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그를 ‘서울의 밤’으로 이끌었는가
[‘전두환의 마지막 33년’ 작가 정아은] 전국민이 하얗게 지새웠던 12월의 하룻밤 윤석열, ‘검사의 권력’ 방식을 잊지 못한 채 ‘설득의 세계’ 정치에서 지위만 믿고 횡포 최악의 비극을 맞을 뻔했던 3일밤 지나, 그는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술김이었나’...그는 왜 그랬을까
한밤중에 계엄령이 내렸다. 계엄사령부가 설치됐고, 소리소문없이 계엄사령관에 임명된 이가 ‘일체의 정치 활동을 금지한다’는 포고령을 발표했다. 국회와 정당의 활동이 금지되고 집회와 시위가 봉쇄됐다. 대체 무슨 일이 생겼기에? 적이 침입해왔는가? 내란이 일어났는가? 아니면 천재지변으로 공동체가 커다란 위험에 처했는가? 그 어떤 경우도 아니었다.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하고 국민이 언제든 잡혀들어갈 수 있는 초법적 조치를 취하기에는 너무나 평화롭고 평범한 밤이었다.
왜 그랬을까. 왜 갑자기 비상 상황을 선포하고 온 국민이 밤을 지새우며 불안에 떨게 만들었을까. 왜 국가안보실도, 비서실도, 집권 여당과도 소통하지 않은 채 대통령이 갑자기 비상계엄을 터뜨렸을까. 떠도는 우스갯소리대로 술을 좋아하는 최고 통수권자가 술김에 저지른 일일까? 자신과 배우자가 했던 위법한 행적이 드러나자 겁에 질린 나머지 술의 힘을 입어 확 일을 저질렀을까? 그랬다 해도 의문이 남는다. 아무리 술김이라 해도, 통신이 발달한 21세기 대한민국에서, 87년 이후 민주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당연시 여기며 30여년을 살아온 국민을 제압할 수 있다 생각하는 게 가능했을까? 한 순간이라도? 아니면 이것은 일종의 자포자기였을까? 명태균, 김영선, 이준석, 오세훈, 홍준표...줄줄이 흘러나오는 증거와 증언의 포화에 절망한 나머지 될 대로 되라는 심정에서 저지른 일일까? 밑져야 본전이니 한 번 해보자 객기를 부렸을까?

윤석열의 인생 행적에 답이 있나?
2024년 12월 3일, 대한민국 20대 대통령 윤석열이 일으킨 사건은 지나온 인생 행적에서 그가 보여주었던 행동 양태와 판에 박은 듯 닮아 있다. 승부수를 던지고, 그대로 밀어붙이기. 누가 뭐라 해도 머뭇거리지 않고 마음 먹은 대로 밀고 나가기. 그렇다. 그것이 검사 윤석열이 일을 행하는 방식이었다. 그 방식이 그를 ‘권력을 두려워하지 않는 강직한 검사’라는 위신을 가져다주었고, 그것이 그가 대통령에 오른 어느 시점에서 그를 ‘국민을 두려워하지 않는 천연덕스러운 대통령’이라는 오명을 둘러쓰게 만들었다. 분단국의 남쪽 구간에 사는 우리네 시민들이 어젯밤 내내 손에 땀을 쥐고 지켜본 것은 한평생 거침없이 돌진하며 살아온 사나이가 제 기질에 걸려 넘어지는 극적인 현장이었다.
어젯밤 그가 제 정치적 생명을 스스로 끊는 일종의 ‘자살 행위’를 하게 만든 데는 여러 요소가 작용했을 것이다. 그 중 가장 중요하게 들여다보아야 할 것은 무엇보다 그가 살아온 풍경, 즉 그의 ‘인생 경험치’일 것이다. 그는 ‘검찰’이라는 조직의 구성원으로 살아왔다. 성인이 된 이후 대부분의 시간을 그 조직에 몸담은 채 서서히 조직 내 위치를 상향시켜왔다. 검찰은 일의 영역과 권한이 확실하게 규정되어 있는 조직이다. 평검사일 때에도, 지검장일 때에도, 검찰총장일 때에도, 그에게는 확실한 권한과 영역, 그리고 내리는 명(命)이 실행으로 이어지는 루트가 보장되어 있었다. 결정권자의 의지가 하달되면 즉시 전달되고 실행되는 명확하고 강력한 세계에서 끊임없이 위치를 높여가며 타고난 기질을 발휘해 세상에 이름 석 자를 새겨넣었던 것이다.
대통령의 자리가 검사와 다른 이유는
대통령이 되면서, 윤석열은 성인기 이후로 한 번도 발을 들여보지 않은 세계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다. 대통령이란 무엇인가. 한 국가가 나아갈 방향을 결정하고 그를 향해 전국민을 이끌어나가야 하는 최고 결정권자이다. 전 국민을 대표하면서, 전 국민을 책임져야 한다. 국가 전체에 대한 현실적 통치성과 개념적 상징성을 동시에 갖는다. 그렇기에 대통령의 일거수 일투족은 투명하게 공개되고 해석된다. 대통령의 언행이 공개되는 범위는 국내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대한민국 대통령의 말과 행동은 전세계에 생중계되며 시시각각 퍼져나간다.
이것이 그에게 불행인 이유는 정치가 ‘설득’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직위가 곧 힘의 행사로 이어지는 검사 직군에 몸담고 살아온 이 순수한 영혼은 ‘대통령’이라는 직군을 ‘뭐든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리’라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그동안 범죄수사라는 제한된 영역에서만 제 의지를 펼치며 살아왔는데, 이제는 그에서 더 나아가 무한대의 영역에서 뭐든지 할 수 있게 되었다고 희희낙락했을지도 모른다. 불행히도, 현실에서 대통령 당선은 그런 무한대의 자유와 선택권이 보장되는 프리패스 획득을 의미하지 않았다.
정치의 세계에서는 지위가 권력을 보장해주지 않는다. 대통령이 가지는 힘의 강도와 범위는 매 순간 변하며, 대통령 스스로 끊임없이 만들고 유지해나가야 한다. 법으로 보장된 명령권이 그 명령의 실행으로 곧장 이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장관이나 공무원에게 명령을 내리면 면전에서 상대는 모두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할 것이다. 그러나 장관이나 공무원이 그 명령을 실행할지 여부는 철저히 상황의 종속변수이다. 대통령의 명령이나 지시를 받는 정치인, 행정직 공무원, 전문가, 각계 각층의 리더는 모두 각자의 ‘관계자들’에 둘러싸여 있다. 이들 주위에 대통령만큼 중요한, 혹은 대통령보다 더 중요한 사람들이, 의사를 따라주고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할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는 말이다.
이미 많은 권한을 가진 유력자로서, 혹은 각 분야의 최고 실력자로서, 이들은 대통령의 명이 자신의 경력과 금전적 이득에 손해가 된다 싶으면 교묘한 방법으로 명을 거스를 것이다. 겉으로 지시를 따르는 척 하면서 실제로는 전혀 지시대로 하지 않거나, 지시한 내용 중 극히 일부만 실행에 옮긴 뒤 지시한 대로 따랐다는 모양새를 내면서, 실제로는 제 이익에 부합하게 행동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큰 선에서 결정을 내린 뒤 그 결정을 현실에 반영하는 과정을 모두 타인에게 지시해 실현시켜야 하는 대통령의 일은 그래서 그 어떤 일보다 복잡하고 어렵다. 관계된 이들이 많고 그에 따른 무한한 관계자들과 종속변수들이 있기에, 지시한 일이 현실에서 의도대로 실현될 확률이 높지 않다. 어쩌면 어린 학생들에게 일어나거나 앉으라는 지시를 내리는 초등학교 교사가, 대통령보다 제 지시를 현실에서 실현할 가능성이 더 높을 것이다.
정계에 몸담은 경력이 오랜 이들은 이 사실을 몸으로 체득한다. 그러나 정치 경험이 전무한 대한민국 20대 대통령은 이를 알 턱이 없었다. 지위의 획득과 유지가 ‘표’라는 타인의 마음을 얻는 행위와 연결되는 정치의 세계는 한번 자격을 획득하면 정년 때까지 지위의 유지가 가능한 검사의 세계와는 완전히 종류가 다르다. 전자가 언제나 출발선으로 되돌아가 사람의 마음을 얻는 작업을 통해 매번 새롭게 창출해나가야 하는 일이라면, 후자의 경우는 일단 올라탄 말에 끈질기게 붙어 있으면 어느 정도는 페이스를 유지할 수 있는 일이다. 지위가 자동적으로 상당 정도의 영향력을 보장해주는 직종에 수십년간 종사해온 검사 출신 대통령은 (스스로 앞당긴 것으로 보이는)임기가 끝나는 날까지 그 차이를 깨닫지 못할 수도 있다.

이제는 체감했을까, 일사분란하지 않는 세상을
수많은 정치인, 정당인, 시사 프로그램 진행자, 칼럼니스트, 정치학과 교수, 정치평론가가 우리의 20대 대통령에게 이렇게 하면 안된다, 저렇게 해야 한다, 조언을 해왔지만, 이 인물은 취임 첫날부터 지금까지 한결같은 전법으로 대처해왔다. 어떤 전법인가? ‘귀를 틀어막고 절대로 듣지 않기 전법’이다. 마치 날 때부터 자신에게 심긴 단 하나의 가치관이 있다면 ‘누가 뭐래도 나는 개의치 않는다!’ 하나뿐이라는 듯.
그러니 이 인물을 향해 보통 사람의 상식에 기반한 조언이나 기대, 주문을 넣는 것은 무의미하다. 윤석열이라는 사람이 지나온 생의 풍경과 행했던 직무, 접했던 사람들, 평생 되풀이해온 사고와 습관을 생각해보면, 그런 조언이 먹히는 게 오히려 놀라운 일이지 않을까?
한반도 남쪽에 거주하는 거의 모든 이들에게 12월 초의 겨울밤을 하얗게 지새게 해준 이 놀라운 인물은 어쩌면 이제야 자신이 그동안 해왔던 ‘나쁜 놈 잡아 가두기’와 ‘전국민을 대표하고 이끌어가기’가 다른 일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는지도 모르겠다. 명을 내리면 즉각 처리되던 검찰조직과, 명을 내린다 해도 이상한 경로를 통해 최초의 명과 상관없는 엉뚱한 결과가 나오는 경우가 허다한 행정부 조직이 다르다는 사실을, 달라도 너무나 다르다는 사실을 이제야 체감했을지도 모르겠다. 특히 자신이 최고 통수권자로 있는 ‘군 조직’은 국민의 생명에 위해를 가할 수 있는 물리적 폭력을 손에 쥐고 있는 치명적인 조직이다. 누군가의 목숨을 앗아갈 수 있는 폭력을 행하라는 명령이 내려왔을 때 망설임 없이 그를 실행할 수 있는 이는 대한민국군 내부에 한 명도 없을 것이다.
1979년, 군 조직의 생리를 꿰뚫고 있는 보안사령관이 명령을 내렸을 때도 일사분란하게 움직이지 않고 여기저기서 반발이 나왔는데, 하물며 군대에는 근처에도 가본 적이 없는 ‘부동시’ 대통령이 내린 명령에 어떤 병사가 기꺼이 국민을 향해 총구를 겨누겠는가? 국민을 보호하는 것이 주된 임무인 보직에 있는 어떤 사람이 아무런 이유 없이 보호할 대상을 향해 무기를 휘두르겠는가? 어젯밤의 사건이 한 편의 코미디로 보이는 것은, 한 국가의 최고 결정권자가 절체절명에 속할 막대한 무게의 명령을, 명령과 명령의 하달 과정에 대한 아무런 숙고나 대비 없이 가볍게 하달하고, 몇 시간 뒤 그것을 없던 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일국의 가장 중요한 지위에 앉은 자가, 제가 앉은 자리의 성격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이 지금껏 그 자리를 지켜왔다는 사실이 일천하에 드러나는 섬광 같은 순간이었다.
국민의 생사가 걸렸던 아찔한 순간에도 그는...
2024년 12월 3일 있었던 해프닝은 쿠데타 시도였다. 특공대가 국회 본관 창문을 깨고 잠입하는 순간, 사건의 성격은 노골적인 친위쿠데타로 변했다. 이 사건에서 가장 아찔했던 점이 이 부분이다. 한 국가의 대통령이라는 자가, 국민의 선택을 받고 자리에 앉은 적법한 통수권자가, 아무런 근거 없이 국민을 살상할 수 있는 최정예 전투 인력을 국민의 대표들이 모여드는 전당에 보냈다는 것. 술김에 내린 것이든, 배우자를 감옥에 보내지 않기 위해 내린 결단이든, 의식 한켠에는 분명 있었을 것이다. 무엇이? ‘죽음’이라는 인식이. 윤석열의 뇌리에는 분명히, 자신이 내리는 계엄령과 그 계엄령을 어기는 자를 응징하기 위해 보내는 특수부대의 움직임에 언제든 국민 중 누군가가 생사의 강을 오가게 되리라는 인식이 있었을 것이다. 아주 경미한 분량이라 해도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우리가 대표로 뽑은 이가, 변란이나 전쟁의 위험이 있지 않음에도 국민의 희생 가능성이 내포된 결단을 내리고 실행에 옮겼다는 것이, 아마도 사적 동기로 행했으리라는 점이, 너무나 아찔하게 다가온다. 너무나 고통스럽게 다가온다.
어젯밤은 그런 밤이었다. 기민하게 모여든 국회의원들이 간발의 차이로 계엄 해제를 의결했지만, 자칫하면 2000년대 이후 대한민국 현대사에 잊을 수 없는 최고의 비극이 잉태될 수 있었던 밤. 국민 중 누군가가 생사의 강을 건너갈 수 있었던 밤. 명령에 따라 파견된 군부대 구성원 중 누군가가 돌발적으로 발포를 하면 그 하나의 폭력이 폭력을 낳으며 걷잡을 수 없이 퍼져나갈 수 있었던 그런 밤.
그런 밤의 기획자이자 연출자인 인물은 국민의 인권과 자유를 무한대로 구속할 수 있는 계엄령을 내릴 때도 누군가가 꺼냈다가 밀어주는 으리으리한 의자에 앉아서 ‘북한공산세력’을 운운했고, 그로부터 6시간 뒤, 전세계적 웃음거리가 된 스펙타클이 마무리 된 뒤에도, 역시 양복을 입은 누군가가 꺼냈다가 밀어주는 장엄한 의자에 앉아서 태연하게 계엄 해제 의사를 밝혔다. ‘국회가 국가의 기능을 마비시키는 무도한 행위를 즉각 중지해줄 것을 요청한다’는 근사한 수식구를 붙여가면서. 그리고 2024년 12월 4일 현재, 법적으로 이 인물은 여전히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공동체의 최고 결정권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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