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과 시련은 우리를 성장시키는가?

[경북대 민교협 시사칼럼] 아이들의 지능은 가난과 관련있을까 실제 연구에선 그 현상이 관찰되기도 ‘환경적 스트레스’가 두뇌성장에 영향 경제적 고통받는 서민들의 진심 지켜야

경계선지능은 평균 아이큐가 70~84정도를 보인다. 영화 포레스트 검프의 주인공이 경계선지능장애아다.
경계선지능은 평균 아이큐가 70~84정도를 보인다. 영화 포레스트 검프의 주인공이 경계선지능장애아다.
  • 2025년 2월부터 <더 칼럼니스트>와 <경북대 민주화교수협의회>는 공동 기획으로 다층적 차원에서 한국 사회를 분석하는 연재를 시작합니다. 정치학·사회학·언론학·문학·경제학·교육학·공학을 전공하는 다양한 연구자들이 참여하여 지역의 시선에서 우리 사회의 쟁점에 대한 진단을 제시하고 민주주의 근육을 강화하기 위해서 시도하고자 합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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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지능은 가난과 관련있을까

얼마 전, 한 중학교 교사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경계선지능(평균 지능과 지적장애 사이의 지능-편집자주) 연구와 관련하여 협조를 요청한 적이 있었는데, 이에 응해준 것이다. 다만 학교 측의 요청이 조금 흥미로웠다. 경계선지능이 의심되는 학생 몇 명을 의뢰하리라 기대했는데, 예상과 달리 가능한 많은 학생에게 지능검사를 해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이유가 더 의아했다. 전교생을 대상으로 지필식 지능검사를 실시했는데, 약 60%에 육박하는 학생이 경계선 영역의 점수를 받았던 것이다. 아마도 학생들의 기초학력 부진에 고심하던 교사들이 지능검사 결과에 당황하여 전교생, 안된다면 한 학년 전체를 대상으로 추가 지능검사를 해보고 싶었던 것이다.

같은 도시일지라도 지역에 따라 학교 간 학업 성취 혹은 기초 학력의 차이는 클 수 있지만, 그 중학교의 기초학력 부진은 교사들에게 매우 심각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 의뢰는 결국 실현되지 않았다. 사전동의를 얻기 위해 학부모에게 연락을 시도했지만, 연락이 잘 닿지 않았기 때문이다.

실제 교육청 경계선지능 진단검사와 지원 바우처 사업에서도 유사한 상황이 발생한다. 기초학력 부진과 경계선지능 의심 학생을 대상으로 심리검사를 무상 지원하려 하지만, 학부모들의 협조를 얻지 못해 무산되곤 한다. 부모들과 연락이 닿지 않거나 학부모들이 짬을 내어 자녀들을 검사 실시기관으로 데려오지 못하기 때문이다. 해당 학부모들의 사회경제적 어려움을 우회적으로 엿보게 되는 것이다.

경제적 환경에 따라 지능 차이날까

여기에서 질문을 하나 던져본다. 기초 학력 혹은 지능은 정말 부유한 지역과 가난한 지역에 따라 달라지는가?

지능과 사회경제적 수준 간의 관계에 관한 연구는 수없이 진행되었다. 딱 부러지게 결론을 내릴 수는 없지만, 낮은 사회경제적 지위 아동의 평균 아이큐(IQ)가 만 2세 경에 높은 사회경제적 지위 아동과 비교하여 약 6점 정도 낮고, 이러한 점수 차가 만 16세에 이르면 세 배로 증가한다는 연구 결과는 무시하기 어렵다. 더욱이 최근 한 경계선지능 연구팀이 발표한 연구 결과는 매우 의미심장하다. 32명의 경계선지능 아동(자폐증 스펙트럼, ADHD, 간질, 외상성 뇌 손상, 기형, 중추신경계와 관련된 감염성 질환 및 조산 등의 주산기 합병증, 유전적 증후군 제외)과 14명의 정규발달 아동(통제집단)이 참여한 연구에서, 경계선지능 아동은 통제집단에 비해 환경적 스트레스에 현저하게 더 많이 노출된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경계선지능의 주요 원인 중의 하나가 낮은 사회경제적 지위로 인한 환경적 스트레스라는 점을 재확인시켜준다.

더욱이 중요한 점은 환경적 스트레스가 두뇌 성장의 궤적을 바꾼다는 것이다. 두뇌의 여러 영역에서 비정상적 발달이 관찰되었지만, 연구팀은 변연계의 이상성에 주목하였다. 변연계란 일반적으로 기억과 학습을 담당하는 해마, 공포와 공격성과 같은 정서에 관여하는 편도체 등을 포함하는 구조이다.

경계선지능과 통제집단 사이에 유의미한 집단 차이가 발견되었는데, 대부분 변연계(전방 및 후방 대상피질, 해마, 우측 편도체 등)를 둘러싼 것이었다. 이러한 결과는 아동기 학대/방치와 변연계의 비정상적 발달에 관한 기존 연구 결과와 일맥상통하며, 공포자극에 대한 편도체의 과잉반응성, 유쾌한 기억 자극에 대한 해마의 과소반응성, 보상에 대한 비정상적 반응 등으로 요약된다. 쉽게 설명하자면, 경계선지능 아동의 학습은 전혀 다르게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두렵거나 어려운 상황에 부닥치게 되면 자신도 모르는 새 과도하게 각성하게 되고, 주의를 기울여 학습하고 기억하는 것이 어렵게 된다. 심지어는 기분 좋은 일조차 제대로 기억하거나 반응하기 어려워지는 것이다. 즉, 경계선지능 아동은 같은 학급 내에서 똑같이 학습하지만, 다른 아동들과 다르게, 전혀 다른 것에 반응하고 나아가 다른 방식으로 반응할 수 있다.

시련은 우리를 성장시키는가

예전에 곧잘 듣던 이야기가 있다. 시련 없이는 성장할 수 없고, 고난을 겪어야만 성장한다고 말이다. 일부에게는 사실일 수도 있다. 곤경을 이겨내기 위한 노력 속에서 비약적인 성장을 이루기도 한다. 그러나 이 공식이 모두에게 적용되지는 않는다. 낮은 사회경제적 지위, 그리고 곤궁함으로 인한 환경적 스트레스는 통계적으로 지능을 덜 발달하게 하고, 경계선지능과 같은 제한된 지적 능력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가난과 시련은 두뇌발달에도 영향을 미쳐 삶 전체와 삶을 영유하는 방식에 변화를 미칠 수도 있다.

며칠 전, 어느 작은 가게에서 국수를 주문한 적이 있다. 마침 손님이 없었는지 가게 주인은 보수우파 뉴스를 열심히 시청 중이었다. 뉴스는 수많은 태극기와 성조기가 펄럭이는 3·1절 광화문 국민대회의 열기를 전하고, 탄핵반대 애국운동이 3·1 만세운동과 4·19 혁명의 정신을 이어받았다고 보도하고 있었다. 계엄령은 조금 아쉬운 것(실책?)이었다는 어느 한국사 전문가의 멘트가 끝나자, 뉴스는 한 트로트 경연프로그램 가수들의 노래를 부분 발췌하여 틀어주면서, 외롭게 벼랑에 몰려 홀로 투쟁하는 현 대통령의 고통과 시련에 대한 애석함을 우회적으로 보도하기도 했다.

탄핵반대 태극기집회의 주최자들은 치솟은 물가와 경기위축에 고통받고 있는 서민들의 진심을 헐값에 연료로 낭비시키고 있는 것은 아닌가. 사진= 연합뉴스
탄핵반대 태극기집회의 주최자들은 치솟은 물가와 경기위축에 고통받고 있는 서민들의 진심을 헐값에 연료로 낭비시키고 있는 것은 아닌가. 사진= 연합뉴스

어떻게 이 많은 군중이 쉽게 휘말리는가

사실 궁금하다. 어떻게 이렇게 많은 이들이 탄핵반대에 나설 수 있는지, 반헌법적인 게엄선포를 어떻게 3·1운동과 4·19혁명에 뒤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는지 말이다. 그런데 잘 생각해보면, 이렇게 비합리적으로 보이는 군중 집회가 역사적으로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닌 것 같다.

정치선진국이라 막연히 접어주고 보던 미국에서조차 의회에의 폭력적 난입을 선동했던 이가 당당히 국민투표로 대통령에 재선되는 것을 보면 굳이 히틀러같은 고래적 예를 들 것도 없을 것 같다. 성장의 원동력이 되기도 하겠지만, 가난과 고난, 시련은 도약을 위한 자극보다는 두려운 자극의 입력과 해석의 비정상성으로 이어질 수도 있는 것 같다.

국수를 기다리고 먹는 동안 계속 분통이 터졌는데, 가장 속상했던 것은 애국운동 집회라는 곳에 성조기가 펄럭이는 아이러니도 아니고, 계엄령 선포가 조금 아쉬운 실책이라고 넘어가는 재치있는 입담도 아니었다. 그 뉴스의 애청자인 국수집 주인이 말아주던 국수가 너무도 기가 막히게 맛있었다는 점이었다. 푸짐한 국수와 고명, 조미료 맛이 나지 않는 정직한 국물, 그리고 먹기 미안할 만큼 낮은 가격. 치솟는 물가와 개업과 폐업을 반복하는 작은 가게들의 위기 속에서 뚝심 있게 정직한 국수를 말아주는 사람들의 가난과 시련, 고통, 그리고 진심.

그런데 이렇듯 아픈 진심이 어떻게 저렇게.... 생각할수록 더욱 분노가 치밀었다. 이런 이들의 진심과 분노를 헐값에 쓸 수 있는 연료인 양 소비하고, 이들에게 어처구니없고 허망한 망상적 횃불을 지피는, 무책임하고 파렴치한 보수우파의 언론과 선동가에게 말이다.

가난과 시련은 분명 누구에게나 아픈 고통이다. 이러한 고통이 정치와 선동 속에서 (치유가 아닌) 연료로 소비되지 않도록 제어하는 힘. 그 힘을 가질 수 있다면, 가난과 시련은 우리를 성장시킬 수도 있지 않을까?

글쓴이

김은영 경북대 교육학과 교수

김은영 교수는 경북대학교 교육학과에 재직 중이며, 임상심리 및 상담심리를 가르치고 있다. 관심 분야는 신경심리, 경계선지능, 정신화, PTSD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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