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자명 김수인 골프 칼럼니스트
  • 문화
  • 입력 2024.03.22 16:13
  • 수정 2024.03.28 09:56

골프 룰 잘 지키는 동호회, 30년 명문팀 된다

[김수인의 ‘귀에 쏙쏙’ 골프 이야기]
'정직과 에티켓'으로 명문 동호회 만들기
렉시 톰슨, 속였다가 낭패당한 '그린 규칙'
리플레이스때 마크 2㎝이내 규칙 지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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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스코어 속이기, 미-영 골퍼가 들으면 기절초풍’이라는 칼럼에 대한 지인 20여 명(대부분 6070세대)의 반응이 궁금했다. 결과는 예상밖이었다. 필자는 20여 명중 한두명이라도 자신의 잘못된 습관을 반성할 줄 알았다. 하지만 “이제부터 크게 각성해, 첫 홀 All Par의 나쁜 관례를 없애고 스코어는 플레이한대로 정확히 적겠다”고 약속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얼마 전인 3월 중순 시즌 첫 라운딩이 있었는데, 동반자 모두 “나이도 들은만큼 힘들게 룰을 지킬 필요가 뭐 있어? 적당 적당히, 편안하게 치면 그만이지~”라는 다소 느긋한 답변을 들려줬다. 필자만 “올해를 정직한 플레이를 하는 원년으로 삼자!”고 다짐하며 캐디에게 “나 혼자만이라도 스코어 그대로 기입해달라”는 부탁을 했다. 그러나 몇 번홀(파4)인가에서는 연속 벙커샷 미스로 ‘6온 2퍼트’의 뼈아픈 기록을 내고 말았다. 그래서 더블파를 저지르고 말았는데 캐디에게 “그대로 적어라”고 한 탓에 10년만의 ‘90대 타수’를 기록하고 말았다(그러나, 이 더블파 덕분에 신페리오 방식의 시상에서 1위를 차지했다). 지인들의 반응을 종합한 결과, 습관이 무섭다는걸 새삼 느꼈다. ‘세살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는 속담이 그냥 나온 게 아니었다.

그런데, 우연히 ‘골프 모범 단체’의 소식을 접하게 됐다. A단체는 필자의 고교 2년 후배들(68세)의 골프 모임으로 정말 ‘타의 모범’이 돼 특별히 소개드린다. A단체는 40세때인 1996년 8월 출범했다. 모임을 시작하면서 회원들의 동의를 구해 몇 가지 규정을 정했는데, 공에 손을 대지 않는 ‘노터치’ 등 거의 대부분 PGA 룰을 적용하기로 했다. 핸디캡을 엄격하게 관리한 것은 지혜롭기 그지없었다. 메달리스트, 우승, 준우승 등 입상을 하면 핸디캡을 2~3타 낮춰 회원들이 고루고루 상을 받게 배려했다. 매년 납회를 마치면 회원들의 연중 모든 스코어를 평균해 새 시즌에 새로운 핸디캡을 조정했던 것이다.

골프동호회 모임 기념사진.
골프동호회 모임 기념사진.

A단체, 28년간 명문클럽 유지

그 다음으로 30~40년을 내다보고 전 회원 간부화로 결속력 강화에 나섰다. 한번 총무나 회장을 맡고 나면 열성 회원이 되기 때문에 모두가 총무와 회장을 역임하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이른바 ‘3년 복무제’다.

첫해에는 간사가 돼 회계를 담당한다. 2년차에는 총무로 직책을 바꿔 참석 인원을 관리하고 세심하게 팀을 짠다. 3년차엔 회장을 맡는다. 군림하지 않고 봉사하는 자리로 조편성 등 회원들의 애로사항을 잘 챙기고 단합을 도모한다. 회원 30명이 이젠 다들 칠순을 바라보는 나이가 돼 규칙 지키는 게 다소 느슨해졌다. 하지만 ‘정직과 에티켓’을 중시하는 골프 정신을 가능한 지켜 28년간 함께 골프를 즐기고 있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고 한다. 물론 전국에 A단체말고도 모범적인 사례가 여럿 있을 것이다.

새 시즌을 맞아 각 골프 단체들이 다양한 이벤트와 선물로 분위기 쇄신을 꾀하고 있다. 앞에 언급한 A단체처럼 프로 대회의 흉내를 내며 모임을 운영하면 어떨까. 예를 들어, 첫홀 티샷 전 프로선수같이 동반자들끼리 플레이할 공을 꺼내 브랜드와 숫자를 확인하면 그 자체만으로 ‘진정한 승부사가 된다’는 뿌듯함을 느끼게 될 것이다.

‘골프 속이기’ 이야기가 나온 김에 그린에서의 잘못된 행위에 대해 다시 한번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룰 위반은 그린에서 가장 많이 생기기 때문이다. 한 시즌 한국 아마추어 골퍼들이 퍼팅시 공을 리플레이스할 때마다 거리로 이익 보는 게 서울과 LA간 거리인 9500㎞에 달한다는 우스개 소리도 있다. 

그린에서 공을 마크한 후 리플레이스할 때 제자리에서 하지 않으면 규칙상 2벌타의 엄한 패널티가 적용된다. 아마추어들이야 이런 벌타를 받지 않지만 프로 선수는 ‘정확히’ 공을 마크한 자리에 리플레이스를 해야 한다. 몇 년전 LPGA 대회에서 렉시 톰슨(29․미국)은 그린에서 공을 마크할 때 2㎝정도 홀컵쪽으로 앞당겨 리플레이스를 했다.

2㎝라면 버디를 하느냐, 파에 그치느냐는 중요한 문제가 될 수 있다. 프로들도 선두권에서 우승을 다투면 순간적인 욕심으로 리플레이스 실수를 할 수 있는데, 경기위원이 이를 지켜보지 않으므로 다들 ‘모른 체 넘어가기’ 일쑤다.

그런데 TV 중계를 보던 어느 팬이 LPGA 대회본부에 전화를 해 이를 지적했다. 그 바람에 톰슨은 2벌타를 적용받았다. 이 충격으로 그는 우승 경쟁은 커녕, 톱 10에도 들지 못하고 대회를 마친 적이 있다.

물론, 상금과 순위를 경쟁적으로 다투는 프로와 달리 친선을 도모하는 아마추어는 엄격하게 리플레이스 규정을 지킬 필요는 없다. 하지만 한번 리플레이스에 1~2㎝ 정도 거리 이익을 봐야지, 4~5㎝를 속이는 건 자제해야 한다. 또 공을 건드리면 규정상 1벌타이므로 가급적 마크할때 공을 만지지 않아야 한다. 다시말해, 그린에 공이 놓여진 상태에서 마크하면서 공을 건드리면 벌타가 적용된다. 이는 대부분 아마추어 골퍼들에게는 양해사항이긴 하지만 프로처럼 공을 건드리지 않으면서 조심스레 마크를 하는 습관을 기르는게 좋다.

사진= 여성 프로골퍼 렉시 톰슨
사진= 여성 프로골퍼 렉시 톰슨

잭 니클라우스 “골프는 존중과 스포츠맨십 게임”

미국, 영국의 아마추어 골퍼들은 리플레이스를 어떻게 할까. 지난달 칼럼에서 언급했듯이 이들은 골프에서 속이는 행위는 골프칠 자격이 없다는 생각이 입문때부터 뇌리에 박혀 있다. 그러므로 프로와 마찬가지로 누구든 반드시 처음 공이 놓였던 자리에 리플레이스를 하게 된다고 재미교포가 알려왔다.

이건 룰이 아니고 에티켓에 관한 사항이다. 벙커샷을 한 후 어지러진 모래 상태를 원래대로 복원시킨 후 다음 플레이를 이어가는 습관도 평소에 길러야 한다. 미국, 호주 등에서는 모래를 정리하지 않는 (원정 온) 한국 골퍼들이 적지않아 아예 벙커 가장자리에 한글로 “제발 모래를 바로 고르세요”라고 쓰인 팻말을 붙여 놓은 골프장이 많다고 한다. 골프 매너 안좋은 중국인들과 같은 취급을 당하는 것은 불명예스러운 일이다.

골프를 통해 인생을 배운다는 말을 많이 한다. 또 골프 플레이는 그 사람의 모습을 그대로 드러낸다고 말한다. 실제로 룰과 에티켓을 잘 지키는 사람은 인품도 좋다. 반면에 스코어를 속이고 미스샷이 나왔다고 클럽을 땅에 팽개치는 이들 대부분은 대인관계가 안좋아 지인들이 기피하는 사람으로 낙인찍히기도 한다.

“골프는 전통과 규칙을 지켜야 하는 존중과 스포츠맨십의 게임이다.” 20세기 최고의 골퍼로 PGA 73승에 빛나는 잭 니클라우스(84․미국)의 말을 가슴에 깊이 새기며 첫홀 티샷에 임하자! 골프의 품격이 달라질 것이다. 

※ 김수인 칼럼니스트는 매일경제, 서울신문, 스포츠서울, 스포츠조선에서 23년간 스포츠기자로 활동했다. 홍보회사 KPR 미디어본부장, PRN 부사장과 KT스포츠 커뮤니케이션 실장을 역임했다. 2013년 파이낸셜뉴스에 "김수인의 쏙쏙골프"를 시작으로 주간조선, 한국경제, 스타뉴스, 오피니언 타임스, 미디어빌에 골프 칼럼을 연재했다. 국민체육진흥공단 골프 자문위원으로 활동중. 저서는 "김수인의 쏙쏙골프"와 "파워 골프" 두 권이 있다. 생애 최저 74타(2013년 솔모로cc), 핸디캡은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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