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 피카소 작품에 집중한 바르셀로나 미술관

[정연복과 손잡고, 세계의 미술관으로] 피카소 초창기 작품 중심 4천 점 보유 “나를 화가로 키운 도시, 바르셀로나” 감사 좁은 골목길 끝 중세 건물 택한 ‘특별한 뜻’ 벨라스케스 ‘시녀들’ 재해석한 전시관 압권

바로셀로나 피카소 미술관.
바로셀로나 피카소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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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10여 곳에 개관된 피카소 박물관

“에계, 이런 그림은 나도 그리겠다.” 피카소 그림을 본 사람이라면 다들 한 번쯤은 이런 말을 해보았을 텐데요. 우리는 안 되고 피카소가 그리면 걸작이 되는 이 이상한 논리는 무엇일까요? 왜 어린아이처럼 혹은 노망난 할아버지가 그린 ‘환칠’ 같은 그림이 걸작이라고들 하는 걸까요? 그 이유에 대해 한 번 생각해보도록 하겠습니다.

피카소는 20세기 최고의 화가라 평가받습니다. 1881년에 태어나 1973년에 사망했으니 오랜 세월 작품도 많이 남겼지요. 그의 작품은 무려 5만여 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회화는 1885점, 조각이 1228점이고, 도자기가 2880점이죠. 피카소를 화가라고 알고 있는 우리의 상식을 간단히 뛰어넘는 기록입니다. 이 외에 데생이 7천여 점이 있고 판화가 3만여 점인데요. 이 많은 작품들은 다 어디에 있을까요?

파리와 뉴욕, 상트 페테르부르크 등 세계 유수의 박물관과 미술관에 가면 피카소의 작품을 만날 수 있습니다. 전세계에는 10여 개의 피카소 관련 미술관이 있는데요, 그 중 프랑스만 해도 3개(파리, 발로리스, 앙티브), 스페인에 6개(바르셀로나, 마드리드, 말라가 2개, 오르타 데 산트 호안, 코루냐), 독일의 뮌스터 등에 있습니다. 이 각각의 미술관은 다 나름의 매력이 있는데요. 그 중에서 오늘은 바르셀로나로 가볼까요? 그곳의 피카소 미술관은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는지 보도록 하겠습니다.

피카소 초창기 작품 가득한 바르셀로나 미술관

피카소 하면 입체파나 초현실주의적인 그림들을 떠올리기 쉬운데요. 피카소도 처음부터 그런 그림을 그린 건 물론 아니고 그 누구보다 사실적이고 전통에 충실한 그림을 그렸습니다. 진지하게 자신의 길을 모색하던 10대의 피카소를 그 어느 미술관보다 더 풍성하게 만날 수 있는 곳이 바로 바르셀로나입니다.

바로셀로나의 람블라스 거리. 사진=정연복
바로셀로나의 람블라스 거리. 사진=정연복

바르셀로나 관광의 중심 거리는 람블라스입니다. 북쪽의 카탈루냐 광장에서 남쪽의 바다 쪽으로 1㎞ 정도 되는 이 거리에는 식당과 카페, 온갖 매장 등이 다 있어 언제나 사람들로 활기가 넘쳐납니다. 파예야와 타파스 등을 먹고 커피 한 잔 마시며 이리저리 기웃거리다 보면, 소매치기나 야바위꾼도 심심찮게 볼 수 있는 곳이죠. 지하철역 리세우역이 나오고, 여기서 왼쪽 골목으로 접어들어 몇 백m 거리에 피카소 미술관이 있습니다. 람블라스 거리와 달리 골목길은 온통 그래피티로 뒤덮여 있기도 합니다.

바르셀로나 피카소 미술관으로 들어가는 통로같은 작은 길. 사진=정연복
바르셀로나 피카소 미술관으로 들어가는 통로같은 작은 길. 사진=정연복

오래되고 낡은 건물, 떨어져 나간 페인트, 낙서, 건물의 균열 사이를 걸어가다 보면 고풍스러운 건물이 나타납니다. 이곳이 바로 바르셀로나 피카소 미술관(Picasso Museum Barcelona)입니다.

바르셀로나 피카소 미술관 입구. 미술관 안쪽 마당에서 찍었다. 사진=정연복
바르셀로나 피카소 미술관 입구. 미술관 안쪽 마당에서 찍었다. 사진=정연복

파블로 피카소의 미술수업은 11세 때인 1892년 시작됩니다. 고향인 스페인 남부 도시 말라가를 떠나 북서쪽 항구도시 코루냐에 살 때입니다. 창의성보다는 반복적인 훈련에 가까운 교육이었지만 피카소는 이미 상당한 재능을 보여줍니다. 1895년 가을, 피카소 가족은 바르셀로나로 이사합니다. 당시 바르셀로나는 경제적 호황을 누리는 활기찬 국제적 도시였어요. 작은 해변도시에서 대도시로 온 피카소는 미술학교에서 교육을 받는 한편으로 바르셀로나의 전위적인 미술을 접하면서 자신의 예술 세계를 다듬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받습니다.

바로셀로나를 특별히 선택한 이유

피카소는 자신을 화가로 키운 도시, 바르셀로나에 보은의 마음으로 자신의 작품을 전시하는 미술관을 갖고 싶었다 합니다. 실제로 이 일을 추진한 사람은 피카소의 친구이자 비서이기도 했던 자우메 사바르테스(Jaume Sabartés, 1881-1968)였습니다.

미술관에 걸려 있는 파블로 피카소의 작품. 작품명은 '코안경을 낀 자우메 사바르테스'(1901) 사진=정연복
미술관에 걸려 있는 파블로 피카소의 작품. 작품명은 ‘코안경을 낀 자우메 사바르테스’(1901) 사진=정연복

사바르테스는 바르셀로나 시와 협상하여 미술관을 열기로 합니다. 자신이 소장하고 있던 작품과 피카소와 여러 컬렉터 등의 기증에 의해 1963년 3월 9일, 미술관이 개관합니다. 그런데 이 당시는 프랑코가 정권을 잡고 있을 때였습니다. <게르니카>(1937)를 통해 세계 만방에 그 만행을 고발한 피카소를 프랑코가 곱게 볼 리가 없었겠죠. 이런 이유로 미술관은 ‘사바르테스 컬렉션’으로 개관하게 됩니다.

이후 피카소가 자신의 바르셀로나 집에 있던 초기 그림들을 대거 기증한 것을 포함하여 소장품이 계속 늘어나면서 미술관은 4천 점이 넘는 작품을 소장하게 됐죠. 당연히 전시공간은 계속 확장했고요. 처음에는 13세기에 지어진 중세 고딕 양식의 건물 하나(아길라르 궁전)로 시작한 미술관은 이후 바로 옆의 4개 저택을 더 매입하였고 2011년에는 현대식으로 연구소 건물도 지어 미술관은 총 1만3000㎡의 규모를 자랑하게 됩니다.

바르셀로나 피카소 미술관은 공간과 위치에서도 특별함이 있습니다. 말끔한 초현대적인 건물이 아니라 중세 건물에 둥지를 틈으로써 피카소 미술의 뿌리인 전통과 고전을 생각하게 합니다. 이는 바로 바르셀로나 피카소 미술관의 고유성이기도 한데요. 피카소는 아무렇게나 그림 그리는 사람이 아니라 기초가 탄탄한, 전통에 뿌리를 둔 화가라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는 점입니다.

피카소가 15살이던 1896년에 그린 '첫영성체'. 사진= 정연복
피카소가 15살이던 1896년에 그린 ‘첫영성체’. 사진= 정연복
피카소가 16살이던 1897년에 그린 '과학과 자비'. 사진=정연복
피카소가 16살이던 1897년에 그린 ‘과학과 자비’. 사진=정연복

피카소가 15살이던 1896 년에 그린 <첫영성체>나 1897년에 그린 <과학과 자비>를 보면 그가 얼마나 완벽한 기교를 연마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구성이나 빛을 다루는 방식이 뛰어날 뿐만 아니라 인물의 상황에 맞는 동작과 표정, 포즈를 통해 인물의 내면이 그대로 전해지는 듯 생생합니다. 이 미술관에는 당시 그린 초상화들도 많이 전시하고 있습니다. 과감한 생략과 단순화를 통해 성격과 심리를 드러내는 솜씨가 10대의 화가지망생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탁월합니다.

그런데 그림을 보다 보면 한편 이런 생각이 듭니다. 피카소가 자신의 뛰어난 기교에 스스로 찬탄하며 그 자리에 머물렀다면 20세기 미술사는 얼마나 재미없었을까 하는 생각 말입니다. 피카소는 “나는 8살에 이미 라파엘로처럼 그림을 그렸다. 이후 평생 나는 어린아이처럼 그리기 위해 노력했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자신이 갇혀 스스로를 속박할 수도 있었을 전통에서 벗어나게 도와준 것이 19세기 말, 20세기 초의 바르셀로나의 자유롭고 전위적인 삶과 예술의 스타일이었습니다.

전통을 넘어 새로움을 찾아서

피카소는 바르셀로나의 젊은 예술가들과 어울리며 낡고 오래된 골목을 누비고 다녔을 겁니다. 미술관에 가기 위해 지나가야 하는 골목이 피카소가 다닌 바로 그 골목인 것 같아 묘한 기분을 느끼게 됩니다. 새로운 예술을 꿈꾸며 자주 술잔을 기울이고 메뉴판의 표지 그림을 직접 그리기도 했던 ‘엘 콰트로갓츠(Els 4Gats)’라고 하는 선술집(지금은 카탈루냐식 레스토랑)도 피카소 미술관에서 멀지 않습니다.

피카소는 들라크루아의 '알제의 여인들', 마네의 '풀밭위의 식사' 등 선배화가들의 작품을 재해석한 작품들도 여러 점 그렸다. 바르셀로나 피카소 미술관의 큰 전시실에 전시된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을 다시 그린 그림들은 ‘색채의 화가’로서의 피카소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사진=정연복
피카소는 들라크루아의 ‘알제의 여인들’, 마네의 ‘풀밭위의 식사’ 등 선배화가들의 작품을 재해석한 작품들도 여러 점 그렸다. 바르셀로나 피카소 미술관의 큰 전시실에 전시된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을 다시 그린 그림들은 ‘색채의 화가’로서의 피카소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사진=정연복

미술관에는 어린 시절 그림부터 말년에 이르는 그림들이 골고루 있지만 입체파 시기의 작품은 상대적으로 적습니다. 반면 피카소의 탄탄한 기본기, 조각과 도자기 등 끊임없이 계속된 새로운 시도, 그 새로운 중심에 언제나 전통과 선배 예술가들의 가르침이 있다는 것을 이 미술관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특히 벨라스케스의 <시녀들>(1656)을 재해석한 그림들로 채워진 마지막 전시실은 압권인데요. 이 방에 들어서면 입체파 시기 색깔을 멀리 하던 것과 달리 피카소야말로 색깔의 화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미술관을 나서면 다시 현란한 그래피티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전통에서 배우고 전통을 넘어서고자 했던 피카소처럼, 대담하고 발칙한 거리예술로 활기가 넘치는 21세기 바르셀로나 거리를 만끽할 수 있습니다.

글쓴이

정연복 미술평론가

정연복 미술평론가는 서울에서 불문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프랑스에서 미술사를 공부했다. 현재 중앙대에서 예술사 강의를 한다. 사조의 이해나 단순지식보다는 직관적인 경험으로서의 예술이해에 관심이 많다. 삶에서 예술이 나오고 예술이 곧 삶이 된다는 것, '아는 만큼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는 만큼 느끼는 것'이라는 믿음으로 그림과 미술관에 관한 글을 쓰고 강연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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