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 결정, 사우디는 무엇을 잘했나
[이근윤의 사우디, 중동 이야기] ‘사우디의 변화’ 약속, 누군들 거부할까 탈석유 비전· 다양성과 포용력 제시 한국, 진영과 이념으로 외교· 국내 정치 일사분란한 유치활동 편 사우디와 대조
결국, 지난 11월 28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국제박람회기구(BIE) 총회에서 182개 회원국 총회의 투표 결과 사우디의 리야드가 119표를 획득하여 한국의 부산(29표)과 이탈리아 로마(17표) 제치고 2030년 세계박람회 개최지로 선정되었다. 박빙의 승부를 펼칠 것이라 예상했던 한국 정부와 유수 언론들의 전망과 달리, 90표라는 압도적인 표 차이로 사상 처음 2차 투표 없이 개최지가 결정됐을 정도로 싱거운 승부로 끝났다.
필자는 올해 7월에 이미 조심스레 이런 전망을 담은 칼럼(2030 엑스포 3파전...부산, 역전승 가능할까) 을 게시한 바 있으며, 10월에는 한국이 사우디를 보고 배웠으면 싶을 정도로 사우디의 외교적 영향력이 한국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하다는 칼럼(한국이 사우디 외교에서 배워야할 점)을 피력한 바 있다.
다시 한번 두 국가의 희비를 가른 승부처들을 짚어 보며 향후 두 나라가 어떤 점을 보완해 가야 할지를 따져보고 싶다. 특히 부산이 재도전을 하겠다면, 반드시 필요한 점에 대한 얘기가 이 글에 있을 것이다.
사우디가 제시한 것은
먼저, 사우디의 프리젠테이션을 살펴보자. 사우디는 ‘변화의 시대(The era of change)’라는 주제와 ‘선견지명 있는 내일을 위한 협력(Together for a foresighted tomorrow)’이라는 부제로 지속가능성, 혁신, 협력에 초점을 맞췄다. 유치 제안서에는 사우디의 수도 리야드에 12만평(39만㎡)규모의 엑스포 부지를 마련하여 기술, 로봇공학, 인공 지능, 도시 개발, 기후 변화 완화 등 다양한 분야의 최신 발전을 보여줄 수 있는 전시관, 파빌리온, 공공장소를 마련한다는 계획과 조감도가 담겨 있다.
엑스포에만 100억 달러의 막대한 예산을 책정했을 뿐 아니라, 8000억 달러의 인프라 개선 예산을 별도로 책정하여 중동의 석유부국답게 재정적 역량을 갖추고 있다는 점을 확실히 보여주었다.
누가 ‘사우디의 약속’을 싫어했을까
그리고 이 엑스포가 단순히 보여주기식 행사가 아니라, 사우디가 이미 상당 기간 동안 추진 중인 국가 중심 과제인 ‘비전2030’, 즉 탈석유 시대를 위한 사우디 사회, 경제, 문화의 가파른 변화와 발맞춰 갈 것이며, 이것이 단순히 사우디만을 위한 행사가 아니라, 이 비전에 동의하는 모든 국가, 모든 인종, 모든 계층의 다양한 사람들에게 기회를 줄 것이라 선언했다. 또한 사우디아라비아가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의 교차로에 위치한 전략적 요충지로서, 세계 엑스포와 같은 글로벌 행사를 개최하기에 이상적인 곳이라는 점도 강조했다.
예전 아부다비의 ‘아브라함의 집’이라는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의 사원을 소개하며 썼던 칼럼(중동, 11세기 코르도바의 ‘평화와 공존’ 재현할까)에서, 이슬람 국가가 가장 강력했던 10세기 코르도바를 떠올리며, 이슬람이 다양성과 포용력을 가질 때 세계적으로 강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었고, 이것이 최근 두바이의 성공 비결이며, 사우디가 이 길을 빠르게 따라가고 있다고 소개한 바 있다.
이번 사우디 엑스포 프리젠테이션에서 이 부분을 강조했고, 결국 수많은 나라들이 이전에 ‘은둔의 나라’였던 사우디의 개방과 개혁, 그리고 그 기회를 다른 나라들과 나누려는 노력들에 지지를 몰아 준 셈이다. 보수적인 이슬람 국가의 상징과도 같은 사우디 정부가 개혁과 개방을 통해 글로벌 사회의 책임 있는 한 축으로서 긍정적인 역할을 하는데 지금껏 축적한 막대한 부를 쏟겠다고 하는데, 누가 이런 변화를 마다하고 환영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아이돌 그룹은 엑스포에 어떤 역할을?
반면 한국의 프리젠테이션을 보면, 구체적인 계획은 거의 제시하지 못한 채, 연예인과 저명인사들을 동원하여 한국을 찍어 달라는 감성적인 호소에 주력했다. 지휘자 정명훈과 성악가 조수미, 아이돌그룹 동방신기 출신 가수 김준수, 아이돌그룹 드림캐쳐, 제로베이스원, 몬스타엑스, 아이돌그룹 샤이니의 태민 등이 등장했고, 발표자로 반기문 전 UN 사무총장까지 나서서 지지를 호소했다.
그러나 아무리 K-POP이 세계적 경쟁력을 가졌다 하더라도, 그것이 엑스포 개최에 어떤 긍정적인 역할을 할 것인지에 대한 최소한의 논리적 연결 고리 없이 난사하는 방식의 홍보로는 아무런 감동을 줄 수 없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 주었다. 사실 그 자리에 있는 각국의 대표들이 한국의 셀럽들을 얼마나 알고 있을지도 의문이다. 단지 우리에게 친숙한 사람들을 내세워 우리끼리만 기분 좋은 영상을 만든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심지어 연예인 좋아하는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영상이 아닌가 싶은 의심이 들 정도로 메시지가 1도 없는 저급한 수준이었다.
부산측 핑계는 새로운 것도 아니다
다음으로 국제 행사 유치를 위해 치열했던 각국의 외교전을 한번 살펴보자.
2030년 부산엑스포 유치위원회 자문을 맡은 김이태 부산대 관광컨벤션학과 교수는 부산엑스포 개최 실패가 결정된 직후 현지 기자들을 만나 “사우디 왕세자가 국민 시선을 엑스포·동계올림픽 등 여러 메가 이벤트로 돌려 충성과 지지도를 확보하려 했다”고 했다. 그는 또 “사우디는 오일 머니 물량 공세를 통해 2030년까지 4300조 원을 투자해 수도 리야드를 건설하고자 했다”며 “그중 엑스포 개최를 위해선 10조 원 이상을 투자했고 저개발 국가에 천문학적 규모의 개발 차관과 원조 기금을 주는 역할을 해 금전적인 투표가 이뤄졌다”고 주장했다.
또 그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코로나19, 미·중 갈등 등 여러 요인으로 국제 정세가 요동쳐 세계적으로 경제난이 심화된 것도 원인”이라며 “현실에 흔들리기 쉬운 구도가 형성되면서 객관적 역량에 따르기보다는 저개발 국가가 사우디에 몰표를 주는 결과가 나왔다”고 평했다. 또 “2025년 오사카·간사이 엑스포 개최 또한 영향을 미쳤다”며 “의무사항은 아니지만 투표에 임한 국가들이 관례상 대륙별 안배를 고려했다는 것도 패인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이와 같이 패배 직후 나온 핵심 인사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유치팀이 얼마나 안이한 외교적 인식을 갖고 있는지를 여실히 볼 수 있다. ‘사우디의 금권투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미중갈등’, ‘대륙간 안배’ 등 네 가지를 이유로 들고 있는데, 이것은 돌발 상황이 아니라, 이미 유치전에 뛰어들 때 알고 있던 문제들이다. 이것들이 극복하기 어려운 요인이라 생각했으면, 아예 뛰어들지 않거나, 로마처럼 일찌감치 포기하고 예산을 아꼈어야 했다. 바로 이런 난관들을 헤쳐 나가는 것이 외교의 역할이다.

중·러를 적으로 돌려놓고 무슨 외교를?
필자가 보기에 한국이 외교전에서 가장 치명적으로 실수한 것은, 중국과 러시아를 적으로 돌려 세우고 오직 한미일 동맹 중심의 지극히 철 지난 이념 중심의 외교를 펼친 것이다.
이에 비해 2차 세계대전 이후 오일 달러를 앞세워 친미 진영의 핵심 역할을 했던 사우디는, 올해 브릭스(Brics)에 정식 회원으로 가입하고, 상하이 조약기구에도 가입 신청을 하는 등 친미국가를 벗어나 탈미(脫美)를 지향하는 매우 도발적인 외교를 펼쳤다. 결국 중국의 공개 지지를 얻으면서, 브릭스-상하이 조약기구 및 아프리카와 중남미 등 소위 ‘글로벌 사우스’의 수많은 친중 국가로부터 몰표를 얻을 수 있었다.
반면 한국은 거의 몰빵했다고 봐도 무방한 미국과 일본의 공개지지조차 얻지 못하면서, 사실상 동맹의 외면을 받았다. 현재로서는 인권문제 등으로 사우디를 지지하기 어려운 일부 유럽 선진국을 제외하고는 거의 지지를 얻지 못했다고 봐도 무방한 초라한 결과에 그치고 말았다.
이전 칼럼에서도 밝혔지만, 미중 갈등의 치열한 외교 현장에서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면서 양쪽 진영의 애를 닳게 만들어 원하는 것을 얻어 내고야마는 아랍 특유의 고차원적인 외교력과 협상력을 선보인 사우디에게 외교적 참패를 당한 것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오일머니, 대륙별 안배도 핑계일 뿐
최근 타계한 탈냉전 시대의 설계자 헨리 키신저의 너무나 유명한 말, “미국에게는 영원한 적도 친구도 없다, 오직 국익만 존재할 뿐(America has no permanent friends or enemies, only interests).” 이 말을 다시 한번 마음에 새기게 만드는 숙연한 상황이다.
그리고 사우디의 오일머니에 졌다고 말하기에는 현재 한국이 전체 GDP, 1인당 GDP, 정부 예산 등 어느 하나라도 사우디보다 못한 것이 없다. 사우디에 오일머니가 있다면, 한국은 21세기의 오일이라 일컫는 ‘반도체 머니’가 있지 않은가?
2025년 오사카 엑스포 개최로 대륙별 안배가 영향을 주었다는 것도, 2020년 엑스포 개최국이 사우디 지척의 두바이였음을 감안하면 너무나 구차하기 그지없는 변명이다.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샌다
마지막으로 각국의 국내 상황을 한번 살펴보자.
사우디는 무함마드 빈살만 왕세자를 중심으로 온 국민이 단결하여 강력한 유치 활동을 전개했다. 이는 사우디가 엑스포 유치를 국가적 목표로 삼고, 전방위적인 노력을 기울였다는 점을 보여준다. 김이태 교수의 말처럼 왕권 강화를 위한 정치적인 목적이 노골적이었을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국민적 열망을 모아 온 국민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그러나 한국은 이렇게 중요한 국가적 행사를 추진하면서 단 한 번도 내부의 일치 단결을 위해 애쓴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반대 진영을 ‘반국가 세력’으로 몰아 세우며, 여기서도 철 지난 이념으로 줄세우기를 했다. 유치에 도움이 된다면 한 사람이라도 더 끌어 모아야 할 상황에서 반쪽짜리 날개로만 하늘을 날아오르려 한 것이다. 한국처럼 인적, 물적 자원이 한정적인 나라에서 단합된 전선의 부재는 한국의 입지를 크게 약화시킬 수밖에 없다.
결국 ‘안에서 새는 바가지가 밖에서도 샌다’고, 국내에서 이념으로 편을 갈라 진영 정치를 펼치던 그 버릇을 못 버리고, 국제 외교 무대에서도 같은 방식을 펼치다가 상대편으로부터 빰맞고, 내편으로부터도 외면 받는 초라한 모습을 보고 있다.
이렇게 이번 엑스포 유치는 비정한 외교 무대에서 소외되고 있는 한국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 주었다. 모쪼록 이번 실패를 통해 우리의 부족함을 깨닫고 와신상담하여 2035년에는 부산이 좀 더 성숙한 모습으로 거듭나는 모습을 보고 싶다.
그리고 승리한 사우디에 축하와 응원의 마음을 전하며, 119표의 압도적인 지지를 보여준 국제 사회에 지금까지 약속한 개혁과 개방, 다양성에 대한 존중의 정신을 끝까지 잘 지켜 나가길 바란다. 사우디 엑스포가 지금까지의 어떤 엑스포보다 더 많은 세계의 사람들이 함께 즐거워하고, 열매를 나눌 수 있는 화합과 공존의 무대를 선보여 주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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