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2년의 구운몽, 2025년의 ‘구운몽’

[경북대 민교협 시사칼럼] 4.19혁명후 희망을 노래한『광장』 1년뒤 5.16쿠데타에 악몽된『구운몽』 12.3내란후 우린 얼마나 악몽에 시달렸나 2025년 다시 사랑을 꿈꾸며 날아오를까

2024년 12월14일 국회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가결하자 국회 앞 촛불집회에 참석한 시민들이 환호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2024년 12월14일 국회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가결하자 국회 앞 촛불집회에 참석한 시민들이 환호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 2025년 2월부터 <더 칼럼니스트>와 <경북대 민주화교수협의회>는 공동 기획으로 다층적 차원에서 한국 사회를 분석하는 연재를 시작합니다. 정치학·사회학·언론학·문학·경제학·교육학·공학을 전공하는 다양한 연구자들이 참여하여 지역의 시선에서 우리 사회의 쟁점에 대한 진단을 제시하고 민주주의 근육을 강화하기 위해서 시도하고자 합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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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훈의 소설 『광장』이 1960년 4.19혁명이 낳은 자유의 공간에서 쓰인 작품이라는 건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이 작품은 1960년 11월 <새벽>에 처음 발표되었는데, 그 서문에 작가는 ‘저 빛나는 4월이 가져온 새 공화국에 사는 작가의 보람’을 느낀다고 썼다. 4.19혁명은 『광장』의 입구에 비석처럼 서 있다.

최인훈이 1962년에 발표한 소설 『구운몽』이 5.16군사정변 이후의 공포를 악몽의 형식으로 쓴 작품이라는 건 덜 알려져 있다. 이 작품은 꿈을 그리고 있는 만큼 그 이야기가 단절적이고 환상적이다.

최인훈의 소설 광장/구운몽의 표지(출판사 문학과 지성)
최인훈의 소설 광장/구운몽의 표지(출판사 문학과 지성)

이 꿈 이야기에서 주인공 ‘독고민’은 선생님, 사장님, 각하 등으로 호명되고 그에 맞는 역할을 요구받지만, 독고민으로서는 이 호명을 자신과 전혀 연관지을 수 없기에 당혹스럽다. 독고민이 이 호명을 피해 달아나고 시인들과 회사의 중역, 댄서 등이 독고민을 추격하는 이상한 상황이 반복되고, 이 과정에서 그가 혁명의 수괴가 되어 쫓기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혁명을 진압하려는 정부군에 쫓기다가 광장에서 처형당하지만, 또 다른 장면에서 겨우 목숨을 건져 망명길에 오른다.

이 이야기에서도 가장 충격적인 상상력은 신체가 분리되는 장면에서 드러난다. 독고민이 강을 헤엄쳐 달아나는 장면에서 그의 팔과 손가락이 떨어져 나가고, 왼팔은 다시 두 조각으로 나뉘어 두 개의 왼팔이 되고, 오른팔 오른 다리, 그리고 가운데 토막도 모조리 쪼개지고, 쪼개진 조각들이 또 쪼개져 삽시간에 강은 수없이 많은 몸의 조각들로 덮인다. 이 쪼개진 몸의 조각들을 본다. 강 저쪽을 보니 또 이런 신체들이 자신의 부족한 신체를 맞추기 위해 달려오고 있다. 이 괴물들이 자신에게 없는 신체를 찾아 맞추기 위해 달려오는 장면은 괴기스럽다.

5.16 군사정변후 쿠데타세력이 권력을 장악하고 이어 혁명재판부를 세워 정치인들을 구속시켰다.
5.16 군사정변후 쿠데타세력이 권력을 장악하고 이어 혁명재판부를 세워 정치인들을 구속시켰다.

최인훈이 이 기괴한 이야기에서 그려 보인 것은 4.19혁명으로 얻게 된 자유가 5.16군사정변의 총칼 앞에서 무참히 살해되었다는 것이었다. 그 달콤한 자유가 한갓 허망한 꿈이 되어 흩어지고 말았다는 차갑고 절망적인 인식이었다. ‘저 빛나는 4월이 가져다준 새로운 공화국에 사는 작가의 보람’을 광장을 통해 한껏 드러내 보였던 이에게 있어 그 뒤에 일어난 상황은 악몽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2024년 겨울부터 2025년 여름 사이 우리는 또 한 번 악몽의 계절을 살았다. 그동안 우리는 초현실적인 사건을 여러 차례 겪었고 그때마다 우리 사회가, 우리 신체가, 우리의 정체가 분리되는 경험을 해야 했다. 내란의 우두머리와 그 잔당들이 버젓이 활개 치는 세상을 보고 몸서리친 밤은 얼마였으며, 악몽을 꾸다 깨어나 가슴을 진정하지 못하고 뉴스를 찾아 읽은 새벽은 또 얼마였던가.

이 계절을 겪은 눈으로 『구운몽』을 다시 읽어 보니 이 작품이 그리는 황당무계한 이야기는 그 시대 시민의 심층심리를 가장 충실하게 그린 이야기라는 걸 알겠다. 『구운몽』의 독고민은 사랑을 기약하는 것으로 망명길에 오르며 암구호를 주고받는다. ‘피닉스는 또다시 날까요?’, ‘사랑이 있는 한 날 것입니다.’

2025년 지금 우리가 마주한 현실이 1962년 최인훈이 당한 현실과 다르다는 사실이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모르겠다. 그 겨울 거리에서 우리가 함께 불렀던 노래, 함께 써 내려간 이야기는 1962년 독고민이 기약했던 사랑 그것이었으리라. 새로운 정부가 들어선 지금, 해야 할 일이 많고 또 많은 일을 하고 있다. 삶이 늘 그렇고 역사가 그렇듯이 어려움이야 있겠으나 그건 그것대로 힘껏 해나가되, 그 겨울 우리가 나눈 사랑을 생각하고 자부심을 가져도 좋을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랑이 있는 한 우리는 또다시 날아오를 것이다.

글쓴이

류동규 경북대 국어교육과 교수

류동규는 현재 경북대 국어교육과에서 한국 근현대소설을 가르치고 있다. 한국 전후 작가와 작품에 대해 연구하여 관련 연구서로 <전후 월남작가와 자아정체성 서사>, <식민지의 기억과 서사> 등을 출간했다. 소설 읽기가 시민성을 기르는 경험이 될 수 있다고 생각으로, 글쓰기와 강의를 통해 이를 공유하는 일에 마음을 쓰고 있다. 최근에는 식민지 시대의 교육자이자 무교회주의 사상가였던 김교신 선생의 사상과 실천에 대해 공부하고 알리는 데 진심이다. 김교신선생기념사업회 운영위원을 맡고 있으며, 곧 김교신 선생에 관한 저서를 출간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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