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정상회담은 성공했는가

[‘브라보 한미동맹’ 저자 이창천 기고] 덜 빼앗겼다며 안도해선 안되는 회담결과 무엇보다 ‘진짜 대한민국’ 자주성 지켰는가 남북문제·일본관계 개선·안미경중 ‘논란’ ‘숭미’하지 말고 ‘진짜 대한민국’ 성취하자

정상회담중 웃음을 터뜨리고 있는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사진= 연합뉴스
정상회담중 웃음을 터뜨리고 있는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사진= 연합뉴스
  • ※ 이경렬은 직업 외교관으로 일했다. 1985년에 외무부에 처음 들어간 이후 약 15년 이상을 해외에서 지냈다. 보스턴, 파리, 텔아비브, 하노이, 워싱턴, 비슈케크(키르기스스탄), 바르샤바, 루안다(앙골라)가 그의 활동 공간이었다. 코이카 창설, 우리나라의 OECD 가입, 한미 FTA 협상의 과정에 관여했다. 아울러 한미 원자력협정을 협상했고, 보건복지부에서 국제협력 업무를 총괄했으며, 2014년부터 2년간 앙골라에서 대사로 일했다. 퇴직후 지금은 시, 소설, 에세이, 칼럼, 인류문명 비평서 등을 쓰는 작가로서의 삶을 살고 있다. 이창천이란 필명으로 “명품외교의 길: 좌파 외교관이 보는 한국외교”(2025. 3, 진인진), “브라보 한미동맹: 숭미동맹의 그늘 벗어나기”(2025. 8, 진인진)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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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적인 협상이었는가

미국과의 협상은 기본적으로 체급이 무거운 상대와의 복싱경기와 같다. 미국하고 맞장 떠 꿀리지 않을 자 없다. 트럼프 정부는 한 가지 요소가 더 있다. 체급도 높으면서 무법천하 ‘무장 갱스터’라는 사실이다. 협상의 승패(勝敗)란 없다. 미국은 승리하고 나는 패배하게 되어 있다. 내가 죽기로 작정하고 덤비지 못한다면 말이다.

승패하고 성패(成敗)가 항상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패하면서도 성공할 수 있다. 생각했던 것보다 덜 뜯겼다면 성공이다. 사실 이만저만한 굴욕이 아니다. 떡실신되지 않은 게 어디냐며 기뻐해야 하는 상황에 모두들 분루를 삼킨다. 정상회담 장소도 시저스팰리스 복싱 아레나 같다.

관객과 보도진으로 둘러싸인 공간에서 트럼프의 상대는 홈링에 선 트럼프의 말펀치를 견뎌내야 한다. 지난 2월 28일 우크라이나의 젤렌스키 대통령이, 3월 23일 남아공의 라마포사 대통령이 트럼프의 소나기 펀치를 맞고 공개적으로 모욕을 당했다. 이런 식의 회담이라면 응하지 말아야 하지만 여기서 통과하지 못하면 마피아의 보복을 받을 것이 뻔하다. 나라와 국민을 생각한다면 마다하지 말 일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8월 25일(현지시간) 이른 오후 링 위에 섰다. 트럼프가 38년 전에 쓴 “협상의 기술”을 숙독하며 준비해 온 일전이다. “통 크게 생각하고”, “최악을 고려하라”는 것이 처음 두 개의 전술이렷다. 회담 3시간 전 트럼프는 소셜미디어에 “한국에서 숙청이나 혁명이 일어나고 있다”면서 난데없는 글을 올렸다. 예의나 범절도 모르는 하류 갱스터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이재명 대통령은 패닉하지 않았다. 최악을 고려했고 통 크게 생각했던 덕이다.

공개회담에서 그가 읊은 “럼비어천가”는 비굴하게 들리지 않았다. 트럼프는 칭찬받은 고래처럼 흥에 들떠 춤추다시피 했다. 아부였지만 상대가 내 의도대로 움직였으니 조종이라 해도 과언은 아닐 터다. 흥겨워하는 트럼프를 바라보며 대한민국의 다수 국민들이 안도와 환희의 탄성을 발했다. ‘극우 숭미’ 태극기파는 좌절했다. 그들은 이번 회담이 재앙으로 끝났어야 나라가 산다고 생각했다.

진보인사들에게 이번 회담은 통쾌한 승리가 아닐 수 없다. 숭미파들을 더 기죽이기 위해서라도 이번 회담은 역사상 가장 멋진 성공인 것으로 평가해야만 한다. 그러나 필자는 이번 회담이 승리도 아니고 성공도 아니라고 판단한다. 이재명 대통령이 내보인 의식의 차원이 전 정부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착각으로 끝나선 안될 협상 성과

이번 한미 정상회담의 성공을 축하하는 사람들에게 찬물을 끼얹을 생각은 없다. 미국이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나라라는 점도 부인하지 않는다. 말했듯이 승리란 없다 해도 훨씬 나쁠 수 있었지만 이 정도면 성공이라고 말할 만한 이유도 분명히 있다. 트럼프는 공개회담의 모두발언으로 한미 조선협력에 큰 기대를 표명하는 데 긴 시간을 할애했다. 경제통상 분야에서는 한 달 전 관세협상 결과를 준수한다는 합의가 있었고 농산물이나 소고기 문제는 논의되지 않았다.

한국군 현대화를 위해 어차피 투자해야 할 국방비 증액을 약속했지만 방위비 분담금 증액 압력은 없었다. 알래스카 LNG 사업 합작투자에 관해 트럼프의 언급이 있었지만 이미 약속한 3500억 달러의 투자펀드로 추진 가능한 사업이다. 우리는 한미 원자력협정의 개정문제를 제기했고 앞으로 이에 관한 실무협의가 전개될 예정이다. 회담 수 시간 전 “숙청, 혁명” 문자로 젤렌스키나 라마포사의 참극을 예고하는 듯 했지만 트럼프가 자신의 실수라면서 깨끗이 물러서는 바람에 극우세력은 완전히 바람 빠진 풍선 꼴이 되고 말았다.

그리고 트럼프는 비공개 오찬 회담에서 이재명 대통령을 “위대한 지도자”라고 호칭하기까지 했다. 가장 중요한 이슈였던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이 논의되지 않았다는 것도 성공의 한 측면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착각이다.

‘진짜 대한민국’의 자주성 지켰는가

필자가 보는 회담 성패의 기준은 이재명 대통령이 천명하고 있는 “진짜 대한민국”이라는 가치다. 그리고 그 가치의 핵심은 내가 내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고 개척해 나가는 ‘자주성’이다. 상황에 따라 겉으로는 상대한테 립서비스할 수는 있더라도 중심에는 “진짜 나”가 살아 숨 쉬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번 회담에서 “진짜 대한민국”의 모습은 그다지 보이지 않았다. 스마트한 이재명 대통령만 있었을 뿐이다.

말꼬리를 잡을 생각은 없다. 하지만 그 말 속에 진심이 어떤 모습으로 들어앉아 있는지 살펴야 할 언사가 셋이 있다. 첫째, 이번 회담의 백미라 할 수 있는 대목이다. “당신은 피스 메이커, 나는 페이스 메이커.” 남북관계의 미래는 “우리끼리” 개척해 나아가야 한다. 남이 상황을 타개하고 우리는 그저 페이스 메이커로 보조나 맞추는 역할에 만족하면 안 된다. 우리가 주인이 되어 남북의 경색을 뚫을 일이다.

둘째, “트럼프 대통령께서 한미일 협력을 매우 중시하고 계시기 때문에 제가 트럼프 대통령을 뵙기 전에 일본과 미리 만나 대통령께서 걱정할 문제를 미리 정리했다고 생각해 주시면 좋겠다.”라는 언급이다. 역사적으로 한일관계는 미국이 우리 팔을 비틀어 진행되어 왔다. 1965년 국교정상화도 그렇고 위안부, 강제징용 문제의 처리방안도 미국의 압력으로 성사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미국에 잘 보이려고 한일관계를 개선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이익을 위해서다.

셋째, CSIS(전략국제문제연구소)에서의 발언이다. “이제는 한국도 미국의 기본적인 정책에서 어긋나게 행동하거나 판단할 수 없는 상태다.” 안미경중(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에서 취한다)에 대한 답변이었고 미국을 배려하는 언급이기는 했어도 너무 나갔다. 말대로라면 우리는 미국의 핵심 정책인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에 어긋나게 행동하거나 판단하면 안 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미중이 군사적으로 충돌하는 상황에서 중국의 공격을 받아야만 한다. 절대 안 될 일이다.

이재명 대통령 25일(현지 시각) 미국 워싱턴 DC 백악관 오벌 오피스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한미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 25일(현지 시각) 미국 워싱턴 DC 백악관 오벌 오피스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한미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앞으로 우려되는 일들

마르코 루비오 국무장관은 이번 회담의 핵심 의제에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올려놓기 위해 한국을 압박하고 있었다. 그는 한국이 이에 동의하지 않으면 관세협상 결과를 원점으로 돌리겠다면서 조현 외교장관이 서둘러 워싱턴으로 오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들었다. 비록 이번 회담에서는 이 문제가 논의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미국이 철회한 것은 아니다. 미국은 앞으로 “한미동맹의 현대화”란 미명으로 계속 압박해 올 것이다. 주한미군 감축 내지 철수 협박도 서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주한미군이 나가겠다면 ‘땡큐 바이바이’로 배웅해야 한다.

한미 조선협력에도 악마가 하나 숨어 있다. 미국 전함의 MRO(유지·보수·정비) 사업이다. 미국은 MRO를 빌미로 함대를 한국에 전진배치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 당연히 중국을 겨냥한 것이다. 중국은 사드 배치 때처럼 반발할 것이 분명하다. 또 미국은 한국의 항구를 미국 전용의 MRO 기지로 “소유권”을 내놓으라고 “통 크게” 요구하고 나올 가능성도 있다. 우리가 “진짜 대한민국”의 의식을 확고하게 갖추지 못하고 있으면 미국의 요구에 사사건건 굴복하게 되어 있다. 왜냐하면 한미 FTA가 그랬던 것처럼 미국에 모든 것을 퍼주는 것이야말로 “한미동맹의 강화”이기 때문이다. 안 된다.

숭미 잠재의식을 지워야한다

이번 한미 회담의 “성과”를 폄하할 생각은 없다. 이재명 대통령이었으니 이만한 결과가 나왔다는 점도 좋은 마음으로 인정해야 한다. 하지만 이제 시작이다. 과거 이명박, 박근혜, 윤석열 정부는 한미동맹을 한국의 헌법 위에 위치시켰다. 미국이 하는 일이면 무조건 선(善)이었다. 그렇다고 노무현, 문재인 정부가 성공한 것도 아니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그 찬란했던 2018년이 성과 없이 지나가도록 보고만 있었다.

우리는 마음속의 “숭미(崇美) 잠재의식”을 지워야 한다. 트럼프가 이재명 대통령을 위대한 지도자라고 칭했다고 과도하게 열을 올릴 것 없다. 조선의 왕들이 중국 황제의 책봉을 받아 조정에서 환호하는 모습이다. 숭미 유전자와 잠재의식의 발현 양태일 수 있다. 이재명 정부는 성공해야만 한다. 그리고 승리해야 한다. 진짜 대한민국을 성취해야 한다. 정부만의 과제가 아니다. 우리 온 국민의 과제이기도 하다.

글쓴이

이경렬 전 직업외교관

이경렬은 직업 외교관으로 일했다. 1985년에 외무부에 처음 들어간 이후 약 15년 이상을 해외에서 지냈다. 보스턴, 파리, 텔아비브, 하노이, 워싱턴, 비슈케크(키르기스스탄), 바르샤바, 루안다(앙골라)가 그의 활동 공간이었다. 코이카 창설, 우리나라의 OECD 가입, 한미 FTA 협상의 과정에 관여했다. 아울러 한미 원자력협정을 협상했고, 보건복지부에서 국제협력 업무를 총괄했으며, 2014년부터 2년간 앙골라에서 대사로 일했다. 퇴직후 지금은 시, 소설, 에세이, 칼럼, 인류문명 비평서 등을 쓰는 작가로서의 삶을 살고 있다. 이창천이란 필명으로 “명품외교의 길: 좌파 외교관이 보는 한국외교”(2025. 3, 진인진), “브라보 한미동맹: 숭미동맹의 그늘 벗어나기”(2025. 8, 진인진)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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