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자명 박기찬 북한학 박사
  • 시사
  • 입력 2024.03.23 16:02
  • 수정 2024.04.01 08:30

'로기완'은 왜 한국행을 선택하지 않았을까

[박기찬의 말랑고소한 북한 이야기]
난민신청 중인 제3국행 탈북자들
북한으로 다시 돌아간 사람들도
남한, 그들에게는 어떤 모습으로 보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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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기에 난민' 로기완에게 한국행이 없는 이유

넷플릭스 영화 <로기완>이 비영어 영화부문 세계 1위를 달리고 있다. 이 영화는 중국을 거쳐 탈북한 로기완이 벨기에 난민으로 정착하는 고난의 과정과 새로운 사랑을 찾아가는 모습을 그렸다. 원작 소설과는 조금 다른 시각에서 로기완의 투쟁과 사랑을 뚝심있게 그려낸 연출과 배우들의 뜨거운 연기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이 영화의 스토리와 관계없이 필자가 현실적으로 품게 되는 의문은 “로기완에게 왜 한국행은 없었을까”였다. 영화에서는 그런 생각에 대한 친절한 설명은 없다. 중국에서 벨기에로 향할 때 남한행을 고려하지 않은 이유, 말이 전혀 통하지 않는 벨기에에서 숱한 배고픔과 추위를 버텨 나가면서도 왜 한국 대사관으로 들어갈 수 없었는지, 그리고 여자 친구와 또 다른 나라로 떠날 때에도 한국행은 왜 고려 대상이 아니었는지에 대해 영화는 아무런 설명도 하지 않는다.

사진= 넷플릭스 영화  스틸컷
사진= 넷플릭스 영화 스틸컷

제3국에 난민 신청 중인 탈북자들

로기완처럼 북한을 탈출하였으나 남한이 아닌 다른 나라로 가려는 북한 주민은 실제로 얼마나 될까? 유엔난민기구(UNHCR)의 통계에 따르면, 2023년에 한국이 아닌 제3국에서 난민으로 인정된 이탈주민은 239명이고, 난민신청 절차를 진행 중인 사람은 133명으로 확인된다.

2011년부터 2017년 사이에는 북한 난민의 수가 1046명에서 1419명 사이에 이르기도 했다. 따라서 해외에서 난민으로 정착하고 있는 북한 이주민은 1만명 이상으로 추정할 수 있다. 남한에 정착해서 현재 주민등록을 가지고 있는 북한이탈주민 3만1314명과 비교해 보아도 제3국행 난민 신청자는 생각보다 많다.

제3국행 탈북민의 속마음은

북한을 떠난 그들은 왜 처음부터 한국이 아닌 제3국을 선택했을까. 그들의 마음을 이해하기 위하여 두 명의 사회경험이 많은 북한이탈주민에게 물어보았다. 태국의 이민국 수용소를 경험한 C씨는 “한국보다 유럽이나 미국 등의 나라가 지원금이나 복지제도가 좋다는 정보를 가진 사람들이 그런 선택을 한다”고 설명해 주었다.

북한이탈주민 K씨는 생활여건이나 경제적 조건에 따른 선택과는 좀 다른 해석을 내놓았다. “평생 살던 나라를 버리고 떠났는데 그 죄책감이 클 수 밖에 없다. 그 상황에서 남한으로 가는 선택은 그 죄의식을 배가시키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피하고 싶은 생각이 들 수 밖에 없다”고 해석해 주었다. 제3국행이 그들의 마음 속에 있는 정치적, 도덕적 죄책감을 그나마 줄여줄 수 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떠나온 나라와 가족이지만 언젠가 여건이 허락하면 해외동포로서 다시 고향을 방문하리라는 어떤 희망을 그들은 마음 속에 간직하고 있을 지도 모르겠다.

유엔난민기구(UNHCR)의 통계 집계에는 한국에 입국한 후에 다시 한국을 떠나 제3국에 난민으로 인정받으려는 북한이탈주민들도 포함되어 있다. 국내의 북한인권정보센터(NKDB)의 ‘2023년 북한이탈주민 경제사회통합 실태 조사'에는 “미국, 중국, 영국 등 기타 국가로 이주하고 싶은 생각을 해 보았다”는 응답이 26.7%에 이르고 이 비율은 매년 증가하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이냐는 질문에 “한국 사회 내 탈북민에 대한 차별과 편견 때문에”라는 대답이 가장 많았다.

북한을 떠나는 주민들. 사진=연합뉴스
북한을 떠나는 주민들. 사진=연합뉴스

'탈남'해 북한으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

NKDB의 실태조사에는 “북한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을 해 보았나”의 설문 결과도 있다. 2023년에는 13.8%, 2022년에는 18.8%가 그렇다고 대답했다. 이전의 결과를 종합하면 10~20% 이탈주민은 다시 북한으로 돌아갈 생각을 해 보았다고 응답해 온 것이다.

목숨을 걸고 남한에 왔는데 왜 다시 ‘탈남’할 생각을 하게 되는 걸까. 이 설문에서 그들은 “고향이 그리워서”, “가족이 그리워서”, 그리고 “남한 사회에 적응하기 힘들어서”의 순서로 대답했다. 그럼 실제로 북한으로 돌아간 북한이탈주민은 얼마나 되는 걸까?

통일부가 국회에 제출한 2021년 자료에 따르면 2012년부터 2020년까지 북한이탈주민 30명이 월북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숫자는 통일부가 북한 매체의 보도를 통해 확인된 것만 집계한 것이고 매년 해외로 나가 돌아오지 않는 북한이탈주민을 감안한다면, 1년에 평균 3명 이상이 북한으로 돌아간 것으로 보인다.

북한으로 돌아가는 북한주민. 사진=연합뉴스
북한으로 돌아가는 북한주민. 사진=연합뉴스

북한으로 다시 돌아가는 이유는

그들은 왜 다시 그곳으로 돌아갔을까? 한 북한이탈주민은 재입북을 유도하는 북한 정보기관의 회유와 협박 공작이 국내외에서 작동하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많은 전문가들은 ‘남한사회에 대한 부적응’, ‘차별과 소외감’, 그리고 ‘심리적 단절과 고독’ 등에 그 근본 이유가 있다고 진단하고 있다.

한 북한이탈주민은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체제가 완전히 다르다”며 “사회주의 DNA를 가진 탈북민들이 한국에 적응하기란 쉽지 않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20년을 살고 있는 나도 북한과 너무 다른 한국 사회가 생소하게 느껴질 때가 있을 정도인데, 한국에 온지 얼마 안된 탈북민들은 어떻겠냐”면서 “한국에서의 치열한 경쟁과 약육강식 세계에 치이면서 못 먹어도 마음 편히 살았던 옛 시절을 그리워하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BBC뉴스코리아, 2022년9월28일)

2022년 1월초에는 한 북한이탈주민이 전방 철책선을 넘어 월북한 사건이 남한에서의 생활고와 부적응 때문이라는 뉴스가 전해졌다. 서울에 사는 40대의 북한이탈주민은 “다시 북한으로 돌아간 사람 심정을 알 것 같아요. 월북이 겁나지만, 여기 사는 게 그걸 뛰어넘을 정도로 더 힘들었으니까 그랬던 거 아닐까요”라고 말했다. (동아일보, 2022년1월6일)

과다 경쟁과 차별, 자살율과 저출산 1위 사회

한국 사회의 자살률은 OECD 1위다. 저출산 현상 또한 세계기록을 갱신하고 있다. 이 두 지표는 우리사회가 얼마나 경쟁이 치열한 곳이며, 여기에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힘들고 외롭게 사는지를 말해 주는 것일지 모른다. 북한이탈주민의 문제도 남한 사회가 그들을 따뜻하게 포용하지 못할 만큼 힘든 곳이라는 것에서 가장 근본적인 원인을 찾아야 할 것이다.

소설 <로기완을 만났다>의 첫 문장은 “처음에 그는, 그저 이니셜 L에 지나지 않았다”로 시작한다. 그리고 마지막 문장은 “이것이 바로 내가 들려주고 싶은 나의 이야기이다”로 끝난다. 이 소설은 이국만리 낯선 땅에서 외롭게 싸우는 로기완의 아픔에 깊이 공감하는 과정을 따라가면서 한국의 젊은 작가가 오히려 자신의 아픔을 치유해 가는 내용이다.

북한이탈주민은 ‘우리를 비추는 거울’이라고 필자는 종종 생각한다. 우리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새로운 각도에서 비추는 거울이자 미처 보지 못한 우리의 부끄러운 모습까지 깨닫게 하는 거울이 아닐까 싶다. 거울 속 배경에 정글이 보이지는 않은지, 사람들과 자신이 야수의 모습은 아닌지 찬찬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사진=연합뉴스
사진=연합뉴스

원작소설 속, 한국행 실종의 이유

다시 원작소설로 돌아가보자. 로기완이 한국으로 못 온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로기완이 유럽국가로 떠나고 벨기에에 도착하게 되는 것은 중국에서 같이 생활하던 친척과 브로커의 권유에 의한 것으로 나온다. 벨기에는 작은 나라지만 사람을 함부로 잡아가진 않을 거고 복지도 잘 되어있는 나라라고...

로기완은 왜 벨기에 한국대사관으로 들어가지 못했을까. 소설에서 한국 대사관은 로기완이 북한에서 왔다는 증거가 없으므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이유로 몇 번이나 거절한다. 무시무시한 관료주의는 로기완의 절박한 호소와 설명을 뻔한 거짓말로 치부해 버린다.

2년 만에 벨기에에 정착할 자격을 얻은 주인공이 그곳에서 만난 연인과 한국행을 생각할 수 없었던 이유도 소설에서는 이해하기 쉽게 설정되어 있다. 그가 만난 여인은 불법체류 중인 필리핀 여성이었다. 그녀가 불법체류자로 쫓기게 되자 로기완은 자신이 모은 모든 돈을 털어서 그녀를 영국으로 가는 트럭에 실어 보낸다. 그리고 자신도 영국에 가서 다시 불법체류자로 살면서 정착을 시도한다. 그리고 그들은 행복하게 살아간다.

로기완 내면에 흐르는 제3국행의 심리적 배경

앞에서 보이는 간단한 표면 상의 근거와 달리, 로기완 내면에 흐르는 또다른 제3국행의 이유가 소설에 비춰져 있다. 중국에서 어머니를 따라 교회에 갔을 때에 목사가 “북조선은 생지옥이므로 하루빨리 북조선의 길 잃은 양들을 구원해야 한다”고 설교하는 것을 보면서 로기완은 교회 사람들에게 적대적으로 변한다. 로기완에게는 “자신의 조국은 부강하여 뭐든 줄 것이 있었다면 기꺼이 베풀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고 소설은 묘사한다.

원작소설에서는 다시는 못 돌아갈 자신의 조국에 대한 로기완의 슬픈 사랑이 묻어나 있다. 주인공은 다시는 되돌아갈 길이 없는 조국의 영문 명칭을 일기장의 첫 장과 몇몇 페이지에 쓰고 또 썼다. 벨기에 난민신청국 심문실에서 “오랜 시간을 들여 꼼꼼하게 공화국 국기를 그렸고 빨간색과 파란색으로 정성스럽게 색도 입혔다. (중략) 의자에서 일어나 차려자세로 국가를 불렀다. 자신이 조국의 국가를 2절까지 모두 부르는 동안 통역자 박은 눈을 감고 있었다"고 로기완은 일기장에 적었다.

※ 필자인 박기찬은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후 미국 워싱턴대 MBA를 마친 금융인으로, 글로벌하고 미래지향적 시각에서 한반도 이슈에 접근하는 북한연구자이다.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개발협력 전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북한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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