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예술의 ‘자유와 평등 아이콘’ 퐁피두 센터
[정연복과 손잡고, 세계의 미술관으로] 50여년 전 문화 아이콘, 자유·민주의 상징 “창조적 영감 공유하자는 퐁피두의 염원” 차별화된 충격적 건축물의 문화센터 11만 작품 보유한 세계 3대 현대미술관 오마주 가득한 틸만스 사진전시회
당분간 못 만나는 퐁피두 센터
1977년 1월 31일은 프랑스 파리에 퐁피두 센터가 문을 연 날입니다. 바로 다음날인 2월 1일자 『르 피가로(Le Figaro)』紙 에는 “파리에 공장이 세워졌다.”, 2월 2일자 『르 몽드(Le Monde)』에는 “유리와 철의 괴물”, 이어 2월 3일자 美 뉴욕 타임즈(NewYork Times)에는 “파리의 새로운 문화적 아이콘, 아니면 실패작인가?”라는 기사들로 혹평과 의구심이 이어졌죠. 전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던 새로운 건축물도 50여 년의 시간이 흐르는 사이 2025년 9월 대대적인 개보수에 들어갑니다. 오는 9월 22일 개보수에 들어가 5년간 문을 닫습니다.
퐁피두 센터의 탄생 이야기는 1960년대 말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파리에는 1947년부터 <팔레 드 도쿄>에 국립현대 미술관이 있었으나 국가 주도의 문화정책 속에서 발빠르게 현대미술의 동향을 담아내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이에 1969년, 대통령에 당선된 조르주 퐁피두는 파리중앙시장 인근의 보부르(Beaubourg) 지역의 공터를 현대미술관 부지로 낙점합니다.
낙후된 지역에 대한 도시재생 사업의 일환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이곳에 현대미술관과 도서관, 음악 센터 등을 아우르는 복합문화센터를 짓기로 결정합니다. 퐁피두 대통령은 1972년 10월 17일자 『르 몽드』와의 인터뷰에서 “무수한 도서관 이용자들이 동시에 예술을 접하게 될 것”이라며 자신의 바람을 분명히 드러냈는데요. 말하자면 ‘퐁피두 센터’는 예술의 문턱을 낮추고 모든 사람들이 한 장소에서 창조적인 영감을 공유하게 하겠다는 민주적인 염원과 함께 탄생을 준비합니다.
1970년 8월 26일 건축 공모전을 위한 준비위원회가 발족되고 1971년 7월 15일 렌조 피아노(Renzo Piano), 리차드 로저스(Richard Rogers), 지안프랑코 프란치니(Gianfranco Franchini)의 건축디지인 안이 채택됩니다.
예술과 사람 사이 특별하면서 자유로운 관계
건축물은 충격적이었습니다. 19세기에 지어진 오스만식 아파트 숲 가운데 공사현장의 비계처럼 보이는 철골구조물이 외관을 감싸고 있을 뿐만 아니라 모든 배관시설이 겉으로 다 드러났으니까요. 수도파이프, 비상계단, 엘리베이터, 에스컬레이터, 냉난방설비, 통풍구 등은 각기 다른 색깔로 존재감을 과시합니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면 ‘보이지 않던 것을 과감하게 밖으로 꺼내놓겠다’는 발상은 경계를 허물고 늘 새로운 도전을 멈추지 않는 현대예술을 닮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렌조 피아노는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는 문화 건축물의 이미지를 깨부수고 싶었다. 예술과 사람들 사이의 특별하고도 자유로운 관계를 꿈꾸었다”고 건축에 담은 뜻을 밝혔습니다.
전세계 어떤 문화센터와도 차별화되는 퐁피두 센터만의 특성은 건물 앞에 있는 넓은 마당입니다. 건물 방향으로 조금씩 내려가는 경사진 마당에는 1년 내내 사람들이 누워있거나 앉아서 쉬거나 담소를 나눕니다. 노래나 춤 등 각종 공연, 아크로바틱이나 마술쇼도 매일같이 볼 수 있고요. ‘라 뉘 블랑쉬(La Nuit Blanche, 파리 백야축제)’나 음악축제 등 행사가 있는 날이면 공연을 보러 오는 사람들로 입추의 여지가 없습니다. 퐁피두 센터만큼이나 자유롭게 문화와 예술을 즐기고 영감을 나누는 창의적인 교류의 장이 바로 그 앞 ‘넓은 마당’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체의 신분증 검사도 없는 ‘민주적 공간’

퐁피두 센터에는 뉴욕 MoMA와 런던의 Tate Modern과 함께 세계 3대 현대 미술관으로 거론되는 국립현대미술관(MNAM)이 있습니다. 2020년 1월 1일 기준, 작가 6,034명의 11만 1,457건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고요. 그뿐 아니라 공공정보도서관(BPI, Bibliothèque Publique d’imformation), 음악 및 음향 연구 센터(IRCAM), 공연장, 영화관, 어린이 갤러리 등을 갖추고 있습니다. 2010년 5월 12일 메츠(Metz)에 문을 연 퐁피두 센터 메츠(Centre Pompidou-Metz)를 필두로 스페인 말라가, 중국 상하이, 벨기에 브뤼셀, 우리나라 서울 등 세계 곳곳으로 전시공간을 확장하는 중입니다.
퐁피두 센터로 들어가보도록 할까요? 1년 내내 전세계에서 오는 관람객들로 북적거리던 퐁피두 센터는 철지난 바닷가처럼 어딘지 모르게 쓸쓸한 느낌을 줍니다. 도서관과 미술관을 비롯, 모든 기관이 문을 닫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기능이 멈춘 곳에서, 그것도 국립현대미술관이 아니라 대부분의 책과 집기들이 빠져나간 도서관에서 아주 특별한 전시회가 열리고 있습니다.

퐁피두 센터 도서관은 40여 만 권에 이르는 장서뿐 아니라 전세계의 신문과 잡지, 정기간행물, 어학공부실, 영상관람석 등을 구비하고 있어 취향에 따라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곳입니다. 특히 예술 분야에서는 파리의 어떤 도서관보다 최신 서적과 자료를 신속하게 구비하는 곳이라 전공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던 곳이고요. 무엇보다 도서관은 간단한 짐검사만 하면 불법체류자건 노숙자건 누구나 들어갈 수 있는, 민주적인 곳이었습니다. 회원카드를 만들거나 신분증 검사를 하거나 돈을 낼 필요도 없습니다. 책을 읽건 영상자료를 보건 잠을 자건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하루종일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곳이라 갈 곳 없는 노숙자들의 쉼터이기도 했습니다.

사진작가 탈만스의 다양한 오마주
누구나에게 열려 있고 모든 것을 할 수 있었던 도서관이 폐관 전 특별한 전시회의 주인공으로 택한 작가는 독일 출신의 사진작가 볼프강 틸만스(Wolfgang Tillmans, 1968-)입니다. 2025년 6월 15일자『르 몽드』에 실린 인터뷰에서 틸만스는 전시회를 제안받았을 때 전혀 망설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최근에 뉴욕에서 했던 “화이트 큐브”와 같은 큰 전시회가 아니라 완전히 다르고 새로운 것을 하도록 초대받는 것은 하나의 큰 선물이라고 생각했다. 퐁피두 센터는 내게 미래주의적, 유토피아적, 형태적 실험이고, 내 어린 시절의 대담함이다.”
틸만스 사진작업의 미학과 문제의식은 전방위적입니다. 전시회에서는 20대 초반 클럽을 드나들며 청년문화의 민낯을 거칠게 드러낸 작업부터 예술과 패션의 경계를 허문 패션사진, 카메라없이 감광지에 직접 빛과 화학물질을 가해 작업했던 추상사진, 런던과 베를린을 오가며 반(反) 브랙시트, LGBTQ+ 권리, 민주주의, 환경문제에 관심을 기울이던 시기를 거쳐 테이트모던, 모마, 함부르크 반호프 등에서 대규모 전시회를 개최하는 최근의 주목받는 작품까지 35여 년에 걸친 다채로운 작품세계를 접할 수 있습니다.

틸만스는 독특한 전시 구성으로 현대 사진 전시에 깊은 영향을 끼쳤는데요. 테이블을 적극 활용하여 잡지나 책, 신문 기사, 오브제들을 수평적으로 전시합니다. 벽에는 다양한 크기, 장르, 흑백, 컬러 사진 작품이 액자도 없이 핀으로만 고정되어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관람자들은 ‘완성된’ ‘최고의’ 작품을 ‘따로따로’ 보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비추는 이미지와 자료들 사이를 유랑하면서 세상에 대한 틸만스의 시선과 목소리에 주의를 기울이게 됩니다.

이 전시의 매력은 전시장이 사진 전시를 위한 배경에 머물지 않는다는 점인데요. 퐁피두 센터 건축물과 50여 년의 도서관의 역사가 중요한 주제로 부각됩니다. 전시는 우선 도서관이용자들에 대한 오마주를 펼칩니다. 틸만스는 2024년 11월 일부 도서관 이용자들의 영상을 찍었는데, 참가자들에게 틸만스가 요구한 것은 한 가지. 평소 옷차림 그대로, 도서관에서 하던 그대로 할 것.
<공공정보도서관 초상화 BPI portraits>(2024)라는 제목의 이 영상은 도서관 어학 공부 전용석인 <독학 Autoformation>용 60개 좌석에서 볼 수 있는데요. 음악을 듣거나 검색을 하거나 그냥 멍하게 있거나 책을 읽는 다양한 사람들을 볼 수 있습니다.

현존과 부재의 절묘한 배치로 도서관이 품은 시간에 대한 오마주도 보여줍니다. 틸만스는 도서관을 가득 메우고 있던 책장 중 두 칸을 그대로 둘 것을 요구했습니다. 바닥에는 책장과 나란히 행렬을 이루는 보라색 양탄자가 보이는데요. 이는 2000년 도서관 수리 때 기존의 시설물을 둔 상태에서 새로운 양탄자를 깔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보라색 양탄자는 지나간 시간의 흔적이면서 사라진 책장의 부재를 증명합니다. 도서관의 오랜 시간을 증명하는 보라색 양탄자는 전시장 곳곳에서 보이는데요. 때로는 작은 네모, 때로는 긴 띠로 공간을 구획하고 리듬을 주는 띄어난 디자인적 요소가 되기도 합니다.

5년 뒤에도 지금과 같은 예술품일까
건축물에 대한 오마주도 잊지 않습니다. 도서관 책상에 설치한 거울을 통해 천장이 비치도록 한 겁니다. 이곳이 건축과 예술, 문화를 선도해온 전위적인 공간임을 이보다 더 명료하게 보여줄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뛰어난 설치였습니다.
전시회를 뒤로 하고 나서는 발걸음이 못내 아쉽습니다. 그 어떤 전시회에서도 갖기 어려운 느낌인데요. 과연 5년 뒤 공사가 끝날 수 있을 것인가? 다시 문을 열었을 때 퐁피두 센터는 지금 서 있는 여기와 같은 곳일까?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개보수를 하는 것임에도 오래된 공간에 작별을 고한다는 것이 특별한 상념에 빠지게 한다고나 할까요? 그렇긴 해도 석면 제거와 40% 정도의 냉난방비 절감, 장애인 접근성 향상 등 ‘지속가능하고’ ‘모두에게 열린’ 공간이 되기 위한 과정이니 기쁜 마음으로 기다려야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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