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은 그림 찾기’로 읽는 한미, 한중 정상회담
겉으로 드러난 정상회의 결과물 숨은 밑그림인 ‘이면합의’ 관심 집중 한미, 주한미군 문제 어떻게 논의했나 한중, ‘사드’ ‘대만’ 주제 어떻게 정리했나 ‘노무현의 결의’ 같은 우리 입장 있어야
숨어 있는 한미 정상회담의 밑그림
팔림프세스트(Palimpsest), 과거 값비싼 양피지를 절약하기 위해 원래 있던 글이나 그림을 벗겨내고 재활용한 양피지를 가리킨다. 그 위에 새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린다. 조심해서 밑글이나 밑그림을 복원해내 보물을 건진 사례가 한둘이 아니다. 아르키메데스 팔림프세스트(Archimedes Palimpsest)가 그 중의 하나다. 1998년에 발견되었다. 10세기에 중세 수도사가 쓴 기도문이 적힌 양피지였다. 그 아래 보물이 숨겨져 있었다. 망실된 것으로 알려져 왔던 아르키메데스의 논문 세 편이 기도문 아래 흔적을 남기고 있었던 것이다. 최첨단 기술과 수년의 노력 끝에 아르키메데스의 명품 논문이 복원된다.
한미 정상회담에서 논의된 안보 관련 이슈들이 겉으로 드러난 관세협상 결과와 핵잠수함 합의 아래에서 숨을 죽이고 누워있다. 보물이나 명품은 아닐지라도 중요한 결론일 것이다. 한중 정상회담 결과와 관련해서도 ‘70조 원 규모의 양국 통화스와프와 한중 FTA의 고도화 작업 추진 합의’라는 표면의 논의 배경에, 어찌하여 지난 10년 가까이 경색되어 온 한중관계가 느닷없이 해빙국면을 맞이하게 되었는지에 관한 그럴듯한 설명이 어디에도 없다. 양피지 바닥에 숨어 있다.
3자가 알면 안되는 ‘외교 기밀’
‘외교기밀’이라고 말할 것이다. 이것은 이재명 대통령이 약속한 “3불 원칙”의 첫째 항(이면합의 불추진)과 상관없는 사안일 수 있다. ‘이면합의’란 겉으로 드러나는 계약서의 뒤 페이지에 적는 비밀 합의다. 당사자 둘 중의 하나가 큰 손해를 보는 합의라서 공개되면 큰일 날 수 있다. 아니면 제3자가 알면 안 되는 경우다. 한미와 한중 정상회담의 팔림프세스트 밑그림은 한국이 큰 손해를 보는 비밀 합의는 아니라고 판단된다. 제3자가 알면 우리가 다소 곤란해질 사안일 듯하다. 그리고 그 제3자는 각각 한미회담에서는 중국, 한중 회담에서는 미국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한미 정상회담 모두 공개 발언을 통해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핵잠수함 연료를 공급하는 문제에 관한 ‘결단’을 촉구해 전격적인 동의를 얻어냈다. 이 대통령은 우리가 핵잠 건설을 추진하는 이유로 북한과 중국의 수중 감시 필요성을 언급했다. 공개석상에서 중국을 거론한 것은 우리 해역에서의 정당한 감시활동을 당당하게 수행하겠다는 주권국가의 권리를 강조한 것이다. 이미 핵잠을 운용하고 있는 중국이 반발할 이유는 없다. 우리 핵잠은 핵무기를 탑재하지 않는다.
가장 예민한 이슈는 ‘주한미군 전략적 유연성’
10월 29일에 열린 한미 정상회담의 결과에 관한 양국 공동 설명자료(Joint Fact Sheet)가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 안보 이슈, 특히 전략적 유연성에 관한 논의 내용이 정리가 안 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11월 4일 안보협의회의에서 다시 정리될 것이기 때문이다.
한미 정상회담의 안보 이슈들은 11월 4일 개최된 한미 연례 안보협의회의(SCM)에서 상세하게 되풀이 되었다.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한미동맹의 현대화다. ‘미명’(美名)이다. 주로 미국이 한국으로부터 강요해서 얻어내는 사안들이다. 여기서 미국은 두 가지로 생색을 냈다. 핵잠수함 연료 공급과 어차피 내줄 생각을 하고 있던 전작권 이양이다. 나머지 이슈들은 모두 한국이 미국에 내어주는 사안들이다. 국방예산 증액이 그렇고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 문제도 그렇다.
거기에 더해지는 진짜 핵심 사안이 있다.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이다. 이것이 한미 정상회담의 팔림프세스트 진짜 밑그림이다. 핵잠과 전작권 아래 숨어 있는 그림이다.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은 한마디로 말해서 대만해협에서 미중이 전쟁을 벌이면 한국은 미군의 발진기지가 된다는 얘기다. 피트 해그세스 미 전쟁장관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주한미군만 분쟁지역으로 출동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군도 같이 출동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미 국방부 인·태 차관보로 지명된 존 노(John Noh)가 상원 인준 청문회에서 그렇게 직접 암시했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입장이다
안규백 국방장관과 해그세스 장관은 11월 4일 SCM을 마치고 공동 기자회견에서 “회의의 공동성명은 10월 29일 정상회담에 관한 양국 공동 설명자료가 마무리 된 후에 발표될 것”이라고 언급했다. 공동 설명자료든, SCM 공동성명이든 매우 신중한 접근을 하고 있다는 얘기다. 그것은 매우 예민한 사안이 들어 있다는 얘기다. 언론이라고 정확한 내용을 알 수는 없겠지만, 보도에 따르면 SCM 공동성명은 “전작권 전환을 위한 노력을 가속화한다”는 문구와 함께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과 관련해서는 2006년에 양국 외교장관이 발표한 공동성명을 재확인하는 수준의 문구가 포함될 것이다.
2006년 공동성명은 2개 항으로 구성되어 있다. 1항은 미국의 입장을 반영한다. 미국이 추진하는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필요성에 한국이 존중한다는 요지다. 2항은 한국의 입장을 담았다. 전략적 유연성으로 한국이 지역분쟁에 개입되는 일은 없다는 한국의 입장을 미국이 존중한다는 요지다. 노무현 대통령은 이 공동성명으로 한국이 주한미군의 자의적인 역내분쟁 참전을 막았다고 믿었다. 물론 미국은 반대로 이로써 전략적 유연성을 확보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우리의 입장이다.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서 전략적 유연성에 관해 양 정상이 상세히 논의하지 않았을 수 있다. 사실 트럼프는 별로 관심이 없는 이슈다. 그러나 미국 국무부와 국방부는 사력을 다해 얻어내려는 이슈다. 정상회담에서 ‘살살’ 했다면 그것은 안보협의회의에서 집중 공격하겠다는 심사에서였을 것이다. 그런데 결과는 과거의 미봉책을 상호 간에 받아들이고 간다는 것이다. 서로가 자기 좋은 쪽으로 해석한다는 합의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은 그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요는 우리의 입장이고 우리의 결의다. 밑바탕에 깔아놓은 우리의 그림이다.
“사드 추가배치 없다” 약속했을까
다시 한중 회담으로 가자. 이번 정상회담에서 한중관계의 완전한 복원이 이루어졌다고 평가할 정도라면 반드시 그 배경에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밑그림이 좋았어야 한다. 지난 10년간 관계 악화의 원인이 제거되었거나 앞으로 되풀이 되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 기본에 깔려 있었어야 한다. 그렇다면 사드 문제에 대한 언급이 없었을 수가 없다. 그것 때문에 얽혀버린 한중관계가 아니었던가. 최소한 예컨대 추가적인 사드 배치는 없을 것이라는 약속이 있었어야 한다. 정부에서 상세히 말을 하지 않더라도 이것은 외교의 비밀영역이라고 이해하고자 한다.
한중관계의 복원이 진짜로 온전한 것이라면 거기에 더해 하나가 더 있었어야 한다. 대만해협에서의 유사사태 시 주한미군의 출동을 우리가 허용하지 않겠다는 약속 같은 것이다. 즉 그런 류의 주한미군 전략적 유연성은 허용하지 않겠다는 결의다. 한중 정상회담에서 그러한 식으로 사드 발언과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에 관한 언급이 실제로 있었다면 한중관계는 온전히 복원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반대로 이번에 그 복원이 온전한 것이 아니라 한다면, 밑그림에 그 두 요소 중의 하나 아니면 둘 다가 깔려있지 않았다는 추정을 가능하게 한다.

중국과는 밑그림을 더 그려야한다
그렇다고 큰일 날 일은 아니다. 다만 앞으로 해야 할 과제가 생긴다. 한중관계의 확실한 정상화를 바란다면 말이다. 이번에 확답을 못했다면 다음에라도 꼭 하는 것이 좋다는 얘기다. 이재명 대통령의 중국 방문 계기에 말이다. 내년 초가 될 수 있다. 트럼프가 간다는 4월이 될 수도 있다. 지난 8월 말 첫 한미 정상회담에서 트럼프는 자기 전용기로 중국을 같이 가자고 이 대통령에게 말하지 않았었던가. 물론 실제로 한 비행기를 타고 가는 일은 없다.
한국, 중국, 미국이 중국에서 만나고 곧 이어 평양으로 옮겨 남북미가 만나는 장면을 그려볼 수도 있겠다. 물론 그 전에 밑그림을 잘 그려야 한다. 중국에 대해서는 사드 추가배치와 한국이 발진기지가 되는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에 대한 확고한 반대의사를 전달해야 한다. 북한에 대해서는 비핵화를 전제한 대화 요구 포기, 북한의 핵보유국 지위 인정, 그리고 종전선언과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밑그림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우리시대 최정상급 작가 중의 하나인 살만 루시디(Salman Rushdie)가 1995년에 발표한 명품 소설 “무어인의 마지막 한숨”(The Moor’s Last Sigh)에 팔림프세스트의 숨겨진 그림이 나온다. 아들인 주인공의 인물화 밑에 화가인 어머니가 자신의 초상화를 그려 넣었던 것이다. 그러나 밑그림을 복원해내자 어머니의 초상화는 훼손된 모습을 드러낸다.
이번 한미 정상회담과 SCM 회의에서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에 관한 합의가 과연 어떠한 것이었을까. 언론의 보도처럼 2006년 1월 양국 외교장관의 공동성명 수준으로 봉합을 한 것이었을까. 그것을 들추어내고자 양피지를 긁어내면 그것은 누가 봐도 똑같은 온전한 모습으로 드러날 것인가. 그럴 것 같지는 않다. 2006년의 공동성명은 양측의 해석이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가 분명한 결의를 갖고 있어야 한다
우리한테는 노무현 대통령의 굳건한 결의가 지금도 유효해야 한다. 한국인의 의지에 상관없이 우리가 지역분쟁에 휘말리는 상황은 결코 용납할 수 없다는 결의다. 미국의 해석대로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인정하는 순간 우리는 지역분쟁에 휘말리고 중국의 총알받이가 되는 것이다. 한미동맹의 현대화라는 미명의 아래층에 결코 존재해서는 안 되는 밑그림이다.
팔림프세스트 밑그림은 오랫동안 드러나지 않을 수 있다. 한미, 한중 정상회담의 숨은 그림을 이면합의가 아니라고 주장할 수 있다. 외교비밀일 뿐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그 합의 내지는 동의가 국민의 생명과 국익에 해롭게 직결되는 것이라면 그것은 외교비밀이라는 미명으로 언제까지 숨어 있어서는 안 된다. 이면합의가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재명 대통령의 3불원칙에 위배된다. 공개해야 한다. 특별히 공개할 이면합의가 없다면 양국이 논의한 전략적 유연성에 관한 문안을 우리가 어떻게 해석하는지 분명한 대답을 내놓아야 할 터다. 그것이 한미와 한중 정상회담 결과의 드러난 의미를 명확히 하는 길이고 진짜 대한민국이 행하는 진짜 외교의 뜻깊은 밑그림이 되는 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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