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약 터지듯, 늑대 울부짖듯...나오시마 신미술관

[정연복과 손잡고, 세계의 미술관으로] 올 5월31일 ‘아시아 작가’ 위해 개관해 건축물은 안도 다다오의 철학 고스란히 한국의 서도호 작품 ‘The Hub/s’도 설치미술가 차이궈창의 압도적 작품들 99마리 복제 늑대와 화약 폭발 드로잉

벽에 걸린 작품이 화약드로잉 '소용돌이 Vortex'(2006). 종이에 화약을 깔고 불을 붙인 다음 바로 끈다. 어느 정도의 의도와 훨씬 더 많은 우연의 작용으로 그림이 그려진다. 차이궈창은 어린시절 경험한 불꽃놀이의 강렬함, 폭발과 파괴가 만들어내는 우연적인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화약드로잉 작업을 한다. 사진=정연복
벽에 걸린 작품이 화약드로잉 '소용돌이 Vortex'(2006). 종이에 화약을 깔고 불을 붙인 다음 바로 끈다. 어느 정도의 의도와 훨씬 더 많은 우연의 작용으로 그림이 그려진다. 차이궈창은 어린시절 경험한 불꽃놀이의 강렬함, 폭발과 파괴가 만들어내는 우연적인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화약드로잉 작업을 한다. 사진=정연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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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꽃놀이와 설치미술의 거장 ‘차이궈창’

지난 10월 22일 파리 퐁피두 센터에서는 자신의 얼굴이라고 할 수 있는 붉은 계단 주변을 시작으로 거대한 불꽃놀이가 펼쳐졌습니다. 1977년에 문을 연 혁신적인 건축물에 대해 앞으로 5년 동안의 대대적인 개보수 공사를 하기에 앞선 피날레 행사였습니다. 7분 정도 소요된 이 행사는 세계적인 설치미술가 차이궈창(蔡國強, 1957~)의 작품이었습니다.

그는 ‘화약’이라는 동양의 발명품을 창조와 파괴, 자연과 사회, 동양 철학과 현대 미학을 용합하는 도구로 사용한 세계적인 현대 미술가입니다. 1999년 베니스비엔날레에서 국제 황금사자상을 수상했고,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에서 하늘을 수놓았던 인간발자국 불꽃놀이로 전세계인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던 작가입니다.

지난 10월 22일 퐁피두 센터에서 열린 불꽃놀이. 차이궈창의 작품이다. 사진=Thibaud Moritz/AFP 게티이미지
지난 10월 22일 퐁피두 센터에서 열린 불꽃놀이. 차이궈창의 작품이다. 사진=Thibaud Moritz/AFP 게티이미지

불꽃놀이는 명성이 높은 반면 환경을 훼손하고 생태계를 교란한다는 비난에 직면하기도 했는데요. 그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 9월 19일 세계적 등산업체인 아크테릭스의 후원으로 티베트 고원지대에서 했던 불꽃놀이입니다. 52초간 타오른 불꽃은 승천하는 용을 표현했는데, 강한 빛과 소음, 행사 후의 쓰레기 문제 등으로 후원업체와 작가는 사과와 함께 배상을 약속해야 했습니다.

하늘을 캔버스 삼아 그림을 그린다는 차이궈창은 불꽃놀이뿐만 아니라 거대한 규모의 설치미술을 많이 제작했습니다. 오늘은 일본 세토 내해의 아름다운 섬, 나오시마에 새로 문을 연 나오시마 신미술관으로 달려가 차이궈창을 만나보도록 하겠습니다.

회색 부분이 일본의 세토 내해다. 나오시마는 오카야마시 아래에 위치해 있다.
회색 부분이 일본의 세토 내해다. 나오시마는 오카야마시 아래에 위치해 있다.

올해 5월 31일 개관한 나오시마 신미술관

세토 내해는 일본의 혼슈, 시코쿠, 큐슈로 둘러싸인 아름다운 바다입니다. 내해로 둘러싸인 그곳에는 700여개의 섬이 있는데요. 그 중 7.81㎢에 불과한 작은 섬 나오시마와 그 주변의 섬들을 예술섬으로 만들려는 프로젝트가 1980년대 후반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사람들이 살다 버리고 간 집이 미술관이 되고, 가동을 중단한 공장이 예술작품이 되는 곳, 지역 주민을 소외시키지 않고 함께 작업에 참여시킨 곳, 그리하여 예술 속에 삶이, 삶 속에 예술이 함께 하는 프로젝트를 이끌고 총지휘한 사람은 베네세재단 명예회장인 후쿠타케 소이치로입니다. 원래 회사명이었던 후쿠타케 서점을 ‘잘 살다’라는 뜻의 ‘베네세’로 바꾼 것도 잃어버린 것을 회복하고 행복한 삶을 가꾸어나가겠다는 후쿠타케 회장의 염원에서입니다. (더칼럼니스트 2024년 칼럼 참조).

나오시마의 미술관들은 주로 섬의 서쪽에 있다. 미야노우라 항에 내리면 쿠사마 야요이의 '붉은 호박'(2006)을, 스기모토 히로시 갤러리를 구경한 다음 바닷가로 내려오면 '노란 호박'(1994)을 볼 수 있다. 사진=정연복
나오시마의 미술관들은 주로 섬의 서쪽에 있다. 미야노우라 항에 내리면 쿠사마 야요이의 ‘붉은 호박’(2006)을, 스기모토 히로시 갤러리를 구경한 다음 바닷가로 내려오면 ‘노란 호박’(1994)을 볼 수 있다. 사진=정연복

‘베네세 아트 사이트 프로젝트’에는 많은 예술가와 건축가가 참여했는데요. 건축가 안도 타다오의 업적은 독보적입니다. 후쿠타케는 처음부터 안도 타다오와 손을 잡고 프로젝트를 시작합니다. 1992년 베네세하우스 뮤지엄이 문을 연 이후, 숙박시설인 베네세하우스 오발, 파크, 비치(1995)에 이어, 제임스 터렐의 작품 <달의 뒷면 Backside of the moon>(1999)을 위해 지은 미나미데라(1999), 지추미술관(2004), 이우환 미술관(2010) 등이 차례로 방문객을 맞이했습니다. 100년된 목조 주택 안에 콘크리트 벽을 설치한 안도 뮤지엄(2013), 밸리 갤러리(2022)에 이어 열 번째 건축물이 올해(2025년)에 완공되었습니다.

지난 5월 31일에 개관한 나오시마 신미술관이 바로 그곳입니다. 베네세하우스 뮤지엄을 비롯해 대부분의 건축물이 섬의 서쪽에 있다면, 나오시마 신미술관은 미나미데라와 안도 뮤지엄과 함께 나오시마의 본촌(本村)이 있는 섬의 동쪽에 있습니다. 이제 나오시마 신미술관에 가까이 가볼까요?

혼무라 지역의 언덕 위에 지어진 나오시마 신미술관. 사진=Benesse Art Site Naoshima
혼무라 지역의 언덕 위에 지어진 나오시마 신미술관. 사진=Benesse Art Site Naoshima

후쿠다케 명예회장 예술경영의 정점

신미술관은 안도 타다오의 건축철학을 잘 보여줍니다. 완만한 경사의 지붕이 있는 지상 1층의 건물로 혼무라 지역의 언덕 위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세토 내해를 굽어보는 자연경관을 해치지 않으면서 오래된 소박한 마을과 잘 어우러지도록 하려는 배려가 돋보입니다. 덕분에 방문객은 언덕의 계단을 한참 올라가야하는데요. 겉에서 보면 야트막한 건물이지만 지형지물을 이용한 구조 덕분에 전시실은 지상 1층에서 길게 대각선으로 뻗어있는 계단을 통해 지하 1층과 2층까지 이어집니다. 계단 위에는 삼각형의 천창이 세 개 뚫려 있어 시시각각 다른 빛의 그림이 노출 콘크리트벽에 펼쳐질 뿐만 아니라 지하 2층까지 자연광이 환하게 쏟아집니다.

후쿠타케 명예회장은 말합니다. “나오시마 신미술관은 지난 35년이 넘는 기간 동안 내가 해왔던 작업의 정점이라 할 수 있다. 이를 위해 우리는 아시아 미술에 초점을 맞출 것이고, 베네세 아트 사이트 나오시마의 소장품은 서양에서 일본을 포함한 아시아까지 확장될 것이다. 나는 신미술관이 행복한 공동체 형성에 기여함으로써 밝은 미래를 상징하기를 바란다.”

나오시마 지역 대부분의 다른 미술관에서는 일본과 서구의 유명한 예술가 작품만 볼 수 있어서 아쉬움이 컸는데요. 기대감과 설렘을 안고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는 기분으로 전시장에 들어갑니다.

개관展 '기원에서 미래로' 지상 1층의 전시장. 사진=Benesse Art Site Naoshima
개관展 ‘기원에서 미래로’ 지상 1층의 전시장. 사진=Benesse Art Site Naoshima

개관전은 <기원에서 미래로 From the origine to the future>라는 제목으로 12 명의 작가/팀이 참여했습니다. 미술관 1층의 입구와 전시실은 일본, 인도네시아, 필리핀, 인도, 말레이시아, 태국 출신 등 다양한 아시아 작가들에게 할애되었는데요. 사진, 영상, 조각, 회화, 설치 작품의 공통된 주제는 역사, 환경, 지속가능한 미래, 폭력, 전쟁, 억압에 대한 저항입니다.

힘으로 세계를 양분하고 지배해왔던 서구가 아니라 인류의 오랜 역사에서 변방에 속했던 아시아권 작가들의 목소리를 아시아의 작은 섬에서 들려준다는 점에서 작품들의 울림은 크고 묵직합니다.

서도호가 살았던 서울, 뉴욕, 호샴, 런던, 베를린에 있던 집들과 나오시마를 파스텔톤의 투명한 폴리에스테르 천으로 나타낸 'The Hub/s'(2025). 사진=정연복
서도호가 살았던 서울, 뉴욕, 호샴, 런던, 베를린에 있던 집들과 나오시마를 파스텔톤의 투명한 폴리에스테르 천으로 나타낸 ‘The Hub/s’(2025). 사진=정연복

지하 1층으로 내려가면 우리나라 작가 서도호의 작품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는 서울에서 태어난 세계적인 설치 미술가이자 조각가, 화가입니다. 이곳에서는 서도호가 살았던 서울, 뉴욕, 호샴, 런던, 베를린에 있던 ‘집’들과 나오시마를 파스텔톤의 투명한 폴리에스테르 천으로 나타낸 <The Hub/s>(2025)이 있습니다. 서도호 작품의 모태라고 할 수 있는 성북동 한옥이 옥색, 분홍색, 겨자색으로 특히 아름답습니다. 지하 2층에는 2 개의 전시실이 있어 Chim↑Pom from Smappa! Group, 아이다 마코토, 차이궈창, 무라카미 다카시를 만날 수 있습니다.

차이궈창의 '정면돌파 Head on'(2006). 실물 크기의 늑대 복제품이 거대한 유리벽을 향해 돌진하고 쓰러지고 다시 일어나 돌파하려고 뛰어드는 장면을 보여준다. 화약드로잉 '소용돌이'(2016)가 왼쪽 벽에 보인다. 사진=정연복
차이궈창의 ‘정면돌파 Head on’(2006). 실물 크기의 늑대 복제품이 거대한 유리벽을 향해 돌진하고 쓰러지고 다시 일어나 돌파하려고 뛰어드는 장면을 보여준다. 화약드로잉 ‘소용돌이’(2016)가 왼쪽 벽에 보인다. 사진=정연복

99마리의 복제 늑대 무리가 뛰어오르는 듯

모든 작품이 흥미로웠지만 차이궈창의 <정면돌파 Head on>(2006)는 압도적이었습니다. 전시실에 들어서는 순간 탄성이 절로 나오는 놀라운 작품입니다. 99마리의 실물크기 늑대 복제품이 바닥에서 뛰어오르는 동작을 정지화면으로 연속해서 보여주는 듯한 형상인데요. 늑대들은 가느다란 줄로 천장에 매달려 있습니다. 관람객의 이동 때문인지 미세하게 흔들리기도 해서 금방이라도 살아 움직일 것 같은 착시도 불러일으킵니다. 어디론가 달려가던 늑대들은 전시실 안쪽에 놓인 유리벽에 부딪힙니다. 늑대들은 충격으로 나뒹굴면서도 다시 일어나 출발지점을 향해 뛰어갑니다.

이 작품이 처음 공개된 것은 2006년 베를린 도이치 구겐하임에서 열렸던 작가의 개인전에서였습니다. 작품에 놓인 유리벽의 높이가 베를린 장벽의 높이와 같은 이유입니다. 작가는 불가능해보이는 일에 끊임없이 도전해온 인류의 역사, 그 도전을 통해 결국은 무너진 베를린 장벽을 기념하고 상기시키고 싶었을까요? 다른 한편으로는 무한히 반복해서 달려가고 부딪히는 늑대무리는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뭔가에 사로잡혀서 무리를 쫓아 집단적인 행동을 반복하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생각하게도 합니다.

이 작품은 첫 전시 이후 뉴욕 구겐하임(2008), 빌바오 구겐하임(2009) 등 여러 차례 전시되다가 베네세 컬렉션이 되어 올해(2025년) 5월 31일부터 나오시마 신미술관에서 영구전시되고 있습니다. 차이궈창은 자신의 작업을 ‘화약 드로잉’, ‘폭발 퍼포먼스’, ‘설치’, ‘사회 프로젝트’로 나누는데요. 나오시마 신미술관에서는 ‘화약 드로잉’과 ‘폭발 퍼포먼스’ 영상이 함께 전시가 되어 있어 그의 작업을 입체적으로 경험할 수 있습니다.

화약드로잉 <소용돌이 Vortex>(2006)는 <Head on>과 동시에 진행된 작업으로, 늑대들이 부딪히고 넘어지고 또 뛰어가고 부딪히는 동작을 소용돌이로 표현했습니다. 영상 <환상 II Illusion II>(2006)는 베를린 시내에 있는 역사적인 건물 주변에서 이루어진 폭발 프로젝트를 담은 것인데요. 2차 대전 때 훼손된 안할트역 근처에서 이루어진 퍼포먼스는 파괴와 폭발을 통해 아이러니하게도 아름다움의 영속성과 덧없음을 생각하게 합니다.

카페는 공간과 예술과 자연이 만드는 또 하나의 미술관이다. 사진=Benesse Art Site Naoshima
카페는 공간과 예술과 자연이 만드는 또 하나의 미술관이다. 사진=Benesse Art Site Naoshima

마을 사람들이 프로젝트에 참여

지하에서의 예술탐험을 끝낸 다음에는 출구 맞은편에 있는 카페에서 간단한 식사와 차를 즐길 수 있습니다. 세토 내해가 내려다보이는 탁 트인 전망뿐만 아니라 카페 벽에 설치된 인도 출신 N.S. 하르샤의 밝고 경쾌한 회화 시리즈 <행복한 결혼생활>(2025)이 더할 나위없는 행복감을 선사합니다.

아름다운 공간과 예술, 자연, 맛난 음식을 만끽한 후, 미술관을 뒤로 하고 내려오는 발걸음은 어느때보다 설레는데요. 혼무라 지역의 마을로 가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혼무라 지역은 ‘이에 프로젝트’가 시작된 곳입니다. ‘이에’는 일본어로, ‘집’이라는 뜻으로, 옛가옥을 기증하겠다는 마을 사람의 제안에서 우연히 시작된 프로젝트입니다. 게다가 2025년은 세토우치 트리날레가 열린 해여서 볼거리가 더욱 풍성했습니다. 이 이야기는 다음에 계속하겠습니다.

글쓴이

정연복 미술평론가

정연복 미술평론가는 서울에서 불문학 학위를 받았으며, 프랑스에서 미술사를 공부했다. 현재 중앙대에서 예술사 강의를 한다. 사조의 이해나 단순지식보다는 직관적인 경험으로서의 예술이해에 관심이 많다. 삶에서 예술이 나오고 예술이 곧 삶이 된다는 것, '아는 만큼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는 만큼 느끼는 것'이라는 믿음으로 그림과 미술관에 관한 글을 쓰고 강연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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