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축구 4강전과 북아프리카-유럽 전쟁史
[이근윤의 사우디, 중동 이야기] 우연찮게 성사된 ‘지중해 대전’ 첫 대결은 BC 264년 포에니 전쟁 AD 711년 이슬람의 스페인 상륙 십자군전쟁, 레판토 해전 등
2024년 파리 올림픽 축구 4강전은 모로코-스페인(한국 시간 6일 오전 1시), 프랑스-이집트(한국 시간 6일 오전 4시)의 대진으로 펼쳐진다. ‘지중해 대전’이라 불러도 괜찮을 대진표가 짜여졌다. 한 때 유럽의 식민지였던 북아프리카 국가들과 유럽의 대결이라 흥미진진하다. 또한 기독교와 이슬람의 대결이기도 하다.
얼마전 남자양궁 단체전 8강전에서도 한국-일본(임진왜란 조), 중국-대만(국공내전 조), 인도-튀르키예(무굴오스만 조), 이탈리아-프랑스(세계2차대전 조)로 대진표가 짜여지면서, 두 나라간의 뿌리 깊은 역사적 갈등을 스포츠 경기에 투영하여 승부를 더욱 화끈하게 달군 바 있다.
과거와 현재가 맞물려 있는 이 축구 대진은 유럽과 북아프리카/중동 간의 오랜 정치적, 종교적, 문화적 영욕의 역사를 떠올리게 한다.

포에니 전쟁: 로마와 카르타고의 대결
유럽과 북아프리카가 처음으로 충돌한 것은 포에니 전쟁이었다. 기원전 264년에서 기원전 146년 사이에 세 차례에 걸쳐 벌어진 포에니 전쟁은, 오늘날의 튀니지에 위치한 강력한 해상 제국 카르타고와 이탈리아 반도의 신흥 강국 로마 공화국의 대결이었다.
118년간 이어진 전쟁의 역사는 베르길리우스가 아이네이아스에 기록한 트로이 전쟁사에서부터 시작한다. 그리스 연합군이 트로이 목마를 사용하여 트로이를 함락시킬 때, 어머니 아프로디테의 경고로 미리 도망쳐 겨우 목숨을 구한 아이네이아스는 트로이의 생존자들을 이끌고 디도 여왕이 세운 카르타고에 이른다.
피란길에 아내를 잃은 아이네이아스는 에로스의 화살을 맞아 자신에게 홀딱 반해버린 디도의 끈질긴 구애로 결혼하게 된다. 그러나 제우스가 헤르메스를 보내서 이탈리아로 가서 새 나라를 세우라는 말을 전하자, 아이네이아스는 디도 여왕의 절절한 만류에도 결국 떠나고 만다. 이에 상심한 디도 여왕은 로마와 카르타고 간의 영원한 적대 관계를 예언하는 저주를 내리며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만다.
이 전설과 같은 이야기는 아이네이아스의 후예 로마와 디도여왕의 후예 카르타고 간의 갈등이 단순한 정치적, 군사적 충돌이 아니라 ‘운명적인 대립’이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디도 여왕의 한맺힌 저주 때문인지, 지중해를 둘러싼 패권 전쟁은 오늘날까지 수천년간 이어지고 있다.
포에니(라틴어로 ‘페니키아인’을 뜻한다-편집자주) 전쟁은 특히 카르타고의 한니발 장군이 알프스 산맥을 넘어 로마에까지 이른 행군으로 유명하다. 한니발은 로마를 공격하기 위해 거대한 군대와 코끼리를 이끌고 험준한 알프스를 넘어갔다. 그는 로마를 함락 직전까지 몰아부쳤으나, 로마 스키피오 장군의 역습으로 카르타고가 위험에 처하자 눈물을 머금고 회군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우여곡절 끝에 로마가 승리하며, 비로소 팍스 로마나가 시작된다. 유럽의 첫번째 승리였다. 기원전 147년이다.

이슬람의 확산과 십자군 전쟁
한동안 조용했던 지중해는 711년, 북아프리카의 이슬람 군대가 타리크 이븐 지야드의 지휘 아래 지브롤터 해협을 건너 스페인에 상륙하면서 다시금 전운이 감돈다. 이슬람 군대는 이베리아 반도 대부분을 손에 넣고, 732년 피레네 산맥을 넘어 현재 프랑스 남서부의 보르도를 함락시키고 아키텐공(公) 오도를 격파한 후, 서프랑스의 투르 근방까지 치고 올라 온다. 오도의 긴급요청으로 연합군을 이끌고 온 프랑크 왕국의 샤를마뉴는 투르와 푸아티에 사이에서 유럽의 명운을 건 전투를 벌여 이슬람군에게 치명적 타격을 주었고 압둘 라흐만은 전사하였다. 이 전투는 에드워드 기번이 “세계사를 바꾼 조우”라고 불렀을 정도로 서유럽 기독교 세계를 이슬람의 위기에서 구한 역사적 방어전이었다.
이후 이슬람 제국은 다시는 피레네 산맥을 넘지 못했고, 이베리아 반도의 코르도바에 자리잡은 무슬림들은 먼저 살고 있던 기독교인, 유대교인들과 함께 평화롭게 공존하며 당대 최고 수준의 문화를 꽃피우게 된다.(이전 칼럼, 중동, 11세기 코르도바의 ‘평화와 공존’ 재현할까 참조)
그러나 평화의 균형은 1095년 유럽의 기독교 국가들이 무슬림들로부터 성지 예루살렘을 되찾기 위해 총 8차례에 걸쳐 벌인 십자군 전쟁으로 깨어지고 만다. 유럽의 왕족과 귀족들로 구성된 1차 십자군은 1099년 예루살렘을 점령하고 십자군 국가를 건설한다. 1147년 이마드 앗딘 장기가 무슬림 세력을 규합하여 십자군 국가를 침공하며 시작된 2차 십자군 전투는 1187년 하틴 전투에서 살라딘이 이끄는 이슬람 군대가 십자군을 물리치고 예루살렘을 탈환하며 이슬람의 승리로 마무리 된다.
이에 충격받은 유럽은 1189년에서 1192년 사이에 제3차 십자군을 결성하는데, 잉글랜드의 리처드 1세와 프랑스의 필립 2세, 신성 로마 제국의 프리드리히 1세 등 최정예 부대들이 나섰다. 이들은 살라딘과 싸워 예루살렘을 탈환하려 했으나, 결국 실패하고 일부 영토만을 되찾는데 그치고 만다.
이후 4차에서 8차 십자군까지 유럽은 계속해서 예루살렘을 비롯, 이집트와 튀니지 등을 공격했으나 별다른 성과를 얻지 못하고, 같은 기독교 국가인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하여 약탈하고, 소년 십자군을 노예로 팔아넘기는 온갖 악행만 일삼다 1254년 결국 막을 내리게 된다.

오스만 제국과 유럽의 충돌
1453년 오스만 제국의 메흐메트 2세는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하며 비잔티움 제국의 마지막 남은 수도를 무너뜨렸다. 오스만 제국에 의해 동양과의 무역로가 막히며, 이전에 중개무역으로 번성하던 베네치아, 피렌체 등은 급격히 쇠락하게 되었고, 결국 유럽은 눈을 동쪽에서 서쪽으로 돌려 새 항로를 찾아 나섬으로써 대항해 시대를 열게 된다.
이렇게 유럽의 동쪽은 오스만 제국에 의해 철통같이 막혔지만, 유럽 서쪽에서는 레콩키스타라 불리는 기독교 국가들의 재정복 운동으로, 마침내 1492년 그라나다를 함락시키고 무슬림들을 몰아내는데 성공한다. 1차 십자군 전쟁에서의 승리 이후 거의 400년만에 유럽의 의미있는 반격이 시작된 것이다. 이어 1571년 레판토 해전에서 스페인, 베네치아, 교황령 연합 함대는 오스만 제국 함대를 격파하며 120년간 내어 주었던 지중해 패권을 수복한다.
해상에서 패한 오스만 제국은 육지에서 명예회복을 하려했다. 1683년 카라 무스타파 파샤가 이끄는 오스만 군대는 비엔나를 포위하며 유럽 중앙으로의 진출을 꾀했다. 그러나 폴란드-리투아니아 연합군과 오스트리아, 신성로마제국의 연합군이 이끄는 유럽 방어군은 비엔나 대회전에서 오스만 군대를 격퇴했다. 이 전투를 기점으로 유럽은 완전히 승기를 잡았고, 한번 저물기 시작한 오스만 제국은 다시는 그 힘을 회복하지 못했다.
유럽 제국주의의 식민 통치
해상과 육상의 패권을 모두 장악한 유럽은 과학혁명과 산업혁명을 차례로 성공시키며 막대한 힘을 비축하게 되었고, 제국주의의 본색을 드러내며 전세계를 식민지화하기 시작했다. 지척의 이슬람 세계는 온갖 신문물로 무장한 유럽에게 속절없이 무너져 갔다.
1860년 스페인은 테투안 전투에서 모로코를 패배시킨 후, 1912년부터 프랑스와 함께 보호령을 만드는데 성공한다. 모로코 북부와 남부는 스페인이, 중부는 프랑스가 차지했다. 2차세계대전 후 1956년에 모로코는 독립을 이뤄냈지만 60년이 지난 지금도 경제적으로는 여전히 지브롤터 해협을 통해 건너오는 유럽 관광객들에게 크게 의존하고 있다.
이집트는 1799년 나폴레옹 군이 이끄는 프랑스 군대에 큰 패배를 당한다. 가까스로 오스만-영국 연합군의 도움으로 나폴레옹을 몰아내는데 성공하지만 그 결과 1882년부터 영국의 식민지가 된다. 1952년 혁명으로 왕정이 무너지고 1956년에 수에즈 위기로 인해 완전한 독립을 달성하게 되지만, 지금도 여전히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면에서 불안하기 그지없다. 형식적으로는 독립을 했을지 모르지만, 유럽을 위협하던 과거의 영광을 회복하기까지는 갈길이 멀어도 너무 멀다.
축구는 민족의 자존심
흔히 축구는 총칼없이 치르는 국가간의 대리전이라는 말을 많이 한다. 그만큼 사람들은 축구 경기에 단순한 운동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고, 월드컵에서 우승이라도 하는 날에는 전쟁에서 이긴 것만큼이나 기뻐하며, 우승팀의 환영식은 개선행진을 방불케하는 국가적 행사가 된다.
최근 유로대회 우승팀 스페인과 작년 월드컵 준우승팀 프랑스를, 모로코와 이집트가 이기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공은 둥글고 언더독이 강호를 잡는 일은 종종 일어나기도 한다. 특히 최고 기량의 정예팀이 나서는 월드컵에 비해 어린 선수들이 뛰는 올림픽에서는 더 자주 이변이 일어난다. 만약 북아프리카 팀들이 유럽을 상대로 승리한다면, 이는 단순한 스포츠의 승리가 아닐 것이다. 이는 오랜 식민지 지배와 경제적 어려움을 겪어온 북아프리카 국가들의 자존심을 세우는 일이 될 것이다.
이번 올림픽 4강전은 유럽과 북아프리카의 수천년에 걸친 영욕의 역사가 오버랩될 수밖에 없는 총성없는 전쟁이나 다름없다. 지중해를 둘러싼 복잡한 관계와 갈등이 축구 경기장에서 다시 한번 펼쳐지며, 과거의 아픔과 현재의 도전이 맞물리는 순간을 보여줄 것이다.
올림픽 4강전을 통해 유럽과 북아프리카의 역사를 돌아보며, 스포츠를 통해 시대를 관통하는 재미를 맛보기를 기대한다. 중동에 살고 있는 필자로서는 자연스레 수백년동안 설움을 당해온 북아프리카 팀들의 선전을 기원하지 않을 수가 없다. 무운을 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