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카소 ‘게르니카’와 레이나 소피아 미술관
[정연복과 손잡고, 세계의 미술관으로] 40여년만에 고국으로 돌아온 게르니카 프랑코 독재 나치에 폭격당한 참상 그려 18만여점 보유..그림으로 역사의 교훈 전해
역사는 슬픔 가득한 스토리
<서울의 봄>이 화제입니다. 개봉한 지 두 달만에 1300여만의 관객이 영화를 보았습니다. 어느 정도의 픽션을 가미했다고 하지만 우리의 현대사, 그것도 군내부에서의 반란 문제를 소재로 한 영화가 이렇게 많은 관객, 특히 젊은 관객을 끌어들였다는 것이 흥미롭습니다. 사건이 일어난 1979년에 청장년이었던 세대에게는 아주 괴로운 기억이라 영화를 끝까지 보지 못하고 나왔다는 사람도 있고, 아예 영화를 보고 싶지 않다는 사람도 많습니다. 자신들이 태어나기도 전에 일어난 일을 소재로 다룬 영화가 2030세대를 불러모은다는 점이 특이하다고 할 수 있죠.
연기 잘 하고 인기있는 배우들이 총출연해 긴박감있게 사건을 보여준다는 점, 영화가 진행됨에 따라 안타까움과 분노 게이지가 급상승할 만큼 몰입도가 높다는 점, 악의 축과 선의 축이 확실하게 나누어진 듯하지만 상황의 유불리에 따라 끊임없이 머리를 굴리며 살궁리를 하는 인간의 모습이 리얼하게 그려졌다는 점 등이 흥행 요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영화와 마찬가지로 미술사에서도 역사는 고대 때부터 아주 중요한 소재입니다. 부당한 일에 항거하고 고발하기 위해 그려진 그림, 그 그림을 품고 있는 미술관을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마드리드로 날아가 볼까요?
스페인 3대 미술관중 하나, 레이나 소피아 미술관
스페인의 수도 마드리드는 세계적인 박물관을 보유한 미술의 도시입니다. 마드리드를 방문하는 사람들이 놓치지 않는 1순위는 프라도 박물관이죠. 프라도는 벨라스케스, 무리요, 고야와 같은 대표적인 스페인 화가들뿐만 아니라 루벤스, 티치아노, 뒤러 등 바쁜 걸음으로 둘러보기에는 너무나 귀한 작품들이 소장되어 있는 보석 같은 곳입니다. 첫날을 프라도 박물관에서 보냈다면 그 다음날은 티센 보르네미사 미술관과 레이나 소피아 미술관으로 발길을 옮기게 되는데요.
독일 귀족 티센 보르네미사의 컬렉션은 스페인 정부의 공들인 노력 끝에 1992년 마드리드에 둥지를 틉니다. 이곳에서는 중세부터 현대에까지 이르는 뛰어난 걸작들을 만날 수 있어요. 프라도와 레이나 소피아가 주로 스페인 예술에 치중하는 것과 달리 이곳에서는 이탈리아, 플랑드르, 독일뿐 아니라 현대 미국의 회화를 다수 접할 수 있다는 매력이 있습니다.
자, 이제 드디어 레이나 소피아 미술관으로! 이름이 조금 생소하시죠? 우리 말로 하면 ‘국립 소피아 왕비 미술관’입니다. 개관 당시인 1992년, 스페인 왕비의 이름을 넣어서 미술관이 불리고 있죠. 18세기에 지어진 종합병원 건물을 현대예술의 전당으로 탈바꿈시킨 것입니다. 특히 파블로 피카소, 살바도르 달리 뿐 아니라 후안 미로, 훌리오 곤잘레스, 후안 그리와 같은 스페인 화가들의 컬렉션은 세계 최고입니다. 이뿐 아니라 디에고 리베라, 마크 로스코, 프란시스 베이컨, 브루스 나우만, 백남준, 바실리 칸딘스키, 신디 셔먼, 가브리엘 오로스코 등 20세기 초를 달군 다양한 아방가르드적인 움직임에서부터 21세기 동시대 예술에 이르기까지 18만 여점의 작품이 소장되어 있습니다. 이 많은 작품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작품이 바로 우리가 보려고 하는 <게르니카>입니다.

<서울의 봄>처럼 나치에 폭격당한 <게르니카>
합스부르크 왕가에 속해 있었고 유럽에서 가톨릭 국가의 패권을 유지하고자 했던 스페인의 역사는 아주 복잡합니다. 19세기 후반인 1873년에 제1공화국이 시작되지만 채 2년도 되지 않아 왕정복고가 이뤄지죠. 1931년 총선에서 공화파가 승리하자 알폰소 2세 황제가 물러나면서 제2 공화국이 탄생됩니다. 그런데 프란시스코 프랑코가 이끄는 국민전선 진영은 새로 탄생한 공화당 정권에 승복하지 않고 1936년 반란을 일으킵니다. 이로써 스페인은 3년간 이어지는 내전에 휩싸이는데요. 프랑코를 지원하기 위해 1937년 4월 26일 나치 독일의 콘돌 군단이 바스크 지역에 폭탄을 투하합니다. 난데없이 날아든 폭격으로 1600 명이 넘는 민간인이 희생되었다고 합니다.

한편 공화국 정부는 1937년 1월, 그해 프랑스 파리에서 열리는 만국박람회를 위해 피카소에게 그림을 주문했는데요. 파블로 피카소는 무엇을 그릴지 고민하던 중 게르니카 폭격 소식을 듣고 마음을 굳힙니다. 그해 5월 25일부터 11월 25일까지 6개월간 파리에서 열리는 만국박람회에서 이 야만적인 일을 전세계에 알려야겠다고 생각한 거죠. 피카소의 생각은 적중했습니다.
박람회 기간 동안 3천여만 명의 사람들이 그림을 보았고 그림이 그려진 지 90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까지도 게르니카 폭격은 여전히 살아있는 역사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레이나 소피아 미술관에서 <게르니카>를 직접 보는 순간 압도당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이유는 뭘까요? 우선 기록과 고발의 의도를 부각시키기 위해 피카소가 택한 조형적 특징 때문입니다. 색깔을 최대한 배제하고 그 당시 신문에 실리는 사진처럼 흑백으로 그림을 그렸죠. 그림의 윗부분에는 큰 램프가 그려져 있는데 크게 뜨고 있는 사람의 눈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램프 옆에는 여인이 들고 있는 초가 불타고 있고요. 그림 전체를 밝히는 불빛은 진실을 드러내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하고 있죠.
그림은 중세의 세폭 제단화와 비슷한 구성을 보입니다. 왼쪽에는 죽은 아이를 안고 울부짖는 어머니와 슬픔과 황망함을 삼키는 황소, 오른쪽에는 두 팔을 들고 하늘을 향해 간구하는 사람이 있어 자연스럽게 예수와 성모 마리아를 떠올리게 됩니다. 바닥에는 부러진 칼을 들고 쓰러진 사람, 힘겨운 자세로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 공포와 분노로 발광중인 말이 입체파적인 방식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피카소는 그 어떤 사실적인 그림보다 인간의 야만적인 행위가 낳은 비극을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거대한 그림, 다가갈수록 전율이
레이나 소피아 미술관의 전시 방식도 작품의 감동을 배가시킵니다. <게르니카>가 전시된 전시실은 그렇게 크지 않은데요. 특이한 것은 그림의 가운데 부분 앞쪽이 옆 전시실과 연결되는 통로라는 점입니다. 멀리서부터 <게르니카>의 부분을 보며 다가가게 되는 거죠. 우리가 역사의 전모를 알기가 쉽지 않듯 작품은 부분만 보이다가 입구를 들어서는 순간 전체가 한 눈에 들어옵니다. <게르니카>는 가로 8m, 세로 3.5m에 가까운 거대한 크기를 자랑하는데, 가까이 다가갈수록 전모가 드러나는 이 큰 그림을 보며 관람객들은 바로 눈앞에서 벌어지는 참상을 직면하는 느낌을 받습니다.
<게르니카>는 1939년부터 뉴욕의 MoMA(뉴욕현대미술관)에 오랫동안 소장되어 있었습니다. 피카소가 프랑코 정권이 있는 한 작품이 절대 스페인으로 돌아가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기 때문입니다. 프랑코는 오랫동안 독재를 하다가 1975년에 사망하죠. 이후 왕정이 복고되고 민주화가 이루어진 뒤인 1981년에 작품은 마드리드로 돌아옵니다. 처음에는 프라도 박물관에 있다가 1992년부터 레이나 소피아 미술관에서 관람객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역사학자 토인비는 “인류에게 가장 큰 비극은 지나간 역사에서 아무런 교훈도 얻지 못한다는 데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고대 이래 지금까지도 온갖 이유로 전쟁을 하고 약자와 약소국을 괴롭히고 침탈하는 일이 자행되는 것을 보면 인간과 역사에 대한 이러한 말이 진리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레이나 소피아 미술관에서 만나는 <게르니카>는 각별합니다. 피카소는 불의에 항거하기 위해 그림을 그렸지만 스페인의 암담한 정치적 상황 때문에 4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게르니카>는 이방의 미술관에 있어야 했죠. 고국의 미술관으로 돌아간 <게르니카>를 보며 불의에 저항하는 예술, 희생하고 인내하며 진실을 알리는 예술의 소중함을 되새기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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