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섬 프로젝트의 본보기...’이에 프로젝트’

[정연복과 손잡고, 세계의 미술관으로] ‘예술섬’ 나오시마에 관한 이야기 지역 주민과 세계적 예술가 손잡아 주민의 집, 옛공장, 신사, 예술로 재탄생 섬과 바다 등 자연환경과도 조응시켜 장소특정적 예술 본보기...수십만 명 찾아

오타케 신로, 바늘공장(2016). 폐공장인 바늘공장에는 여러 오브제들과 소리 등이 설치되었지만 한 가운데에 놓인 배 건조용 목형(木型)의 존재감이 압도적이다. 사진=정연복
오타케 신로, 바늘공장(2016). 폐공장인 바늘공장에는 여러 오브제들과 소리 등이 설치되었지만 한 가운데에 놓인 배 건조용 목형(木型)의 존재감이 압도적이다. 사진=정연복

▶ 칼럼을 대화로 들어보세요

지난 2024년 전남 신안군의 도초도에 직경 8m의 둥근 구체(球體)로 된 <숨결의 지구 Breathing the Earth>가 설치되었습니다. 덴마크 출신의 세계적인 작가 울라프 엘리아슨의 작품입니다. 누구나 들어가서 공간체험을 할 수 있는데요. 뚫려있는 천장에서 환하게 빛이 들어와 다채로운 색깔의 타일이 영롱한 빛을 발합니다. 우리 모두가 숨쉬고 살아가는 자연, 환경, 지구, 미래를 자연스럽게 생각하게 하는 작품입니다. 또 안토니 곰리는 2026년에 비금도에 큐브로 이루어진 <엘리멘탈 Elimental>을 설치할 예정입니다. 이외에도 신안군의 섬들에는 세계적인 작가들의 작품들이 속속 설치되었거나 준비중입니다.

<신안 예술섬 프로젝트>의 롤 모델

2007년부터 시작된 <신안 예술섬 프로젝트>는 지방소멸 시대에 사람들을 섬으로 다시 돌아오게 하고 세계 각지에서 관광객이 찾아오도록 하겠다는 야심찬 기획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신안군보다 먼저 버려진 섬을 예술섬으로 탈바꿈시킨 프로젝트가 있습니다. 일본 나오시마와 그 주변의 섬들에서 진행된 <베네세 아트 프로젝트>가 바로 그것인데요. 지금도 진행중인 이 프로젝트의 성공 요인은 많지만, ‘이에 프로젝트’의 성과가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에’는 일본어로 ‘집’이라는 뜻인데, 무엇보다도 지역 주민을 소외시키지 않고 그들과의 협업 속에 진행되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합니다. 프로젝트의 시작이 재미있습니다.

1997년 나오시마의 혼무라 지역에 사는 한 주민이 자신의 집을 기증하겠다는 뜻을 전합니다. 200년 정도된 가옥이었는데, 이 곳을 어떻게 활용할 지는 아무도 몰랐죠. 집을 고쳐서 현대예술 작품을 전시하는 것이 좋겠다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고, 작업은 일본의 세계적인 설치미술가인 미야지마 타츠오(1957~)가 맡았습니다. 미야지마가 가옥을 처음 방문했을 때는 누가 봐도 폐가에 가까웠지만 잘만 수리하면 근사한 곳이 되리라는 생각을 했다고 합니다.

지역주민 125명 각각이 느끼는 시간의 속도

‘어떤 작품이 좋을까’ 생각하던 중, 이곳이 섬이고 섬은 바다로 둘러싸여 있다는 것에 생각이 미쳐 방에 물을 채우기로 합니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작품이 <시간의 바다 ‘98>(1998)입니다. 그 10년 전인 1988년, 베니스 비엔날레에 전시되어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던 작품을 새롭게 설치한 겁니다.

미야지마 타츠오, 시간의 바다 ‘98(1998). 200년 된 가옥의 방에 물을 채우고 LED 디지털 카운터가 깜빡거리게 했다. 숫자판의 깜빡거림은 어두운 방안에 신비로운 리듬과 활력, 생명력을 느끼게 한다. 사진=정연복
미야지마 타츠오, 시간의 바다 ‘98(1998). 200년 된 가옥의 방에 물을 채우고 LED 디지털 카운터가 깜빡거리게 했다. 숫자판의 깜빡거림은 어두운 방안에 신비로운 리듬과 활력, 생명력을 느끼게 한다. 사진=정연복

<시간의 바다 ‘98>는 카도야(‘행랑채’라는 뜻)의 안방에 물을 가득 채우고 물 위에 빨강, 초록, 노란색의 LED 디지털 카운터가 1부터 9까지 깜빡거리는 것으로 이루어진 작품입니다. 숫자는 아주 느린 속도에서부터 순식간에 변하는 속도까지 천차만별인데요. 다섯 살부터 아흔 다섯 살에 이르는 지역주민 125명이 생각하는 시간의 속도를 나타낸 것입니다. 말하자면 200년의 삶을 담은 가옥에 나오시마 주민들이 생각하는 시간의 개념을, 그들의 삶의 터전인 바다와 함께 보여주는 겁니다.

<시간의 바다 ‘98>는 전시되는 작품과 전시하는 공간이 함께 어우러져 작품의 의미가 만들어지는 ‘지역특정적’ 작품입니다. 무엇보다 지역민의 참여 속에 작품이 만들어져 ‘이에 프로젝트’가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있습니다.

베네세 하우스 미술관 테라스에 스기모토 히로시의 '바다풍경' 시리즈가 전시되어 있다. 두 콘크리트 외벽 사이로 세토내해가 보인다. 사진=정연복
베네세 하우스 미술관 테라스에 스기모토 히로시의 ‘바다풍경’ 시리즈가 전시되어 있다. 두 콘크리트 외벽 사이로 세토내해가 보인다. 사진=정연복

현대 예술가의 손으로 다시 탄생한 신사(神社)

혼무라 지역에는 ‘카도야’를 포함, 모두 7개의 ‘이에 프로젝트’가 있습니다. 그 중에서 <고오진자 浩王神社>가 제작된 과정이 흥미롭습니다. 오랫동안 지역 공동체의 구심점 역할을 했던 신사가 너무 낡아 지역주민들이 새롭게 정비해줄 것을 요청했고, 작업은 현대 미술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사진작가 겸 예술가 중 한 명인 스기모토 히로시(1948~)가 맡았습니다. 스기모토는 <극장>, <바다풍경>, <건축> 시리즈를 통해 미니멀하면서도 동양적인 사유와 고요를 담은 사진으로 유명한 사진작가입니다.

베네세하우스 미술관에는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탁 트인 테라스에 <바다풍경> 시리즈가 일렬로 배치되어 있는데요. 눈, 비, 바람에 손상될 수밖에 없는 예술의 취약성, 태고적부터 같은 자리를 지키는 자연의 장구함, 그 사이에 찰나로 머무는 인간을 사유하게 합니다.

시간과 공간 속에서의 인간 존재에 대한 관심은 스기모토에게 자연스럽게 건축에도 관심을 가지게 했는데요. 도쿄에서 1시간 거리의 오다와라에 있는 <에노우라 측후소>(2017)는 사진을 통해 보여주던 문제의식을 공간으로 풀어낸 걸작입니다. 이보다 앞서 선보인 스기모토의 첫건축 작업이 바로 <고오진자>(2002)입니다.

스기모토 히로시, 적절한 비율(2002). 일본에서 보게 되는 화려한 장식의 신사와 달리 아무 장식없는 가느다란 기둥, 돌, 유리계단으로 이루어져 있다. 사진=정연복
스기모토 히로시, 적절한 비율(2002). 일본에서 보게 되는 화려한 장식의 신사와 달리 아무 장식없는 가느다란 기둥, 돌, 유리계단으로 이루어져 있다. 사진=정연복

<고오진자>에 가기 위해서는 혼무라 항구 쪽에 있는 야트막한 산을 올라야 합니다. 산에 오르면 세토내해를 굽어볼 수 있는 절벽 안쪽의 평평한 땅에 일견 소박해보이는 신사가 보입니다.

스기모토는 신사를 새로 짓기 위해 일본에서 가장 크고 중요한 신사인 이세진구 안에서도 오래된 형식으로 추정되는 타키하라노미야를 참조했다고 합니다(후쿠타케 소이치로, 안도 타다오 외 지음, 『예술의 섬 나오시마』, 박누리 옮김, 정준모 감수, 마로니에북스, 2013). 그곳에서 찾은 비율에 따라 지은 신사의 제목은 <적절한 비율>(2002)입니다. 현재까지 남아있는 신사들이 주로 메이지 시대 때 지어진 것으로 기둥이 두꺼운 데 반해, 가느다란 기둥으로 된 아무 장식없는 단순미가 돋보입니다.

고오진자의 석실. 어두운 실내에서 유리계단이 빛을 발한다. 사진=정연복
고오진자의 석실. 어두운 실내에서 유리계단이 빛을 발한다. 사진=정연복

24톤 돌 안쪽 파내고 얻은 찬란한 빛

눈에 띄는 것은 신사 뒤에 보이는 유리계단인데요. 지하의 석실로 연결되는 계단입니다. 여기에 스기모토의 대담함과 창의성, 파격성이 있습니다.

천황제 이후에 신을 모시는 곳으로 신사가 확립되기 전, 호족들은 거대한 고분을 지어 세를 과시했습니다. 커다란 돌이나 나무에 영험(靈驗)한 힘이 있다고 믿었던 자연신앙의 오랜 전통을 생각해보면 신사는 고분이 있던 곳에 지어지는 경우가 많았으리라는 유추가 가능한데요. 실제로 신사가 있는 곳에서 고분이 발견된 경우가 많았고요. 이러한 유추를 토대로 스기모토는 신사 아래에 석실을 두는 놀라운 발상으로 다른 시대에 속하는 문화를 하나로 합칩니다. 또한 신토신앙과 불교가 각각 ‘탄생’과, ‘죽음’을 담당하기 전, 전통 무속 신앙의 신전을 상상해서 재현했습니다.

석실은 바다를 내려다보는 절벽 옆의 좁은 통로로 들어가는데, 어두운 안쪽의 계단에서 빛이 쏟아집니다. 지상에서 연결된 바로 그 계단인데요. 사람이 아니라 신을 위한 것입니다. 마치 신의 빛이 지하 깊숙이 스며들어오는 듯이 느껴집니다. 계단의 비밀은 위쪽에 뚫린 틈으로 들어온 빛이 카메라렌즈에 쓰이는 투명도가 높은 광학유리 계단에 반사되는 데 있습니다. 계단을 둘러싼 석실은 오카야마에서 찾은 24톤의 돌 안쪽을 파내서 만들었다고 하니, 그 모든 과정에 들인 공이 놀랍기 그지없습니다.

석실을 관람한 뒤 좁은 통로로 돌아서는 순간 만난 빛무리. 자연과 건축이 빚은 신비에 절로 탄성이 나온다. 사진=정연복
석실을 관람한 뒤 좁은 통로로 돌아서는 순간 만난 빛무리. 자연과 건축이 빚은 신비에 절로 탄성이 나온다. 사진=정연복

관람한 뒤 출구로 나오기 위해 뒤돌아서는 순간 또 한 번 놀라게 됩니다. 세토내해에서 찬란한 빛이 들어와 매끄러운 콘크리트벽에 반사되면서 빛무리를 만든 겁니다. 나와서 다시 보는 바다는 들어가기 전과는 완전히 달라 보입니다. 건축은 스기모토가 했지만 방문객에게 예술적이면서도 종교적인 여정을 하도록 이끄는 것은 태고 이래로 장구한 자연이라는 생각을 하며 천천히 산을 내려왔습니다.

오타케 신로, 혀 위의 꿈/보콘노조키(2006). 문을 닫은 치과이자 의사가 살던 집에 회화와 조각 등과 함께 버려진 여러 오브제들을 설치한 작품. 사진=정연복
오타케 신로, 혀 위의 꿈/보콘노조키(2006). 문을 닫은 치과이자 의사가 살던 집에 회화와 조각 등과 함께 버려진 여러 오브제들을 설치한 작품. 사진=정연복

과거를 되돌아보는 눈물겨운 공간과 시간

‘이에 프로젝트’에 참가한 작가 중 빼놓을 수 없는 작가가 일본 현대 미술계를 대표하는 거장, 오타케 신로(1955~)입니다. 나오시마에 있는 <아이러브유 I♥湯>(2009), <혀 위의 꿈/보콘노조키>(2006), <바늘공장>(2016)이 그의 작업입니다.

<아이러브유 I♥湯>는 오래된 목욕탕을, <혀 위의 꿈/보콘노조키>는 문을 닫은 치과의사가 살던 집을, <바늘공장>은 어업, 생활용 바늘을 만들던 옛공장에 오타케 특유의 콜라주 작업을 하여 공개한 곳입니다. 그는 오랜 기간 지역 사람들의 삶과 밀접한 관계를 이어왔던 공간 안팎에 오래되고 낡고 버려지는 오브제들을 조각, 회화 등과 함께 배치합니다. 오브제들은 낡고 촌스럽고 싸구려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작품을 보고 있으면 재미있기도 하고 하나하나가 다 눈물겹도록 소중한 시간을 담고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테시마에 있는 <바늘공장>에는 공장에서 쓰던 낡은 기계, 공구, 철제구조물, 의자, 상자, 기계음, 바람소리, 음악 등 과거 사람들의 흔적을 여기저기 설치해놓았습니다. 무엇보다 배 건조용 목형(木型)으로 제작되었다가 30년 이상 조선소에 방치되어 있던 17m 길이의 큰 선체를 뒤집은 채 바닥에 놓았는데요. 뒤집힌 채 엉뚱한 곳에 유배당한 듯 놓인 배는 일상의 기능에서 벗어나 ‘데페이즈망(프랑스어 dépaysement, 낯설게 하기)’ 효과를 불러일으킵니다. 옛 바늘공장과 뒤집힌 배는 오래되고 폐기처분된 것이면서 테시마 주민들의 삶과 시간의 기억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는 점에서 닮았습니다.

장소특정적 예술, 수십 만 관광객들을 불러모아

이렇게 전세계 어디에서도 보기 어려운, 생활 공간을 그대로 미술관으로 확장한 ‘이에 프로젝트’는 장소, 시간, 기억에 대한 오마주를 펼치는 ‘장소특정적 예술’을 보여줍니다. 그곳에 가야만 볼 수 있고, 그곳에서만 가질 수 있는 특별한 의미가 있기 때문에 전세계에서 매년 수십 만의 방문객을 불러모으고 있고요. 나오시마뿐 아니라 이누지마, 테시마, 쇼도시마에서 다양한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시오타 치하루, 선의 기억(2025). 오래된 가옥과 쓰임을 다한 제면기가 집안을 가득 채운 붉은 실 덕분에 여전히 살아숨쉬는 강한 생명력을 뿜어내는 듯이 보인다. 사진=정연복
시오타 치하루, 선의 기억(2025). 오래된 가옥과 쓰임을 다한 제면기가 집안을 가득 채운 붉은 실 덕분에 여전히 살아숨쉬는 강한 생명력을 뿜어내는 듯이 보인다. 사진=정연복

특히 2010년 시작되어 3년마다 열리는 세토우치 트리엔날레는 새로운 프로젝트가 소개되는 계기가 되는데요. 2025년 여러 작품이 새로 공개되었는데, 일본 출신의 세계적인 설치 미술가인 시오타 치하루(1972~)의 <선의 기억 Memory of lines>(2025)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시오타는 오랜 세월 국수를 뽑아냈던, 더 이상 쓰이지 않는 세 대의 제면기를 보고 작품을 구상했다고 합니다.

허물어질 듯이 낡은 채로 비어있던 가옥에 더 이상 쓸모는 없지만 버릴 수 없는 제면기를 가운데 두고 집 전체를 붉은 실로 휘감아놓았습니다. 마치 방 한가운데에 놓인 제면기에서 실이 뿜어져 나오는 듯, 보는 순간 엄청난 에너지가 느껴졌는데요. 시간이 흘러도 아무것도 약해지거나 사라지지 않고 강한 생명력으로 꿋꿋이 이어진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거미가 벌레를 잡아먹고 자신의 몸을 보호하기 위해 거미줄을 치듯이 시오타의 붉은 실은 삶과 죽음, 상실과 치유, 기억과 망각, 소멸과 재생을 찬란하게 펼쳐주고 있었습니다.

섬주민들의 삶이 깃든 장소에 그들의 삶의 흔적을 담은 작품을 전시하는 ‘이에 프로젝트’는 예술이 바로 나의 삶에서 나오고 그것을 아름답게, 오래 기억하게 해준다는 느낌을 줍니다. 주민들은 마을을 더 깨끗하고 아름답게 하는 일에 자발적으로 나서게 되고, 자연스럽게 마을에 대한 만족감과 자부심은 더 커져갔습니다. <베네세 아트 프로젝트>가 시작할 때 후쿠다케 소이치로 회장이 했던 말, “노인의 웃음이 넘치는 곳”으로 만들겠다는 말이 실현되었다고 할 수 있겠죠.

신안군의 <예술섬 프로젝트> 역시 지역민의 자발적인 참여와 함께 자연과 예술, 삶이 아름답게 어우러지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글쓴이

정연복 미술평론가

정연복 미술평론가는 서울에서 불문학 학위를 받았으며, 프랑스에서 미술사를 공부했다. 현재 중앙대에서 예술사 강의를 한다. 사조의 이해나 단순지식보다는 직관적인 경험으로서의 예술이해에 관심이 많다. 삶에서 예술이 나오고 예술이 곧 삶이 된다는 것, '아는 만큼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는 만큼 느끼는 것'이라는 믿음으로 그림과 미술관에 관한 글을 쓰고 강연을 한다.

댓글

    함께 읽을 글

    칼럼 전체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