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과 부재의 아이콘, 이사벨라 스튜어트 가드너 미술관
[정연복과 손잡고, 세계의 미술관으로] 상실의 아픔, 위대한 미술관으로 승화 베네치아풍 중정과 전시실, 그림만 7천점 1990년 발생한 13점 그림도난 사고 34년 지났지만, 도난 그림 공간 비어 있어
보스턴 미술관 옆에 있는 유명 미술관
우리는 왜 미술관에 갈까요? 당연히 작품을 보러 갑니다. 그런데 작품이 있던 자리를 비워둔 미술관이 있습니다. 미국 북동부 도시 보스턴에 있는 「이사벨라 스튜어트 가드너 미술관」인데요. 오늘은 상실과 부재에서 탄생해 부재를 전시하는 독특한 미술관으로 함께 가보겠습니다.

보스턴은 MIT와 하버드 등 대학도시로 유명한 곳인데요. 대학교뿐 아니라 미술관의 규모나 수준도 미국 최고 수준입니다. 45만여 점 이상의 작품을 소장한 ‘보스턴 미술관’은 말할 것도 없고, 하버드 대학교 미술관은 대학 캠퍼스 구경 중 가벼운 마음으로 들어갔다가는 제대로 보고 나오기 어려울 정도로 훌륭하고 다양한 작품이 많습니다.
이사벨라 스튜어트 가드너 미술관은 보스턴 미술관 바로 근처에 있습니다. 방대한 보스턴 미술관에서 길을 잃었던 방문객들은 적당한 크기의 이 미술관에서 휴식 같은 관람을 할 수 있습니다. 1903년 문을 연 이래 미국인들과 전세계에서 온 방문객들을 매혹시키는 이곳은 이사벨라 스튜어트 가드너의 깊은 상심(喪心)에서 태어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어린 아들을 잃고 예술을 접한 부부
1840년, 뉴욕의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난 이사벨라는 잭 가드너와 1860년 결혼하면서 보스턴에 정착하는데요. 부족할 것 없는 상류층 부르주아의 삶은 두 살 밖에 되지 않은 어린 아들을 잃으면서 우울과 절망의 나락에 빠지게 됩니다. 주치의는 상심으로 힘들어하는 그녀에게 여행을 권했고 가드너 부부는 유럽의 여러 지역에서 접한 문화재와 예술 작품에서 깊은 위로를 받습니다. 이사벨라는 이후 예술이 인생을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졌다고 믿게 되었고요.
가드너 부부는 유럽을 넘어 아시아 지역의 많은 도시를 여행하며 견문을 넓히고 예술을 향유하며 지냈습니다. 보스턴에서는 단테 협회에도 가입하고 미술사학자를 비롯한 다양한 지성인들과 교류하며 지적인 탐험을 게을리하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관심이 단테의 필사본을 비롯한 여러 문학 텍스트와 예술품 수집으로 이어졌고요.
부부가 모은 작품은 프라 안젤리코, 보티첼리, 라파엘로, 루벤스, 렘브란트 뿐만 아니라 그들보다 조금 앞선 시대의 화가였던 마네, 르누아르, 동시대인인 마티스, 존 싱어 사전트의 뛰어난 회화들을 망라합니다. 고대 오리엔트, 고대 그리스 로마, 아시아, 유럽의 조각과 가구를 비롯한 오브제들을 포함 7500 점이 넘습니다. 베토벤, 베를리오즈, 멘델스존 등 많은 음악가들의 편지를 비롯, 7000 점이 넘는 편지도 수집했고요.

이사벨라는 특히 베네치아의 예술과 건축에 푹 빠져 1884년부터 1899년까지는 거의 매년 베네치아를 방문했습니다. 인습에 얽매이지 않고 다양한 분야에 대한 관심이 남달랐던 그녀에게 그곳 작가와 예술가들과의 교류는 늘 지적 자양분을 제공했습니다. 자연스럽게 베네치아 출신의 벨리니, 카르파초, 만테냐, 티치아노, 베로네세, 구아르디 등의 작품을 부지런히 구매했습니다.
정리하면 이사벨라 스튜어트 가드너 컬렉션은 개인적 불행을 치유하려는 여행에서 출발했습니다. 이후 예술을 통해 자신의 삶이 바뀌었듯 미국에 부재한 고전의 문화와 예술을 자국민들이 향유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바람으로 미술관을 개관합니다. 이제 미술관으로 들어가볼까요?

초현대와 르네상스가 공존하는 미술관
미술관에 도착하면 우선 초현대식 건물이 관람객을 맞이합니다. 늘어나는 방문객을 수용하고, 컨템퍼러리 작품의 전시와 연주회, 수장고와 복원실 및 기타 부대 시설을 위해 기존 전시실 앞으로 6500㎡의 공간을 확충하여 2012년 새로 지은 건물입니다. 이를 지은 건축가는 파리의 퐁피두 센터로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던 렌조 피아노입니다. 유리와 철골 구조로 된 현대식 건물은 21세기 ‘지금, 여기’에서 고대와 중세, 16세기, 17세기 유럽과 아시아로 가게 하는 마법의 공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부대시설 등이 있는 초현대식 건물의 유리로 된 좁은 통로를 지나면 방문객은 타임머신을 타고 온 듯 완전히 다른 세상의 미술관에 들어가게 됩니다. 베네치아에 대한 이사벨라의 사랑이 미술관 건물 양식으로도 나타납니다.
미술관은 중정을 가운데 두고 사방에 4층 건물이 둘러싸고 있는 구조인데요. 베네치아의 르네상스 건축을 그대로 옮겨놓은 게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건축은 유럽에서 구입한 몇 백 년 된 기둥과 창문, 문 등을 활용하여 지었으니까요. 그래서인지 지은지 1백 년 남짓한 이 전시실은 500년은 된 듯한 고풍스러운 느낌을 낳습니다. 전시실을 돌다 다양한 꽃들이 핀 중정을 내려다보면 미술관이 아니라 유럽의 어느 수도원이나 저택에 초대받아 온 듯한 착각이 들기도 합니다.

렘브란트 등 그림 도난 사고, 그 이후
벽에는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많은 작품들이 빼곡히 전시되어 있는데요. 특이하게도 작품 옆에 관련 정보가 없습니다. 제목과 작가, 제작연도가 궁금하다면 전시실에 비치된 설명서와 위치를 일일이 대조하며 찾아봐야 하는데요. 이는 이사벨라의 지침에 따른 것입니다. 예술은 무엇보다 직접 눈으로 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철학이 반영된 것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뭔가에 다가가려면, 다시 말해 뭔가를 붙잡으려면 그것을 보는 걸로 충분하다”고 했던 메를로 퐁티의 말을 떠올리게 됩니다.
상실의 아픔을 달래기 위해 시작되었던 이사벨라 컬렉션은 또 한 번 뼈아픈 상실을 겪게 되는데요. 바로 1990년 있었던 도난 사건입니다. 1990년 3월 18일 새벽 1시 20분경 경찰관 차림의 두 남자가 미술관 벨을 눌렀습니다. 야간경비원들은 별 의심없이 문을 열어주었으나 이들은 도둑이었습니다. 이때 렘브란트의 <갈릴리 바다의 폭풍우>(1633), 베르메르의 <연주회>(1663-1666), 마네의 <토르토니 집에서>(1875)를 비롯한 13점의 작품이 액자만 남긴 채 감쪽같이 사라졌습니다. 작품들의 행방은 34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알 길이 없습니다.

미술관은 그림이 걸려있던 자리에 액자를 그대로 전시하고 있는데요. 물론 액자는 비어 있습니다. 비어있는 액자는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공공이 향유해야 할 작품이 미술관이 아니라 ‘어둑한’ 어딘가에서 예수와 12제자처럼 ‘폭풍우’를 맞고 있는 게 아닐까요? 미술관에 현존, 혹은 부재하는 예술의 의미. 물성으로서의 작품과 물성을 넘어서는 예술의 가치. 제발 작품들이 무사하기를! 폭풍우를 이겨내고 기적적으로 살아 돌아오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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