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자명 이영주 한양대 겸임교수
  • 시사
  • 입력 2024.03.26 13:19
  • 수정 2024.04.01 14:56

나는 협박한다, 고로 시민사회수석이다

황상무 사건을 그냥 넘기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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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무는 크고 싶었다

황상무. 서울대 신문학과에서 학사와 석사과정을 졸업했고 KBS 기자, 특파원, 앵커까지 거의 25년 세월을 뉴스로 밥을 먹고 살았던 사람이다. 2021년에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 캠프에 몸담으며 정치권에 진입한 그는 2022년 지방선거에서 국민의힘 강원도지사에 도전했다 실패한 후 2023년 12월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이라는 매우 중요한 자리를 차지했다.

그런 그가 수석 자리에 오른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지난 3월 14일 큰 사고를 쳤다. 입이 생명인 앵커 출신이자 입을 조심해야 하는 대통령실 수석이었지만 그의 입은 자신의 정치적 야욕이 스멀스멀 기어나오는 것을 막지 못했다.

“MBC는 잘 들어. 내가 정보사 나왔는데 1988년에 경제신문 기자가 압구정 현대아파트에서 허벅지에 칼 두 방 찔렸다.”

전두환에서 노태우로 이어지는 군사독재정권에서 군에 대한 비판 기사를 썼던 기자의 허벅지에 회칼을 휘두른 바로 그 테러 사건을 입 밖으로 내뱉었다. 그것도 시민사회수석이라는 사람이 출입기자들을 앞에 두고 말이다. 황상무는 ‘MBC’를 향해(그리고 모든 언론을 향해) 너희도 이렇게 테러당할 수 있으니 윤석열 정권에 대해 좋지 않은 보도는 그만하라고 협박했고, 자신의 충성심을 대통령에게 보여줌으로써 정치적 위상을 확보하려는 야욕을 드러냈다.

황상무는 정치권으로 이동한 언론계 출신들이 망가지는 전형적인 오버액션의 길을 선택했다. 당 소속인지 대통령실 소속인지에 따라 오버액션의 대상과 강도가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자기와 반대편에 있다고 생각하는 집단을 무차별적으로 공격하며 최전방 스트라이커 역할을 자임하는 것은 비슷하다. 마이크와 펜으로 대중에게 친숙해진 앵커나 기자 출신들을 최전방 스트라이커로 써먹고자 하는 정당이나 권력의 속성도 다르지 않다.

민주당이든 국민의힘이든 언론인 출신들의 입에서 나왔던 수많은 말과 글, 그들이 상대방을 향해 쏟아냈던 적대와 혐오의 언어들을 모아보자. 또 이들이 당이나 정부에서 맡았던 역할이나 발의했던 법안들을 모아서 비교해보면 언론계 출신 정치인들이 정치적으로 소비되는 방식이나 정치적 성장의 발판으로 삼고자 하는 개개인의 욕망을 추출해볼 수 있다.

이중에서 황상무는 가장 문제시되고 용인할 수 없는 한 사람으로 기록되어야 한다. 언론에서 25년을 밥먹고 살았던 사람의 입에서 결코 나올 수도 없고, 나와서도 안 되는 생각이자 말이었다. 기자들을 향해 '당신도 예전의 오홍근 기자처럼 언제든 칼부림 당할 수도 있다'는 식으로 해석되는 그의 발언은 방송통신위원회, 방송통신심의위원회, 공영방송 KBS와 MBC, 뉴스전문채널 YTN 등을 손에 움켜쥐고 윤석열 정권 앞에 줄 세우려는 매우 희귀하고도 요란한 수법들보다 수백 수천 배 더 악랄하고 용서할 수 없는 것이다.

게다가 현 정권의 시민사회수석이라는 사람의 입에서 언론을 향한 협박 발언이 나왔다는 사실은 충격을 넘어 21세기 민주주의 국가라고 믿고 사는 모든 국민을 협박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이러다 언론이든 국민이든 윤석열 정권을 비판하면 언제든 잡아가 가두고 고문하는 세상이 오지 않을까 두렵다.

시민사회수석이라는 자리는 무엇인가

대통령 옆에 시민사회수석을 두는 가장 큰 목적은 대통령이나 정권 참여자들이 자기 동굴이나 우물에 갇혀 있지 말고 시민들의 다양한 의견을 듣고 국정에 이를 반영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하지만 한국에서 시민사회는 정치권력자들의 동원 혹은 활용 대상(파트너)이 되는 경우가 많다. 대통령 권력이 절대적인 한국의 허술한 민주주의 체제에서 모든 정치세력은 자기들이 만들어낸 절대 권력자 주변으로 충성스러운 경비대원들을 모으고 거대한 성을 쌓는 작전 수행을 제1의 과제로 여긴다. 언론과 시민사회는 권력경비대를 구성하는데 필수품목 중 하나이다. 시민들이 보기에 상대적으로 중립지대처럼 보이고, 전문적이고 신뢰할 만한 집단으로 보이는 언론이나 시민사회의 목소리가 권력의 향방에 미치는 영향력이 크기 때문이다. 지역적인 차원에서도 마찬가지다. 지자체장 경비대가 구성되고 여기에도 지역의 유력 언론과 주요 시민단체들이 직간접적으로 참여한다.

대통령과 지자체장의 참모들은 언론과 시민사회에 많은 관리 비용과 자원을 투입하는데 정성을 쏟는다. 이에 특정 언론과 시민단체, 학자나 전문가들은 민주당과 국민의힘 양당의 파트너로 자리잡아 국정이나 정당 운영에 영향을 미친다. 노무현 정권이 정부와 시민 사이에 소통을 강조하면서 시민사회수석직을 만들었고, 그 자리가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지만, 각 정권이 머릿속에 넣고 있는 시민사회는 크게 보아 친민주당과 친국민의힘 언론이나 시민단체일 것이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말하자면 황상무는 한국형 시민사회수석의 역할을 제대로 이해한 사람이었다. 그는 내 편이 되어줄 언론과 시민사회의 파이를 키우고 반대편인 언론과 시민사회를 축소하고 위협하는 것이 시민사회수석이 할 일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또 이 일을 성공적으로 잘 수행함으로써 윤석열 정권을 지키고 3년 후 다시 한번 정권을 재생산하는데 기여하는 일이라는 확고한 신념으로 무장했을 것이다. 물론 이 역할에 대한 권력 내부의 긍정적인 평가가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다지는데 결정적인 힘이 될 것이라는 점도 잊지 않았을 것이다.

이같은 시민사회수석의 존재는 시민들에게는 불행이다. 민주당 정권이든 국민의힘 정권이든 자기 권력의 방어와 재생산을 목적으로 언론과 시민사회를 관리하고 관계맺는 일은 언론과 시민사회에 대한 '도구주의 정치'를 강화할 뿐이다.

언론과 시민사회가 양분화되고 진영화된 사회는 좋은 민주주의를 만들어낼 수 없다. 특정 정당이나 권력집단의 이익을 창출하는데 파트너이자 핵심 행위자로 존재하는 언론과 시민사회는 진영논리를 벗어나기 쉽지 않다. 여론과 의견 시장은 더욱 더 극단화된 진영논리에 빠져든다. 시민들은 정론(正論)에 대한 관심을 키우기 보다 정파성에 충실한 정론(政論)에 열광한다. 사실과 진실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만약 사실과 진실을 알고 싶다면 철저히 진영화된 언론과 목소리를 참고하면 된다.

혹자들은 ‘탈진실의 시대’라고 말하지만 나는 ‘과잉진실의 시대’ 즉, 모두가 자기의 생각과 주장들이 사실이고 진실이라고 믿는 시대라고 말한다. 신문, 방송, 소셜미디어, 유튜브와 같은 모든 미디어는 더욱 더 진영화된 과잉진실을 매개하고 확산하는 정치이자 비즈니스에 빠져 있다. 특히 정권이 바뀔 때마다 민주당과 국민의힘의 협력 파트너가 되거나 적대적인 반대자의 역할을 하면서도 “나는 아니고 쟤들이 그래. 쟤들이 나빠”하며 내부 투쟁을 벌이는 공영방송 채널은 황상무와 같은 한국형 시민사회수석의 역할 즉, 언론이나 시민사회를 내 편으로 만들거나 아니면 목을 조이는 둘 중 하나를 수행하는 사람을 지속가능하게 만드는 토양이다.

정보사 회칼테러 사건의 피해자 오홍근 기자. 오 기자는 2022년 3월9일 향년 80세의 일기로 별세했다.
정보사 회칼테러 사건의 피해자 오홍근 기자. 오 기자는 2022년 3월9일 향년 80세의 일기로 별세했다.

반대자만 양산하는 위험한 대통령

대통령이라면 황상무의 발언이 나왔을 때 즉시 그를 경질해야 했다. 언론인 출신 수석이 언론을 향해 협박을 했다면 이유나 맥락을 따질 것도 없이 즉각 공직을 떠나게 했어야 한다. 이러한 대통령의 결단은 민주주의 국가의 기본 중에 기본에 속한다. 윤석열 정권과 보수세력이 MBC의 비판자들을 몰아내고 자기편 사람들로 채우고 싶은 생각이 차고 넘친다해도 방송사 구성원들을 테러의 대상으로 간주하는 사람을 시간을 끌며 감싸거나 변호하려는 권력을 그 누구도 용납하지 않는다.

이는 진보나 보수의 문제도 아니고, 민주당이나 국민의힘의 문제도 아니다. 권력을 등에 업고 반헌법적이고 반국가적인 발언을 일삼는 공직자에 대한 처벌이 제때 이루어지지 않으면 정부의 정당성과 권위는 순식간에 무너진다.

윤석열 대통령은 스스로 정치적 반대자를 양산하고 있다. 재난이나 사건이 발생했을 때마다 책임 회피의 정치를 반복했다. 그의 머릿속에 어떤 법과 절차적 해결안이 들어있는지 모르겠지만 국가의 근간을 뒤흔드는 사건이 발생해도 문제의식이 극히 박약하고 판단력과 결정력이 떨어진다. 다수 국민이 맞다고 얘기하면 틀리다고 하고, 틀리다고 하면 맞다고 우긴다. 다수 국민이 옳다고 하면 옳지 않다고 하고, 옳지 않다고 하면 옳다고 떼쓴다.

언론을 겁박하며 국민의 말을 들을 생각이 없는 시민사회수석이 있으니 대통령에 대한 반감이 얼마나 크고 어디서 연유하는가에 대한 인식은 고사하고 감각조차 없다. 스스로 사퇴할 사람과 경질하고 퇴출시켜야 할 사람을 구분하지 못하니 항상 뒷북치는 인사를 반복하고 국민의 마음 하나 얻지 못한다.

진보나 좌파 세력들이 MBC나 유튜브를 이용해 자신을 공격해대니 여론에 왜곡이 생기고 가짜뉴스가 판을 치며 국민들의 생각이 오염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대통령과 측근들이 있는 한, 상황은 더욱 악화될 것이고 반대자들은 늘어날 것이다. 자기가 뽑은 최전방 스트라이커들의 '똥볼(?)차기'엔 눈을 감고 그들을 비판하는 언론이나 사람들을 협박하고 입을 다물게 하려는 모습에 찬동해 줄 국민은 많지 않다. 시시각각 변하는 여론 따위에 휘둘리지 않겠다며 굳은 의지를 드러내고, 오염된 가짜뉴스에 영향을 받아 자기에게 등을 돌린다고 여기는 그 국민들의 말을 들어 볼 생각이나 있을지 모르겠다.

비판자나 반대자와도 대화하고 서로의 생각을 이해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는 대통령, 반대파들의 정치공세로 치부하며 이를 부추기는 참모들의 정치는 결국 정권의 퇴행과 국가의 위기로 이어진다. 한국형 시민사회수석 황상무의 회칼 테러 발언 사건은 한편으로는 막나가는 정권의 민낯을 보여주고, 다른 한편으로는 엄청난 다중복합위기에 대응하는 소통과 협력의 정치를 완전히 불가능하게 만들고 국가의 위기를 가속화시켰다. 이 모양이라면 윤석열 정권에게 남은 3년이라는 시간 동안, 우리는 더욱 더 거칠게 싸우고 체념하다 갈라서서 서로를 쳐다보지도 않는 두 개의 나라에서 살아가야 할 것이다.

그래서 바라건대 스스로 사표를 내는 것으로 종결될 것 같은 황상무 대(對)언론 테러 협박 사건을 그냥 잊거나 넘어가지는 말자. 황상무가 무릎을 끓고 오홍근 기자의 유족과 모든 언론인 앞에 사죄하도록 하고, 윤석열 정권의 전면적인 인사 쇄신과 국정 기조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동료 시민들의 힘’을 포기하지는 말자.

※ 이영주 한양대학교 국제학부 겸임교수는 성균관대학교 신문방송학과에서 언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예술종합학교 한국예술연구소 책임연구원과 성균관대 사회과학대 연구교수로 재직하다 제10대 경기도의원을 역임했다. 저서로는 <말길과 정치>, <불일치의 틈에서 생성하는 정치>, <디지털시대 공영방송의 좌표와 개혁>이 있다. 역서인 <커뮤니케이션의 이해 : 이론과 사상>과 “실패하는 공공커뮤니케이션, 위험한 정부에 대한 시론적 고찰”, “마르쿠제와 랑시에르의 정치미학에 대한 이론적 탐색”, “사이버공간에서의 역사의 내전화” 등 20여 편의 논문이 있다. 비판언론학과 문화연구를 가르치고 연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