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정상회담 팩트시트는 과연 선방이었나
국익에 부합하는 협상? 민망하다 美에 퍼줬고, 우린 얻은 게 없었다 ‘주한미군 전략적 유연성’ 교묘히 숨겨 협상팀, ‘국익’ 원칙 지켰는지 다시봐야
한미FTA보다 강한 팩트시트 내용
죽어있던 녀석이 되살아났다. 한미 FTA다. 11월 14일 공개된 10월 29일 한미 정상회담 결과에 관한 공동 설명자료(팩트시트)에 따르면 한미 FTA는 건재하다. 미국의 상호관세로 사실상 수명을 다했다고 여겨지던 놈이 부활했다. 전보다 더 강해졌다. ‘좀비 프랑켄슈타인’이다. 미국산 자동차의 한국시장 수입쿼터와 배기량 승인 규제가 폐지되었다. 아울러 농축산품, 노동, 환경, 서비스 등에 관해 전보다 강하거나 추가적인 조항들이 포함되었다. 미국의 요구사항이 망라되어 들어갔다.
이재명 대통령은 팩트시트 확정에 대해 “한미동맹은 안보와 경제, 첨단기술을 포괄하는 진정한 미래형 전략적 포괄적 동맹으로 발전·심화하게 됐다”며 “양국이 함께 윈윈하는 한미동맹의 르네상스 문이 활짝 열렸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과거에는 “한미동맹의 발전·심화”란 미국에 전부 퍼준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 대통령은 우리 국익에 반하는 협상은 하지 않는다고 선언했었다. 그렇다면 이번 팩트시트는 우리 국익에 도움이 되는 결과인가? 아니다. 이 대통령 말대로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 최대한 버틴” 결과인가? 버티기는 했겠지만 손실 최소화는 아닌 것 같다. 한미동맹의 르네상스인가?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
민감한 이슈를 숨긴 합의문
팩트시트는 2주 만에 합의되어 공개되었다. 오랜 시간이 걸린 이유로 위성락 안보실장은 우라늄 농축 및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 문제를 지목했다. 잘 납득이 안 된다. 왜냐하면 이 사안은 8월말 워싱턴 한미 정상회담에서 합의되었을 뿐만 아니라 별로 복잡한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진짜 문제는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이었을 것이다.
공동 설명자료에는 전략적 유연성이라는 용어가 등장하지도 않는다. 이렇게 되어있다. “양국은 ... 동맹에 대한 모든 지역적 위협에 대응하여 미국의 재래식 억지 태세를 강화해 나갈 것이다. 양측은 2006년 이후 관련 양해사항을 확인하며 ... 대만 해협의 현상을 일방적인 변화시키는 것에 반대했다.” ‘한미동맹의 현대화’라는 챕터 아래 규정된 문안이다.
대만해협의 현상변경에 반대한다는 언사는 2023년 4월 윤석열이 미국을 방문하기 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미국의 지시에 따라 행한 발언과 같다. 그 전에 우리는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지지한다”고만 말해왔었다. 평화적 해결을 지지하는 것과 “현상변경에 반대한다”는 언어는 전혀 다른 뜻이다. 사흘 전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대만해협 유사시 자위권을 발동할 수 있다고 언급한 것을 놓고 중국은 지금 극언을 써가며 일본을 비난하고 있지 않은가.
당연히 미국의 요구로 들어간 문장이다. 그렇다면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에 관한 문안도 그에 상응하는 것이었어야 한다. 예컨대 “역내 분쟁에 미국이 개입할 경우 한국은 주한미군이 동 분쟁 지역에 출동하도록 허용한다”와 같은 언어 말이다. 그런데 팩트시트는 단순히 양국이 미국의 군사적 행동을 강화하기로 했다고만 되어 있다. 고심한 문장이다. 핵심을 가리려고 말이다.
하지만 “한국은 미군이 역내 분쟁에 출동하도록 허용한다”는 언사와 “양국이 미국의 군사적 행동을 강화하기로 했다”는 말은 가만히 들여다보면 별 차이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이 미국의 숨은 뜻이다. 다만 뒤에 나오는 문장은 2006년의 양해사항을 언급하고 있다. 당시 양국 외교장관의 공동성명이다. 성명의 1항은 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한국이 존중한다는 조항이다. 2항은 한국민의 의지와 관계없이 동북아 지역 분쟁에 개입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한국의 입장을 미국이 존중한다는 조항이다.
피차 자기 좋을 대로 해석하면 되는 성명이었다. 미국은 원하던 바를 얻었다고 생각했고 우리는 미국의 일방적 요구를 막았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최소한 노무현 대통령의 생각이었다. 물론 이번 팩트시트도 그렇게 읽으면 된다. 다만 대만해협의 현상변경을 반대한다는 문장이 들어가 있는 만큼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에 대한 미국의 의지는 그만큼 강하게 반영되어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우리는 무엇을 얻었나
그렇다면 전략적 유연성 문제까지 한 클릭 미국 쪽으로 움직인 셈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얻은 것은 무엇인가? 거의 없다. 물론 이 대통령 말대로 우리는 손실의 최소화가 목표였다. 그러나 이미 알려진 것 외에 이번에 팩트시트를 작성하면서 우리가 추가로 내준 것이 너무 커 보인다. 과장해서 말하자면 미국에 전부 퍼주었다. 미국이 처음에 던져온 요구안이 을사조약을 생각케 했다는 협상가의 말로 합리화할 수도 없다.
2024년의 합의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주한미군 방위비로 330억 달러를 추가로 지원하기로 했다. 그동안 알려져 온 GDP 3.5% 수준의 국방비에 250억 달러의 미국산 무기구매 약속 외에 추가된 항목이다. 미국만 이득을 보는 한미 FTA의 부활에다가 전략적 유연성 문제도 우리의 입장이 시원하게 반영되지 않았다면 과연 무엇을 얻은 것인가? 굳이 지목하자면 핵잠 건조에 관한 긍정적 언질이 전부인 듯하다. 결코 만족할 수 없다.
국익에 반하는 협상이었다고까지 비판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국익에 부합하는 협상의 결과라고 말하기에는 너무도 민망하다. 싫은 협상을 강요받은 상황에서 이만큼의 결과를 만들어낸 것을 평가하고 싶지만 그러기에는 너무도 초라한 모습이다. 결코 선방이 아니다. 조선업에 대한 투자의 이익은 한국이 갖는다고 합의했다는 대목도 자랑거리는 될 수 없다. 민간이 투자하는데 당연한 일이다.

MOU 국회비준 받아야 한다
앞으로가 중요하다.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은 대미 투자 관련 양해각서(MOU)를 미국 정부와 체결했다고 밝혔다. 조선을 포함해 대미투자 3500억 달러에 관한 것이다. 이 MOU는 국회비준을 받도록 해야 할 것이다. MOU가 법적인 문서가 아니니 괜스레 비준을 받아 문서의 구속력을 높일 필요가 있겠느냐는 지적이 있지만 그렇지 않다. 한미 간의 MOU는 양국의 특수 관계에 따라 효력이 정해진다. 구속력이 있다. 미국이 몰아붙이면 구속력이 생기는 것이다.
1991년 반기문 외무부 미주국장과 로널드 포글먼 주한미군 부사령관이 비밀각서에 서명한다. 1990년 국방장관 이상훈과 루이스 메너트리 주한미군 사령관이 서명한 각서(용산기지를 평택으로 이전하고 비용은 한국이 몽땅 부담한다는 요지)가 법적으로 효력이 있음을 확인한다는 내용이었다. MOU였다. 미국은 결국 이를 밀어붙여 그들이 원하는 바를 다 이룬다.
그러니 MOU의 일반적인 법적 성격을 논할 계제가 아니다. 국회비준 과정에서 우리는 두 가지를 추구할 필요가 있다. 첫째, 앞으로 설립될 투자위원회에 한국인을 포함시켜야 한다. 둘째, 한국인에 대한 전문직 비자(E-4) 쿼터 1만 5천 개를 확보하는 일이다. 국회는 MOU에 두 개의 사항을 포함한다는 조건으로 비준을 하거나, 아니면 비준을 거부해야 한다. 비준이 거부되어 미국이 상호관세를 원상으로 회복시킨다면 우리는 팩트시트를 전면적으로 거부하는 것도 방법이다.
MOU 부분을 뺀 팩트시트의 나머지 사안들에 대해서는 정상회담의 공동성명으로만 남을 것이다. 공동성명이라 해도 구속력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미국이 밀어붙이면 없다가도 생기는 것이 구속력이다. 하지만 전략적 유연성 파트는 과거 노무현 대통령이 유지한 입장을 견고하게 지켜 나아가야 한다. 우리는 미중 분쟁의 와중에 미국의 총알받이가 될 수 없다.
협상단, 이 대통령 ‘3불 원칙’ 제대로 지켰나
한미 FTA는 사실 진작 폐기했어야 했다. 기회가 있을 때 상대를 꺾지 않으면 반대로 당하는 법이다. 그러니 이번에 원기를 회복했지 않은가. 그래도 투자자-국가 분쟁절차(ISD)라든가 특허-허가 연계, 그리고 독립적 검토절차와 같은 독소조항은 제거해 나가야 한다. 지금 한미 FTA는 오로지 미국만을 위한 협정이다. 관세/비관세 장벽의 완화 및 철폐에는 이 협정을 인용하더라도 그 이외의 조항들은 전부 사문화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 국익이다.
지난 한중 정상회담에서 우리가 중국에게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미국이 원하는 대로 절대 허용하지 않았다고 말했기를 바란다. 그랬어야 한중관계가 온전하게 복원된 것이다. 하지만 그 때 그 말을 하지 못했다면 앞으로 할 일이다. 내년 초 언제인가 이 대통령이 북경에서 시진핑 중국 주석을 만난다면 반드시 다시 해야 할 말이다. 중국을 위해서가 아니다. 우리를 위해서다.
그리고 이 대통령과 우리 협상팀은 다시 생각해 볼 일이다. 이번에 과연 우리가 최선의 결과를 만들어낸 것이 맞는지 말이다. 그리고 재차 확인할 일이다. 이 대통령의 ‘3불원칙’(이면합의, 국익에 반하는 협상, 공정성/합리성이 결여된 협상의 불추진)이 이번에도 확실히 지켜졌는지 말이다. 허심탄회하게 그렇다고 말할 수 없다면 다음에는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말아야 한다. 한미동맹이 진짜 대한민국을 눌러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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