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자명 김성재 미 가드너웹대 교수
  • 경제
  • 입력 2023.03.14 11:54
  • 수정 2023.03.15 15:17

미국 금융위기 '시작의 신호탄' 올랐다

[김성재의 국제 정치경제학]
진정된 듯한 시장에 후폭풍 몰아칠 이유
미 정부 '시스템 위기 인정'은 심각한 의미
지역銀 유동성 위기와 대출자산 부실 우려

SVB는 어떻게 파산했나

미국 자산규모 16위의 실리콘밸리은행(SVB) 영업정지의 나비효과는 어디까지일까? 지난 일요일(14일) 미 재무부와 연방준비제도(연준), 연방예금보험공사(FDIC)가 긴급하게 마련한 금융시장 안정화 대책으로 위기의 불길은 진화된 것일까?

그러나 SVB 은행을 파산케 한 근본 문제는 수면 아래 여전히 잠복해 있다. FDIC가 인정했듯 연준의 급격한 금리 인상이 초래한 보유 자산 가치의 하락은 다수의 은행이 공통적으로 겪고 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은행업은 남의 돈으로 돈 버는 장사이다. 고객의 예금을 단기 저리로 유치해 보다 높은 금리로 장기 자산에 운용해 마진을 남겨야 살아남는다. 장기 자산에 대한 운용은 대개 대출과 채권 투자로 이루어진다. 그런데 SVB가 문제가 된 것은 채권 자산이었다.

그것도 위험도가 큰 정크본드나 주택담보채권(MBS)이 아니라 가장 안전하다는 미 국채 투자에서 큰 손실을 봤다. 연준의 금리 인상으로 채권 수익률이 0%대에서 4% 가까이로 치솟으면서 채권 가격이 폭락했기 때문이다.

물론 채권 가격이 폭락한다 해서 은행이 당장 망하는 것은 아니다. 가장 안전하다는 미 국채는 말할 것도 없다. 만기보유(HTM, held-to-maturity) 목적으로 채권을 보유할 경우 미실현손실이 손익으로 잡히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SVB 경영진이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고 금리가 하락하기까지 조용히 기다렸다면 별일이 없었을 수도 있다. 그런데 미실현손실이 탐탁지 않았던 은행 경영진은 자본 확충에 나섰다. 자본적정성(BIS비율)을 높이기 위해서다.

영업정지 직전의 미국 캘리포니아주 실리콘밸리은행(SVB) 본사 모습. 사진=AFP/연합뉴스
영업정지 직전의 미국 캘리포니아주 실리콘밸리은행(SVB) 본사 모습. 사진=AFP/연합뉴스

최고의 투자은행인 골드만삭스를 주간사로 선정해 착착 일을 진행해 나갔다. 은행으로서는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것이 시장에는 엄청난 부정적 시그널로 다가갔다. 그간 SVB를 우량은행으로 평가하던 신용평가기관 무디스가 신용등급을 갑자기 내렸다.

그간 신경 쓰지 않았던 채권 미실현손실에 포커스를 맞췄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SVB의 자본 확충 계획은 물 건너갔다. 이 소문이 실리콘밸리의 벤처캐피털 사이에 퍼지면서 불안감을 느낀 스타트업들의 예금인출 러시가 일어났다.

2008년 이후 15년 만에 '뱅크런'이 현실화된 것이다. 인터넷 뱅킹으로 몇 번의 클릭만 해도 큰돈이 이체되는 현실에서 소문이 부른 뱅크런의 누적효과는 치명적이었다. 결국 이 은행은 고객의 예금 인출 요구에 대응하지 못했고 FDIC의 명령으로 영업 정지되고 말았다.

이로 인해 은행주를 비롯해 주식시장은 큰 폭의 하락세를 보였다. 주말에는 30위권의 또 다른 대형은행인 뉴욕 소재 시그너처(Signature) 은행이 또다시 영업 정지를 당했다. 이렇게 되자 월요일 거대한 금융 붕괴가 일어날 것이라는 블랙먼데이 공포가 월가를 덮쳤다.

시장을 진정시키는데 성공한 걸까

물론 2008년 연이은 뱅크런으로 금융시장의 전면적 붕괴 일보직전까지 갔던 경험이 생생했던 미 금융당국은 재빠르게 움직였다. 주말 재무부를 필두로 연준과 FDIC 그리고 백악관까지 야근을 하면서 금융 안정화 대책을 마련했다.

그것은 시의적절했고 놀랍도록 신속한 움직임이었다. SVB 선데이를 지나 주가지수 선물은 큰 폭으로 상승하면서 금융시장이 안정을 회복했음을 보여주었다. 이런 회복세를 직접적으로 견인한 것은 재무부, 연준, FDIC의 공동성명과 이를 확인한 백악관의 메시지였다.

짤막한 백악관의 메시지는 이 신속한 일련의 움직임 뒤에 금융감독 전문가인 백악관 경제 실세 레이얼 브레이너드 NEC(전미경제위원회) 위원장이 있었음을 암시했다. 연준 부의장으로 비둘기파를 대표하던 그가 백악관으로 가서 바이든의 힘을 빌려 금융정책 향방을 단번에 바꿔버린 것이다.

미 정부의 공동성명에는 실리콘밸리를 불안케 하는 자금 경색을 해결할 강력한 대책이 포함돼 있다. 파산한 SVB와 시그너처 두 은행 예금자의 예금 전액을 지급하겠다는 것이다. 이것은 물론 상식에 반한다. 현행법상 FDIC가 지급할 수 있는 예금 한도는 25만 달러이기 때문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13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실리콘밸리은행 파산과 관련한 대국민 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 로이터/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13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실리콘밸리은행 파산과 관련한 대국민 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 로이터/연합뉴스

미 정부가 인정한 '시스템 위기'의 의미는

예금보험에 지급 한도를 설정한 이유는 예금자와 은행 경영자의 도덕적 해이를 막고 FDIC의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다. 다시 말하면 세금으로 운용되는 FDIC의 손실을 막아 최소비용의 원칙을 달성하기 위함이다. 물론 여기에는 예외가 있고 그 예외를 백악관은 이용했다.

법상 '시스템적 위기 시 예외(SRE, systemic risk exception)'라는 조항이다. 연준과 FDIC, 재무부가 모두 은행 파산이 금융 시스템 전반의 안정성을 위협한다고 동의할 때 FDIC는 SRE를 적용해 25만 달러가 넘는 예금도 예외적으로 지급할 수 있다.

물론 대통령도 여기에 찬성해야 한다. 일요일 단 하루에 걸쳐 네 개의 권력기관이 동시에 신속히 SRE 발동을 진행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브레이너드의 능력이 빛나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이로 인해 금융시장은 안정되었지만 향후 엄청난 후폭풍이 뒤따를 가능성이 크다.

우선 미 정부와 연준이 ‘시스템적 위기’를 인정했다는 사실이다. 지난주만 해도 크립토 시장과 스타트업에 특화한 일부 지역은행의 유동성 위기쯤으로 치부했던 정부의 태도가 일변해 어느새 시스템적 위기를 인정하는 지경이 됐다.

그렇다. 시스템적 위기다. 이것이 얼마나 대단한지는 2008년의 경우를 보면 알 수 있다. 당시 미 정부는 현재 SVB보다 규모가 크고 당시로서는 사상 최대의 파산이었던 워싱턴 뮤추얼이 유동성 위기에 처했을 때도 시스템적 위기를 고려하지 않았다.

당시 5대 은행에 속했던 와코비아가 유동성 위기에 몰리자 겨우 시스템적 위기를 인정하기에 이르렀다. 그 이후에도 SRE를 실제 적용한 것은 시티은행 한 곳뿐이었다. 그런데 지난 주초까지만 해도 어느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시스템적 위기를 미 정부가 인정해버렸다.

이것은 대단한 의미를 지닌다. 미 금융당국이 그간 엄격한 스트레스 테스트 대상에서 제외됐던 대형 지역은행의 자산 상태에 문제가 있고 언제든 유동성 위기에 빠질 수 있음을 파악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즉, 금융위기 시즌이 본격적으로 개막했음을 시사한다.

설상가상으로 더 큰 문제는 은행 자산 부실화가 이제 막 시작됐다는 사실이다. 채권 자산보다 더 규모가 크고 유동화가 어려운 대출 자산의 부실화가 올 하반기부터 본격화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SVB가 일으킨 나비효과가 찻잔 속 태풍으로 머물기 어려운 이유다.

※ 김성재 미 가드너웹 대학교 교수(경영학)는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후 종금사와 예금보험공사에서 12년 간 근무했다. 학업을 재개해 코넬대와 루이지애나주립대에서 경영학(파이낸스)를 전공해 박사학위를 받았다. 2012년부터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가드너웹 대학교에서 경영학 교수로 재직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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