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부수 던진 이재용…‘관리의 삼성’ 버린다

‘기술통’ 전영현 부회장에 힘실어 ‘초격차’ 회복 총력 파운드리 수장 교체..기술력 강화 특명 한종희·정현호 부회장 유임 ‘기술의 삼성’으로 다시 태어날까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 사진=연합뉴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 사진=연합뉴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승부수를 던졌다. 오늘(27일) 삼성전자 사장단 인사를 통해서다. 업계 안팎에서는 이 회장이 실적 부진의 늪에 빠진 디바이스솔루션(DSㆍ반도체) 부문 쇄신을 통해 위기 국면을 정면 돌파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이번 인사에서는 엔지니어 출신, 영업통 인사 중용이 눈에 띈다.

앞서 이 회장은 지난 25일 ‘부당합병 의혹’ 2심 재판에 출석해 ‘삼성전자 위기론’을 인정하며 인사 칼바람을 예고했다. 그는 공판 최후진술에서 “삼성 미래에 대한 우려가 매우 크다는 것을 잘 안다. 누군가는 근본적 위기라고 하면서 이번에는 이전과 다를 것이라고 걱정한다”고 했다. 이어 “지금 저희가 맞이한 현실은 그 어느 때보다 녹록지 않다. 하지만 어려운 상황을 반드시 극복하고 앞으로 한발 더 나아가겠다”고 강조한 바 있다.

‘기술통’ 전영현에 힘 싣는다...’관리→기술’ 전환 의지

이번 인사에서 단연 돋보이는 인물은 전영현 디바이스솔루션(DS) 부문장(부회장)이다. 삼성전자 반도체 수장인 전 부회장이 이번 인사를 통해 메모리사업부와 삼성종합기술원(SAIT)을 직접 챙긴다. 업계에서는 메모리 경쟁력과 미래 기술개발을 모두 전 부회장에게 맡긴 것으로, 전례없는 힘 실어주기라는 분석이다. 이는 1990년대 말 국제통화기금(IMF) 이후 20년 넘게 이어지며 고착화한 ‘관리의 삼성’ 대신 ‘기술의 삼성 아이덴티티’ 전환이라는 상징적인 조치로도 읽힌다. 업계 한 관계자는 “(이번 인사를 보면) 고대역폭메모리(HBM) 등 근본적인 기술력과 경쟁력을 확보하겠다는 강한 의지가 엿보인다”고 설명했다.

전 부회장은 2014년 메모리사업부장(사장)은 맡아 세계 최초로 20나노 이하 미세 공정 개발을 성공시키며 삼성전자의 ‘초격차 전략’을 이끈 주역이다. 2012년 연간 4조원대까지 떨어졌던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 영업이익은 그가 메모리사업부장을 마친 2016년에는 13조원대까지 급증했다.

전 부회장 앞에 놓인 첫 과제는 ‘반도체 황제’ 엔비디아에 자사 HBM을 납품하는 미션이다. 일단 분위기는 긍정적이라고 한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23일 홍콩 과학기술대 명예박사 학위수여식에서 “삼성전자의 인공지능(AI) 메모리칩을 인증하기 위해 최대한 빠르게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엔비디아는 삼성전자로부터 5세대 HBM인 HBM3E 8단과 12단 모두 검토하고 있다.

전영현 삼성전자 부회장 / 사진=연합뉴스
전영현 삼성전자 부회장 / 사진=연합뉴스

파운드리 기술 경쟁력 강화에 사활걸었다

올해 사장 승진자 2명도 모두 반도체 전략ㆍ기술 부문에 배치해 전 부회장을 보좌토록 했다.

파운드리(위탁생산) 사업부장(사장)에는 한진만 DS부문 미주총괄 부사장이 승진 발탁됐다. 한 사장은 그간 삼성반도체미주총괄(DSA)을 맡아 인공지능(AI) 등 기술의 최전선인 미국에서 반도체 사업을 지휘해 왔다. D램 설계팀과 SSD 개발실장을 거쳤으며 기술 전문성이 강점이란 평가다.

이재용 회장은 지난 10월 필리핀 출장 중 로이터 통신과 만나 “파운드리 사업을 분사하는 데 관심이 없다”며 “우리는 사업 성장을 갈망한다”고 밝힌 적이 있다. 당시 경쟁력 약화로 부침을 겪던 인텔이 파운드리사업 분사를 결정하자 삼성전자에도 같은 요구가 나온 데 대한 언급이었다.

DS부문 내에 사장급인 경영전략 담당이 신설돼 이번에 승진한 김용관 사장이 맡게 됐다. 김 사장은 반도체 기획·재무와 미래전략실을 거쳤다. 2020년부터는 의료기기사업을 맡아 삼성메디슨 대표를 역임했다. 올해 5월부터는 사업지원TF에서 반도체 지원을 담당했다. 파운드리 사업부에는 사장급 최고기술책임자(CTO)가 신설돼 DS 부문 제조&기술 담당 남석우 사장이 맡는다.

한종희 삼성전자 부회장 / 사진=연합뉴스
한종희 삼성전자 부회장 / 사진=연합뉴스

전영현-한종희-정현호 체제 유지

부회장 3인 체제는 유지됐다. 전 부회장과 ‘삼성전자 투톱’으로 불리는 한종희 디바이스경험(DX, 가전ㆍ모바일) 부문장(부회장)은 유임과 함께 신설된 품질혁신위원장도 담당한다. 정현호 사업지원TF장(부회장)도 재신임 받았다.

DX부문 인사에서는 이원진 사장 복귀가 눈에 띈다. 구글코리아 대표 출신으로 2014년 삼성에 영입된 이 사장은 지난해 인사에서 상담역으로 물러났으나 이번에 삼성전자 DX 마케팅·브랜드·온라인사업을 총괄하게 됐다.

삼성전자 첫 여성 사장인 이영희 DX부문 글로벌마케팅실장 겸 글로벌브랜드센터장은 DX부문 브랜드전략위원 사장을 맡는다. 고한승 삼성바이오에피스 대표이사 사장이 삼성전자 미래사업기획단장으로 자리를 옮긴다.

“오너 리스크 여전, 사업지원TF 역할도 중요”

사업지원TF를 이끄는 정 부회장은 과거 삼성전자 비서실부터 전략기획실, 미래전략실을 두루 거쳤고 이 회장 경영 수업이 본격화한 시기부터 그룹 사업 전반의 의사결정을 도왔다. 미전실 해체로 사임했다가 2017년 말 삼성전자가 사업지원TF를 출범하자 사장으로 복귀했다.

등기이사이자 최고재무책임자(CFO)인 박학규 사장은 사업지원TF 사장으로 이동해 대규모 투자가 필요한 반도체 지원을 맡는다. 정 부회장이 이끄는 사업지원TF에 사장급 임원이 합류하면서 조직이 강화됐다. 업계에서는 “오너의 사법리스크가 여전히 진행 중이고 미국 대선 직후 글로벌 정세가 급변하고 있어 재무 상황을 살피고 전략을 짜는 역할은 줄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삼성전자는 “불확실한 대내외 경영환경 극복과 새로운 도약을 위해 메모리사업부를 대표이사 직할 체제로 전환하고 파운드리사업 수장을 교체했다”며 “글로벌 리더십과 우수한 경영 역량이 입증된 시니어 사장들에게도 브랜드·소비자경험 혁신 등의 도전과제를 부여해 회사의 중장기 가치 제고에 주력하게 했다”고 인사 배경을 설명했다.

글쓴이

문영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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