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부욕의 화신’을 떠올리며

[송광용의 밤마다 카페테라스] 한해 가장 지도하기 어려웠던 ‘장호’ 과도한 승부욕에 친구들 다치게 해 어른 세계에서도 흔히 보는 모습들 누군가 있기에 내가 빛난다는 것 알까

영화 '리바운드'의 한 장면.
영화 '리바운드'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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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해를 돌아보는 시기다.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이 몸담은 여러 분야에서 시상식 하듯, 영광과 고난을 떠올려보기도 할 것이다. 사실 한해를 정리하고 결산한다고 하면 거창한 말처럼 들리지만, 실상은 “아, 이건 좀 힘들었지”하며 넋두리를 늘어놓거나, “이땐 좀 괜찮았어”하는 자화자찬에 불과할지 모르겠다. 넋두리나 자화자찬이 없으면 또 허전한 게 연말이니, 그런 의미로 소소한 연말 결산을 해보려고 한다.

올해는 체육 전담을 맡아 체육을 지도했다. 이 분야에서 결산을 한번 해보자. 넋두리에 가까운 주제를 선정했다. ‘체육 시간에 어떤 아이를 지도할 때 가장 어려웠나?’ 내 경우엔 ‘승부욕의 화신’들이 대하기 가장 어려웠다.

경쟁 운동을 할 때, 승부욕이 넘치는 아이들은 자주 문제를 일으킨다. 들끓는 경쟁심, 과도한 승부욕은 벽난로 밖으로 튀어나온 장작불처럼 누군가를 다치게도 하고, 주변을 태워버리듯 경기 자체를 망치기도 한다.

승부욕의 화신, 장호

승부욕의 화신 캐릭터를 지닌 아이를 ‘장호’라고 부르기로 하자. 장호는 운동 능력이 뛰어난 아이다. 체육뿐 아니라, 다른 활동에서도 중심에 있길 좋아한다. 누군가에게 이끌리는 것보다 이끄는 걸 선호한다. 선생님이나 친구 앞에서 자기주장이 확실하다. 자연스레 반장 아니면 체육부장 등의 역할을 맡아왔다. 장호는 어떤 활동 목표가 주어지면, 눈을 가린 경주마처럼 엄청난 추진력으로 끌고 가는 힘이 있다. 추진력만으로 목표를 이룰 수 있다면 좋겠지만, 난관에 부딪히는 경우가 많았다.

영화 '해리 포터'의 한 장면.
영화 ‘해리 포터’의 한 장면.

스포츠 경기를 할 때, 장호의 팀이 잘 나간다고 치자. 그럴 때 장호는 들뜬 기분을 주체할 수 없다. 상대 팀을 조롱하고 놀리기 시작한다. 약이 바짝 오른 상대 팀은 플레이가 거칠어지고, 판정에 더 예민하게 굴기 시작한다. 악순환의 고리가 생긴 셈이다. 그래도 장호 팀이 밀릴 때보다 상황이 나쁘지 않다. 장호 팀이 밀리기 시작하고, 플레이가 뜻대로 진행되지 않을 땐 교사인 나도 긴장되기 시작한다.

장호는 같은 팀원들에게 짜증을 내기 일쑤다. 상대방의 플레이 하나하나에 감정적으로 대응하며, 공을 넘겨줘야 할 때 거칠게 차버린다. 교사에게 주의를 받으면 분을 참기 어려운 듯 씩씩댄다. 장호와 그 주변의 아이들에게 스포츠는 이미 즐거움이 아니다. 억울한 아이들도 속출한다.

기분 좋게 시작했던 운동은 여러 아이가 마음을 다친 채 끝난다. 장호가 있는 반에선 어떤 스포츠를 하든, 조금만 경계를 늦추면 그런 패턴이 반복되곤 한다. 미리 시간을 할애해서 운동을 함께 즐기는 태도에 대해 긴 서설을 늘어놓곤 하지만, 경기에만 들어가면 속된 말로 ‘눈이 돌아가’ 버린다.

승부욕은 그 스포츠 안에서 긍정적으로 발현되어야 한다. 벽난로 속 장작불처럼 그 안에서 관리되어야 하는 것이다. 왜 장호는 그 장작불을 경계 밖으로 꺼내서 주변에 던지고 발산하는 걸까.

이긴다는 것이 자신의 존재 가치를 증명한다고 여기는 것이다. ‘과정’에서 즐거움을 느끼고 성취감을 얻은 경험이 상대적으로 적어 그럴지도 모른다. 가정이나 그밖에 환경에서 ‘결과 중심’으로 칭찬과 보상을 받은 아이는 그렇게 ‘성과 중심적’인 사고를 지닌 사람으로 자라기 쉽다.

장호 같은 친구가 있으면 경기전에 하나의 주문을 미리 정해둔다. 이번엔, ‘흥분하지 말자’다. “장호야, 이번 경기할 때 흥분하지 말자. 경기를 즐기자. 져도 괜찮아. 다 같이 즐거우면 되는 거야. 다른 친구도 다 같이 즐겁게. 할 수 있겠어?”

장호는 경기에 대한 기대감으로 웃으며 대답한다. “네!” 막상 경기에 들어가면, 장호의 표정은 싹 바뀐다. 주변 아이들에게 벽난로 속 불붙은 장작불을 꺼내 막 던지려고 할 때, 난 미리 정해둔 주문으로 장호를 일깨운다. “워워, 장호야, 흥분하지 말자. 응?”

그 순간, 장호의 메타인지가 활성화된다. 경쟁에 잡아먹힐 뻔한 자기 모습을 객관적으로 보게 되는 것이다. 장호는 일순간 표정을 풀고 멋쩍은 미소를 보인다. 경기 중에 너덧 번은 더 주문을 말한다. 다행히도 거친 말이나 감정의 부딪힘 없이 경기가 끝난다. 장호에겐 경쟁의 상황에서 눈을 돌려서 자기 자신을 제대로 바라보는 기회를 주는 게 필요하다.

장호의 태도는 우리 사회의 풍경

난 아이들의 문제 행동이 단지 그 아이의 기질 때문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모습이 그렇게 표출된 것이고, 우리와 무관한 것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장호에게 문제가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지만, 실은 어른의 세계에서 우리가 자주 보는 모습들이다. 모든 분야에서 그런 모습을 본다.

당장 눈앞의 경쟁자를 미워하고, 시기하고, 눌러야 직성이 풀리는 모습들. 그런 냉혹함이 경쟁의 미덕이나 미학쯤으로 칭송받을 정도다. 우리 중 얼마만큼이나, 이전의 나와 경쟁하며 성장하려고 애쓰는 것에 만족할까. 같이 달리던 아이가 넘어졌다고, 달리기를 멈추고 친구를 부축해서 함께 결승선에 들어오는 이야기는 그저 가끔 먹는 달달한 쿠키쯤으로 여기는 게 우리의 속마음이 아닐까.

승패가 달린 승부 앞에서, 공정한 룰 안에서 양보 없이 겨루어야 하지만, 상대를 적으로 규정하고 감정을 표출하는 걸 당연하게 여겨선 안 될 것이다. 그것이 스포츠 현장이든, 다른 분야든 말이다. 운동을 할 때 가장 고수는 운동 신경이 뛰어난 사람도, 전략가도 아니다. 난 배려하는 사람이라고 가르친다. 진짜 잘하는 사람은 배려할 수 있다.

프로 리그 같은 무대는 냉정한 세계다. 지면 생존할 수 없다. 어쩌면 승부욕의 화신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세계일지 모른다. 한일전 같은 경기에서도 우린 이기지 못하면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는다. 이런 냉정한 승부들 앞에서, 우린 선수들 사이에서, 또 서포터 사이에서 서로를 미워하고 분노하고 혐오하는 모습을 볼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난 간담이 서늘하다. 어딘가에서 또 다른 장호가 이 경기를 보고 있을 텐데, 저렇게 반응하는 걸 보고 카타르시스를 느끼면 어떡하지, 저걸 당연하다 여기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한편으로, 냉정한 승부 안에서도 그 차가움에 균열을 내는 일이 일어나기도 한다. 골을 눈앞에 둔 공격수가 따라오던 수비수의 근육 통증을 알아채고 공을 바깥으로 차내는 장면이라든지, 조급하게 따라가야 할 경기에서 한 선수가 갑자기 쓰러진 관중을 보고 경기를 멈추곤 의료진을 호출하는 장면이라든지, 베테랑 선수가 자신에게 거친 태클을 했던 어린 선수를 경기 후에 안아주는 장면이라든지. 그런 장면들이, 스포츠가 말하려는 진짜 메시지라는 걸 아이들이 알았으면 좋겠다.

영화 '슈팅 라이크 베컴'의 한 장면.
영화 ‘슈팅 라이크 베컴’의 한 장면.

자세와 태도를 가르치는 일

영국 프리미어리그에서 활약하고 있는 손흥민 선수의 겸손한 태도가 큰 화제가 되고 있다. 손흥민 선수는 잘 되면 동료 탓, 잘못되면 자신 탓을 한다. 배려와 겸손이 몸에 배어 있다. 기본기와 인성을 강조한 손흥민의 부친 손정웅 씨의 교육 철학이 주목받기도 했다. 손흥민 선수의 미담이 쌓일수록 많은 장호에게 할 수 있는 얘기가 많아진다.

운동부든, 체육 시간에 운동하는 아이들이든, 실력을 기르는 일만큼 자세와 태도를 가르치는 일이 중요하다. 실력은 그 분야에 머물지만, 자세와 태도는 그 분야를 넘어서서 그 사람이 가는 모든 분야에서 드러나기 때문이다.

어떤 아이들은 집에 와서 학교에서 운동을 잘했다는 얘길 할 것이다. 많은 부모는 잘한 점을 칭찬해줄 것이다. 그렇지만, 가끔 이런 말도 해주면 좋겠다. “네가 잘하니까, 잘 못하는 친구들도 즐겁게 운동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겠네!”

운동에서든, 어느 영역에서든, 누군가가 나와 함께 하기에 내가 빛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는 플레이어처럼 멋진 이는 없으니까.

글쓴이

송광용 교사·에세이스트

송광용 에세이스트는 청주교대 국어교육과를 졸업했다. 낮엔 초등교사로 아이들을 가르치고, 밤마다 카페에 앉아 글을 쓴다. 에세이, 소설, 동화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 저서로 산문집 <마음이 조금은 헐렁한 사람>이 있다. 밤의 카페테리아에서 만나 이야기를 건네듯, 소소하지만 울림이 있는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바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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