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경영’도 안통했다…돌파구 못찾는 롯데
화학군ㆍ유통군 동반 부진 희망 퇴직 이어 임원 급여 반납까지 연말 또 쇄신 인사 가능성 커
‘유통 공룡’ 롯데가 심상찮다.
지난해부터 이어진 화학사업 분야 부진이 그룹 실적의 발목을 잡고 있어서다. 고물가 장기화와 내수 침체 여파로 유통 채널도 신통치 않다.
그동안 캐시카우 역할을 해 온 화학·유통 사업군 동반 침체는 롯데그룹 전체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분석이다. 롯데가 미래 먹거리로 꼽은 바이오 첨단 사업도 지지부진하기만 하다. 신규 설비투자도 제때 이뤄지지 않는 모습이다.
롯데그룹은 지난 8월 비상경영을 선언한 데 이어 희망퇴직과 임원급여 반납 등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돌파구 마련이 쉽지 않다. 내년 실적 전망도 불투명하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
부진의 늪…주가 하락ㆍ신용등급 강등 이어져
롯데그룹은 화학과 유통 사업군 비중이 크다.
12일 롯데지주가 발간한 ‘2023년 지속가능경영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롯데그룹 전체 매출은 78조6676억원으로 2022년(84조8136억원) 대비 7.2% 감소했다.
이 가운데 화학군 매출은 24조186억원으로 전년(28조6594억원) 대비 16.2% 줄었다. 전체 그룹 매출 감소분(6조1460억원) 가운데 75%(4조6408억원)을 차지했다. 화학군은 올 들어서도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롯데케미칼은 연결 기준 올해 3분기 영업손실이 4136억원, 전년동기(영업이익 426억원) 대비 적자 전환한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 전 분기 대비 적자 폭도 확대됐다. 롯데정밀화학도 3분기 영업이익이 103억원으로 전년동기 대비 70.7% 감소한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
지난해 유통군도 매출이 21조6606억원에서 21조1124억원으로 2.5% 줄었다. 마트와 슈퍼 부문을 통합했지만, 매출을 늘리는데는 역부족이었다. 백화점 사업의 경우 본점과 잠실점, 부산본점 등 일부 점포를 제외한 지방 점포에서는 역성장했다. 전국 백화점(70개) 중 매출 하위 30여곳이 롯데였다.
롯데쇼핑에서 비중이 큰 백화점은 올해 3분기 매출이 7553억원으로 전년동기 대비 0.8% 감소했다. 영업이익은 707억원으로 8.0% 줄었다. 마트 매출도 1조4421억원으로 전년동기 대비 4.9% 줄었고 영업이익은 451억원으로 11.6% 감소했다. 슈퍼와 하이마트 등도 줄줄이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백재승 삼성증권 연구원은 롯데쇼핑의 3분기 실적 리뷰 보고서를 통해 “소비 경기의 빠른 회복이 쉽지 않다. 4분기에는 수익성 개선 여부가 관전 포인트”라고 했다.
그룹 계열사들의 실적 부진은 주가 하락과 신용등급 강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롯데지주는 지난해 신용등급이 AA0에서 AA-로 한 단계 강등된데 이어 올해 초에는 ‘부정적’ 등급전망을 받았다. 올해 3분기 부진한 실적 발표로 롯데지주의 신용등급 추가 하락 가능성이 커졌다는 게 업계 판단이다.
사업구조 개편 성과 ‘지지부진’
롯데의 부진에 대해 업계 전문가들은 지배구조ㆍ사업구조 개편을 중요한 요인으로 꼽는다.
롯데그룹은 2017년 롯데지주 출범 이후 순환출자 고리를 끊고 롯데카드 등 금융계열사 지분을 매각하는 등 지배구조 개편을 단행했다. 롯데지주를 중심으로 계열사 지배력을 높였다. 하지만 각 계열사들이 경쟁력 확보에 실패하면서 그룹 신용리스크가 불거지기 시작했다. 롯데지주의 별도 기준 부채비율은 2019년 44.4%에서 올해 상반기에는 100%에 육박한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강하게 추진하고 있는 사업구조 개편도 타이밍을 잃었다는 평가가 많다. 신 회장은 화학군ㆍ유통군 비중을 줄이고 바이오 등 미래 산업군으로 사업구조를 바꿀 것을 밝히고 변화를 주문하고 있지만, 속도가 나지 않고 있다. 여전히 화학과 유통 비중이 큰 탓에 두 사업군의 실적이 전체 그룹 명운을 좌우한다.
신용평가사의 한 관계자는 “롯데그룹 신용등급은 롯데케미칼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며 “단기적으로 롯데케미칼 실적 개선이 어렵고 등급전망도 ‘부정적’이기 때문에 롯데지주는 물론 그룹 전반 신용도를 끌어내릴 수 있다”고 했다.

신동빈의 4대 신사업…본궤도 오를수 있을까
신 회장은 올해 1월 일본 요미우리신문과 인터뷰에서 향후 그룹의 4대 신사업으로 △바이오테크놀로지(BT) △메타버스 △수소에너지 △2차전지를 꼽았다. 당시 신 회장은 “지금까지는 일본식 경영으로 외부 인재가 적었지만, 새로운 분야는 새로운 인재가 해나가야 한다고 생각해 전문 인력을 적극 모으고 있다”고 강조했다.
신 회장이 그룹 개조를 대내외에 알렸지만, 2차전지 소재 동박제조사 롯데에너지머티리얼스를 제외하면 눈에 띄는 성과를 내지 못했다. 특히 바이오 사업은 신 회장 장남이자 3세인 신유열 롯데지주 미래성장실장(전무) 겸 롯데바이오로직스 글로벌전략실장이 경영 능력을 입증할 무대인데 후발주자인데다 공장 신축 외에 뚜렷하게 성과가 알려진 게 없다.
바이오 업계에서는 롯데가 너무 늦게 시장에 진출했다고 본다. 또 신 전무가 바이오 분야에서 전문성을 키울 시간도 필요하리라 짐작한다. 바이오업계 관계자는 “바이오사업은 공장을 짓고 가동하기까지 짧게는 3년, 길게는 5~6년까지 걸린다”며 “후발 주자인 롯데바이로직스가 얼마나 꾸준히 사업을 지속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라고 했다.
바이오가 포함된 인프라군 매출은 18조4579억원에서 19조779억원으로 늘었는데 롯데건설 비중이 절대적이다. 롯데바이오로직스는 지난해 매출 2286억원을 내는데 그쳤다. 미국과 국내에서 생산이 본격화하는 2030년 목표치(1조5000억원)을 달성하더라도 지난해 기준 그룹 전체 매출의 2%밖에 되지 않을 전망이다.
“임원 급여 반납…내년 상황도 장담 못해”
롯데지주 임원들은 이달부터 급여의 20∼30%를, 롯데 화학군 계열사 임원들은 급여의 10∼30%를 자진 반납한다. 급여 자진 반납이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정해지지 않았다.
이번 급여 자진 반납은 화학군 실적 부진을 그룹 차원에서 책임진다는 취지다. 대내외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경영진이 솔선수범하겠다는 의지를 나타낸 것이라고 롯데 측은 설명했다. 롯데지주 관계자는 “화학 사업군 실적이 워낙 좋지 않다. 내년 상황도 장담하기 힘든 게 사실”이라고 했다.
롯데그룹은 주요 계열사들이 부진하며 비상경영 체제를 이어가고 있다. 계열사 중 롯데면세점은 6월, 롯데케미칼은 7월부터 비상경영에 돌입했다. 롯데지주도 8월1일부터 비상경영 체제로 전환했다. 롯데가 비상경영 카드를 꺼내든 건 2018년 이후 6년 만이다.
인력 효율화를 위한 희망퇴직 등 구조조정도 이뤄지고 있다. 지난 6월 롯데온을 시작으로 롯데면세점(8월), 세븐일레븐(10월) 등이 희망퇴직을 진행했다. 롯데호텔앤리조트도 이달 22일까지 희망퇴직 신청을 받는다.

“인사 쇄신해서라도 돌파구 찾아야”
신 회장은 올해 하반기 사장단회의(VCM)에서 “예상하지 못한 위기가 발생하더라도 이를 극복하면서 지속 성장하는 기업을 만드는 게 우리의 역할임을 잊지 말아달라”고 주문했다. 이에 대해 업계에서는 기존 사업을 둘러싼 환경은 쉽게 개선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고 후발주자인 신사업이 그룹 수익성에 언제쯤 기여할 수 있을지도 더 지켜봐야 한다고 했다.
이르면 이달 말쯤 그룹 정기 임원 인사가 단행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내부적으로 계열사 임원 평가 작업이 막바지에 접어들었다는 얘기도 들린다. 실적 부진으로 비상경영에 돌입한 만큼 인사 방향은 쇄신 쪽에 무게가 실리는 분위기다. 이창민 한양대 경영학부 교수는 “그룹 내 지배구조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경영인 물갈이도 큰 의미가 없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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