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더 나쁜가...전두환 vs. 윤석열②

[‘전두환의 마지막 33년’ 작가 정아은] 전두환은 공적 의식이 있었다. 왜냐하면 ‘정통성의 부재’가 아킬레스 건이었기에 투표로 뽑인 尹은 ‘잘 할 동기’가 없었다. 음주와 혼자 말하기, 격노와 ‘지적 게으름’만 全을 감방서 썩게 했다면 尹이 저랬을까

1996년 항소심 선고 공판에 출석한 전두환 전 대통령(오른쪽 끝). 사진= 연합뉴스
1996년 항소심 선고 공판에 출석한 전두환 전 대통령(오른쪽 끝). 사진=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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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편에 이어서

윤석열에겐 없고, 전두환에게 있었던 것

이쯤 되면 묻고 싶어질 것인다. 그렇다면 전두환은 공적 의식이 있었단 말인가? 조심스럽게 답하자면 답은 ‘그렇다’이다. 전두환이라는 쿠데타 출신 독재자에게는 분명히 있었다. 공적 의식이.

완벽하지 않았고 사익과 섞이는 순간이 많았지만 그에게는 공과 사에 대한 구분과 인식, 나아가서는 공적으로 공헌을 하려는 의지가 있었다. 그 의지를 실현하는 능력도 있었다. 쿠데타로 집권하기 전, 그는 부대를 일사불란하게 이끄는 빼어난 리더였다. 출세에 대한 야망과 사적 패거리를 형성하는 등 불길한 전조를 내뿜는 특성들이 불쑥불쑥 드러난 순간들이 있었지만 그는 분명 조직을 이끌어 최고의 효율을 끌어낼 줄 아는 리더였다. 그것이 박정희가 그를 총애하며 중용해 직분을 맡겼던 중요한 이유 중 하나였다.

취임 1년도 되지 않던 시절의 풋내기 대통령 전두환. 사진=대통령기록관
취임 1년도 되지 않던 시절의 풋내기 대통령 전두환. 사진=대통령기록관

컴플렉스는 ‘공적 의식’을 낳고

총칼로 집권해 대통령 자리를 꿰찬 뒤, 전두환의 공적 마인드는 더 강력해졌다. 그는 공동체가 가진 재화의 부피를 늘리고 그 재화가 국민 개개인에게 가닿게 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하게 갖고 있었고 그를 위해 뛰어난 인재를 경제 수장으로 배치해 전권을 위임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그것은 조직의 특성을 파악해 가장 효율적인 결과를 이끌어내는 경험을 쌓아온 그의 군 장성 경력 때문이기도 했겠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요인이 있었다. ‘정통성의 부재’였다.

자신에게 대통령 노릇을 할 만한 정통성이 없다는 사실은 광주시민의 피를 딛고 집권한 악인 전두환이 한시도 잊지 않고 평생 품고 가게 될 아킬레스 건(腱)이었다. 국민의 투표로 당선되지 않았다는 원죄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던 전두환은 그 원죄를 덮기 위해, 혹은 그렇게 차지한 자리를 지키기 위해, 공동체를 ‘잘 살게’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자기 목숨을 지키기 위해 필사적으로 공적 인식을 배양하고 공동체 이익의 배양에 힘쓸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022년 5월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20대 대통령 취임식을 마친 후 차량에 올라 시민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사진=대통령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022년 5월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20대 대통령 취임식을 마친 후 차량에 올라 시민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사진=대통령실

당당하면 멋대로 해도 될까

우리의 20대 대통령인 윤석열에게는 이것이 없었다. 그는 국민의 투표로 당선됐다. 민주주의를 제도로 택한 국가에서 지도자로서 가져야 할 기본 자격증을 손에 거머쥔 채 한 국가의 최고 결정권자로서의 임기를 시작한 것이다.

대통령제를 택한 대한민국에서, 한번 투표로 당선된 대통령은 임기 중 내란죄처럼 국가에 치명적인 위해를 가하지 않는 이상 자리의 존속을 보장받는다. 자리에서 잘릴 염려가 없고, 정통성에 대한 자신감이 있으니, 그에게는 공적 마인드를 장착하거나 유지해야 할 동기가 없었다. 원래 공적 마인드가 있었다면 모를까, 그동안 한번도 가져보지 않았던 것을 갑자기 만들어낼 만한 강력한 유인이 그에게는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정치경력이 거의 없는 그는 전임 대통령에 대한 반감에 힘입어 갑작스럽게 대통령이 되었다. 대통령이 되겠다는 염원이나, 대통령이 되면 국가를 특정 방향으로 이끌어 나가겠다는 비전도 없었다. 추정컨대, 그에게 대통령이라는 자리는 그저 폼이 좀 나고 여유가 넘치는 자리로 보였던 것 같다. 자신이 가장 행복을 느끼는 3대 활동, ①음주 ②처음부터 끝까지 혼자 말하기 ③격노하기를 실컷 할 수 있는, 이 3대 취미 활동을 하고 또 하고 또 해도 절대로 쫓겨나거나 혼나지 않는, 도깨비방망이를 얻은 느낌이었으리라.

불행하게도, 시간이 흐르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거나 사적 이익 추구를 위해 엉뚱하게 뭔가를 했던 결과가 서서히 가시화되기 시작했다. 자신과 배우자가 했던 수많은 권력남용 혹은 사적이익 추구가 주위 사람의 증언으로 만천하에 드러나게 되었던 것이다.

조물주가 넣어준 ‘게으름’이란 재능

어느 순간 막다른 골목에 몰린 이 인물은 드디어 손을 뻗게 된다. 어디로? 첫 번째 유형의 지도자가 선례를 통해 보여준 강력한 통치방식으로. 음주와 혼자 말하기와 격노를 예전처럼 맘 편히 할 수 없게 된 이 사적 이익 추구자는 더 이상 모호한 영역에 머물려 하지 않는다. 선배의 사례를 따라 성큼 앞으로 나아간다. 그리고 그 결과가, 우리가 사흘 전 밤 시간에 목도한 6시간의 친위쿠데타 시도이다.

사흘 전 한반도 남쪽에 사는 주민 대부분이 밤을 세워 지켜본 친위쿠데타가 희극으로 마무리된 것은, 이 세 번째 유형의 지도자가 가진 또 하나의 특성인 ‘지적 게으름’에 크게 빚지고 있다. 음주와 혼자 말하기와 격노 외에는 아무것도 하고 싶어 하지 않는 이 인물은 쿠데타라는 거대한 도박을 벌일 때조차 미리 공부하거나, 경우의 수를 분리하거나, 대응 방안을 마련하거나, 현실에서 쿠데타를 실행에 옮길 인물들에 대한 사전 포섭과 같은 ‘귀찮은’ 일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덕분에, 위험천만했던 하룻밤의 쿠데타 해프닝은 어떠한 희생도 내지 않고 해프닝으로 마무리될 수 있었다. 그러니 우리는 윤석열이라는 희대의 인물이 가진 ‘지적 게으름’에, 모든 인격체를 빚을 때 각각의 피조물에게 반드시 조커 역할로서 특별한 성격 요인을 집어넣고 마무리했던 조물주에게 크게 감사해야 할 것이다.

이쯤 되면 대답이 되었을 것이다. 둘 중 누가 더 나쁜가? 라는 질문에. 그렇다. 대답은 각자의 가슴에 들어 있다. 물리적 폭력이 나쁜가, 정신적 폭력이 나쁜가? 눈앞에 보이는 선명한 피가 더 끔찍한가, 보이지 않지만 서서히 일어나는 피흘림이 더 끔찍한가? 범죄행위가 또렷이 소명되어 있는 범죄자와 어떤 범죄를 저지를지 가늠이 되지 않는 무한대의 범죄 가능성을 품고 있는 자 중 누가 더 무시무시한가?

6시간짜리 쿠데타 소동의 기원

이에 대한 답을 독자 여러분 각자에게 맡기고, 이제 다른 질문을 던지며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2024년 12월 3일에 대한민국에서 벌어진 6시간짜리 쿠데타 쇼의 기원은 무엇인가? 대한민국 20대 대통령에게 엉뚱한 소망을 불어넣어 위험천만한 행동을 하도록 만든 동인(動因)은 어디서 유래했는가? 전두환은 무고한 광주시민을 학살한 뒤 대통령에 올랐다. 멋대로 정한 7년의 임기를 마쳤다.

퇴임 후 2년의 감옥살이를 한 것을 끝으로, 완전한 자유인이 되었다. 실내 골프장이 갖춰진 호화저택에서 피붙이와 측근에게 거액의 현금 다발을 살포해 호감을 사며 천수를 누리다 자연사했다. 윤석열은 그런 전두환의 일생을 지켜본 뒤 대통령이 되었다.

이제 우리는 이런 질문을 해보아야 한다. 쿠데타를 획책하던 당시 윤석열의 뇌리에 빈번하게 출몰했을 전두환의 모습이 다른 것이었다면 어땠을까. 골프를 치러 다니고 고급 음식점에서 쿠데타 동지들과 만찬을 즐기는 모습 대신, 감옥에서 수의 차림으로 평생을 보내는 모습이었다면, 과연 윤석열이 그 밤의 해프닝을 벌였을까? 시민의 희생으로 이어질 수 있었던 그 위험천만한 소동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질렀을까? <끝>

글쓴이

정아은 소설가

정아은 소설가는 2013년 장편소설 『모던하트』로 제18회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하며 작가로서 활동을 시작했다. 펴낸 책으로 장편소설 『잠실동 사람들』, 『맨얼굴의 사랑』, 『그 남자의 집으로 들어갔다』, 『어느 날 몸 밖으로 나간 여자는』, 에세이 『엄마의 독서』, 『당신이 집에서 논다는 거짓말』, 『높은 자존감의 사랑법』, 『이렇게 작가가 되었습니다』, 논픽션 『전두환의 마지막 33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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