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더 나쁜가...전두환 vs. 윤석열①

[‘전두환의 마지막 33년’ 작가 정아은] 지도자 유형 3가지 1. 폭력행사형 지도자-전두환 2. 경제적 고통 투하형-김영삼 3.사적 이익 추구형- 윤석열 누가 가장 나쁘다고 생각하세요?

쿠데타를 시도했다는 공통점을 갖는 윤석열 대통령과 전두환 전대통령.
쿠데타를 시도했다는 공통점을 갖는 윤석열 대통령과 전두환 전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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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평전’ 쓴 작가에게 질문을

“전두환과 윤석열, 누가 더 나쁜 건가요?”

식사 자리에 동행했던 누군가가 물었다. 상대를 잠깐 쳐다본 뒤 나는 이렇게 답했다.

“종류가 좀 다르죠, 두 사람은.”

“어떻게 다르죠?”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상대가 낚아채듯 말했다. 빨리 답을 듣고 싶은 조바심이 그대로 묻어나오는 말투였다.

“직접적인 범죄 차원에서는 전두환이 압도적입니다. 윤은 간접적이고 정교한 차원의 활약상을 보여준 케이스죠.”

내 입에서 사람을 직접적으로 살상하는 차원의 범죄와 경제적, 법적으로 서서히 사람의 생명력을 꺼뜨려가는 방식의 범죄에 대한 이야기가 흘러나왔고, 상대의 동의와 반박을 받은 뒤 다시 답변하는 형식의 대화가 이어졌다.

윤석열 대통령이 국민의힘 대선후보 시절이던 2019년 전두환 전대통령에 대해 "군사쿠데타와 5.18을 빼묜 정치를 잘했다고 말하는 분이 많다"고 말해 여론의 십자포화를 받았다. 사진=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국민의힘 대선후보 시절이던 2019년 전두환 전대통령에 대해 “군사쿠데타와 5.18을 빼묜 정치를 잘했다고 말하는 분이 많다”고 말해 여론의 십자포화를 받았다. 사진=연합뉴스

직접적으론 전두환이 나쁘지만

『전두환의 마지막 33년』을 낸 뒤 이런 종종 이런 질문을 받는다. ‘작가님이 보기에 누가 더 나쁜가요?’ 나는 이런 질문을 좋아하는데, 질문 안에 많은 화두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이런 질문을 던지는 사람은 대개 정치와 역사에 조예가 깊다. 전두환과 윤석열이라는 두 사람으로 대표되는 한국 정치에 대해 이런 저런 생각과 고민을 해오다가, 마침 ‘전두환 평전’을 썼다는 작가를 만났기에 냉큼 묻는 것이다.

네가 보기엔 누가 더 나쁜 것 같니? 이것은 일종의 초대이다. 한 세계를 나누어 가지자는 초대. 부조리함과 모순으로 가득 찬 정치의 세계를 보며 고민하고 울분을 쌓아왔는데, 동일한 관심사를 가진 이를 만나자 반가워하며 서로 내면을 열어 보이자고 손을 내미는 것이다.

누가 더 악마적 지도자니?

대화 도중 나는 세가지 유형의 지도자상을 제시했다. 첫 번째 유형의 지도자는 ‘노골적인 폭력행사형’이다. 이 지도자는 자기 말을 듣지 않는 국민을 죽이거나, 고문하거나, 잡아가둔다.

두 번째 유형의 지도자는 ‘경제적 고통 투하형’이다. 이 지도자는 민주주의를 존중하고 대화를 즐기는 등 ‘품격 있는’ 정치인의 면모를 갖추었지만 공동체의 재화를 늘리고 배분하는데 실패한다. 그 결과 공동체 내의 먹거리가 급속도로 줄어든다. 가족들이 먹을 걸 구해오는데 실패한 가장들이 자살하고, 유기된 아이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며, 우울증과 자해 환자 증가율이 통계를 기록한 이래 최고수치를 찍는다.

세 번째는 ‘사적 이익 추구형’이다. 이 유형의 지도자는 공적 아젠다에 관심이 없다. 온통 저와 제 가족의 이익에만 관심이 쏠려 있다. 사적 이익이 될 때에만 공적 아젠다를 추진한다. 공동체의 재화와 이권을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데 쏟아넣는다.

누가 가장 나쁜가

이 중 누가 가장 나쁜 지도자일까? 첫 번째 유형의 대표적인 예는 전두환이다. 두 번째는 김영삼, 세 번째는 윤석열이 해당한다. 국민의 생명을 직접적으로 앗아갔다는 점에서 보면 전두환이 가장 나쁜 대통령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생명을 앗아갔다는 범위를 늘려 잡으면, 다른 의견이 가능해진다. 전두환이 저지른 폭력은 단기간에 직접적으로 일어났다. 누가 보기에도 살인이었고, 그는 역사에 살인마로 이름을 새겨넣는 운명에 처했다.

김영삼의 경제적 실정은 직접적인 희생을 낳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의 임기 말년에 있었던 외환위기 이후 자살률과 아이 유기, 보험금 사기, 정신질환 증가율이 무섭게 치솟았다. 외환위기 여파로 실직한 가장이 시름시름 앓다가 십 년 후에 세상을 떠났다면, 먹고 살 길이 막막해진 가족들이 다 같이 생을 놓아버렸다면, 그것은 리더십의 실정으로 인한 살인에 해당할까 해당하지 않을까? 김영삼의 경제 실정을 비판하는 이들은 이를 두고 ‘전두환보다 더 나쁜 놈’이라 표현한다. 조심할 점은 그렇게 말하는 이들의 대부분이 군부독재 시절 호의호식하던 기득권층이라는 점이다. 나는 그들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지만, 리더십에 내재된 스펙트럼을 넓히고 다각도에서 조명해 평가해야 할 필요는 있다고 본다.

이제 세 번째 유형에 해당하는 인물인 윤석열을 들여다보자.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것은 인간의 숙명이다. 모든 정치인은 사익 추구를 최우선에 놓는다. 겉으로는 자신이 공적이익을 위해 헌신하리라 외치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모두 제 이익을 최상단에 놓고 그를 향해 나아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사익만을 기준으로 삼는 윤석열

정치인들 간 ‘급’의 차이는 그에 대한 자기인식에 달려 있을 것이다. 자신이 한 명의 인간으로서 이기심을 갖고 있고, 가장 먼저 제 이익을 추구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고 인정하지만, 그럼에도 일정 정도는 공동체의 이익을 위해 복무해야겠다고 다짐하고 노력하는 사람은 사적 이익과 공적 이익을 조율해가며 제 안에서 후자의 영역에 헌신하는 비율을 늘리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그런 인식이 없는 정치인의 경우, 실은 사적 이익을 추구하면서 겉으로는 자기는 사심 없이 오직 국가를 위해 희생하고 있노라 외칠 것이다. 자기 성찰 능력이 없기에, 외치는 제 말을 스스로도 굳게 믿고 있을 것이다. 세 번째 유형의 지도자가 위험한 것은 이 유형이 언제든 1번과 2번을 넘나들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심으로 가득찬 지도자는 때에 따라 폭력을 유용하거나, 공동체의 곳간을 제 곳간처럼 마구 쑤셔 빼돌릴 수 있다.

이는 내가 쉽사리 윤석열보다 전두환이 더 나쁘다! 라고 외칠 수 없는 이유와 연결된다. 세 번째 유형의 지도자는 어떤 일을 저지를지 그 폭과 정도를 예상할 수 없다. 공·사에 대한 인식이 아예 없기 때문에, 무엇이든 할 수 있다. 또한 아무 것도 하지 않으려 들 수 있다. 모순되는 것 같은 이 말을 다시 풀어보면 이런 말이 된다.

‘사익에 도움이 되는 경우엔 뭐든 다 한다.

하지만 사익에 도움이 되지 않은 건 어떤 것도 하지 않다.’

②편으로 이어집니다.

글쓴이

정아은 소설가

정아은 소설가는 2013년 장편소설 『모던하트』로 제18회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하며 작가로서 활동을 시작했다. 펴낸 책으로 장편소설 『잠실동 사람들』, 『맨얼굴의 사랑』, 『그 남자의 집으로 들어갔다』, 『어느 날 몸 밖으로 나간 여자는』, 에세이 『엄마의 독서』, 『당신이 집에서 논다는 거짓말』, 『높은 자존감의 사랑법』, 『이렇게 작가가 되었습니다』, 논픽션 『전두환의 마지막 33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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