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끝에서 ‘예술의 순례자’ 고갱 박물관

[정연복과 손잡고, 세계의 미술관으로] 폴 고갱이 머물던 르 풀뒤의 하숙집 하숙집 벽 등에 그린 그림 복원한 박물관 종합주의 예술 실험한 상생한 현장 하숙비 못내 작품 30여점 뺏기기도 하숙집 박물관...몰입형, 체험형 공간

폴 고갱(Paul Gauguin, 1848-1903), 뱀과 후광이 있는 자화상, 1889, 내셔널 갤러리, 워싱턴 D.C.
폴 고갱(Paul Gauguin, 1848-1903), 뱀과 후광이 있는 자화상, 1889, 내셔널 갤러리, 워싱턴 D.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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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고갱(Paul Gauguin, 1848-1903)의 그림, <뱀과 후광이 있는 자화상>(1889)입니다. 친절하기보다는 거만해 보이는 얼굴이 탁자 위에 놓여 있습니다. 탁자가 아니라 고갱의 상체일까요? 바탕을 오렌지색과 붉은색으로 나누고 그 경계에 얼굴을 그려놓았는데요. 노란꽃 중 한 꽃잎 뒤에 보이는 작은 뱀을 담배인 양 손가락 사이에 끼우고 있습니다. 붉은색 바탕에는 사과처럼 보이는 과일이 아래로 늘어뜨려져 있고 고갱의 머리 위에는 후광도 보입니다. 강렬하고 단순하면서도 기이한 그림이지요. 마치 뱀의 유혹을 받아들여 금단의 열매를 따려고 하는 예술가로서의 자신을, 이 세상을 창조하고 구원하는 조물주와 동일시하는 듯합니다.

금단의 열매를 노린 예술가

이 그림은 현재, 세계 정치의 중심지인 미국 워싱턴 D.C.의 <내셔널 갤러리>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폴 고갱이 이 그림을 그린 것은 프랑스 브르타뉴의 피니스테르(Finistère 땅끝)주(州) 작은 마을 ‘르 풀뒤(Le Pouldu)’, 그것도 자신이 기숙하던 하숙집의 식당문입니다. 오늘은 예술을 찾아 ‘땅끝’으로 갔던 고갱을 만나러 ‘고갱 박물관, 르 풀뒤 아틀리에’를 방문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르 풀뒤의 ‘르 그랑 사블 해안(plage de la Grands Sables)’. 고갱이 르 풀뒤에서 그린 그림, '해초를 수확하는 사람들'(1889, 폴크방 미술관, 에센)이 소개되어 있다. 사진=정연복
르 풀뒤의 ‘르 그랑 사블 해안(plage de la Grands Sables)’. 고갱이 르 풀뒤에서 그린 그림, ‘해초를 수확하는 사람들’(1889, 폴크방 미술관, 에센)이 소개되어 있다. 사진=정연복

르 풀뒤(Le Pouldu)는 퐁타벤에서 남쪽으로 15㎞ 가량 떨어진 바닷가 마을입니다. 1886년 인구 조사에서 11가구가 살았다고 하고, 고갱이 1889년 부인에게 쓴 편지에 따르면 주민이 150명 정도에 불과한 작은 어촌이었습니다. 르 풀뒤에 도착하면 아담한 크기의 모래사장이 있는 ‘르 그랑 사블 해안(plage de la Grands Sables)’이 방문객을 맞아줍니다. 여름이면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해수욕과 휴가를 즐기는 곳이지만 화려하기보다는 소박함이 묻어납니다.

마리 앙리가 운영하던 ‘바닷가주점’. 고갱과 퐁타벤파의 이해에 이 집이 중요하다는 인식을 했을 때는 19세기 후반 화가들이 머물던 때와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현재의 건물은 원래의 위치에서 조금 옮겨 당시의 사진과 자료를 바탕으로 새로 지은 것으로, 1989년 7월 문을 열었다. 1889년 10월부터 고갱이 이 집에 머물렀으니 정확하게 100주년이 되는 해였다. 사진=정연복
마리 앙리가 운영하던 ‘바닷가주점’. 고갱과 퐁타벤파의 이해에 이 집이 중요하다는 인식을 했을 때는 19세기 후반 화가들이 머물던 때와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현재의 건물은 원래의 위치에서 조금 옮겨 당시의 사진과 자료를 바탕으로 새로 지은 것으로, 1989년 7월 문을 열었다. 1889년 10월부터 고갱이 이 집에 머물렀으니 정확하게 100주년이 되는 해였다. 사진=정연복

고갱의 하숙집이 고갱의 박물관으로

해변 왼쪽에는 샤를 필리제(Charles Filiger, 1863-1928)길이 있는데요. 퐁타벤파 화가였고 르 풀뒤에 와서 가장 오랜 기간인 15년 동안 살았던 화가의 이름을 딴 거리입니다. 이 길을 따라 가다 보면 오른쪽에 ‘바닷가 주점’이라고 적힌 하얀 집이 나오는데요. 이곳이 바로 마리 앙리(Marie Henry, 1859-1945)가 1888년 10월부터 1893년 봄 혹은 여름까지 운영하던 하숙집 겸 술집을 복원해놓은 곳입니다. 1889년 10월부터 고갱이 머물면서 퐁타벤파의 주요거점이 된 곳이죠. 이곳이 ‘마리 앙리의 집’이라는 이름으로 일반에게 공개된 것은 1989년입니다. 박물관에 들어가기 전에 르 풀뒤와 고갱의 인연에 대해 우선 알아보겠습니다.

고갱이 처음으로 르 풀뒤를 찾은 것은 1886년 여름입니다. 인상주의에서도 벗어나고 생활비도 적게 드는 퐁타벤에 왔던 첫해입니다. 르 풀뒤 바로 옆에 있는 <벨랑주네 해변에서 암소를 돌보는 여인>(1886, 개인소장) 등 몇몇 작품이 이때 그려졌는데요. 아직 인상주의풍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폴 고갱, 파도, 1889, 개인소장. 사진=위키페디아
폴 고갱, 파도, 1889, 개인소장. 사진=위키페디아

파리로 다시 돌아간 고갱은 서인도제도의 마르티니크에서 체류했던 1887년은 건너뛰고 1888년에 다시 퐁타벤을 찾습니다. 3개월여 머물며 바닷가 그림을 세 개나 그린 걸 보면 이때 역시 르 풀뒤를 방문한 것이 분명합니다. <파도>(1888)가 그 중 하나인데요. 르 풀뒤에 있는 포르게렉 해안(plage de Porguerrec)을 그린 것인데, 2년 사이에 화풍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구성, 실제로는 없는 세 번째 바위를 추가하여 대각선 구도를 강조한 점, 모래사장을 붉게 칠한 것을 보면 일본 판화의 영향이 강하게 보입니다.

종합주의 예술의 영감을 위해

이 그림은 고갱이 자신만의 화풍을 세우고 퐁타벤파를 형성하는 전환점이 되는 그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모래밭을 붉게 칠한 것은 종합주의의 선언과도 같은 <설교 후의 상상>(1888, 내셔널갤러리, 에딘버러)과 똑같은데요. 실제 보이는 풍경이 아니라 화가의 주관적 느낌을 드러내려 한 겁니다. 두 그림 다 에밀 베르나르(Émile Bernard, 1868-1941)와 함께 세운 ‘종합주의’의 대담한 기법들이 구현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지나치게 자연을 있는 그대로 그리려고 하지 마라. 예술은 추상이다. 그 앞에서 꿈꾸면서 자연으로부터 추상을 끄집어내라. 그렇게 해서 하게 될 창조를 더 생각해라. 우리의 신이 했듯이 창조하는 것, 그것만이 신에게로 올라가는 유일한 방법이다.” 퐁타벤파 화가 중 한 명인 에밀 슈펜네케르(Emile Schuffenecker, 1851-1934)에게 한 이 말은 고갱의 예술관을 엿보게 합니다. 눈에 보이는 것을 그대로 모방해서 그리지 말고 자신의 생각과 느낌, 기억과 상상, 꿈과 더불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찾아내서 그리는 것, 그것이 창조이고 예술이라고 생각한 겁니다.

1886년과 1888년에는 잠깐씩 들렀다면, 1889년 봄과 여름을 다시 퐁타벤에서 보낸 고갱은 7월에는 완전히 르 풀뒤로 거처를 옮깁니다. 폴 세뤼지에(Paul Sérusier, 1864-1927), 마이어 드 한(Meijer de Haan, 1852-1895)과 함께였죠. 너무 많은 관광객과 화가들로 번잡한 곳을 피해, 한적한 바닷가 마을에서 새로운 예술적 영감을 얻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컸습니다. 여전히 그림은 팔리지 않아 생활이 어려웠던 고갱에게는 퐁타벤보다 더 적은 생활비로 생활할 수 있다는 것도 큰 이유였을 테고요. 1890년 1월에 쓴 편지에서 고갱은 “르 풀뒤에 있는 마지막 세 달 동안 내 주머니에는 단돈 30프랑 밖에 없었다”며 당시의 궁핍했던 생활을 전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고갱에게 가르침을 받고 싶었던 마이어 드 한이 고갱의 하숙비까지 부담하겠다고 했으니 고갱으로서는 마다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이제 박물관 안으로 들어가볼까요?

‘고갱 박물관, 르 풀뒤 아틀리에’는 1989년 7월 문을 연 ‘마리 앙리의 집’을 모태로, 전시관을 확충하여 2025년 7월 6일 문을 열었다. 사진=정연복
‘고갱 박물관, 르 풀뒤 아틀리에’는 1989년 7월 문을 연 ‘마리 앙리의 집’을 모태로, 전시관을 확충하여 2025년 7월 6일 문을 열었다. 사진=정연복

‘고갱 박물관, 르 풀뒤 아틀리에’

‘바닷가주점’을 끼고 오른쪽으로 돌면 전통적이면서도 현대적인 긴 건물이 보입니다. 캬츠 앤 모달 건축(Agence Quartz Architecture & Modal Architecture)의 설계로 브르타뉴의 전통 가옥을 모티브로 지어졌습니다. ‘고갱 박물관, 르 풀뒤 아틀리에’는 1989년 7월 문을 연 ‘마리 앙리의 집’을 모태로, 전시관을 확충하여 2025년 7월 6일 문을 열었습니다.

전시실에 들어가자마자 기차 객실이 나와 관람객은 19세기 후반 르 풀뒤로의 여행을 시작하게 된다. 사진=정연복
전시실에 들어가자마자 기차 객실이 나와 관람객은 19세기 후반 르 풀뒤로의 여행을 시작하게 된다. 사진=정연복

박물관은 상설전시장 입구에 붙은 ‘창조의 터전으로의 여행’이라는 글귀처럼 관람객을 여행으로 초대합니다. 첫번째 공간에 마련된 기차 객실의 좌석에 앉으면 영상과 함께 19세기 후반, 르 풀뒤로의 여행이 시작됩니다. 모두 7개로 구성된 전시실은 영상, 사진, 모형, 도표와 같은 풍부한 자료가 많아, 만지고 보고 들으면서 시각, 청각, 촉각을 모두 경험할 수 있는 체험형 공간입니다.

초반에는 화가들을 매료했던 당대 브르타뉴의 풍속과 풍경, 생활사를 이해할 수 있도록 구성했고, 후반에는 미술사를 잘 모르거나 관심이 없는 사람들도 잘 따라갈 수 있도록 시각이미지와 간결한 설명으로 잘 정리를 해놓았습니다. 19세기 후반 브르타뉴 여성들의 의상, 한 두 채의 집만 있을 뿐인 깎아지른 절벽, 들판과 바닷가에서 묵묵히 일하는 모습 등을 보여주는 자료들은 고갱과 퐁타벤파 화가들이 왜 르 풀뒤에 매료되었는지 직관적으로 이해하게 해 줍니다.

자신의 관심사와 눈높이에 맞게 다양한 자료들을 보고 만지고 들으면서 관람을 즐길 수 있다. 19세기의 전반적 미술사의 흐름 속에서 퐁파벤파들이 어떤 작업을 했는지 정리해놓은 섹션을 관람객들이 유심히 보고 있다. 사진=정연복
자신의 관심사와 눈높이에 맞게 다양한 자료들을 보고 만지고 들으면서 관람을 즐길 수 있다. 19세기의 전반적 미술사의 흐름 속에서 퐁파벤파들이 어떤 작업을 했는지 정리해놓은 섹션을 관람객들이 유심히 보고 있다. 사진=정연복

전시실 관람을 마치고 나가면 마당이 나옵니다. 마당은 교육적 용도의 전시공간과 예술가들의 삶과 창작의 산실이었던 마리 앙리 하숙집을 연결하는 중간지대라고 할 수 있는데요. 마당에서 하숙집으로 들어가는 순간, 21세기의 르 풀뒤에서 19세기 후반으로 미끄러져 들어가는 듯한 묘한 기분에 잠기게 됩니다. 1층에는 부엌과 바, 식당이 있는데요. 무엇보다 화가들이 매일같이 삼시 세끼 식사를 하고 악기를 연주하며 예술에 대해 토론도 했던 식당이 눈길을 끕니다.

고갱과 드 한이 중심이 되어 마리 앙리의 식당에 그린 그림들이 복제되어 있다. 그림의 원본은 세계 각지의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고갱의 '뱀과 후광이 있는 자화상', '거위'가 보인다. 열려 있는 문짝에는 '안녕하세요, 고갱씨'가 있고, 가운데 보이는 큰 벽화는 드 한이 그린 '아마를 손질하는 여인들'이다. 사진=정연복
고갱과 드 한이 중심이 되어 마리 앙리의 식당에 그린 그림들이 복제되어 있다. 그림의 원본은 세계 각지의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고갱의 ‘뱀과 후광이 있는 자화상’, ‘거위’가 보인다. 열려 있는 문짝에는 ‘안녕하세요, 고갱씨’가 있고, 가운데 보이는 큰 벽화는 드 한이 그린 ‘아마를 손질하는 여인들’이다. 사진=정연복

불투명한 미래, 예술가의 자존심을 지키며

고갱이 1889년 후반에 고흐에게 보낸 편지에는 비가 자주 내리고 기온이 내려가 야외작업을 하기 어려운 날들이 이어지는 가운데, 마이어 드 한과 함께 식당의 벽과 문을 그림으로 장식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고갱은 모두에서 언급했던 <뱀과 후광이 있는 자화상>뿐만 아니라 <마이어 드 한 초상>(MoMA, 뉴욕), <안녕하세요, 고갱씨>(해머 미술관, 로스엔젤레스), <거위>(캥페르 박물관, 캥페르)를, <아마를 손질하는 여인들>(개인소장), <아이에게 젖을 먹이는 마리 앙리>(개인소장)는 드 한이 그립니다.

예술의 중심지로부터 멀리 떠나와 언제가 될 지 모르는 불투명한 영광을 꿈꾸면서 외로움과 가난, 자괴감과 무기력을 창작에 대한 열정과 예술가로서의 자존감으로 견뎌내야 했던 그 시간, 그곳의 분위기가 생생히 느껴지는 공간입니다. 2층에는 마리 앙리와 고갱, 세뤼지에, 드 한의 방을 볼 수 있습니다. 물론 마리 앙리의 집뿐만 아니라 식당에 그려진 그림, 가구, 벽에 걸린 그림 등은 철저한 고증을 거쳐 복제하거나 구성해놓은 것입니다.

화가들이 떠나고 하숙집 운영이 어려워지자 마리 앙리는 1893년 다른 도시로 이사합니다. 벽화를 제외하고 가져갈 수 있는 그림은 다 챙겼고요. 고갱은 1890년 르 풀뒤를 떠날 때 하숙비 300프랑을 내지 못해 27점의 회화와 16점의 드로잉 등 작품을 담보로 두고 갈 수밖에 없었는데요. 이후 돈을 마련해 그림을 돌려줄 것을 요구했지만 거절당합니다. 법에 호소했으나 패소하고 이듬해인 1895년 고갱은 타히티로 떠납니다. 다시는 프랑스에 돌아오지 못하고 1903년 남태평양 마르키즈 제도의 이바 오아(Hiva Oa)에서 생을 마감합니다.

벽화로 그려져 ‘바닷가주점’에 남겨졌던 그림들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1924년 우연히 발견되는데요. 마리 앙리가 떠난 후 거주하는 사람이 여러 번 바뀌면서 일곱 번이나 덧발라진 벽지 아래에 가려져 있던 것이 드러난 겁니다. 이후 예술사학자들의 연구 속에 고갱과 퐁타벤파의 이해에 이 공간이 중요하다는 인식을 하게 되었고 복원 작업이 진행되어 1989년 7월 8일, ‘마리 앙리의 집’이라는 이름으로 일반에게 공개되었습니다.

배경은 ‘르 풀뒤’의 해변, 주인공은 강렬한 생명력

‘고갱 박물관, 르 풀뒤 아틀리에’는 새로운 개념의 박물관입니다. 흔히 예술가의 집이나 역사적인 건물이 박물관/미술관이 되는 경우는 많이 있지만 예술가가 머물렀던 하숙집이 박물관이 되는 경우는 드문데요. 전시공간을 통해 관람객이 당대의 지형과 풍속, 미술사에 대해 충분한 이해를 할 수 있도록 도운 다음, 실제 예술가들이 살았던 공간을 돌아보게 하는 몰입형/체험형 박물관의 뛰어난 사례입니다.

르 풀뒤의 깎아지른 절벽 위 언덕에서 바라본 바다. 사진=정연복
르 풀뒤의 깎아지른 절벽 위 언덕에서 바라본 바다. 사진=정연복

박물관 관람을 마친 뒤에는 바다를 내려다보는 르 풀뒤의 언덕길을 꼭 산책해 보시기 바랍니다. 바람에 휘날리는 갈대와 토끼풀의 살랑거림을 느끼며 멀리 바다를 보는 순간, 고갱 속 그림의 브르타뉴 여인이 되는 기분입니다. 그리고 고갱이 왜 그토록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관점으로 그림을 그렸는지, 강렬한 원색으로 그린 단순한 그림에 어쩜 그토록 강한 생명력이 느껴지는지가 온몸으로 이해됩니다. <해변의 묘지>에서 발레리가 노래했지요.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자연이 거칠수록, 삶이 신산할수록, 생의 의지는, 예술에의 희구는 더 강렬하게 타오릅니다.

글쓴이

정연복 미술평론가

정연복 미술평론가는 서울에서 불문학 학위를 받았으며, 프랑스에서 미술사를 공부했다. 현재 중앙대에서 예술사 강의를 한다. 사조의 이해나 단순지식보다는 직관적인 경험으로서의 예술이해에 관심이 많다. 삶에서 예술이 나오고 예술이 곧 삶이 된다는 것, '아는 만큼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는 만큼 느끼는 것'이라는 믿음으로 그림과 미술관에 관한 글을 쓰고 강연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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