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 가면 꼭 가봐야할 특별한 박물관

[정연복과 손잡고, 세계의 미술관으로] 국립 아프리카계 미국인 역사문화박물관 역사박물관의 멋진 진화...’접촉지대’ 구현 15세기 노예무역부터 21세기 오바마까지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투쟁과 고난 ‘생생히’

미국의 수도 워싱턴 D.C.에 있는 국립 아프리카계 미국인 역사문화 박물관. 미국의 상징인 워싱턴 기념탑이 가까이에 있다.
미국의 수도 워싱턴 D.C.에 있는 국립 아프리카계 미국인 역사문화 박물관. 미국의 상징인 워싱턴 기념탑이 가까이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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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 있는 박물관과 미술관을 가보면 ‘정치적 올바름(Policitcal Correctness, PC)’이 얼마나 중요한 이슈인지 알 수 있습니다. ‘정치적 올바름’ 운동은 오랫동안 박해와 냉대를 받아온 피지배계층이나 국가, 민족, 인종, 다양한 소수자의 인권과 생존 문제에 관심을 갖고 표현하며 투쟁하는 운동을 말하죠. 1960년대, 70년대에는 흑인 인권, 페미니즘, 반전 운동 등이 활발했고, 2000년대 들어서는 SNS를 통해 #Metoo, BLM(흑인의 생명도 중요하다, Black lives matter), LGBTQ+ 운동 등으로 확산되면서 성차별, 인종차별, 다양한 성소수자 차별 문제에 대한 논의가 뜨거워졌습니다.

2016년 개관한 멋지고 특별한 박물관

이러한 맥락에서 흥미로운 박물관이 있는데요. 미국의 수도 워싱턴 D.C.에 있는 “국립 아프리카계 미국인 역사 문화 박물관”(National Museum of African American History and Culture, 이하 NMAAHC)입니다. 이 곳은 지난 2016년 9월 25일 문을 열었어요. 건축에서부터 전시 공간의 활용과 컨셉에 이르기까지 기존 역사박물관의 틀을 깨고 넘어선 획기적인 곳이라고 평가할 만큼 특별하죠. 지하 3층에서부터 지상 4층에 이르는 3만7천㎡규모의 관람 여정은 어두운 역사를 딛고 환희의 춤과 노래를 부르는 놀라운 공간경험을 선사하는데요. 오늘 함께 관람해보시죠.

NMAAHC는 건축물 외관부터 눈길을 끕니다. 가나 출신의 영국 건축가 데이비드 애드제(David Adjaye)를 비롯한 아프리카계 건축가들이 설계했습니다. 외관은 위쪽이 넓게 펼쳐진 청동색 메탈 패널이 3개 층으로 겹쳐진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왕관을 의미하는 ‘코로나’라는 별칭으로 불리는 사다리꼴 메탈 패널은 날씨에 따라 밝은 황금색에서 어두운 갈색에 이르기까지 다채로운 색깔을 띕니다. 박물관은 이 독특한 외관이 다양한 영감에서 탄생되었다고 합니다.

1층 전시실. 오른쪽에 보이는 조각이 이세의 올로웨 조각품이다. 독특한 머리장식은 건축의 외형에 영감을 주었다. 사진=정연복
1층 전시실. 오른쪽에 보이는 조각이 이세의 올로웨 조각품이다. 독특한 머리장식은 건축의 외형에 영감을 주었다. 사진=정연복
NMAAHC에 있는 '이세의 올로웨(Olowe of Ise)' 조각품
NMAAHC에 있는 ‘이세의 올로웨(Olowe of Ise)’ 조각품

박물관 외관을 닮은 머리장식의 조각품

우선 20세기 초 나이지리아의 요루바족 장인인 ‘이세의 올로웨(Olowe of Ise)’ 조각품입니다. 머리 장식이 박물관의 외관 형태와 유사합니다. 코로나의 위쪽 각도는 워싱턴 기념탑 꼭대기에 얹은 갓돌(capstone)의 각도와 일치합니다.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의 노역과 자유를 향한 투쟁의 역사 없이 오늘날의 미국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생각하면, 미국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워싱턴 기념탑과의 근접성과 의미의 연결성을 강조했다는 점에서 의미심장합니다. 게다가 패널의 각도는 하늘을 향해 팔을 들어 찬양과 환희의 제스처를 취하는 사람들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하는데요. 혹독한 상황 속에서도 특유의 정신력으로 저항을 멈추지 않았던 아프리카인들의 긍정적인 에너지를 담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패널에는 구멍이 뚫려있어 건물내부로 비쳐드는 빛의 양을 조절하는 기능을 합니다. 정교한 패턴의 메탈 패널 건축은 아프리카의 토속적인 문화를 담으면서도 모던하고 세련된 느낌을 주는데요. 워싱턴 기념탑과 국회의사당 사이에 양쪽으로 도열한 스미소니언 협회 소속의 고풍스러운 박물관 건물들과 튀는 듯하면서도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아프리카인들을 짐짝처럼 실은 노예선의 내부조감도. 대서양을 건너오는 동안 열악한 환경과 영양부족, 전염병과 탈수, 고문 등으로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고 병들거나 죽은 아프리카인들은 바다에 던져졌다. 사진=정연복
아프리카인들을 짐짝처럼 실은 노예선의 내부조감도. 대서양을 건너오는 동안 열악한 환경과 영양부족, 전염병과 탈수, 고문 등으로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고 병들거나 죽은 아프리카인들은 바다에 던져졌다. 사진=정연복

‘노예 무역과 자유와 해방의 역사’ 한눈에

관람은 지하 3층에서 시작해 지상 4층까지 이어집니다. 지하 3층의 전시테마는 ‘노예제와 자유(Slavery and Freedom)’로 15세기부터 19세기까지 노예 무역과 자유와 해방의 역사(1400~1877년)가 펼쳐집니다. 옴짝달싹할 수 없이 빽빽하게 노예선에 실린 모습과 그때의 경험을 들려주는 아프리카인들의 증언, 19세기까지 북미와 남미 지역에 강제이주당한 아프리카인들의 수치뿐 아니라 낯선 땅에 뿌리를 내리고 살며 각계각층에서 활발하게 목소리를 냈던 학자, 시인, 인권운동가들의 활약상을 볼 수 있습니다.

남북전쟁 이후 1965년까지는 “분리되었으나 평등하다”는 논리로 흑백차별이 엄연히 존재했다. 1등석 비용을 똑같이 지불해도 흑인과 백인은 흑백 전용칸을 이용해야 했다. 백인들이 사용하던 화장실의 크기가 훨씬 컸다. 사진=정연복
남북전쟁 이후 1965년까지는 “분리되었으나 평등하다”는 논리로 흑백차별이 엄연히 존재했다. 1등석 비용을 똑같이 지불해도 흑인과 백인은 흑백 전용칸을 이용해야 했다. 백인들이 사용하던 화장실의 크기가 훨씬 컸다. 사진=정연복

지하 2층의 전시테마는 ‘재건과 차별(Reconstruction and Segregation)’입니다. 남북전쟁 이후 노예제는 철폐되었지만 인종 분리 정책이 엄연히 존재했던 시기를 조망합니다. ‘분리되었지만 평등하다(Separate but Equal)’는 기이한 원칙에 따라 공립학교나 대중교통, 식수대, 식당, 기차, 화장실 등의 공공장소 등에서의 인종차별은 지속되었고 그에 대한 저항 역시 이어집니다. ‘짐 크로우 법’이라고 통칭되던 흑백분리법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1965년 선거법권이 제정되면서입니다.

지하 1층은 ‘시민권 운동과 그 이후(Civil Rights and Beyond)’를 테마로 1950년대부터 현대까지, 마틴 루터 킹 Jr. 목사의 비폭력주의,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의 자결권(自決權)을 역설하는 ‘블랙 파워(Black Power)’ 운동, ‘블랙 뷰티(Black Beauty)’ 운동, 버락 오바마의 대통령 선출, 잭슨 파이브와 오프라 윈프리를 비롯한 대표적인 아프리카계 유명인들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1968년 멕시코 올림픽에서 있었던 일을 나타낸 조각. 육상 200m 금메달리스트 토미 스미스와 동메달리스트 존 카를로스가 인종차별 철폐 운동에 대한 연대를 드러내기 위해 손을 들고 머리를 숙이고 있다. 사진=정연복
1968년 멕시코 올림픽에서 있었던 일을 나타낸 조각. 육상 200m 금메달리스트 토미 스미스와 동메달리스트 존 카를로스가 인종차별 철폐 운동에 대한 연대를 드러내기 위해 손을 들고 머리를 숙이고 있다. 사진=정연복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의 투쟁과 헌신도

지상으로 올라와서도 다양한 분야에서의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의 투쟁과 헌신은 계속됩니다. 1968년 멕시코 올림픽에서 육상선수 토미 스미스와 존 카를로스가 시상대에 서있는 장면을 나타낸 조각이 인상적이었는데요. 두 선수는 한 짝씩 나눠 장갑을 낀 손을 들고 머리를 숙인 채 인종차별 철폐 운동에 대한 연대를 드러냅니다. ‘블랙파워 설루트(Black Power Solute)’라고 불리는 이 행동은 엄청난 파장과 함께 흑인 인권운동에 대한 세계적인 관심을 불러일으킵니다. 이외에도 스포츠, 음악, 공연 예술, 문학, 영화, 시각예술 등 문화 예술계의 다양한 성취를 접할 수 있습니다. 전시실에서는 공연실황 영상과 음악이 여기저기서 울려퍼져 쇼핑센터나 놀이동산에 온 게 아닌가 하는 착각마저 들 정도입니다.

4층은 회화와 조각이 전시되어 있다. 아프리카계 미국인으로서의 삶과 정체성을 탐구하는 흥미로운 작품들을 접할 수 있다. 사진=정연복
4층은 회화와 조각이 전시되어 있다. 아프리카계 미국인으로서의 삶과 정체성을 탐구하는 흥미로운 작품들을 접할 수 있다. 사진=정연복

여기에 NMAAHC의 첫 번째 미덕이 있는데요. ‘교육적이면서도 유희적’이라는 점입니다. 사진과 일러스트, 영상, 통계와 인용문, 도구들, 실제로 거주했던 집, 분리정책을 여실히 보여주는 열차, 조각, 회화, 의상, LP판, 기타, 심지어 가수가 애용하던 자동차까지, 전시된 목록의 종류와 수량이 어마어마합니다. 정보의 충실성도 뛰어난데요. 다양한 글씨체와 크기로 된 텍스트가 사진 혹은 영상과 나란히 있어 흥미를 유발할 뿐만 아니라 직관적으로 쉽게 이해되도록 했습니다.

흥미롭게 전시를 즐기는 관람자들. 사진=정연복
흥미롭게 전시를 즐기는 관람자들. 사진=정연복

‘접촉지대로서의 박물관’ 개념에 충실

두 번째는 ‘타자의’ 관점에서 일방적이고 박제화된 전시의 한계를 극복하고 ‘접촉지대로서의 박물관’ 개념을 훌륭하게 수행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접촉지대’라는 개념은 문화인류학자인 메리 루이스 프랫(Mary Louise Pratt)이 1991년에 제시한 개념인데, 서로 다른 문화, 집단, 또는 권력이 만나는 공간을 의미합니다.

사실 서구의 박물관·미술관들은 1980년대에 이르기까지 식민주의적/지배적 관점에서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 아메리카를 주변부, 피지배계층, 소수자로 바라보는 전시를 무한 반복해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당연히 이들 지역은 이국적이고, 열등하고, 신비롭거나 이해하기 어려운 지역이라는 프레임 안에 갇힐 수밖에 없었고요. 이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면서 서로 다른 문화가 부딪힐 때 생기는 불균형한 권력 관계와 갈등, 저항 등에 주목하게 되었죠.

NMAAHC은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의 적극적인 참여 속에서 어떻게 강제이주당한 아프리카인들이 부당한 지배에 저항하고 자유를 쟁취해 나가는지를 멋지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NMAAHC과 대조되는 곳이 인근에 있는 “국립 아메리칸 인디언 박물관”인데요. 이곳은 아메리칸 인디언들과의 협업 아래 식민주의적 관점을 극복하겠다는 의지로 2004년 문을 열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쉬운 점이 많습니다. NMAAHC이 구체적이고 다양한 방식으로 과거에서 현재, 미래까지 이어지는 활력 넘치는 전시구성을 보여준다면 국립 아메리칸 인디언 박물관은 아메리카에서 터를 잡고 살고 있던 원주민의 역사성을 배제한 채 모형이나 전시물로 박제한 듯이 보일 뿐입니다.

미국 건국 과정에서 희생된 인디언 부족의 문제나 현재 그들의 사회적 위치, 저항과 투쟁의 구체적 상황 등에 대해 다루지 않다 보니 그들의 역사가 실제 역사가 아니라 신화적인 차원에 속한 느낌마저 듭니다. NMAAHC이 과거의 부끄러운 역사를 극복하고 ‘접촉지대로서의 박물관’ ‘소통과 대화로서의 박물관’을 지향하고 있다면 국립 아메리칸 인디언 박물관은 여전히 일방적인 유물의 전시 보존에 머물러 있다는 안타까움을 떨치기 어렵습니다.

명상의 방. 벽면에 마틴 루터 킹 Jr. 목사의 문구가 보인다. "우리는 정의가 물처럼, 의로움이 거대한 물줄기처럼 흘러넘칠 때까지 일하고 싸울 것입니다(We are determined to work and fight until justice runs down like water and righteousness like a mighty stream)." 사진=정연복
명상의 방. 벽면에 마틴 루터 킹 Jr. 목사의 문구가 보인다. “우리는 정의가 물처럼, 의로움이 거대한 물줄기처럼 흘러넘칠 때까지 일하고 싸울 것입니다(We are determined to work and fight until justice runs down like water and righteousness like a mighty stream).” 사진=정연복

“정의가 물처럼, 의로움이 거대한 물줄기처럼”

NMAAHC 지하에는 박물관의 성격을 잘 보여주는 특별한 공간이 있습니다. 바로 ‘명상의 방’인데요. 둥글게 뚫린 천장에서 네모난 바닥면에 세차게 물이 떨어집니다. 공간에 들어서는 순간, 끝없이 떨어지는 물줄기 소리에 고통을 겪으며 무참히 죽어갔을 원혼들을 기리고 참혹한 역사를 씻어내는 정화 의식에 참여하는 듯한 기분에 사로잡힙니다. 벽에는 여러 문구들이 적혀있는데요. 마틴 루터 킹 Jr. 목사의 말이 묵직하게 다가옵니다. “우리는 정의가 물처럼, 의로움이 거대한 물줄기처럼 흘러넘칠 때까지 일하고 싸울 것입니다(We are determined to work and fight until justice runs down like water and righteousness like a mighty stream).”

글쓴이

정연복 미술평론가

정연복 미술평론가는 서울에서 불문학 학위를 받았으며, 프랑스에서 미술사를 공부했다. 현재 중앙대에서 예술사 강의를 한다. 사조의 이해나 단순지식보다는 직관적인 경험으로서의 예술이해에 관심이 많다. 삶에서 예술이 나오고 예술이 곧 삶이 된다는 것, '아는 만큼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는 만큼 느끼는 것'이라는 믿음으로 그림과 미술관에 관한 글을 쓰고 강연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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