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외무부’, 제대로 된 ‘외교부’ 되려면
주캄보디아 대사관의 엉터리 행정 왜 이런 책임회피와 행정 편의주의? ‘자존 없는 외교’가 가장 큰 문제 미국에 목매는 게 무슨 외교인가 해체後 제대로 된 외교부 세워야
자존이 없는 한국 외교
한국에는 외교가 없다. 전부 유사 외교행위일 뿐이다. 이재명 정부가 들어서기 전까지는 말이다. 이제 조금씩 변하는 모습도 보인다. 하지만 갈 길은 멀다. 그래서 필자는 한국의 ‘유사외교’ 관련 부처를 외무부라고 호칭한다. 외교는 고사하고 단순히 외국과 관련된 사무도 제대로 못 보는 조직이다. 새 정부는 외무부를 앞으로 외교부로 만들어 나아가야 한다. 핵심은 정신이다.
우스갯소리다. 어리바리한 주민 센터 신참 직원이 있다. 점심시간이 되어 다들 나가고 혼자서 당번을 서고 있다. 사무실 전화벨이 울린다. 신참이 전화를 받고 대화가 이어진다.
“네, 주민 센터입니다.”
“저, 사망신고를 하려고요.”
“아, 네, 본인이신가요?”
“아이고, 이거 본인이 해야 하나요?”
“그럴 겁니다.” “알겠습니다. 딸깍.”
주 캄보디아 대사관 영사에게 전화가 걸려 왔다.
“여보세요. 대사관이죠?”
“네, 그런데요.”
“제가 범죄조직에 감금되어 있어서 구조를 요청합니다.”
“아, 네, 그건 본인이 알아서 해야 합니다. 증거자료를 가지고 캄보디아 경찰에 직접 신고해야 합니다.”
“그걸 어떻게 제가 직접 하지요? 대사관에서 도와주실 수 없으신가요?”
“네. 이런 경우에는 대사관에서 도와드릴 수 없습니다.”
“아 그래도 어떻게 좀 ...”
“이만 ... 딸깍.”
상상을 덧붙였지만 실제 있었던 일이다.

주민 센터의 어리바리한 신참은 갑자기 당황해 엉뚱하게 반응한 친구다. 그런데 얘기를 뒤집어서 이렇게 생각해 보자. 그가 영특한 사람이라고 말이다. 그는 본인이 사망신고를 해야 한다고 말하면 상대가 머리를 긁적이며 더 이상 자기를 귀찮게 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런데 민원인 역시 영리한 분이었다. 상대의 턱도 없는 수작에 유머를 발휘하면서 대응한다. 전화를 끊은 다음에는 주민센터장을 접촉해 ‘이 괘씸한 친구를 혼내주겠다’고 마음을 먹는다. 캄보디아 대사관의 응대 상황과 별로 다르지 않다.
유명한 그림이 있다. 담배 파이프 그림이다. 화폭 하단에 이런 문장이 쓰여 있다. “Ceci n’est pas une pipe.”(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벨기에의 초현실주의 화가 르네 마그리트(René Magritte)의 대표작 “이미지의 배반”(La trahison des images)이다. 주민센터와 대사관의 응대는 마그리트의 초현실 기법을 닮았다.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인지 선뜻 이해하기 어렵다. 민원인의 의도와 기대를 정면으로 배반하고 있다.

한국에는 외교가 없다
캄보디아 대사관 직원의 국민 응대 수준이 바로 한국 외무부의 수준이다. 그것은 주민센터의 사특한 신참이 보여주는 책임회피와 행정 편의주의와 다름 아니다. 고귀한 몸이 그런 자질구레한 일에 손을 댈 수는 없는 일이다. 그래서 일반인들이 한국 외무부 직원들을 “뺀질이”라고 부른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어버리는’ 전형적인 얌체다. 민원인의 입장에서 일처리하는 법은 없다. 한두 시간 고민하면 해결의 방법이 찾아지겠지만, 일주일씩 연구해 안 되는 이유를 찾아내고야 만다. 그런 의식의 유전자가 외무부 직원들의 두뇌와 온 몸에 끈덕지게 들어붙어 있다. 질 나쁜 테이프를 붙인 자리에 끈적거림이 남듯 말이다.
문제는 외무부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잘못된 자식은 부모의 책임인 경우가 많다. 외무부의 문제는 한국에 외교가 없다는 지적과 맞닿아 있다. 외교는 국회를 포함해 정부 전체의 정책과 책략으로 나와야 할 사안이다. 그러나 이승만이 미군정청의 인원과 조직을 물려받아 만든 외무부는 그의 숭미적인 이념을 집행하는 기관에 불과했다. 한마디로 외무부는 미국 앞잡이로 출발했다. 이승만 정부에 미국 숭배 말고는 달리 어떤 외교가 있을 수 없었다. 외교가 없는데 외무부가 무슨 외교를 할 수 있다는 말인가.
이유는 하나다. 외교가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이다. 외교의 핵심은 자존(自尊)이다. 스스로를 존중하는 마음이다. 자기가 누구인지 분명하게 깨닫는 것이다. 내가 나를 모르는데 어떻게 상대한테 나의 존재를 각인시킬 수 있으리오. 존경받는 일은 더더욱 없다. 소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에서 주먹짱 엄석대의 딱가리 역할을 하는 한병태가 학급 동료들의 존경을 받는 일은 결코 있을 수 없다. 자존 없는 외교는 없다. 그러니 한국에 외교가 없는 것이다.
이승만이 미국의 바짓가랑이를 부여잡고 애원해 얻어낸 한미상호방위조약(동맹조약)으로 한미관계는 갑을관계로 확정되었다. 미국은 대놓고 한국을 약탈해왔다. 한국은 미국이 요구하면 거의 무조건 해외에 파병했다. 미국 대사관 부지 임차료는 달라는 소리도 꺼내지 않았다. 미국이 원하던 용산기지 이전도 전액 우리 돈으로 거의 5성급 호텔을 지어 깔끔하게 해결해 주었다. 주한미군은 마음 내키는 대로 한국 여성을 겁탈하고 애꿎은 한국인들을 살해했다. 한국은 ‘대한미국’이 되어버렸다.
무슨 외교가 있다는 말인가. 자존이 없는데 말이다. 지난 9월 17일 더불어민주당 초선의원들 모임인 ‘더민초’는 기자회견을 갖고 미국을 성토했다. 그러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한미동맹의 절대적 가치에 주목한다.” 한국에서 한미동맹은 절대성을 갖는다. 한국 헌법 위에 한미동맹이 있다. 미국은 하느님이다. 자연히 한국은 미국의 속국이다. 달리(Salvador Dalí)의 명작 “기억의 지속”(La Persistencia de la Memoria)에 나오는 늘어진 시계처럼 한미동맹의 절대성은 우리 기억에 끈덕지게 눌어붙어 있다.
남한과 북한의 외교 비교
그야말로 “아무것도 아닌” 북한은 왜 국제적인 관심과 선망의 대상이 되어 있는가? 지난 9월 3일 전승절 기념행사에서 시진핑 주석은 김정은 위원장을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과 함께 자기 옆에 자리하게 했다. 환대였다. 푸틴 역시 김정은에게 환심을 사기에 바쁘고, 트럼프 또한 김정은을 못 만나서 한이다. 왜? 북한이 뭐라고? 이유는 하나다. 북한과 김정은은 자존이 무엇인지 세계만방에 여실히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자존 하나로 최고 수준의 외교를 펼친다.
2007년 10월 초 노무현과 김정일이 평양에서 대화를 나눈다. 자주에 관한 얘기도 있다. 노무현의 말이다. “··· 남측의 어떤 정부도 하루아침에 미국과 관계를 싹둑 끊고 북측이 하시는 것처럼 이런 수준의 자주를 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나는 시간이 좀 필요하다, 점진적 자주로 가자, ···” 맞는 말이다. 거의 20년 전 얘기다. 그러나 점진적 자주는커녕 지금 한미동맹은 “절대적”인 것이 되고 말았다.
2023년 4월 24일부터 5박 7일간 윤석열의 미국 방문은 요란한 잡음을 냈다. 계산된 것이었고 전부 미국을 향한 아첨이었다. 미국으로서는 듣기 좋은 멜로디였다. 윤석열은 한국을 떠나기 전 해외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미국이 전달해 온 세 가지 지시사항을 완벽히 실행에 옮겼다.
러시아에 대해 경고하고, 한일 과거사를 더 이상 문제 삼지 말아야 한다는 얘기에, 중국을 도발하는 발언이었다. 그 2주 전에는 미국 CIA가 대통령실을 도청하고 있다는 뉴욕타임스 보도에 미국이 악의를 가지고 도청한 것은 아니라고 말하기도 했다. 어디에 자존이 있고 어디에 외교가 있다는 말인가. 이것이 지난 80년 동안 한국이 행해온 유사외교의 모습이다.
문재인 정부라고 다를 바는 없었다. 그 찬란한 시기가 있었다. 2018년의 끓어 넘치던 열망과 희망을 기억해 보자. 판문점 도보다리 회담에, 김정은의 번개 방남에, 문재인 대통령의 능라도 경기장 연설에, 백두산 천지 남북 정상 동반 등정 등등. 그 모든 것의 들끓는 에너지를 문재인은 어떻게 했는가. 남북 간에 자주적으로 추진해야 할 사안을 미국 압력에 굴복해 한미 워킹그룹을 만들어 미국의 허락을 받으려고 스스로의 발을 묶어버렸으니 할 말 다한 것 아니었던가.
그러니 캄보디아 대사관의 민원 응대에 너무 “킹받을” 것은 없다. 외교가 없는데 어찌 외무부만 나무랄 수 있겠는가. 국가의 제일 의무가 국민보호이듯이 외교의 가장 중요한 일이 자국민 보호다. 자존도 없고 사명의식도 없는 외무부 직원은 나쁜 부모의 나쁜 가정교육으로 자라났다. 그러니 먼저 외교를 세워야 한다. 그러려면 제대로 자존을 세워야 한다. 그 다음에 외무부를 손볼 일이다. 아주 제대로 손보아야 한다. 보통 썩은 조직이 아니다.
이재명 대통령의 ‘3불 원칙’ 선언
다행이다. 이재명 정부가 자존을 깨닫고 있는 것처럼 보여서다. 이재명 대통령은 9월 11일 기자회견에서 3불(不)원칙을 선언했다. 이면합의, 국익침해 합의, 그리고 공정성과 합리성을 훼손하는 협상은 하지 않는다는 약속이었다. 대단한 결정이다. 우리는 지난 80년 동안 그러한 세 가지 매국행위들이 수시로 행해져왔음을 알고 있다. 이것만으로도 자존의 분명한 신호다.
지난 9월 21일에는 이 대통령이 국가방위를 외국군대에 의존해야 한다는 생각은 굴종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자존 플러스다. 다만 이 대통령도 한미동맹을 우리 외교의 근간이라고 전제하고 있다. 한미동맹의 끈덕진 기억이기도 하지만, 노무현 대통령이 말한 점진적 자주로 향하는 준비 단계로 일단 이해하고자 한다. 물론 갈 길 멀다.
사실 외교만 엉망인 것은 아니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특검의 수사를 들여다보라. 어디 하나 제대로 된 구석이 없다. 대법원장이 정치를 좌지우지하려 하지를 않나, 판사가 내란범을 풀어주지를 않나, 대통령의 처가 국가문화유산을 사적으로 이용하지를 않나, 기가 막힐 노릇이 한둘이 아니다. 이제 진짜 대한민국을 건설해 나아가야 한다. 주권을 가진 국민이 눈을 부릅뜨고 챙겨야 한다. 외교도 마찬가지다.
제대로 된 외교부를 만들어야 한다
다시 강조하건대 자존이 핵심이다. 내가 나를 존엄하다고 생각해야 남들이 나를 인정하기 시작한다. 국가도 똑같다. 우리나라가 스스로 존엄을 확고히 해야 다른 나라들이 우리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이다. 우리는 미국의 속국이 아니다. 봉도 아니다. 지금 한미 관세협상이 계속되고 있지만, 시한을 정해놓고 서둘러 합의할 일 없다. 미국이 뭐라고, 공정성과 합리성을 초월해 3500억 달러를 고스란히 갖다 바칠 것인가. 만약 이번에 우리가 미국에 굴복해 허튼 협상결과를 낸다면 이재명 정부는 붕괴를 염려해야 할 것이다.
그럴 일은 없을 것으로 기대한다. 합의가 어렵다면 합의를 안 하는 것이 자존이요 외교다. 그러면 앞으로 제대로 된 외교의 첫 발판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이제 외무부로 눈을 돌려야 한다. 지금 외무부는 진짜 대한민국의 외교를 수행할 능력과 자세가 되어 있지 않은 조직이다. 캄보디아 대사관 직원의 민원 대응만 봐도 그 수준은 뻔하다.
젊은 신참 직원들만 그런 것이 아니라 고위직의 머릿속에도 자기 영달 밖에는 아무것도 없다. 결국 사람이 문제다. 완전히 갈아야 한다. 검찰을 해체하듯이 외무부도 해체해야 한다. 그리고 제대로 된 외교부를 새로 만들어야 한다. 이것이 외무부를 외교부로 개혁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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