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동맹 다시 생각해야 한다. 어쩔수가없다!
“대한민국은 미국의 봉이 아니다. 한미동맹은 절대가치가 아니다. 미국은 하느님이 아니다. 우리는 스스로 운명을 결정해야 한다.”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í)가 1931년에 발표한 “기억의 지속”(La persistencia de la memoria)은 A4 용지만한 조그마한 작품이다. 달리의 대표적인 명작이다. 한국어 제목은 어폐가 있다. 기억이 지속되어서 좋다는 의미가 들어 있다. 그러나 원제는 그런 뜻이 아니다. 기억이 떨어지지 않고 있어 성가시다는 뜻에 가깝다. “기억의 끈덕짐”으로 번역함이 낫겠다. 한 번 생성된 기억은 여간해서는 떨어지지 않는 법이다. 나쁜 기억이라면 더욱 그렇다.

지난주에 개봉된 박찬욱의 “어쩔수가없다”(No Other Choice)는 리메이크 작품이다. 2005년 코스타 가브라스(Costa-Gavras) 감독이 먼저 영화화한 “액스”(Le couperet)가 있었다. 1997년 발표된 도날드 웨스트레이크(Donald Westlake)의 소설 “도끼”(The Ax)가 원작이다. 소설은 주인공이자 화자인 버크가 자신의 실직을 만회하려고 벌이는 연쇄살인 행각을 다룬다. 버크의 화법이자 웨스트레이크의 문장은 가볍고 코믹하다. 도덕적인 딜레마는 주인공의 양심을 찌르지 않는다.
한미동맹은 절대적 가치인가
2022년 윤석열의 “바이든/날리면” 발언의 논란이 있었다. 논란에는 속국인 한국의 우두머리가 ‘어떻게 감히 주인국의 대통령님을 우스갯소리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냐’는 고정관념이 여야 공통의 인식으로 깔려 있었다. 여든 야든 한국은 그러면 안 된다는 자기 멸시가 배경에 있다. 바이든인가 날리면인가는 잘못된 질문이다. “바이든이 쪽팔려서 어떻게 하나”라고 발언한 것이라 한들 무엇이 문제란 말인가. 하인인 우리가 어찌 감히 어르신을 놀리느냐는 식의 의식이 아니라면 말이다. 윤석열을 두둔하는 말이 아니다. 미국의 대통령은 우리의 어르신이 아니다. 그 정도 농담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다.
9월 17일 더불어민주당 초선의원들 모임인 “더민초”는 기자회견을 갖고 깡패 행동을 일삼는 미국을 성토하면서 국민들의 마음을 대변했다. 그러면서도 “더민초”는 한미동맹의 절대적 가치에 주목한다고 말했다. 한미동맹은 절대적 가치를 가지지 않는다. 한미동맹을 위해 한국은 망해도 좋은 나라가 아니라면 말이다. 그것은 상대적 가치를 가질 뿐이다. 한미동맹은 수단일 뿐 지상과제가 될 수 없다. 고정관념이다. 끈덕진 기억이다.
과거 숭미정권 하에서 외교부의 연례 업무보고를 보면 매년 제일 위에 위치하고 있는 항목은 “한미동맹의 강화”라는 제목이다. 사실을 말하자면 모든 정권에서 그러했다. 2004년 노무현은 미국의 요구를 받들어 이라크에 파병했고, 용산기지를 전액 우리 돈을 들여 평택으로 이전하기로 결정했으며, 이듬해에는 한미 FTA를 추진한다고 선언했다. 한미동맹의 강화다. 그것은 미국이 요구하는 모든 것을 수용한다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2023년 4월 윤석열의 미국 국빈 방문을 앞두고 뉴욕타임스는 CIA가 한국 대통령실을 도청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에 용산은 미국이 악의를 가지고 도청한 것은 아니라면서 미국에 항의할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곧 이어 윤석열은 미국을 방문하기 수일 전 미국이 전달해온 “토킹 포인트”에 따라 해외 언론을 향해 세 가지 중요한 발언을 마쳤다. 러시아가 조금 더 나가면 한국도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엄포에, 일본과의 과거사 문제는 더 이상 거론하지 말아야 한다는 입틀막에, 대만해협의 유사시에는 한국도 개입하겠다는 객기였다. 미국의 지시에 따른 굴종이었다. 바이든 정부는 흡족한 마음으로 윤석열을 맞이했고 이에 윤석열은 “아메리칸 파이”로 그 성은에 화답했다. 한미동맹은 선택이 아니다. 한국외교의 필수적인 행동지침이다. 어쩔 수가 없다. 다른 선택은 있을 수 없다.

오히려 잘된 일일지 모른다
영화 “어쩔수가없다”는 가족과 나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서는 경쟁자들을 희생시킬 수밖에 없다는 주인공의 비뚤어진 도덕관념을 토대에 깔고 있다. 주인공은 그것이 비뚤어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은 정치경제적인 사회구조에 의해 나에게 주어진 현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내가 무슨 선택을 하든 책임을 느낄 필요도 이유도 없다. 설령 내가 사람을 죽이더라도 그것은 내 책임이 아니라 사회구조적인 문제의 귀결일 뿐이다. 띄어 쓰지 않은 “어쩔수가없다”는 “맙소사”와 같은 감탄사다. 하느님 맙소사! 하느님이 정한 길이다. 책임은 하느님한테 있다.
한국인의 마음속에서 하느님이 바뀌고 있다. 과거에 미국은 독생자 예수를 인간계에 보낸 하느님이었다. 이승만이 예수였고 이명박이 예수였고 윤석열이 예수였다. 한미동맹은 대한민국의 헌법을 초월한 지위를 부여받았다. 미국이 스스로 남한에 점령군으로 들어왔다고 선언했음에도 미군은 해방군이 아니면 안 되었다. 일제 강점의 36년이 하나도 청산되지 않은 채 대한민국이 출범하고 한국전쟁의 악몽 속에서 미군이 구원자로 각인되면서 숭미의 유전자가 탄생했다. 그리고 미군을 통해 양키 문물이 넘쳐 들어오면서 미국 선망이 가슴에 들어앉았다. 끈덕진 기억의 기원이다. 그러나 이제 초월적인 하느님이 우리를 고통에 빠뜨리고 있다. 과거의 하느님은 떨구어내야 할 기억이다.
다행이다. 오히려 잘 된 일이다. 조지아에서 한국인 근로자 317명이 쇠사슬에 묶여 체포·구금되어 본국으로 송환된 것 말이다. 트럼프와 그의 각료들이 한국을 봉으로 보고 3,500억 달러를 현찰로, 그것도 선불로 갖다 바쳐야 상호관세 25%를 15%로 낮추어주겠다고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를 내뱉고 있는 것 말이다. 한국인들의 눈을 이제 번쩍 뜨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은 미국의 봉이 아니다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끈덕진 기억에 감염되어 보아야 할 것을 보지 못하고, 아니 보기를 거부하면서 살아왔다. 우리는 자주 독립국의 엄연한 존엄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미국은 그들의 이익을 위해 한국에 미군을 주둔시킨다는 사실을 말이다. 대한민국은 미국의 봉이 아니다. 한미동맹은 절대가치가 아니다. 미국은 하느님이 아니다. 한국인은 위대한 국민이다. 우리는 우리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 이제 눈을 떠 차갑게 바라보아야 한다.
25%의 상호관세, 아니 일방적 관세를 감내해야 하는 상황의 이점도 있다. 미국에 실컷 당하고 있으니 전혀 미안한 마음이 깃들 여지가 없다. 그러니 미국이 요구하는 다른 것들을 홀가분하게 거절할 수가 있다.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은 말도 못 꺼내게 하자. 방위비 분담금 증액 요구에는 기합의대로 하면 된다고 잘라 말할 일이다.
책임은 가짜 하느님한테 있다. 이제 우리는 미국이 하느님은커녕 친구도 아닐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가고 있다. 어쩔수가없다! 그것은 미국의 책임이다. 그렇다고 우리가 비뚤어진 도덕관념으로 당신들을 살해하겠다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가 그대들에게 등을 돌린다 해도 그것은 당신들의 책임이다.

미국은 한국을 존경해야 한다
노무현은 한미동맹을 건강하게 만들어야 한미관계가 오래 지속될 수 있다고 보았다. 미국이 한국을 존중하지 않으면 건강한 한미동맹은 지속가능하지 않다고 말했다. 처음에 미국은 아주 기분 나쁘게 들었다. 그러나 이내 그것이 절대로 맞는 얘기라고 깨달았다. 50년, 100년 한미동맹을 유지하면서 한국에서 이득을 취하려면 한국을 존경해야 함을 깨달은 것이다.
그래서 버시바우 대사가 노무현-이명박 교체기에 본국에 “비전2020”라는 보고서를 보냈다. 한국을 존중해야 미국이 계속 얻을 수 있다는 요지였다. 이명박이 들어서 불타버린 숭례문처럼 허물어진 한미관계를 복원해야 한다고 선언하자 미국은 빙그레 웃으면서 보고서를 폐기했다. 그 보고서를 미국이 좀 더 진중하게 바라보고 시선을 교정했더라면 조지아 사태는 없었을 것이다. 있었다 해도 트럼프가 진심으로 사과했을 것이다.
아니다. 미국은 한국 알기를 기껏해야 “머니머신”으로밖에는 생각하지 않는다. 자기들 멋대로 인출하는 현금지급기다. 노우! 한국은 미국의 봉이 아니다. 그러니 이제 등을 돌려야 한다. 어쩔수가없다!
그렇다고 한미동맹을 당장 파기하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것을 하나의 옵션으로 배제하지도 말아야 한다는 얘기다. 득이 안 되는 동맹이라면 폐기해야 한다. 오히려 해가 되는 동맹이라면 당장 걷어치워야 한다. 다만, 70년 가까이 이어져온 동맹이다. 그리고 80년 가까이 붙어 있는 숭미적 사고의 끈덕짐이다. 국민의 30%는 그런 사고와 인식의 틀 속에 갇혀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너무 급격하게 변화를 추구하다 보면 역작용이 있을 수 있음도 부인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현실적으로 미국을 단박에 단절하자는 말이 되어서도 안 된다. 등을 돌린다는 얘기는 비유적인 표현이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우리 눈에서 숭미의 콩깍지를 걷어내는 것이다. 그것은 미국이 도발한 결과다. 그래서 어쩔 수가 없다. 하지만 오히려 잘 된 일이다.
요는 우리의 국익이요 국민들의 웰빙이다. 트럼프가 지난 2세기 동안 인류가 이룩해 놓은 문명을 파괴하고 한국과의 진정한 친선관계에 분탕질을 멈추지 않는다면 진짜로 미국에 등을 돌릴 일이다. 한미동맹에 얽매일 이유가 없다. 우리가 좀 더 시간을 갖고 인내하고 있다는 점을 트럼프는 잘 새겨야 한다. 그리고 트럼프 이후에도 그의 후계자가 이어서 분탕질을 친다면 그 때는 정녕 우리가 헤어질 결심을 해야 할 때다. 주한미군도 내보내야 할 것이다.
한국은 지금 미국을 뺀 여러 중요한 국가들과 인류문명 복원을 위한 대열에 앞장서야 한다. WTO와 같은 자유무역 제도를 복원하고 미래 기술을 위한 양자간, 다자간 협력을 조장해 나아가야 한다. 중국, 러시아와의 우호관계를 회복해야 하고 상하이 협력기구(SCO)와 브릭스(BRICS)에도 가입할 일이다. 한미연합훈련의 전면적인 중단을 선언하고 북한과의 대화도 서둘러야 한다. 이제 어쩔 수가 없는 시점이 다가오고 있다. 끈덕진 기억을 댕가당 떨구어낼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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