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시와 착각’이 부르는 외교적 재앙
미국의 ‘뻥’ 세일작전에 녹아난 외교 한미FTA강화와 전략적 유연성 못막아 ‘자주파’ 아닌 ‘동맹파’ 뜻대로 결정돼 주한미군사령관 등은 벌써 흔들기 시작 거부 못했으니 ‘구속력 없는’ 문서 취급을
100만원짜리 70% 세일로 샀다고?
부인네들은 100만 원짜리 드레스를 70% 세일로 구입했다면서 돈을 벌었다고 남편들한테 자랑한다. 미안함을 어색하게 감춘다 할까. 서민들의 얘기다. 이번 한미 정상회담의 팩트시트에 대한 정부 여당의 자화자찬이 바로 그런 상황과 유사하게 보이는 것은 왜일까. ‘착시’의 흔쾌한 수용이다. 그래야 당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원래 100만 원짜리는 아니었다. 세일마진을 부풀리려 장난친 것뿐이다. 사실은 30만원이나 그 이하였다면 물건을 산 부인은 얼마나 억울할까. 김용범 정책실장은 팩트시트가 공개된 뒤 협상의 후일담을 소개하면서 처음 미국으로부터 협상안을 받았을 때 “을사늑약을 넘는 수준의 황당무계한 내용이었다”고 말했다.
그랬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 해서 팩트시트 내용이 최선의 결과가 되는 것은 아니다. 미국의 ‘세일 작전’에 당했다. 대미 강제투자 연 200억 달러 부분은 선방한 것이 맞다. 그것 때문에 다른 것은 다 내주었다. 착시의 실체다.
미국의 ‘세일 작전’
한미 FTA를 전보다 더 강력하게 살려낸 것만 해도 문제가 크다. 무역협정이란 관련국들이 서로 주고받는 계약이다. 그런데 한미 FTA는 지금 미국만이 일방적으로 얻어내는 협정이다. 우리의 대미 수출이나 투자에는 전혀 무의미한 규정들일 뿐이다. 반대로 미국은 관세 제로(0)의 혜택에다가 투자자-국가 분쟁해결(ISD)이니 특허-허가 연계제도니 하는 소위 ‘독소조항’의 특혜까지 고스란히 챙길 수 있다. 한마디로 을사늑약이다.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에 관해서도 미국은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 “양측은 2006년 이후 관련 양해사항을 확인하며...대만 해협의 현상을 일방적으로 변경시키는 것에 반대했다.”는 문구가 그것이다. 후반의 문장은 중국이 극도로 예민하게 반응하는 내용이다. “평화적으로 해결되기를 바란다”라는 언사와는 정반대의 의미다. 중국이 현상을 변경시킨다면 중국을 공격할 수도 있다는 뜻이 들어있다.
2006년의 양해사항이란 2006년 1월 한미 외교장관이 발표한 공동성명이다. 한국은 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존중하고, 미국은 한국의 분쟁연루 불가입장을 존중한다는 내용이다. 각자 자기 좋을 대로 해석해온 성명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자신이 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결코 인정한 적이 없다고 단언했다. 이재명 대통령 역시 노대통령의 입장을 계승하고 있다고 여겨져 왔었다. 그러나 이번 합의문에 보면 이 대통령이 한발 물러섰다는 인상이다. 한미동맹을 절대가치로 여기는 소위 ‘동맹파’들의 입김이 작용한 결과다. 별거 아니라 했을 것이다.
곧장 입을 열기 시작한 주한미군사령관
11월 17일 주한미군사령관 제이비어 브런슨은 위아래가 뒤집힌 동아시아 지도를 펼쳐놓고 “한국은 북한뿐 아니라 중국과 러시아의 위협을 동시에 억제할 수 있는 전략적 중심축(pivot)”이라고 언급했다. 그는 이어 한국에 배치된 전력은 “가장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억제력이며 동북아 안정의 핵심 기반”이라고 부연했다. 한마디로 주한미군은 역내분쟁으로 출동할 것이며 한국은 그러한 미군의 발진기지가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별거 아닐 수가 없다.
브런슨이 뒤집힌 지도를 놓고 전략적 유연성에 관해 발언한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하지만 지난 몇 달 동안에는 관련 발언이 전혀 없었다. 8월 초 그의 발언이 한국의 여론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었다는 평가가 있어서였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번 발언의 배경은? 본국 정부의 지시다. 이제 한국을 몰아붙일 때가 되었다는 신호가 떨어졌을 것이다.
훗날 갚아야할 빚은 어찌할까
미국은 지난 10월말 한미 정상회담 후 2주에 걸쳐 공동 팩트시트를 작성하면서 한국을 거칠게 몰아세웠다. 지난 8월말 1차 회담의 경우에는 이 대통령이 관세협상과 전략적 유연성에 관한 미국의 협박에 전혀 굴하지 않았었다. 미국은 물러섰다. 그러나 이번 10월말 회담과 문서작성 과정에서 한국은 결국 미국의 요구를 전부 받아주고 말았다. 항복 선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국의 ‘세일 작전’에 고스란히 당한 결과다. 동맹파가 이긴 것이다.
그러니 미국이 약점을 잡은 거다. 밀어붙여 보니 한국의 방어전선이 별거 아니라는 것을 경험한 것이다. 한국 정부가 말만 세게 했지 행동은 그에 따르지 않음을 간파한 것이다. 결국에는 무너졌다. 그러니 미국은 이제 마음 놓고 한국에 공세를 가해도 된다고 생각한 것이다. 먼저 전략적 유연성이다. 브런슨 사령관이 바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앞으로 대미투자에 관한 숱한 압박도 있을 것이다. 양해각서(MOU)니까 구속력이 없다고 생각하다가는 큰일 난다.
영화 “대부”(The Godfather)에서 돈 코를레오네는 도움을 청하는 장의사 보나세라의 돈을 거절하고 흔쾌히 사건을 ‘해결’해 주기로 약속한다. 돈을 받는 대신 훗날의 ‘빚’으로 남겨둔 것이다. 보나세라는 코를레오네에게 충성을 다짐한다.

핵추진 잠수함의 이해득실
한국이 이번에 얻은 유일한 것이 핵추진 잠수함이다. 그것도 연료일 뿐이다. 우라늄 농축과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는 사실 별것 아니다. 진작 얻었어야 했을 사소한 사안이다. 더군다나 미국이 염두에 두는 농축은 5% 이하의 것이며, 재처리는 일본식(reprocessing)이 아니라 건식 재처리, 즉 파이로프로세싱(pyro-processing)일 뿐이다. 아직 기술개발 단계에 있는 기술이고, 그 결과물을 입력할 원자로 역시 개발되려면 아직 먼 상황이다.
핵잠 하나를 얻고 우리가 내 준 것이 너무 크다. 핵잠은 회담 모두에서 공개된 발언으로 이 대통령이 직접 요구해 얻어냈다. 그러다보니 우리 스스로 감격했을 수 있다. 그토록 엄청난 것을 이토록 쉽게 얻어내다니. 코를레오네한테 ‘해결’을 거저 얻어낸 격이랄까. 착각이다. 훗날의 빚을 당장은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지 몰라도 그 빚은 우리가 얻은 것의 몇 십 배가 되어 돌아올 것이다. 그것이 ‘미국 마피아’다.
앞으로 미국은 핵잠을 가지고 별의별 생색을 다 낼 것이다. 벌써 우려하는 목소리들이 나오고 있다. 미국은 한국의 핵잠을 중국, 러시아 경계용으로 한국 영해 밖에서까지 활용하려 압력을 가할 것이다. 11월 17일 미 해군참모총장은 한국의 핵잠을 “중국 대응을 위한 자연스러운 기대”라고 말했다. 우리가 아무리 대북 견제용으로 우리 영해 내에서 운용할 것이라 주장해도 소용이 없다. 이번에 우리가 보인 엉성한 대미 방어전선으로는 어림도 없는 얘기다.
협상타결을 거부했어야 했다
김정관 산업장관은 이번 협상의 결과가 ‘과락’을 면한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자화자찬은 아닌듯해서 다행이다. 그는 MOU를 국회에서 비준 받는 것은 반대한다고 밝혔다. 상대는 아닌데 나만 손을 묶고 링 위에 올라가면 불리하지 않느냐는 얘기다. 그런데 사실은 우리가 이미 손이 묶여 있는 상태라는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우리는 이번 협상에서 끝끝내 팩트시트를 거부했어야 한다. 그리고 앞으로 우리가 MOU 실행을 거부할 수 있다는 결기가 전제되어야 한다. 과연 그럴 수 있겠는가.
앞뒤가 맞지 않는다. 만약 진정으로 그런 결기를 가졌다면 이번 타결을 거부했어야 한다. 미국의 요구를 전부 수용해 놓고는 그것이 처음에 미국의 요구안보다는 훨씬 낮은 것이라고 애써 합리화해도 소용이 없다. 70% 세일이라는 착시에 덜컥 물건을 구매해놓고 자랑하는 부인네와 다를 바가 무엇인가. 또 훗날의 빚을 생각지 않고 당장 코를레오네의 호의에 감읍한 보나세라와 다를 것이 무엇인가. 착시와 착각이다.

구속력 없는 문서로 취급 하자
이 대통령은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외교협상의 ‘3불원칙’을 선언했었다. ‘이면합의, 국익저해, 불공정한 협상은 절대 하지 않겠다’는 장엄한 발언이었다. 그런데 팩트시트의 내용은 이면합의는 아니라 할지라도 나머지 두 개 항은 정면으로 위배되는 결과가 아닐 수 없다. 미국에만 일방적으로 적용되는 한미 FTA가 어떻게 공정한 협상의 결과인가. 한국의 안보를 위해할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확대가 어떻게 국익저해가 아닐 수 있겠는가.
하지만 아직은 실망을 넘어 체념까지 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기에는 ‘진짜 대한민국’에 대한 희망과 기대가 너무 크다. 헤쳐 나갈 길이 없는 것이 아니다. 관세협상의 결과는 우리의 이득이 되는 쪽으로만 실행에 옮길 일이다. 정녕 국회비준을 받지 않을 것 같으면 구속력 없는 문서로 진짜 그렇게 가볍게 취급해야 한다. 전략적 유연성에 관해서는 2006년 노무현 대통령의 결의를 항상 떠올리면 된다. 우리는 미국의 밥이 아니다. 한미동맹은 수단일 뿐이다.
이번 결과에 자화자찬은 금지다. 김정관 장관 얘기처럼 최대한으로 점수를 줘도 기껏해야 ‘과락’을 넘긴 수준이다. 착시에 눈이 멀었고 착각에 현혹되었다. 외교는 한 순간의 선택으로 국가의 운명이 좌지우지되는 위험한 게임이다. 잘못하면 재앙이 뒤따른다. 피하는 방법은 하나다. 이 대통령이 내세운 ‘3불원칙’ 하나만 확고히 지키면 된다. 미국이라고 쫄 것 없다. 진짜 대한민국의 길을 가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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