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력과 성과의 언어에 훼손되는 대학의 존재 이유

[경북대 민교협 시사칼럼]

지난 2025년 12월 교육부 업무보고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서울대와 지방국립대 예산 차등 지원 이유를 묻고 있다.
지난 2025년 12월 교육부 업무보고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서울대와 지방국립대 예산 차등 지원 이유를 묻고 있다.
  • 대학 본부의 일방적 지표 상향과 교수 사회의 저항 경북대 본부는 교육부 사업 선정을 목적으로 교수들과의 합의 없이 연구 실적 기준을 2배 상향하는 졸속 개선안을 추진했으나, 전체 조교수의 90%가 서명 운동에 동참하고 비대위를 결성하는 등 전면적인 반대에 부딪혔다.
  • 정권을 초월해 반복되는 공모형 대학 통제 정책 이번 사태는 재정지원을 빌미로 대학을 실적 경쟁으로 내몰아온 한국 대학 정책의 고질적 민낯이다. 현 정부 역시 성과 중심의 교원 인사 제도를 강요하며 대학들을 평가 지표 순으로 줄 세우는 통제 문법을 반복하고 있다.
  • 평가 도구로 전락한 대학의 본원적 존재 이유 복원 연구가 학문 활동이 아닌 사업 수주를 위한 도구로 전락하면서 대학의 공공성은 설 자리를 잃었다. 대학이 제 역할을 하려면 당장의 수치나 효용으로 환산할 수 없는 비판적 지식과 사회적 질문을 지켜내는 공간으로 돌아가야 한다.

사업 수주 눈먼 졸속 지표, 경북대 조교수들의 반발

지난 5월 중순, 경북대에서는 대학 본부가 주관한 <교원 승진 및 재임용 지표 개선을 위한 공청회>가 열렸다. 참여 대상은 조교수들이었다. 본부가 발표한 개선안의 핵심은 두 가지였다.

첫째, 승진을 위한 양적 기준의 약 2배 상향이다. 이에 따르면 경북대 ‘조교수’가 ‘부교수’로 승진하려면 4년간 1,000%(연 250%), ‘부교수’에서 ‘교수’로 승진하려면 5년간 1,200%(연 240%)의 연구 실적을 달성해야 했다.

둘째, 정년보장 심사에 국외 우수 연구자의 피어 리뷰(peer review)를 도입하는 것이다. 학내 교수들과 충분한 논의 없이 준비된 공청회 자료에는 거점국립대 혁신계획 수립 기반 마련과 승진 요건 강화 추세 반영이 근거로 제시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점잖은 표현의 이면에는 다른 논리가 숨어 있었고, 이는 공청회에서 확인되었다.

조교수들이 연구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충분하지 않다는 것은 대학에 몸담은 이라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강의와 학생 지도, 행정 처리는 물론이고, 학과에 필요한 여러 프로젝트까지 도맡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청회에서 보여준 본부 측의 태도는 실망스러웠다.

본부는 자신들이 발표한 안이 긴 호흡의 질 높은 연구를 어렵게 만들 수 있다는 점, 학문 분야의 특성을 반영하지 않은 채 일괄 적용했다는 점을 인정했다. 또한 교육자로서 교수의 역할과 교수의 업무 부담에 대한 고려는 하지 않았다고 했다.

심지어 이 안이 실행될 경우 과중한 부담으로 우수 인력이 이탈할 우려가 있다는 지적에도 공감을 표했다. 한마디로 졸속과 무리임을 인정한 셈이다. 그럼에도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설득했다.

경북대학교 전경.
경북대학교 전경.

정권 교체 무색한 한국 대학 정책의 민낯

본부가 내세운 상황은 교육부의 국립대 육성사업, 이른바 ‘서울대 3개 만들기’에 선정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서는 다른 거점국립대와의 경쟁에서 이겨야 하는데, 이미 승진 및 재임용 지표를 상향 조정한 거점국립대가 있으므로 그보다 더 높은 기준이 필요하다는 것이 본부의 핵심 논리였다.

설사 7월에 발표하는 국립대 육성사업 선정에서 탈락하더라도 이 안은 유지하겠다는 강경한 태도도 보였다.

조교수들은 크게 반발했다. 비상대책위원회를 결성했고, 전체 조교수의 90% 가까이가 서명한 성명서를 발표했다. 또한 국교조 경북대 지회와 경북대 교수회도 성명서를 발표하는 등 본부의 안은 학내 교수 사회의 전면적인 반대에 직면했다.

마침 예정되어 있던 국교조와 교육부 장관의 간담회에서 이 문제가 논의되었고, 교육부 장관은 국립대 육성사업 선정 과정에서 무리한 승진 조건을 요구하지 않겠다고 구두로 약속하기도 했다. 결국 총장은 기존 안을 재검토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물론 상황이 종료된 것은 아니다. 본부는 전면 철회를 공식화하지 않았으며, 새로운 의견수렴도 하지 않은 채 각 단과대학에 개선안을 제출할 것을 요구했다.경북대에서 지금 진행되는 이 일은 실적 경쟁을 중심에 놓고 대학을 운영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오랜 대학 정책의 민낯을 보여준 사건이다.

‘대학 줄 세우기’ 경쟁으로 회귀한 정부의 성과 통제

우리는 흔히 정권 교체를 이전 정책에 대한 심판이자 새로운 방향의 출발로 생각하곤 한다. 그러나 대학 정책에 관한 한, 이는 틀린 생각이다. 한국에서 정권 교체가 시작된 이래 모든 정부는 이름만 달리했을 뿐, 공모 방식의 대형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대학에 대한 선별적 지원을 계속해 왔다.

그러자 대형 프로젝트에 선정되지 않으면 대학 운영에 어려움을 겪게 되는 구조가 자리 잡았고, 대형 프로젝트 선정은 대학의 최우선 과제가 되었다. 대형 프로젝트에 선정되기 위해서 대학은 스스로 경쟁력을 입증해야 했다.

그래서 끊임없이 실적을 계산하고 증명하는 것은 한국 대학의 핵심 작동 원리가 되어 갔다. 정부의 대학 정책에서 연구는 학문 활동의 결과물이기보다 승진과 재임용, 사업 선정과 대학평가에서 활용되는 실적 경쟁의 도구로 취급되었다.

이는 ‘빛의 혁명’으로 탄생했다고 하는 이번 정부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그동안 ‘서울대 10개 만들기’로 불렸던 이번 정부의 국립대 육성사업은 지난 4월 15일 발표된 ‘성장엔진 연계 지역인재 양성 방안’을 통해 사실상 ‘서울대 3개 만들기’가 되었다.

정부는 제한된 예산 속에서 ‘준비가 잘된 곳’을 우선 지원해 모범사례를 만들고 확산하겠다는 취지라고 설명했으나, 당장 줄 세우기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줄 세우기는 ‘경쟁을 통한 통제’를 핵심 메커니즘으로 하는 전략이다. ‘대학 스스로의 혁신’, ‘승진 및 정년보장 심사 기준의 대폭 강화’, ‘성과 중심의 교원 인사 제도 구축’ 등 4월 15일 정부 발표 역시 이 익숙한 문법을 반복했다. 대학들이 국립대 육성사업에 선정되려면 더 강한 성과관리 장치를 도입하도록 유도한 셈이다.

최교진 교육부 장관이 지난 4월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성장엔진 연계 지역인재 양성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최교진 교육부 장관이 지난 4월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성장엔진 연계 지역인재 양성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수치 너머의 지식을 잃어가는 대학의 존재 이유

기업도 아닌 대학이 왜 실적 경쟁을 해야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사실 대학의 경쟁력 지표라는 것조차도 객관적 지표라기보다는 평가기관이 선택한 지표와 가중치에 따라 구성된 수행적 장치의 결과물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역대 정부들은 경쟁력을 신봉해 왔다. 이처럼 정부가 경쟁력을 신봉하자 대학의 공공성은 점차 설 자리를 잃어갔다.

대학은 역사적으로 진리 탐구의 공간이자, 교양과 시민성의 형성 공간이며, 비판적 공론장의 기반으로서 민주주의의 지적 조건을 제공해 온 장이다. 우리의 현대사가 그 증거이기도 하다.

이 정부는 스스로를 빛의 혁명으로 탄생했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이 정부는 역사적으로 대학이 수행해 왔던 공공적 역할에 빚지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도 여전히 경쟁력과 성과의 언어가 지배적인 대학 정책에서 벗어나지 않고 있다.

지금 경북대에서 벌어지는 일은 단지 한 대학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오늘날 한국의 대학이 어떤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전형이다.

‘민주주의의 회복’을 주창하는 정부라면, 대학을 경쟁력과 성과의 언어로만 다루어서는 안 된다. 대학은 사회가 묻지 않으려는 질문을 던지고, 당장의 효용과 수치로 환산되지 않는 지식을 지켜낼 수 있어야 한다.

연구가 질문의 결과물이 아니라 경쟁의 도구가 되는 순간, 대학은 자신의 존재 이유를 잃어간다. 어쩌면 우리는 언젠가부터 대학의 존재 이유를 잃어가는 시간 속에 있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이 시간을 되돌릴 수 있을 것인가?

글쓴이

김정원 경북대 사회학과 조교수

김정원은 경북대학교 사회학과 조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외환위기 시절 우연히 자활사업 현장에 몸을 담게 된 후 빈곤과 사회적경제를 화두로 실천가와 연구자로 활동했으며, 최근에는 민주주의와 시민권에 관심을 두면서 실천가와 학생들을 만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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