론니니스와 솔리튜드는 이렇게 다르단다

[송광용의 밤마다 카페테라스] 그림책이 알려준 ‘고독’의 가치 ‘고독’을 즐기는 솔리튜드의 태도 “나의 주의를 끄는 것을 알아보고 대가를 지불할 용기를 가져보자”

영화 '내셔널 트레져'의 한 장면. 나의 주의를 끄는 뭔가를 봤다면, 알아보는 용기가 필요하다.
영화 '내셔널 트레져'의 한 장면. 나의 주의를 끄는 뭔가를 봤다면, 알아보는 용기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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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움은 항상 고통인 건 아니다

아이와 종종 어린이 도서관에 간다. 아이가 책을 읽을 동안, 나도 가져간 책을 읽는다. 가끔은 그곳에서 읽을거리를 찾기도 하는데 어린이 도서관이라 사방에 동화책과 그림책 뿐이다. 노르웨이의 그림책 작가 마리 칸스타 욘센의 그림책 <안녕>은 그렇게 읽을거리를 찾다가 만났다.

이 책은 2017년 라가치상을 수상했다. 이 그림책은, 단 한 줄의 글도 없이, 그림으로만 이루어져 있다. 풍부한 이야기를 전하고, 감동을 주는데 그림 만으로 충분하다는 점이 이 책의 놀라운 점이다. 인물의 모습, 생생한 표정을 통해 주인공 소녀와 주변 사람들의 감정을 다 느낄 수 있다. 이 책을 읽은 후 진한 여운이 남는 이유는, 사람의 외로움에 대해 철학적인 통찰을 주기 때문이다.

마리 칸스타 욘센의 그림책 '안녕'
마리 칸스타 욘센의 그림책 ‘안녕’

낯선 곳으로 이사 온 소녀. 학교도 전학해서 새 학교엔 친구가 없다. 친구들에게 미소 지으며 먼저 다가가기도 해봤지만, 반겨주는 친구는 없다. 소녀는 따로 떨어져 지낸다. 마음엔 외로움이 돋아난다. 혼자 있으면서도 시선은 다른 아이들을 향한다.

새 집 소녀의 방에선 바깥으로 작은 섬이 하나 보이는데, 잠을 이룰 수 없던 소녀는 캄캄한 섬에서 뭔가가 반짝이는 걸 본다. 소녀는 조용히 집을 빠져나가서 작은 배를 타고 섬으로 향한다. 섬엔 몸이 빛나는 토끼들이 살고 있다. 소녀는 토끼 한 마리를 배에 싣고 데려와서는 정성스레 돌보고 함께 논다. 토끼를 학교에 데리고 간 소녀는 토끼를 보려고 다가온 아이들에게 관심의 대상이 된다. 소녀는 이제 외롭지 않다. 친구들에게 관심도 받고 토끼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토끼가 섬을 그리워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된 소녀는 토끼를 다시 섬에 데려다준다. 토끼가 없는 소녀에게 아이들은 더 이상 관심을 주지 않는다. 소녀는 다시 혼자가 된다. 그렇지만 소녀는 예전과 다르다. 소녀의 마음엔 빛나는 토끼가 있다. 밤에 홀로 캄캄한 섬을 향해 손을 흔들며 웃을 수 있는 대상이 생겼다. 빛나는 토끼는 소녀에게, 진짜 마음과 시간을 쏟을 만한 대상이었다. 그런 걸 경험한 소녀에게, 신기루 같은 타인의 관심과 피상적인 만남은 별 의미를 갖지 못한다.

소녀는 학교에서 홀로 시간을 보내지만, 이제 다른 아이들을 곁눈질하지 않는다. 자기가 좋아하는 걸 찾아서 하고, 그 시간을 즐기게 된다. 마지막에 소녀는 새로운 짝으로부터 쪽지를 받게 된다. 진정한 관심을 주는 친구가 생긴 것이다.

‘빛나는 토끼’를 가졌나요? 그러면 괜찮습니다

학부모 상담을 할 때 가끔 그런 토로를 들을 때가 있다.

“우리 애가 학교에서 친구들과 잘 어울리나요? 쉬는 시간에 어떤 가요? 친구들과 시간을 많이 보내나요?”

“철수는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에 혼자 시간을 보내는 걸 좋아해요. 주로 책을 읽거나, 그림을 그리죠. 가끔 친구들과 보드 게임을 할 때도 있지만요.”

“그렇지요? 혼자 있는 것만 좋아해서 걱정이에요.”

아이가 주로 혼자 있는 걸 걱정하는 학부모에게 해주는 대답은, 아이에 따라 다르다. 학교에서 다른 친구와 어울리지 않는 이유는 아이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소통의 기술이 미숙하거나 공감 능력이 부족한 경우, 아이는 친구들과 어울리고 싶어 하지만 자주 갈등하게 된다. 다른 아이들과 점점 마음을 나누기 어려워지고, 친구들이 그 아이에게 다가가는 걸 꺼려하게 된다. 그런 아이 같은 경우엔, 학부모에게 소통이나 공감 같은 사회적 기술을 익힐 수 있도록 학교와 가정에서 노력하자고 한다. 집에서 부모님이 아이를 어떻게 도울 수 있을지 이야기해준다.

반면에,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대답하는 경우도 있다. 아이가 비자발적 외로움에 처해 있는 것이 아닌, 자발적 고독 상태를 즐기는 경우다. 어떤 아이는 홀로 자신이 설정한 과업을 수행하며 시간을 보내는 걸 즐긴다. 다른 친구들과 어울려 활동해야 할 때는 또 그 상황에 맞게 행동한다. 모든 시간을 굳이 다른 친구들과 붙어서 보내려고 하진 않는다. 학부모에게 그런 부분을 상세히 설명하면 학부모는 그제야 안심한다.

애니메이션 '바다가 들린다'의 한 장면. 홀로 보내는 시간을 즐기는 아이들이 있다. 이런 아이들은 매 시간 다른 친구들과 놀지 않아도 괜찮다. 자신의 선택에 따라 자발적으로 혼자가 되곤 한다.
애니메이션 ‘바다가 들린다’의 한 장면. 홀로 보내는 시간을 즐기는 아이들이 있다. 이런 아이들은 매 시간 다른 친구들과 놀지 않아도 괜찮다. 자신의 선택에 따라 자발적으로 혼자가 되곤 한다.

하버드 대학 철학과 교수 폴 틸리히는, 혼자 있는 시간을 두 가지 외로움으로 나누어 정의했다. ‘론니니스(Loneliness)’는 혼자 있는 고통을 표현한 말이고, ‘솔리튜드(Solitude)’는 혼자 있는 즐거움을 표현한 말이라고 했다. 혼자 있을 때, 큰 고통과 결핍을 느끼는 사람이 있고, 즐거움을 느끼는 사람이 있다. 다른 사람을 통해 결핍을 채우려고 안간힘을 쓰면, 우린 론니니스의 상태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의존의 챗바퀴를 돌리는 것이다. 홀로 있는 고통을 직면할 수 있어야 솔리튜드의 차원으로 넘어갈 수 있다.

아이들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에겐 그림책 <안녕>의 소녀가 품었던 빛나는 토끼가 필요하다. 그 토끼는, 내가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하는 꿈이기도 하고, 나 자신을 가치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활동, 취미, 노력이기도 하다. 그걸 가지고 있는 사람은, 홀로 시간을 보내면서도 곁눈질 하지 않고 즐거울 수 있다. 폴 틸리히가 말한 솔리튜드(Solitude) 상태 속에 있게 되는 것이다.

혼자 있어도 얼마든지 괜찮은 사람

사람에겐 사람이 필요하다. 그걸 부정할 순 없다. 우린 연약하고 쉽게 상처받는 존재다. 우리에겐 우리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들어줄 누군가가 필요하다. 우린 그렇게 서로에게 기대어 온기와 힘을 얻는다. 때때로 한파가 불어 닥치는 차가운 세계에서 우리가 얼어붙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이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린 혼자 있어도 얼마든지 괜찮은 사람이 될 수 있다. 최소한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만 내 가치를 확인할 수 있는 불안정한 상태는 벗어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할까. 그림책 <안녕>을 다시 소환해보자. 이 얇은 책은 이 물음에 단서를 제공한다. 빛나는 토끼를 만나기 직전, 무슨 일이 있었을까. 소녀는 캄캄한 밤에 어둠 속에서 빛나는 뭔가를 봤다. 소녀는 보고 궁금해 한 것에 그치지 않고, 그게 뭔지를 알아보려고 했다. 굳이 배를 타고 섬에 가는 수고를 했다. 그렇게 행동하지 않았다면, 소녀는 토끼를 만나지 못했을 것이고, 소녀의 마음도, 일상도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어른들은 우리 아이들이 자기 만의 빛나는 토끼를 발견할 수 있도록 돕고, 많은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우리 자신에게도 그런 기회를 열어줘야 한다. 나의 주의를 끄는 뭔가를 봤다면, 알아보는 용기가 필요하다. 잠시 지나가는 반짝임일 수도 있지만, 내 일상을 가치 있는 시간으로 채워줄 그 무엇을 발견하게 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혼자 있어도 즐거울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외로움을 직면하고 내 주의를 끄는 것을 알아볼 노고를 대가로 지불해야 한다.

어른들은 너무 분주하고, 일상에 지쳐서, 내 주의를 끄는 것을 무시하고 지낼 때가 많다. 일생동안 노동하고 은퇴했을 때,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어른들이 의외로 많다. 수많은 모임을 참석하고 폭넓은 관계를 형성하지만 정작 혼자 있을 때 허무함을 느끼는 어른들도 많다. 혼자 있을 때 스마트폰에 빠져드는 것 말고, 누구를 만날 궁리를 하는 것 말고, 온전히 그 시간을 내 것으로 만들고 즐길 줄 아는 것. 우리가 배워야 할 중요한 과제다.

글쓴이

송광용 교사·에세이스트

송광용 에세이스트는 청주교대 국어교육과를 졸업했다. 낮엔 초등교사로 아이들을 가르치고, 밤마다 카페에 앉아 글을 쓴다. 에세이, 소설, 동화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 저서로 산문집 <마음이 조금은 헐렁한 사람>이 있다. 밤의 카페테리아에서 만나 이야기를 건네듯, 소소하지만 울림이 있는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바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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