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에 ‘수치로 환원된 이방인들’

[경북대 민교협 시사칼럼] 30만 유학생 시대, 포용과 공존의 캠퍼스를 묻다

챗GTP 생성이미지.
챗GTP 생성이미지.
  • 유학생 30만 시대의 양적 팽창과 갈등 정부의 유학생 유치 정책과 대학의 재정난이 맞물려 국내 외국인 유학생이 30만 명을 넘어섰다. 그러나 강의실 내 소통 문제와 학습권 침해 등 구성원 간의 갈등과 피로감이 커지고 있다.
  • 대학 기업화와 학사 관리 부실 재정 확보를 위한 무분별한 유학생 유치와 느슨한 입학·학사 관리, 돌봄 체계 부족은 ‘물박사’ 논란 같은 학위 신뢰도 하락과 구조적 부작용을 낳고 있다. 중국 유학시절 경험은 그 반대였다.
  • 포용과 공존의 캠퍼스로의 전환 유학생을 재정적 수단이 아닌 동등한 학문적 주체로 대우하고, 철저한 학사 원칙과 공공적 돌봄 인프라를 확충하여 진정한 의미의 국제화와 상생의 공동체를 구축해야 한다.

▶ 칼럼의 핵심 요약본을 들어보세요

중국 유학생으로부터 받은 메시지

며칠 전인 9월 10일 중국의 교사절(스승의 날), 올해 2월 한국에서의 학업을 무사히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간 중국인 학생의 메시지를 받았다. 낯선 한국 땅에서 서툰 언어와 씨름하며 치열하게 생활하던 그 아이는 이제 어엿한 사회인으로서 제 몫을 하며 성장하고 있었다.

감사 인사와 서로의 근황을 전하는 몇 줄의 대화는 작은 기쁨을 안겨줌과 동시에, 마음 구석에 자리한 유학온 아이들에 대한 오래된 부채감을 끌어내었다. 감사를 표하는 학생에 대한 선생의 송구함, 익숙해질 수 없는 불편한 조건반사이다.

오늘도 캠퍼스를 분주히 오가는 수많은 이방인 학생들에게 한국의 대학은 건강한 ‘포용과 공존의 공간’인지, 아니면 차가운 ‘수치(數値)의 시장’인지 서늘한 자성이 따라왔다.

유학생 30만명 시대의 씁쓸한 풍경

최근 교육부 통계에 따르면, 국내에 체류 중인 외국인 유학생 규모는 어느덧 30만 명을 넘어섰다. 정부의 ‘스터디 코리아 300K’ 프로젝트와 맞물려, 지역 대학들은 앞다퉈 ‘국경 없는 캠퍼스’를 내세우며 유학생 유치에 사활을 걸고 있다.

그러나 수치상의 화려한 양적 팽창 이면을 들여다보면, 강의실 안의 풍경은 종종 갈등과 피로감으로 얼룩져 있다.

현장에서 한국인 학생들의 목소리를 들어보면 유학생들과 함께 수업을 듣는 것에 대한 문제의식이 결코 가볍지 않다. 조별 과제에서 발생하는 의사소통의 어려움, 불가피하게 빚어지는 수업 진행의 지연 등은 한국인 학생들 입장에서 정당한 학습권 침해로 다가오기도 한다.

한국어 능력을 충분히 갖추지 못한 채 학업에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하는 일부 유학생들에 대한 비판적 시각은 충분히 공감할 만한 현실이다. 하지만 이 갈등과 불만의 화살이 온전히 유학생 개인만을 향하는 것이 과연 온당한가.

비판의 시선은 강의실 내의 갈등을 방치하고 있는 대학 당국의 구조적 환경을 향해야 한다. 최소한의 수학 능력이나 언어 능력을 검증하는 입학 사정 과정이 느슨해지고, 입학 후 언어적·학업적 적응을 돕는 세밀한 돌봄 체계가 부족한 탓에 그 무거운 짐이 온전히 학생들 간의 개인적 갈등으로 떠넘겨지고 있는 셈이다.

해외 유학생 입학에 목마른 대학들

물론 학령인구의 가파른 감소와 십수 년째 동결된 등록금으로 인해 극심한 재정난을 겪고 있는 지역 대학들의 고충을 외면할 수는 없다. 대학의 존립 자체가 위협받는 현실 속에서, 대규모 유학생 유치는 대학 재정 유지와 생존을 위한 ‘부득이한 선택’이라는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

하지만 그 근저에는 지식 공동체여야 할 대학을 이윤 창출과 지표 달성의 도구로 전락시킨 ‘신자유주의적 대학 기업화’의 논리가 짙게 깔려 있다. 교육의 공공성을 방기한 채 무한 경쟁과 기업적 효율성에만 매몰된 결과, 이미 목전에 닥친 생존의 위기감은 기형적인 학사 운영을 양산해 내고 있다.

그 수가 적지 않은 대학들은 유학생 유치를 위해 단기 석사반을 운영하거나 1년 편입생 제도를 확대하고 있으며, 때로는 유학생 전용 반을 꾸려 전담 통역사나 통역기에 의존해 언어 장벽 없는 속성 과정을 운영하기도 한다. 이러한 고육지책들은 안타깝게도 학위의 신뢰도를 떨어뜨리는 뼈아픈 부작용을 낳고 있다.

한국 ‘물박사’ 논란과 중국 유학 경험

일례로 중국 내에서는 한국에서 상대적으로 쉽게 학위를 취득한 이들을 일컫는 이른바 ‘물박사(水博士, 수준 미달의 박사)’ 논란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된 바 있다. 심지어 얼마 전 언론 보도를 통해, 모 지방거점국립대에서는 코로나19 시기의 비대면 수업 방식과 허술한 학사 관리를 틈타 한국에 단 한 번도 입국하지 않고 박사과정을 수료한 유학생의 사례가 적발되어 큰 충격을 주기도 했다.

이는 대학이 유학생을 한국 학생과 같은 시각으로 바라보며 지식을 탐구하는 학문 후속 세대로 온전히 품어내기보다, 위기를 넘기기 위한 재정적 구명줄로 의존하는 과정에서 빚어진 씁쓸한 단면이다.

과거 필자가 중국의 대학에서 공부하던 시절, 고된 학업과 타지 생활에 수반되는 간헐적 고립감을 견딜 수 있었던 것은 거창한 행정 구호나 유학생 장학금, 의례적인 관심 때문이 아니었다.

중국인 지도교수는 필자가 논문 작업에 온전히 몰두할 수 있도록 기꺼이 연구소 열쇠를 내어주며 매일 8시 전에 연구소 문을 열고 12시 넘어 문을 닫으라는 임무를 맡겼고, 채광과 통풍이 좋은 창가 자리도 따로 마련해 주었다.

동료 선후배 연구자들도 일상을 함께하며 서로에게 굳건한 지원군이 되어주었다. 잠시 머물다 가는 손님이나 수입원이 아니라, 동등한 학문적 주체로 인정해 준 그 따뜻한 포용이 척박한 유학 생활을 버티게 한 가장 큰 힘이었다.

다행히 우리 대학 사회 안에서도 정상화의 가능성을 증명하는 의미 있는 변화가 일고 있다. 학술대회 발표장이나 연구실, 그리고 강의실 곳곳에서 우리는 뛰어난 학문적 성취를 보여주는 우수한 유학생들을 숱하게 마주한다.

일부 대학과 학과에서는 이들이 학업에 전념할 수 있도록 연구원으로 참여시키고, 교수자로서의 강의 기회를 제공하기도 하고, 한국인 학생들과 멘토-멘티로 결연을 맺어 서로의 성장을 돕는 제도를 운영하며 상생과 연대의 캠퍼스를 만들어가고 있다.

유학생에게도 충분한 돌봄 인프라를

이제 우리는 유학생 졸업 이후의 단절된 학술 관계망도 정상화해야 한다. 본국으로 돌아가 어엿한 사회인으로 활약하거나 학계에 남는 이들과 지속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중장기적 네트워크를 고민해야 한다. 유학 생활을 마치고 대학을 떠나는 순간 지워지듯 단절되는 관행에서 벗어나, 문화·학술 생태계를 잇는 가교로서 이들을 대우해야 한다.

진정한 의미의 국제화는 학생의 머릿수를 늘리는 맹목적인 팽창에 있지 않다. 대학 당국은 유학생 유치가 재정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 할지라도, 학사 관리의 원칙을 세우고 입학부터 일상과 학업을 아우르는 공공적 돌봄 인프라를 확충해야 한다.

낯선 존재들이 강의실 안에서 평등한 동료로 대우받고, 앎의 기쁨을 나누며 공존하는 공동체를 만들어내는 일. 이것이야말로 30만 유학생 시대를 맞이한 지금 우리 대학과 대학의 구성원들이 결코 외면해서는 안 될 가장 절박한 시대적 과제다.

이 칼럼을 영상으로 · 2:15 유학생 30만명 시대, 한국 대학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
글쓴이

배득성 경북대 중어중문과 강사

배득성은 경북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강사로 재직하며 청년들과 소통하고 있다. 세 딸아이의 아빠로서 아이들이 살아갈 다원화 사회의 통합과 민주 평등사회, 교육의 공공성에 관심을 두고 '獨立之精神, 自由之思想'으로 세상을 읽고 쓴다.

댓글

    함께 읽을 글

    칼럼 전체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