전을 지금 출시해야 했던 것이다. 2년 후에 개발될 디바이스의 스펙과 API를 미리 공개함으로써 소프트웨어(앱)를 개발할 시간, 콘텐츠를 제작할 시간을 충분히 부여해야 한다. 결국 2년 후 디바이스의 완성도가 올라가는 시점에 양질의 소프트웨어와 콘텐츠가 시장에 넘쳐나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한가지 더, 애플은 앱 개발자와 콘텐츠 제작자에게 확실하게 이익을 챙겨줘 왔다. 즉 Third Party들이 새로운 디바이스에서 돌아가는 앱과 콘텐츠를 잘 만들면 일확천금을 움켜쥘 수 있다는 꿈을 꾸게 했다. 애플은 ‘푹신푹신한 판’(이것을 ‘플랫폼’이라고 부르는 것 같다)을 깔아 놓고 그 위에서 전세계 수많은 개발자들이 뛰어놀면서 돈을 벌 수 있도록 하는 전략을 쓰는 것이다. 지금까지 그래왔고, 앞으로도 이 전략을 계속 유지할 것이다.
애플은 실제로 움직이고 있다
비전 프로는 기존 VR, AR 영역인 게임, 교육, 엔터테인먼트 등의 용도로 사용될 수 있다. 특히 게임에서는 4K 해상도 덕분에 그 어떤 기기보다 몰입감 넘치는 게임 경험을 제공할 수 있다. 교육 콘텐츠가 많이 제작되면, 학생들은 현실 세계를 실제로 탐험하듯 새로운 것을 탐험하고 배울 수 있다. 애플의 제품은 비싸지만 그 만큼 완벽하게 가상세계(VR)와 현실에 가상을 더한 세계(AR)를 사람들이 경험할 수 있게 할 것이다.
엔터테인먼트 분야는 VR, AR이 가장 먼저 보편화될 분야인데, 비전 프로를 사용하면 영화, 음악(뮤직비디오), 게임을 더욱 실감나게 즐길 수 있다. 이를 위해 애플은 디즈니와의 파트너십을 발표하였는데, 디즈니가 비전 프로 디바이스를 지원하는 독점적 콘텐츠를 개발할 예정이라고 전해진다.
애플의 전략과 비전 프로의 미래는
우리는 WWDC가 어떤 행사인지를 다시 한번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이 행사는 ‘개발자 총회’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다. 애플이 개발자 총회에서 새로운 디바이스를 공개한다는 것은 전세계 개발자들에게 새로운 디바이스에서 일확천금을 움켜쥘 미래를 그릴 수 있게 하고, 개발자들을 독려하는 의미가 크다.
애플은 이번 행사에서 정식 발매까지 7개월 여의 시간이 남아 있는 비전 프로를 공개했다. 이것 또한 이례적으로 긴 시간인데 앞서 설명한 것처럼 Third Party들에게 충분한 시간을 주려고 한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비전 프로는 PC도 아닌 스마트폰도 아닌, 전혀 새로운 기기이고, 여기에서 돌아갈 앱과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서는 많은 준비와 스터디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비전 프로의 앱 생태계와 콘텐츠 생태계가 완성되기까지는 이전보다 더 많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애플은 ‘애플 실리콘’이라는 이름으로 직접 CPU, GPU 칩셋을 설계하고, 비전 프로라는 디바이스도 직접 만든다. 그리고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아우르는 최적화 기술도 최고이다. 이제 남은 것은 앱 생태계와 콘텐츠 생태계인데, 이 부분은 애플이 스스로 채울 수 없다. 비전 프로라는 디바이스에서 앱을 개발하는 일, 콘텐츠를 제작하는 일은 많은 비용과 시간이 들고 특히 창의성이 필요한 일이다. 그래서 애플은 Third Party들에게 충분한 시간을 주기로 했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이들을 독려하기 위해 막대한 인센티브를 뿌리는 시간이 될 것이다.
애플이 그리는 미래는 앞으로 2년 후로 시계침이 맞춰져 있다. 2년 후 과연 애플이 그리는 미래 그대로 기술적 완성도 높은 디바이스가 세상에 나오고, 이 디바이스 맞춤형 앱 생태계, 콘텐츠 생태계가 동시에 완성될 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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